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8화 대천사의 가호 (3)
다수의 마계 비룡을 죽였으니 분명히 그 드랍템 중에 하나는 나오지 않았을까.
전사 형이 헐레벌떡 우리 쪽을 향해 달려왔다.
“일단 전부 쓸어왔다.”
재빨리 전사 형이 넘겨준 드랍템을 확인했다.
“이것도 아니고…… 이것도 아냐…….”
분명히 하나 정도는 있을 텐데…….
마계 비룡 자체가 엘리트급 이상의 몬스터였다.
그것도 마계의 하늘을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는 괴수종이고.
당연히 드랍템들의 가치가 높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아이템들이 바닥에 마구 내던져지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
한참을 뒤지다가 결국 하나의 아이템을 찾아냈다.
『 마계 비룡의 눈물 조각 』
“있어요!”
눈물 보석이 해당 몬스터의 소환 아이템이라면 눈물 조각은 테이밍이 가능하게 해주는 아이템이었다.
재빨리 『 마계 비룡의 눈물 조각 』을 들고 찢겨진 신체로 고통스러워하는 마계 비룡에게 다가갔다.
보통은 테이밍이 가능한 몬스터에 올라타서 테이밍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금 이 녀석의 등에 올라탔다가는 그냥 물어뜯기기 십상이라.
다 쓰러져간다고는 하나.
이 녀석이 일반적인 비행 몬스터보다 훨씬 상위의 몬스터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그랜드 크로스 같은 개사기 스킬이 아니었다면 지금 추락해 있는 건 우리일지도 모른다.
거기다 상위의 몬스터들은 어느 정도 지능까지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마냥 올라타서 로데오를 한다고 테이밍이 될지는 잘 모르는 일이지.
여기서 서너 걸음만 더 다가서면 녀석이 턱을 들어서 나를 물어뜯을 만한 위치였다.
크르르!!
다가서기 무섭게 마계 비룡의 날카로운 이빨들 사이로 죽어가는 검은색 피들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옆에서 재중이 형이 녀석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더럽게 사나운 놈일세.”
다 죽어감에도 전의를 떨어뜨리지 않는 괴수의 경계심이 더 이상 다가가기 힘들게 만들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갑주와 같은 검은 비늘들이 온통 찢겨져 사라져 있는 데다가, 단단한 피부들 역시 그랜드 크로스의 신성에 계속 타오르는 중이었다.
저놈도 자기가 죽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은데.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버티는 모습이라…….
일반 몬스터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처절함.
그런 마계 비룡을 보며 말했다.
“내 말을 알아들을지 모르겠는데. 너 이대로 있으면 무조건 죽어.”
그러자 녀석이 더욱 사납게 으르렁댔다.
절대 길들여지지 않는 몬스터.
나쁘지 않다.
죽기 전 마지막 공격이라도 할 기세로 발악하는 녀석의 모습에서 오히려 꽉 찬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 녀석에게 주목한 건.
다른 녀석들은 전부 추락해서 죽었음에도 이 녀석은 살아남았다.
마계 비룡 중에도 급수가 있다는 거지.
보다 강력한.
상위의 몬스터.
“너, 더 강한 녀석들과 싸워보고 싶지 않아? 이런 식으로 날아보지도 못하고 죽고 싶진 않을 거 아냐.”
물론 이 녀석이 죽으면 새로운 녀석이 리젠되어 다시 하늘을 날 것이다.
하지만 이놈은 여기서 죽으면 끝이지.
내 잔잔한 말투에 녀석이 고개가 힘겹게 올라갔다.
확실히 이 녀석.
일반적인 엘리트 몬스터가 아니었다.
설마 네임드는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녀석을 또렷하게 쳐다보자 녀석의 충혈된 눈과 내 시선이 허공에서 겹쳐졌다.
이걸로 안 되면 치료라도 해주면서 살살 달래보던가.
아니면 정말 올라타서 테이밍을 하던지.
먹이로 유인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이 녀석이 그런 걸 좋아할지는 의문이었다.
그때 갑자기 녀석의 몸에서 환한 빛이 눈부시게 터져 나왔다.
동시에 흘러나오는 시스템 메시지.
《 네임드, 마계 비룡왕 스트라이커의 테이밍 조건을 모두 달성했습니다. 테이밍에 성공했습니다. 회수하시겠습니까? 》
응? 정말?
