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74화 (962/1,404)

#974화 대천사의 가호 (9)

과연 이 녀석을 여기서 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일단 접어두었다.

그보다는 확실히 여기서 살아남는 길을 택하는 게 우선.

보아하니 마왕 올펠은 마왕 스티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죽일 생각으로 보였다.

<불멸> 저놈 진짜 막 나가는데?

재중이 형도 어느새 프로미넌스를 꺼내들어 양손으로 잡고 자세를 낮췄다.

솔직히 어느 정도 마왕 스티어에게 기대를 건 것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마왕들이 간섭하는 걸 막아줄 거라는 판단은 지금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뒤를 보자 전신과 패황도 긴장감 가득한 눈빛으로 두 마왕의 대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둘 다 무기를 꺼내든 상태.

전신은 예의 그 영웅의 무기로 보이는 대검을 꺼내놓았다.

그리고 패황은 기묘하게 휘어진 푸른 날을 가진 배틀 액스를 꺼내들었다.

전에는 얼음 여왕의 레이드에서 검방으로 탱킹을 하지 않았나?

저 무기는 처음 보는데?

<주호> 배틀 액스인가요……?

<불멸> 어, 리빙 아머 킹의 네임드 무기. 생긴 게 무식하게 보여도 상당히 좋다고.

그러면서 자신의 프로미넌스를 들어올렸다.

창신 전체가 화르륵 타오르는 무형에 가까운 스피어.

내가 아는 한 지금은 이 무기가 네임드 템 중에서는 가장 좋다.

그런 재중이 형이 좋다고 하는 무기라면…….

<불멸> 단순 파괴력만은 아마 이것보다 조금 더 잘 나올 거다.

<주호> 그 정도예요?

생각 이상인데?

그렇게나 강하다면 지금껏 왜 얻지 않았냐고 물어보려는데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버렸다.

<불멸> 그래. 좋지. 다만 드럽게 안 나와. 저것도 최초 킬 때 얻은 딱 하나뿐인 무기일걸?

<주호> 흐음. 그렇다면야…….

이상할 정도로 나오지 않는 네임드 무기가 몇 개 있었다.

가령 재중이 형의 프로미넌스라던가.

데스가 가진 글래시어 같은 경우도 그렇고.

패황이 가진 저 무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고는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주호> 적어도 발목은 잡진 않겠네요.

당장 눈앞에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녀석은 무려 마왕이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수백이 있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차라리 저렇게 확실한 전력이 있는 편이 낫겠지.

슬쩍 화련을 보자 화련 역시 뭔가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주호> 싸울 생각이에요?

<화련> 그럼 구경만 해?

화련은 저들과 다르게 보랏빛을 내는 검신을 가진 검을 꺼내들었다.

얼핏 보기에 레이피어의 검신과 비슷할 정도로 얇은 형태.

이것도 처음 보는데?

무슨 무기지?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도 저건 모르는지 고개를 저었다.

<불멸> 나도 몰라.

<주호> 흐음, 그런가요?

<불멸> 아마 마계 경매장에서 샀겠지.

툭 던진 말이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오히려 그쪽이 더 어울린달까.

아마 화련에게 물어본다고 딱히 알려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런데 그런 보랏빛 검신이 웅웅 울리면서 화련에게 가는 압박의 기운들과 부딪혀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이 보였다.

흐음.

저게 이전에 마왕들의 압박을 대신 막아준 거려나?

무슨 무기인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네임드 템 이상의 무엇이라는 생각은 확실하게 들었다.

<화련> 방해될 수준은 아니니까 걱정 끄시지?

내가 화련을 또렷하게 바라보자 화련은 그렇게 느꼈었나 보다.

<주호> 아뇨. 전력이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좋죠.

당장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판이라.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을 쭉 둘러본 내 소감은 하나였다.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것 같네.

중소 길드의 연합장들이나 상인 연합 쪽 사람들은 별 기대를 안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럼 제대로 된 전력은.

나와 재중이 형, 화련, 전신, 패황 정도인가?

우리 앞쪽에서는 마왕 올펠의 맹렬한 기운을 마왕 스티어가 정면에서 맞서고 있는 중이었다.

