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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72화 (960/1,404)

#972화 대천사의 가호 (7)

연이어 울리는 귓속말 시스템.

비공개로 해놓았기에 딱히 저들의 메시지가 내게 전달되지는 않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내게 연락을 넣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슬쩍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주호> 형, 귓속말 잔뜩 오는데요?

그러자 날 한 번 본 뒤 연회장의 사람들을 바라본 재중이 형이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마왕과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불멸> 너랑 마왕하고 꽤 사이가 좋게 보이나 봐. 좀 전의 마왕의 공격을 한 마디 말로 막은 것도 있고. 지금은 아예 옆에서 편하게 이야기하잖아.

<주호> 딱히 편하진 않는데요.

남들이 보기엔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마왕이 돌발행동을 할까 봐 굉장히 긴장하면서 말하는 중이었다.

막말로 마왕이 수틀린다고 난동이라도 부리면 막을 만한 방법이 없었다.

정말 최악의 경우 대천사의 검이라도 꺼내야겠지만.

그랬다가는 상황은 더 난장판이 될 뿐이었다.

뭐 그렇다고 마왕 스티어가 대놓고 이 판을 엎을 거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저 녀석에게도 유저들의 협조가 필요하니까.

<주호> 연락 온 건 어떻게 해요?

재중이 형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불멸> 일단 다 씹어.

<주호> 적당히 줄타기하지 않고요?

처음 시스템 메시지가 울리자 생각난 것은 그들 사이에서 적당히 간을 보면서 상황을 조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중이 형은 딱히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불멸> 너도 알고 있다시피 지금 한쪽 손을 들어주면 균형이 바로 깨져.

재중이 형 말이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전신과 패황이 팽팽한 세력 싸움을 하는 중인데 거기서 우리가 가세하면 바로 기울어질지도 모른다.

또 다른 중립 연합들과 상인 연합, 개인 길드들과 힘을 합칠 수도 있겠지만.

그쪽은 어차피 대세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터.

결국 전신 혹은 패황인데…….

<불멸> 그리고 우린 따로 손잡아야 하는 쪽이 있잖아. 이쪽 여왕님.

재중이 형이 시선을 돌리자 그 끝에는 화련이 뚱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화련은 일단 귓속말을 풀어놨으니 그대로 들렸다.

<화련> 마왕하고 아주 잘 노네? 그리고 뜬금없이 천사 찾아오라는 퀘스트는 또 뭐야? 혹시 네가 가진 그 대천사의 검이랑 관련 있는 거야?

<주호> 하하…….

머쓱한 표정으로 화련을 보자 화련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빨리 대답해보라는.

딱 그런 재촉의 눈빛.

이런.

역시 눈치챈 건가?

화련은 내가 대천사의 검을 가지고 있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와 천사에 관련된 퀘스트를 하나로 묶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천사가 관련된 뭔가의 물건을 들고 있는 유저는 나뿐이니까.

재중이 형이 화련을 가리킨 이유는 확실했다.

<불멸> 어차피 선택지도 한 명뿐이야.

<주호> 확실히 그렇네요.

화련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가 않겠네.

<화련> 또 대답 안 한다?

<주호> 아, 생각 좀 한다고요. 다른 쪽에서도 오퍼가 오긴 했는데…….

<화련> 그래? 그럼 그쪽에 붙어보시던가?

큭.

화련한테는 장난도 못 치겠는데?

<주호> 당연히 우리 편을 들어야죠.

그 말에 화련이 뭔가를 숨기듯 고개를 돌리면서 대답했다.

흐음?

잘못 본 건가?

<화련> 됐거든? 그래서 앞으로 계획이 뭐야?

<주호> 으음. 아직은 모르겠어요. 차차 생각해 봐야죠.

<화련> 대책 없네.

얼렁뚱땅 넘어가기는 했는데.

화련이 내가 대천사의 검을 가지고 있다는 걸 여기서 말해버리기라도 하는 순간.

정말 상황이 엄청나게 꼬일 수 있었다.

일단 마왕 스티어.

아마 이 녀석은 당장 날 잡아먹을지도 모르겠는데?

퀘스트고 뭐고 대놓고 날 공격하는 경우도 생각해 봐야 했다.

전신 같은 경우에도 대천사의 무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앞으로 얼마나 귀찮아질지는 안 봐도 뻔했다.

패황은 정확히 어떤지 모르겠지만.

전에 전신과 대치 상황에서도 대천사의 무덤 쪽으로 사람을 보냈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이 녀석도 결코 쉽게 볼 수 없었다.

나머지 녀석들도 마찬가지.

천사에 관련된 퀘스트가 뜨자마자 사방으로 연락해대는 걸 보면 안 봐도 뻔했다.

지금 화련의 입을 막은 것은 정말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자신들의 연락에 별다른 대답이 없자 전신과 패황이 굳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마 자신들의 진영으로 날 끌어들일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주호> 전신은 우리와 적 아니었어요?

<불멸> 일단은 그렇지.

<주호> 그런데 굳이 우리에게 연락할 필요가 있나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불멸> 자기가 아니면 패황한테 붙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주호> 천사에 대한 퀘스트가 어지간히 탐나나 보네요.

솔직히 전신 정도면 자력으로도 어지간한 퀘스트는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유저들과 경쟁이 붙은 상황이었다.

저 마왕 스티어 때문에.

그런데 그 경쟁 상대에 패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재중이 형 말대로 자신에게 대답이 없다는 건 다른 녀석에게 붙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게 될 것이다.

잘못하다가는 이 퀘스트를 뺏겨서 날려 버릴 수도 있을 테고.

휴.

귀찮은 건 딱 질색인데.

