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9화 대천사의 가호 (4)
어떻게 보면 마계 비룡은 내게 있어서 최고의 기회였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유저들의 간섭이 전혀 없는.
확실히 독점할 수 있는 사냥터.
물론 레벨대를 까마득히 올리면 애초에 유저들이 접근조차 할 수 없기에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만.
무작정 사냥터 수준만 높인다고 좋은 것도 아니었다.
너무 높은 레벨대의 사냥터는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잡을 수 있어야 좋은 몬스터지.
아니면 그냥 쫓겨 다니다 볼일 다 보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마계 비룡이라는 녀석들은 꽤 내가 원하는 조건에 부합되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레벨대의 몬스터.
완전한 독점 상태.
거기다 가장 좋은 점은.
잡기가 쉬웠다.
“마계 비룡 말이십니까?”
“응, 마계 비룡.”
암흑 상인은 내 말에 뭔가를 말하려다가 다시 내 등 뒤에 서 있는 거대한 스트라이커를 올려다보았다.
무역선이 휘청거릴 정도의 크기의 몬스터.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마계의 비룡이 지금은 내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것도 그들의 왕이라 할 수 있는 녀석이.
“음, 다른 분들 같으면 미친 소리라 하겠지만…….”
그리곤 암흑 상인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모습이 보였다.
꽤 좋은 생각을 해냈는지 암흑 상인의 입가가 웃는 표정으로 변했다.
“혹시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뭘 말하는 거야?”
“아시다시피 마계 비룡은 마계 전체의 골칫거리입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한 가지가 떠올랐다.
재중이 형도 옆에서 바로 알아들었는지 말했다.
“마계 비룡 퇴치 의뢰인가?”
“네, 그럽죠. 사실 마계 상인 연합이나 마왕들 세력 전체에서도 마계 비룡들은 불편한 존재입니다. 공중을 날아다니는 비공정들을 다 사냥해 버리니까요. 추락한 비공정 수만 해도 수천은 될 겁니다.”
“이 녀석들은 먹지도 못하는 걸 잘도 잡아대네.”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스트라이커의 다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그걸 보고 화들짝 놀란 암흑 상인이 식은땀을 흘렸다.
“진작 좀 잡지 그랬어?”
“보시다시피 절대 약하지 않습니다만…….”
“한 방에 죽던데?”
“그건…….”
그러면서 흘깃 나를 보는 게 어지간히 신기하긴 한 모양이었다.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아무튼 마계 비룡들을 좀 걷어내 주면 좋겠다 이거잖아.”
“네, 그렇습니다. 가능하면 마계 상인들의 의뢰를 먼저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이유는?”
잠시 숨을 고른 암흑 상인이 말을 이었다.
“현재 마계 상인들이 갈 수 있는 항공 무역로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 이 녀석들을 피해서.”
“네, 그러니까 마계 비룡들을 처리해줄 수 있기만 한다면…….”
“무역로를 대폭 늘릴 수 있다?”
“정확합니다.”
“마계 상인 연합에 빚을 지울 수 있겠군.”
계속 처리하지 못하면 그냥 골치 아픈 사안일 뿐이다.
그렇다고 직접 하기에는 피해가 너무 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나서서 마계 비룡들을 쓸어주면?
“흠, 그리고 마왕들에게서도 같은 의뢰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 말에는 내가 물어보았다.
“혹시 마왕들도 무역로가 필요한 거야?”
“네, 마왕성에는 꽤 많은 물자가 소요되니까요.”
듣고 보니 이상한 점도 보였다.
“마왕들이 하려고 했으면 마계 비룡 정도는 쓸어버릴 수 있지 않아?”
“음, 그게…….”
이어진 암흑 상인의 말에 나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팀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중이 형도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결국 비공정 기술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마왕들은 본신의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라…….”
한마디로 비공정이 있기는 한데.
생각 이상으로 발달하지는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때 챠밍이 손을 들어 물어보았다.
“마왕성에는 비공정 도크가 있잖아요.”
현재 유저들의 거점과 다르게 마왕성에는 마계에서만 쓸 수 있는 비공정을 건조할 수 있는 도크가 있었다.
관심이 없다면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텐데.
그 말에는 암흑 상인이 한숨을 쉬면서 대답해 주었다.
“사실 비공정은 마족의 기술이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드워프들의 전용 기술이지요.”
당연하겠지만.
