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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73화 (961/1,404)

#973화 대천사의 가호 (8)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

그리고 그에 대항하듯 줄기줄기 뿜어내는 마왕 스티어의 기운들이 마왕성 내성의 벽을 경계로 서로를 밀어내듯 세차게 부딪히고 있었다.

쿠구궁!

몸을 누를 듯이 압박해오는 강렬한 기운에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가 동시에 반응했다.

키이이잉!!

곧 떨리는 두 개의 검이 마치 진공이라도 만들어내는 것처럼 주변의 압력들을 해소해내었다.

옆에 있던 재중이 형도 마찬가지.

프로미넌스가 가늘게 울리면서 이 기운에 동시에 저항했다.

곧 재중이 형이 내게 눈빛을 보내며 떨어대는 프로미넌스의 창대를 꽉 쥐었다.

“이거 참, 한 가닥 하는 놈이 오나 본데?”

그런 재중이 형을 보고는 나 역시 언제든 치고 나갈 수 있게 자세를 잡았다.

고개를 돌려 마왕 스티어를 보니 로브 속의 어둠이 천장을 위협하듯 계속 일렁이는 것을 봐서는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인 건 확실해 보였다.

마왕성이 갑자기 나타나서 내리누르듯 힘을 과시하는 녀석이라면…….

“최소한 마왕급은 되어 보이네요.”

이곳은 마왕이 존재하는 마왕성이다.

그런 마왕성에 와서 저따위로 힘을 발산할 만한 녀석은 적어도 이 마계에서는 몇 녀석 되지 않았다.

같은 마왕이거나.

혹은 그 이상의 뭔가의 존재.

그리고 지금은 그게 마왕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호의적이라고 보긴 힘든데…….

슬쩍 시선을 뒤로 돌리자 화련의 표정이 확 굳어져 있었다.

아까 마왕 스티어가 뿜어낸 기운은 그저 시험 정도에 불과했다면 지금의 마력 충돌은 두 존재가 모두 서로를 위협할 작정으로 뿜어내는 수준이라…….

화련을 보호하고 있던 뭔가의 아이템은 이 충돌을 겨우 막아주는 모양이었다.

“무리하지 말고 빠져요.”

“칫, 버틸 만하거든?”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주변을 돌아보니 전신과 패황은 확연히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좀 다른 점은 패황은 완전히 주저앉기 직전이지만, 전신은 꼿꼿이 서서 버텨내는 중이었다.

녀석의 몸에 있는 대검에서 뻗어 나온 뭔가의 파장이 충격파를 상쇄해 냈다.

정확히는 충격파를 흡수하듯 빨아들인다고 해야 하나?

겉으로 봐선 전혀 알 수 없는 화려한 마법 무늬로 수놓아진.

주변의 빛을 빨아들여 방출하던 기이한 대검.

내가 알기로 네임드 템 중에 저런 무기는 없었다.

그리고 일반적인 네임드 템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버티지도 못 한다.

“아마 저것도 영웅의 무구겠죠?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지아라는 탱커만 영웅의 무구를 가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없는 사이 꽤 많이 모으고 다닌 모양이었다.

무기 단계로만 보면 이쁜소녀가 들고 있는 영웅의 무기인 진(眞)토르와 동급일 것이다.

전에 전신이 공성에서 쓴 기술은 헤븐즈 스트라이크와 비슷한 위력일 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극강의 성 속성을 가진 토르의 헤븐즈 스트라이크는 마계에서는 어지간한 녀석들을 다 씹어 먹을 수 있을 텐데…….

만약 그랜드 크로스에 헤븐즈 스트라이크를 섞을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잠시 그런 생각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눈앞의 정체 모를 적을 상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한참을 마왕성 내성을 내리누르던 압력이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바닥에 찌그러져 있던 연합 대표들이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으으…….”

“젠장.”

“무슨 놈의 압력이…….”

이곳에 있던 나를 비롯한 재중이 형, 화련, 전신, 패황은 서서 버텼지만 이들은 달랐다.

단순한 기운의 싸움에도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처박혔다는 게 인정하기 싫은 듯 이를 악무는 녀석도 있었다.