이건 패황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패황은 우리가 전신에게 붙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지금처럼 둘 모두에게 노려지는 일은 피해야 했다.

둘 세력 사이에 한 발씩 걸치는 것도 괜찮겠지만.

그건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고.

일단 손을 들어 올렸다.

“적당히 쳐다보시죠. 아직 아무 곳에도 대답 안 했으니까요.”

그러자 연회장에 있는 모두가 서로를 견제하듯 바라보았다.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다들 내게 연락을 넣었다는 사실을.

오히려 이쪽이 낫다.

저들끼리 알아서 판단하도록.

우리야 확실하게 입장을 내놓았으니 이제 판단은 저들의 몫이었다.

적대할지.

계속 같은 편으로 포섭할지는.

그리고 이렇게 적당히 중간에 서게 되면 앞으로 우리를 함부로 건들 수가 없게 된다.

정말 막말로 다른 쪽에 확 붙어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

힘이 없을 때는 중립이 여기저기 휘둘리면서 피를 쪽쪽 빨리지만.

지금처럼 우리가 힘이 있다면.

그 중립이라는 입장 자체가 하나의 힘이 될 것이다.

그때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제안이 부족해서 그렇습니까?”

분명히 저 사람.

상인 연합이었지?

전에 지분 경매를 할 때 얼핏 본 기억이 났다.

아예 조건까지 보냈나 본데.

내가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건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뇨. 딱히 조건보다도 우리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당분간은.”

남들이 보기에 마왕과 손잡고 있는 우리는 확실히 메리트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거절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다시 물어오는 거겠지.

“흐음. 그렇다면 천계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면 저희가 따로 그 방법을 구매하고 싶습니다만.”

어이.

지금 마왕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

잘못했다가 목이 날아갈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 보면 재들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그것도 우리가 모두 들으라는 듯 말하는 걸 보면.

상인 연합에서는 애초에 우리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보다 다른 잿밥에 더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천사 퀘스트 그 자체에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천계에 갈 수 있는 방법을 구한다는 건가.

지극히 상인다운 생각과 판단이었다.

어차피 두 거대 연합들 사이에서 앞서나가지 못할 것이라면 확실한 실리를 챙긴다는 건 나쁜 생각이 아니었다.

천계에 먼저 진출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앞으로의 수익은 보장되어 있을 테니까.

그간 보지 못한 아이템들과 유적지, 네임드 등.

저들 하기에 따라서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제일 잘하는 게 상인 연합이고.

단순히 나에게 줄을 댄다기보단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전신과 패황 모두에게 어필한 셈이었다.

뭐.

마왕은 썩 달가워하진 않겠지만.

지금쯤 저 녀석에게 한 방 먹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런데 의외로 마왕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어?

이 녀석이 왜?

분명히 당장이라도 무기를 들어 저 녀석의 목을 댕강 날려버릴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리고 그 행동으로 이전에 했던 가정 중 하나를 확실히 확인하게 되었다.

<주호> 형, 역시 이 녀석 천계와 손잡을 생각 같죠?

<불멸> 어, 그런 것 같다.

천사를 몸 성히 끌고 오라는 것에서 뭔가를 꾸민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아하니 그 이상을 노리는 모양이었다.

단순히 천사와 친목 놀이하는 수준을 넘어선.

천계에 가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까지도 허용하는.

그러니 이제껏 마왕 스티어가 했던 말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다른 마왕들을 다 막아준다던가.

<주호> 혹시 이 녀석. 마왕들을 전부 쓸어버릴 생각이라고 하고 있는 걸까요?

<불멸> 아주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네. 천계를 끌어들인다는 건.

마왕 스티어가 마계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하는 건 알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마왕 스티어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결국 다른 마왕들 중 누군가를 짓밟아야 한다.

하지만 마왕 스티어가 그들 모두를 누르는 건 현실상 불가능.

그렇다면 외부의 세력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마왕들 사이에서는 이미 각자 자신들만의 세력이 구축되어 있었다.

이 녀석들이 그곳을 비집고 들어가서 판을 뒤집기란 너무 어렵지.

전에 베르테니아 마왕성 같은 경우에 유저들을 대폭 들여놨다가 오히려 역풍을 당한 적도 있었다.

저 마왕들이 연합을 해서.

어쩌면 위협이 된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고.

결과적으로 누군가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걸 대부분의 마왕들이 그다지 달갑게 여기진 않는다는 거다.

마왕 스티어가 천사와 천계로 눈을 돌린 게 아예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아니다.

천계라면 마계와 한판 크게 붙어볼 수도 있을 테니.

그런데 그러면 너무 판이 커지는 거 아닌가?

자기가 한 자리 잡기 위해 전부를 끌어내리는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아예 아무것도 남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불멸> 그것 봐. 이 녀석도 정상이 아니라니까.

어쩌면 지금의 천사 퀘스트는 마계와 천계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었다.

이거 잘못했다가 완전히 뒤집어쓸 수도 있으려나?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가 다른 유저들을 바라보았다.

방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눈치챈 녀석이 있을까?

마왕이 천계로 가는 방법을 묵인해 준다는 그 의미를.

그때 갑자기 연회장의 벽과 바닥이 크게 한 번 울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쿠구구궁!!

응?

이건?

뭔가의 압박감이 마왕성 전체를 뒤집는 것 같은 느낌에 바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재중이 형도 살짝 눈을 깔고 위를 쳐다보았고.

동시에 마왕 스티어의 전신에게 엄청나게 강대한 검은 기운이 마구잡이로 터져 나왔다.

뭔가 위협적인 것과 싸움이라도 하듯이.

젠장.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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