우리 이전에는 인간이 마계에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포탈 이후에야 폭발적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그런 마왕성도 마왕들의 협공으로 무너져 버렸다.
만약 그때의 베르테니아 마왕성이 계속 커졌으면 지금쯤 이야기는 꽤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아, 마계에는 혹시 드워프가 없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있더라도 주류는 되지 않는 소수 종족일 뿐입니다.”
한마디로 기술 개발에는 힘쓰지 않고 있다가 망한 케이스라는 거다.
어쩌면 비공정 기술은 인간들 쪽이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네.
타르로 움직이는 비공정을 만드는 건 또 다른 일이긴 하지만.
재중이 형이 내게 슬쩍 말했다.
“너 드워프들하고 친하잖아.”
“뭐 그렇죠.”
드워프들의 왕하고도 친구 먹는 사이인데 더 말해 뭐할까.
그 말을 듣자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드워프들을 끌어들여야겠네요.”
“지금은 말고. 아직 우리가 정착할 마왕성이 없어.”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아트 마왕성이 있긴 한데.
그곳이 온전히 우리의 마왕성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언제라도 마왕 스티어가 마음을 바꿔버리기라도 하면 낙동강 오리알 신세라…….
우리가 굳이 그 마왕성에 올인하지 않은 이유도 이런 이유에 있었다.
암흑 상인을 보면서 말했다.
“그럼, 의뢰 중에 쓸 만한 것들을 추려서 가지고 와.”
“네, 알겠습니다.”
아마 이번 일이 잘 끝나게 되면 암흑 상인도 마계 상인 연합에서 어깨 좀 펴고 다닐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암흑 상인의 입지가 넓어지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운신의 폭이 더 커질 테니.
서로 이득을 보는 장사랄까.
단순히 마계 비룡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여러 기득권들의 요구로 추가 보상이 생긴 셈이었다.
얼마 뒤 시아트 마왕성에 다가서자 비룡왕 스트라이커를 소환 해제했다.
“이 녀석은 너무 눈에 띄니까요.”
내가 알기로 아직 마계 비룡을 길들인 건 한 명도 없다고 들었다.
그런 와중에 네임드인 스트라이커를 데리고 다니면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특히 다른 마왕들의 눈에 띄는 건 문제가 있고.
지금은 녀석들에게 최대한 힘을 숨기고 있어야 할 때였다.
아직은 그냥 그저 그런 유저라고 보일 정도만.
비공정이 내려서자 꽤 많은 유저들이 마왕성 내부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본 전사 형이 말했다.
“호, 벌써 발을 뻗은 모양인데?”
지분이 있는 길드나 연합이 자신들의 유저들을 이곳에 보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곳에서 퍼다 나르는 모든 것은 저들에게 돈이 될 것이다.
최소한 유저들의 거점보다는 이곳 마왕성의 아이템들이 상급이니까.
상위 물약 같은 경우 이미 동이 났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되파는 이들이 많은 걸 보면 사재기를 한 것 같기도 하고.
“부지런하네요.”
그리고 가장 분주한 곳은 바로 비공정 도크.
이곳에서는 끊임없이 자재가 들어가며 모든 도크에서 비공정들이 건조되어 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 기술이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말이야.
실상 알고 보면 깡통이라 이거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계에서 날 수 있는 비공정들은 가치가 있었다.
성능은 둘째 치더라도.
그렇게 비공정 도크가 분주하게 돌아가는 걸 보고 슬쩍 암흑 상인에게 말했다.
“앞으로 타르 광산들 나오는 대로 매입해 줘.”
“타르 광산입니까. 하지만 어지간한 광산들은 계약에 묶여 있어 쉽지 않습니다. 매장량이 동난 광산이라면 또 모를까요.”
“상관없어.”
“흠, 그럼 알겠습니다.”
“아, 하나 더.”
내가 손가락을 들자 암흑 상인이 집중했다.
“아다만티움.”
“흠. 그건…….”
“구할 수 있는 모든 경로를 통해 아다만티움을 구해. 아니면 매장되어 있는 광산이나 사냥이 힘든 사냥터까지 전부 물색해 봐.”
“직접 구하실 생각입니까?”
“어, 이제 필요해질 거야.”
당장은 화련이 가진 아다만티움으로 때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가 필요했다.
암흑 상인은 이번 마계 비룡 사냥 의뢰가 잘 되면 그만큼 입김이 세질 것이다.
그럼 정보를 구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터.
그 대화를 들은 화련이 끼어들었다.