이미 저들과 우리들 사이에는 능력의 차이가 상당히 났다.

당장 저 존재들끼리 붙는다고 하면 이들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겨우 기운의 충격파에도 힘을 쓰지 못하는데.

전투가 가능할 리가 있나.

그렇기에 더욱 녀석들의 표정이 긴장감이 서렸다.

상대하지 못하는 존재들을 앞에 두고.

콰아앙!!

그때 천장의 내벽이 강력한 충격과 함께 부서지면서 돌벽 파편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재중이 형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거참. 요란하게도 등장하네.”

곧 폭발의 잔해가 가시면서 누군가 하늘에 붕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형, 저 녀석…….”

“아아, 그래. 알던 놈이군.”

누군가 했더니 이미 한 번 봤던 녀석이었다.

마왕 올펠.

타오르는 붉은빛 머리가 폭발의 바람에 휘날리면서 녀석의 존재감을 전해왔다.

탄탄한 체구에 언제라도 싸울 수 있게 움찔거리는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들까지.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마계 경매장에서도 봤을 때는 상당히 호전적이었다.

서열 1위 마왕 바이카르를 앞에 두고 으르렁거릴 정도였으니.

마치 투견을 연상케 한다고 해야 하나.

굳이 비교하자면 둘 다 몸으로 때우는 전투 계열이지만 마왕 스티어는 뱀파이어 로드와 비슷한 유형이었고.

반면 마왕 올펠은 아마 발록과 꽤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체적인 우위를 가지고 싸우는 스타일.

그의 등장에 마왕 스티어가 공중에 뜬 녀석을 노려보면서 낮게 말을 깔았다.

꽤 화가 난 듯한 말투로.

“마왕 올펠. 아무리 상위 마왕이라고 해도 남의 마왕성을 함부로 부수고 들어올 순 없다.”

그러면서도 딱히 마왕 올펠을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건 마왕 스티어가 마왕 올펠에게 보내는 경고 같았다.

마치 지금의 무례는 넘어갈 테니 더 이상의 행패를 부리지 말라는 듯.

어떻게 보면 마왕 스티어가 한 번 양보를 하는 모양새랄까.

그 모습을 본 화련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렸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먹고 들어…….”

그런 화련의 입을 재빨리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읍우! 무야……!”

“하하…… 무례는 나중에 한 대 맞아줄게요.”

혹시나 들었나 싶어서 두 마왕을 바라봤는데 다행히 둘 다 서로를 견제한다고 딱히 이쪽을 신경 쓰진 못한 듯했다.

가득이나 마왕 올펠만 해도 상대하기 힘든데.

마왕 스티어까지 건드렸다가는 답도 없어.

“이상한 소리 하면 안 돼요.”

그러자 화련이 못마땅한 듯 눈을 깜박거렸다.

바로 손바닥을 입술에서 떼자 화련이 발로 내 다리를 찼다.

“쳇, 나도 알거든?”

화련도 자기도 모르게 그냥 내뱉은 말이었는지 곧 귓속말로 전환했다.

<화련> 이러면 됐어?

<주호> 한결 낫네요.

<화련> 그래서…… 누가 이기는데?

화련이 나를 보더니 곧 마왕 스티어와 마왕 올펠을 눈으로 재듯이 번갈아 바라보았다.

둘이 싸운다고 생각하는 거려나?

그러고 보면 화련은 마왕 올펠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

으음.

아닌가?

분명히 베르테니아 마왕성이 망할 때 화련도 있었을 테니 보기는 했을 텐데.

마왕 스티어야 이번에 처음 보는 거지만.

<주호> 혹시 저 녀석 본 적 있어요?

<화련> 올펠?

<주호> 네, 저 녀석요.

<화련> 꽤 많이 봤지.

역시 그런가.

화련이 뭔가를 떠올린 듯 치를 떨면서 말했다.

<화련> 마왕 중에 제일 짜증나는 녀석이야.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많이 마주쳤다는 건데…….

아까 화련이 말한 것도 마왕 올펠이 마음에 안 들어서 해본 말이었나?

<화련> 베르테니아 마왕성도 저 녀석 때문에 무너졌잖아.

<주호> 네, 뭐, 그렇죠.