설마 진짜 네임드일 줄은 몰랐는데……?
그럼 대체 이 그랜드 크로스라는 건 얼마나 강한 거지?
네임드를 한 방에 침묵시킬 수 있을 위력이라니.
정확하게는 어마어마하게 높은 고도에서 완전히 경직된 녀석이 그대로 추락해 타격을 입은 게 더 크겠지만.
깜짝 놀라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형. 이 녀석 네임드라는데요?”
“뭐?”
옆에 있던 전사 형도 놀랐는지 나와 빛무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확실히 다른 녀석들보다 좀 크기는 한데…….”
일반 몬스터와 엘리트 몬스터 능력치 사이에는 꽤 큰 갭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차이의 갭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엘리트와 네임드 사이에 존재했다.
단지 네임드라는 명패만 앞에 달아도 이 녀석은 다른 녀석들보다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할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간 마계에 날아다니던 비공정들이 왜 전부 박살 난 건지 이해가 갔다.
이런 녀석이 뒤에 따라붙으면 어지간한 비공정들은 절대 버티지 못한다.
그랜드 크로스가 아니었다면.
우리 역시도 마찬가지 신세였을지 몰라.
“복권 긁었는데 바로 1등 해버린 기분이 이런 걸까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더니 나와 내가 들고 있던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를 넌지시 바라보며 말했다.
“대체 그거 숨겨져 있는 옵션들이 뭐냐?”
봉인을 푼 라페르나는 옵션 대부분이 숨겨져 있었다.
아마 그 옵션들이 발동한 모양인데.
네임드를 한 방에 침묵시킬 정도라면…….
보통의 옵션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도 문득 라페르나를 봤는데.
『 +0 라페르나 - 대천사의 검 (에픽) 』
/ 출혈 10 타격 10
- 악 성향 몬스터 타격 시 치명타 대미지 2000% ◀ NEW
- ?
- ?
.
.
- 스킬 : 대천사의 가호 LV.2
- 스킬 : 그랜드 크로스 LV.2 』
「 악 성향 몬스터 사냥으로 성장 중입니다. 」
원래 옵션이 전부 물음표로 막혀 있었는데 방금의 마계 비룡들을 다수 죽이면서 조금 옵션에 변화가 보였다.
그런데 그 옵션 하나의 수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내가 얼떨떨하게 옵션만 보고 있자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이 동시에 내게 다가와서 옵션을 살펴봤다.
“……치명타 대미지가 2000%?”
“미쳤네.”
전사 형이 화들짝 놀라서 라페르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껏 그 어떤 아이템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추가 대미지 수치였다.
물론 이 수치 자체는 하나의 문제가 존재했다.
악 성향 몬스터 한정이라는 것.
아마도 그 외의 모든 몬스터들에게는 이 녀석의 옵션은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옵션은 엄청난 값어치가 있었다.
재중이 형도 놀라워하며 라페르나를 바라봤다.
“이 녀석이 마왕 잡는 무기라는 게 괜히 나온 소리가 아닌 모양이다.”
그 말에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2000%지.
이건 크리티컬이 터졌을 시 거의 핵폭탄급 위력으로 변한다는 말이었다.
특히나 그랜드 크로스 같은 스킬일 경우는…….
그리고 이제야 이해가 됐다.
네임드인 비룡왕 스트라이커가 왜 한 번에 넉다운이 되었는지.
악 성향 몬스터인데다가 그랜드 크로스를 제일 앞에서 직격으로 맞았다.
그게 크리티컬이었다고 가정해보면 대미지가 20배가 넘게 들어갔다는 말이 된다.
한 발도 아닌 그랜드 크로스 20발에 해당하는 대미지.
그런 위력에 경직이 안 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체력의 상당 부분도 깎여 내려갔을 테고.
페이즈가 넘어가고 어쩌고 할 여유조차 없었을 터.
만약 이런 스킬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애초에 우리에게 그렇게 직선으로 달라붙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건 맞는 순간 바로 죽는다.
물론 그랜드 크로스를 맞은 곳이 지상이었다면 좀 이야기가 달랐을 수도 있다.
추락 대미지가 아니라면 빈사가 되진 않았을 테니.
그래서인지 그랜드 크로스가 마왕들에게도 통할지는 의문이었다.