“나도 투자해도 될까?”
“화련이요?”
“응, 앞으로 타르로 활동하는 비공정들이 늘어나면 저평가된 타르 광산들이 지금보다 몇 배는 비싸질 거야. 그렇지 않아?”
“하하…….”
“아다만티움은 왜 그렇게 아득바득 구하려는지 모르겠는데…… 당장 필요한 거지?”
돈만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이런 걸 보면 확실히 감각이 있었다.
“어차피 혼자 다 투자하기에는 부담스러울 거 아냐. 변수도 많을 테고.”
“뭐 그렇죠.”
나야 든든한 자금줄이 뒤에 버텨주면 지금보다 더 크게 놀아볼 수 있다.
<주호> 어때요?
<불멸> 나쁘지 않지. 화련도 목적이 있어 보이는데.
슬쩍 화련을 본 재중이 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화련이 팍 인상을 썼다.
“또 너희들끼리 작당모의 중이지?”
“설마.”
뜨끔했는지 재중이 형이 시선을 돌렸다.
결론적으로 좋은 쪽이니 화련에게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화련이 모르는 것도 있었다.
내가 아다만티움과 타르 광산을 구하려는 이유.
그건 바로 이 두 가지가 마신의 파편을 실체화하는데 들어가는 재료들이기 때문이다.
타르 광산의 핵은 훔쳐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예 광산을 살 수밖에 없고.
그때 이전에 우리를 마중 나왔던 리퍼 대장이 다가왔다.
“마왕님께서 찾으십니다.”
도착한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찾아온 건지.
그나마 전에 불퉁스럽던 태도와 달리 지금은 꽤 깍듯한 태도였다.
<주호> 지금 마왕이 왜 찾을까요?
<불멸> 모르지. 아마 마왕성 지분 때문이려나?
생각해 봐도 마왕 스티어가 이 시점에서 우릴 찾을 이유는 딱히 없었다.
<주호> 일단 한 번 가 보죠. 어차피 한 번은 들렸어야 했으니까.
고개를 끄덕인 재중이 형과 함께 중앙성으로 나섰다.
다른 일행들은 마왕이 부르지 않아 같이 가지 못했고.
“바로 나가야 할 테니까 정비해 놓고 있어요.”
그렇게 중앙성에 들어서자 마왕 스티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분 경매 건은 끝난 걸로 아는데 무슨 일이지?”
내 물음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마왕 스티어가 말을 꺼냈다.
그것도 꽤 당혹스러워하는 눈빛으로.
저 녀석이 저런 표정을 보인 적 있던가?
“멀리서…… 천사의 기운이 느껴졌다.”
순간 나와 재중이 형 모두 아주 약간 몸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 조금의 어색한 움직임을 마왕 스티어는 눈치채진 못한 모양이었다.
설마 대천사의 스킬을 쓴 걸 그 먼 거리에서 느낄 수 있다는 건가?
이 녀석의 고유 능력인지…….
아니면 다른 마왕들도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문제가 된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최대한 당황한 표정을 내보이지 않으며 녀석에게 물었다.
일단 한 번 떠봐야겠어.
대체 이 녀석이 어디까지 아는 건지.
“천사라니. 처음 들어보는걸?”
아니.
실제로는 눈앞에서 보기도 했다.
그것도 반쯤 미친놈 같은 대천사를.
“분명히 느꼈다. 천사의 강렬한 기운이 퍼져 나가는 것을. 그것도 꽤 상급의 기운이었다.”
하아.
아무래도 감으로 찍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다시 침묵을 지키던 녀석에게 물었다.
이건 확인해 봐야 해.
“혹시 너 말고 다른 마왕들도 그걸 느낄 수 있나?”
제발 아니라고 해라.
그럼 정말 귀찮아지는데…….
하지만 녀석은 고개를 끄덕임으로 내 기대를 저버렸다.
<불멸> 하, 미치겠네. 그걸 알 수 있다고?
<주호> 그러게요.
저 녀석의 말에 따르면 마계에 있는 마왕들이 죄다 그걸 느꼈다는 말이 된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
정말 도움을 안 주는구만.
그런 우리에게 녀석이 뜻밖의 말을 해왔다.
“너희에게 의뢰를 하나 하지.”
“의뢰?”
잠시 뜸을 들인 녀석이 섬뜩한 표정으로 의뢰를 했다.
“마계를 침략한 천사를 내 앞에 잡아 와라.”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