<화련> 그 뒤에도 꽤 귀찮게 했다고.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 팀과 재중이 형에게 잘 들었다.

마왕들이 꽤 훼방을 놓고 다녔다고.

솔직히 그때 내가 남아있었다고 해서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지켜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아마 시간이 꽤 주어졌다면 테르타로스를 어떻게든 활성화시켜서 한판 해볼 만은 했을 테지만.

그것도 마왕들의 협공이라면 꽤 힘들었을 것이다.

슬쩍 인벤 속의 대천사의 검을 바라보았다.

이건 현재 내가 가진 최고의 패랄까.

필요한 건 시간.

어떻게든 시간만 좀 주어진다면.

이 녀석을 최대한 키워낼 수 있다.

그러면 마왕들에게도 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잠시 생각을 하다가 화련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주호> 둘이 붙으면 아마…… 마왕 올펠이 이길 거예요.

<화련> 역시 그렇지?

흐음.

알면서 물어본 건가?

화련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화련> 이쪽 마왕은 마왕이 된 지 얼마 안 됐다며? 그럼 일대일로 붙으면 지겠지.

아주 단순하지만 확실한 가정.

딱히 화련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지금 마왕 스티어가 자신의 마왕성이 부서졌음에도 다소 저자세로 나가는 것도 당장 붙으면 필패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진다고 그냥 져줄 녀석은 아니니 치명적인 상처 정도는 내주겠지만.

“둘이서 뭘 그렇게 의논하고 있냐?”

재중이 형이 물어보자 그저 웃기만 했다.

“별 이야긴 아니었어요.”

“너희 은근히 사이가 좋아 보인다?”

그 말에 화련이 버럭 화를 냈다.

“누가!”

“설마요.”

“뭐?”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을 치켜뜨는 화련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져야 하는 건지.

그러는 사이 마왕 올펠이 땅에 내려앉으면서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인간들이라…… 꽤 재밌는 취미를 가지고 있군.”

그리고 우리에게 시선을 맞추더니 곧 강렬한 압박을 걸어왔다.

“큭.”

또다시 걸려오는 압박이었지만 이미 한 차례 경험해 봤기에 딱히 크게 밀리진 않았다.

“이것들 봐라?”

이채를 띈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마왕 올펠을 마왕 스티어가 중간에 막았다.

“그만.”

마왕 스티어가 우리를 보호하듯 중간에 서자 곧 압력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리곤 마왕 올펠을 보면서 경고했다.

“남의 마왕성에서 마음대로 힘을 쓰는 건 여기까지다.”

그런 마왕 스티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마왕 올펠이 인상을 찡그렸다.

“고작 인간들 따위를 보호하려고 나를 막은 거냐?”

정말 마왕 스티어가 막아줄 줄은 몰랐는데?

마왕 올펠과 적대하겠다는 뜻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를 공격하는 걸 두고 보진 않겠다는 뜻은 확실히 보였다.

우리를 두고 두 마왕 사이에 거센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이 상황에서 마왕 올펠이 마왕 스티어를 무시하고 우리를 공격하면 정말 두 마왕 사이에서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젠장.

아직은 아닌데.

적어도 조금의 시간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녀석에게 확실한 타격을 입힐 정도로 능력을 키웠다면…….

지금이라면 대천사의 검의 능력으로 과연 제대로 된 공격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아마 마왕 스티어도 지금의 상황은 염두에 두진 않았을 것이다.

대놓고 남의 마왕성에 들어오다니.

뒤를 보니 전신과 패황도 표정이 잔뜩 긴장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싸우면 마왕 스티어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일단 죽는다.

마왕 올펠이 혀를 차면서 마왕 스티어에게 외쳤다.

“천사의 기운이 느껴져서 왔는데 이런 한심한 꼴이라니. 전에 인간들을 데리고 있던 마왕의 끝을 보지 않았던가?”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마왕 올펠은 인간을 극도로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다시 기세를 키우던 마왕 올펠이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말리면 너도 죽는다. 마왕 스티어.”

그 경고와 함께 마왕 올펠이 움직이려고 하자 곧장 재중이 형에게 신호했다.

<주호> 형! 저 녀석! 여기서 잡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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