둘 다 마왕이다 보니 단순히 기운의 충돌로 승부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면에서 충돌하게 되면 여기는 일단 초토화된다고 봐야겠지.

재중이 형이 전신 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마왕 올펠을 턱짓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할 거냐?”

“……가만히 앉아서 죽어줄 생각은 없습니다.”

전신도 역시 이번에는 싸울 생각인 모양이었다.

패황은 아무 말이 없긴 해도.

무기를 제대로 들어 올린 걸 보면 가세할 듯했고.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게 패황은 아예 앞쪽으로 나섰다.

그러더니 우리를 보고 말했다.

“선두에서 탱킹을 하겠다.”

어?

의아한 내 물음을 제쳐 두고 패황이 말했다.

“당장 저 마왕의 공격을 버틸 만한 건 나뿐인 것 같군.”

그 말에 전신은 납득을 하듯 한 발짝 뒤로 뺐다.

자리를 만들어 주려는 듯.

나 역시 패황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리빙 아머 킹의 단단한 방어구가 패황의 전신에서 번쩍였으니까.

온몸을 리빙 아머 킹의 네임드 템으로 무장한 녀석은 그 자체로 탱커와 같았다.

확실히 이 안에서 탱킹을 할 만한 녀석은 이 녀석뿐이겠네.

나와 재중이 형은 애초에 딜러 쪽 성향이 크니까.

그리고 전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나나 재중이 형과 비슷한 부류겠지.

화련도 딱히 다르지 않았고.

“이거 참. 팀 밸런스 완전 똥망이네.”

재중이 형이 그 말과 함께 피식 웃어버렸다.

딱히 틀린 말이 아니다.

원거리도 힐러도 없고.

디버프나 버프를 해준 녀석들도 없었다.

탱커 하나에 딜러 넷.

얼핏 보면 최악의 구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 마왕 스티어와 마왕 올펠 사이에게 엄청난 기류가 터져 나왔다.

“아, 진짜. 서열 차이도 있는데 쪽팔리게.”

마왕 올펠은 마왕 서열이 무려 3위였다.

내놓으라 하는 어지간한 마왕들도 이 마왕 올펠에게는 상대가 안 된다.

점점 단단한 붉은 갑주처럼 변하는 손을 들어 올려 머리를 쓸어 올린 마왕 올펠이 마왕 스티어를 노려보았다.

“아직 새파란 마왕을 없애버리고 싶진 않아. 죽고 싶지 않으면 그만 비켜라.”

“감히 내 땅에서……!”

마계 경매장 같은 곳과는 사정이 아예 다르다.

이미 둘 다 투기를 끌어올린 상태에서 주변에는 말려줄 존재도 없었다.

마왕 스티어도 양보할 수 없는 건.

이곳은 자신의 영역.

다른 마왕이 여기서 날뛰게 하는 건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가 나게 된다.

그게 목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마왕은 다를지도 모르지.

그리고 마왕 스티어 입장에서는 여기서 한 번 밀리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 주도권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자기 앞마당을 다른 마왕들이 마음대로 오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딱히 우리를 지켜주기 위함이라기보다도.

녀석에겐 이 버티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존재감을 지키기 위함도 되었다.

“번거롭게 하네. 진짜.”

그와 함께 강렬한 기세를 터트리며 마왕 올펠의 신형이 쏘아지듯 마왕 스티어의 정면에 다다랐다.

그 어떤 무기도 없는.

단순한 주먹의 내지름.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기에 더욱 빠르게 둘 사이의 공간을 찢어내면서 여러 층의 기압을 함께 터트리며 마왕 스티어의 정면을 쳤다.

그렇게 터져 나오는 압력만으로 몸이 밀려날 정도.

물론 이쪽도 마왕이다 보니 그런 공격 한 방에 당해주진 않았다.

바로 어둠 속에서 거대한 데스사이드를 소환해낸 마왕 스티어가 마왕 올펠의 돌격을 정면에서 막아 내었다.

콰아아앙!!

힘과 힘의 격돌.

주먹과 칼날이 닿았음에도 그건 이미 포탄들이 부딪힌 것처럼 엄청난 굉음을 터트렸다.

“호오, 이것 봐라? 그래도 마왕 끝자락은 된다 이거냐?”