“형, 마왕들이 맞으면 어떻게 될까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뭔가를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아마 방심한 상태에서 직격으로 맞출 수 있다면 초반은 무조건 먹고 들어가겠지. 그런데 그거 쓰고 나면 너도 무력화되잖아.”
“네, 그렇죠.”
원래 이런 페널티가 큰 스킬은 대인전에서는 절대 쓰면 안 된다.
대인전도 대인전인데…….
레이드 역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쓰고 난 뒤 자신이 퍼져 버리는 스킬은 너무 부담이 크다.
정말 최후의 최후에 어쩔 수 없이 쓰는 거면 또 모르지만.
아마 마왕과 싸울 때는 그랜드 크로스를 쓰긴 꽤 어려울지도 모른다.
만약 마왕이 그랜드 크로스를 피해 버리기라도 한다면…….
거의 최악이라고 봐야 한다.
마왕도 우리가 모르는 탈출기나 여러 회피기를 가지고 있을 테니.
재중이 형은 그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대안을 내어놓았다.
“마왕과는 꽤 장기전이 될 거야. 그럼 그냥 이 라페르나를 성장시켜 직접 전투를 하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거다. 너라면 아마 마왕에게도 크리티컬을 넣을 수 있을 테니.”
“한 방을 노리기보다 꾸준히 깎아 내리라는 거죠?”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마왕과 한판 뜰 수 있을 정도의 스탯을 모아야 해. 넌 다른 건 몰라도 속도는 절대 밀리면 안 되니까 속도 위주로 먼저 올려. 나머지 부족한 대미지는 라페르나와 다른 무기들이 대신해 줄 거야.”
틀린 말이 아니었다.
속도를 더 올려 매번 크리티컬을 넣을 수만 있다면.
그 평타 한 방, 한 방에 스킬에 준하는 대미지를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악 성향 몬스터 한정이지만.
마왕은 그 악 성향의 정점에 있는 녀석이니.
“레벨은 얼마나 올랐어?”
“음, 이번에 마계 비룡들을 추락시키면서…… 14마리 추락시켜서 70레벨 올랐어요.”
나와 마계 비룡과의 레벨 차이는 극심했다.
그렇기에 한 번에 올릴 수 있는 레벨 한도인 5레벨을 적용 받아 총 70레벨이 올랐다.
전사 형이 그 말을 듣자 입을 쩍 벌렸다.
“하, 우린 레벨 올리기 엄청 빡셌는데 말이야. 단 한 방에 70이냐? 우리 때는 거의 한 달 정도 걸렸는데…….”
전사 형이 부러움 반, 놀라움 반을 섞여 말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레벨을 올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상식에 어긋나는 폭렙.
그걸 지금 내가 해낸 셈이다.
전사 형에게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전 쪼렙이잖아요.”
“하하…… 그렇지.”
“거기다 저 여기 바른 돈이 빌딩값은 나올 거예요.”
“그럼 빌딩 검이냐?”
“음…… 굳이 부르자면 아마도?
“크, 어감 좋다. 빌딩 검. 나도 하나 가지고 싶네.”
빌딩 검이라…….
딱히 틀린 말이 아니라서 웃음이 나왔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테이밍된 네임드, 비룡왕 스트라이커가 내게 머리를 숙이며 거대한 날개를 펼쳐 올렸다.
곧 재중이 형을 보면서 말했다.
“형, 저 여기서 레벨 올려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나를 감싸듯 날개를 편 스트라이커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 녀석이 있으면 공중을 잡긴 훨씬 수월하겠지.”
다른 테이밍 몬스터와 달리 마계에서 페널티 없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공중 테이밍 몬스터.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네임드 종.
이 녀석만 있으면 마계의 공중을 잡는 건 일도 아니었다.
곧 모든 아이템들을 회수해 다시 무역선에 올라탔다.
그리고는 바로 암흑 상인을 찾았다.
“지금 한 가지 해 줄 게 있어.”
“어떤 일입니까?”
좀 전의 괴물 같은 위력을 본 뒤라 암흑 상인의 태도가 한결 더 긴장한 상태였다.
거기다 내 뒤에 있는 스트라이커가 무섭게 암흑 상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암흑 상인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마계 비룡들, 내가 싹 쓸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