마왕 올펠이 흥겨운 듯 연신 주먹을 휘두르자 매번 맹렬한 기운이 폭발하며 점점 그 위력을 더해갔다.

붉게 변한 두 갑주 형태의 팔들에서 매번 마왕 스티어의 데스사이드를 부서뜨릴 것 같은 충격음이 들려왔다.

콰앙!

콰아앙!!

쿠웅!!

“크으윽!!”

그 모든 힘들을 받아내고 있는 마왕 스티어의 데스사이드에 감긴 진득한 어둠의 기운들이 계속 허공으로 찢어지듯 흐트러졌다.

이어지는 마왕 올펠의 신체 전체에 피어오르는 강렬하고도 검붉은 기운이 터져 나왔다.

저건…….

발록의 것과는 느낌 차제가 달랐다.

좀 더 찐득하면서도 더 어둠을 닮아 있는.

보는 것만으로 빨려들 것 같은 죽음까지도 태워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압도적인 화염에 저절로 눈이 갔다.

동시에 마왕 스티어 쪽에서도 주변의 모든 빛을 살라먹을 것 같은 어둠을 일으키면서 마왕 올펠의 기운에 대항해 갔다.

이제는 누구 하나 물러설 수 없을 정도로 격해진 상황.

여기서 한 번만 물러나면 바로 패배다.

워낙 강력한 기운들과 공격들이 오가면서 마왕 올펠과 마왕 스티어는 더 이상 말이 없어졌다.

정확하게는 마왕 스티어 쪽에 여유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하려나.

한 번씩 맞부딪힐 때마다 계속 마왕 스티어가 뒤로 밀려났으니까.

격의 차이가 너무 눈에 띄었다.

재중이 형은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혀를 찼다.

“역시 마왕들 사이에서도 격차는 확실히 존재하네.”

이건 누가 봐도 마왕 스티어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그림이었다.

솔직히 마왕 스티어만 해도 우리를 전부 누를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그런 마왕 스티어가 지금 마왕 올펠의 단순한 공격에도 버거워하면서 버티기만 하는 중이었다.

서열 차이가 곧 힘이라는 건가.

그럼 그 위로 1, 2위는 얼마나 강하다는 건지…….

예전에 그런 마왕들을 상대로 거래를 만드는 걸 보고 마계 경매장의 NPC이 놀라 기함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재중이 형이 패황을 보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오래는 못 버틸 것 같네. 패황 당신이 녀석의 공격을 전부 막을 필요는 없어. 어차피 대부분의 공방은 마왕 스티어가 맡을 거니까.”

“흘러나오는 공격을 한두 번만 막아내면 된다는 거군.”

“아마 그것도 쉽진 않겠지만.”

그 말에 패황이 쓰게 웃었다.

당장 저 미친 위력의 격돌을 보고 있으니.

한 방, 한 방의 충격파만으로 이쪽은 튕겨 나올 수준이었다.

그걸 몸으로 직접 막으라고 말하는 중이고.

“일단은 해보지. 장담은 못 하지만.”

패황이 가진 리빙 아머 킹의 플레이트는 그 자체로 푸른 염화를 뿜어내며 거의 대부분의 공격에 대한 저항을 가진다.

특히 마법적인 저항력이 상당히 높았다.

패턴 자체가 특수한 어지간한 마왕들의 공격도 일단은 버텨낼 수 있을 터.

그다음으로 재중이 형이 화련과 전신을 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그 사이로 최대한 치고 빠지면서 기회를 만든다.”

기회라는 말에 화련이 의아한 듯 물었다.

전신도 의문을 가지며 재중이 형을 빤히 바라보았고.

“기회?”

“그래, 기회. 딱 한 번이면 돼.”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내 등을 손바닥으로 쳤다.

한 눈으로 윙크를 하면서.

“우린…… 이 녀석에게 모든 걸 맡긴다.”

하.

이 형, 진짜.

부담을 팍팍 주는구만.

모두 내게 시선을 집중하자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게 통할지 안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가진 가장 유효한 공격.

이걸 녀석에게 때려 박을 수만 있다면……!

“네, 아주 죽이는 게 있으니까. 딱 한 번만 부탁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