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3화 다시 찾은 마계 경매장 (5)
《 금속의 정령이 금속의 정령왕으로 진화합니다. 》
금속의 정령왕?
원래는 딱히 등급이 없어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이번엔 확실하게 정령왕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진화의 끝이라고 보면 되려나?
거기다 뜻밖의 시스템 메시지도 올라왔다.
《 금속의 정령왕의 진명을 지어주세요. 》
진명?
그러고 보니 지금껏 금속의 정령은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음.
애초에 정해진 이름 자체가 없었던 거였나?
잠시 빛무리 속에서 반짝이는 금속의 정령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 가지 단어가 생각났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 같은 느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해 버렸다.
“별.”
《 금속의 정령왕의 진명이 『 별 』로 지정됩니다. 》
응?
그냥 이렇게 되는 거라고?
《 금속의 정령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금속의 정령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금속의 정령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 금속의 정령과의 호감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
이어지는 호감도 상승 메시지.
그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드디어 호감도의 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꾸준히 호감도를 쌓아온 것과 마지막 진화를 시켜줌으로써 호감도가 최대까지 오른 모양이었다.
곧 빛무리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금속의 정령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곤 내게 대천사의 검을 달라고 했다.
자신이 풀어줄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외양상으로는 전과 달리 크게 변한 것 같진 않았다.
귀여운 모습 그대로.
그런데 마치 내가 지어준 이름처럼 화려한 빛무리들이 금속의 정령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정령왕이라고 이펙트에 신경 썼나?
옆에 있던 화련이 대천사의 검이라는 말이 나오자 눈빛을 반짝이며 바로 반응했다.
“대천사의 검이라고?”
아.
화련은 내가 대천사의 검을 가지고 있는 걸 전혀 모르지.
애초에 마계에서 대천사의 검이라는 물건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여기가 천계가 아닌 이상에야.
“음, 설명하자면 좀 긴데요…….”
“그냥 내게 팔아.”
“네?”
“그것도 귀속이라는 건 아니겠지?!”
“딱히 귀속은 아니긴 한데…… 무슨 물건인지는 알고 팔라는 거예요?”
“몰라. 어차피 네가 가지고 있는 거면 좋은 거겠지. 그것도 봉인까지 풀어야 하는 물건이면 더욱더. 거기다 이름도 대천사의 검이잖아! 분명 멋있을 거야.”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나도 모르게 판다고 할 뻔했다.
“음, 두 자루가 있으면 고려를 해보겠는데…… 아쉽게도 이것 하나밖에 없어서요.”
“하나뿐이야?”
“네.”
“그래서 안 된다고?”
“뭐 그렇죠.”
“칫, 좋다 말았네.”
아니.
난 판다는 말 자체를 안 했는데.
“그럼 한 자루 더 구하면 팔 거지?”
음.
이걸 어떻게 얻어왔는지 알면 저런 말은 절대 못 할 텐데.
“흐음. 이 녀석을 얻으려면 대충 대천사랑 맞짱 떠서 이길 수 있어야 할걸요.”
“대천사?”
“네, 대천사의 검이잖아요.”
내 말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화련이 깜짝 놀란 듯 말했다.
“너, 그거 전신이 노리던 유적지에서 가져온 거야? 분명히 대천사의 무덤인가 그랬었는데.”
역시 눈치가 빠르네.
“거기 아무도 못 들어간다 하지 않았나?”
“아, 들어갈 순 있어요. 못 나와서 그렇지.”
안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있으니까.
어쩌면 마신 뺨치는 녀석이라든지.
“넌 어떻게 나왔는데?”
“요행이었죠.”
그 짓을 다시 하라고 하면 아마…….
절대 안 될 거다.
대천사 루스가 다시 속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이 대천사의 검을 다시 구하려면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지금은 딱히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고.
“으음, 수상한데…….”
“하하…….”
“뭐 됐어. 네가 전신이 애타게 노리던 거 빼돌렸다는 거잖아.”
“말이 그렇게 되나요?”
듣고 보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한데.
“녀석에게 한 방 먹여줬으면 됐어.”
확실히 화련은 전신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아니.
그보다는 전신을 후원하는 그 언니라는 사람을 싫어해서 같이 싸잡아 안 좋아하는 걸 수도.
“아, 너 혹시 윈이라는 녀석 알아?”
화련의 입에서 윈이라는 말이 나오자 순간 뜨끔한 기분이 들었다.
“네? 처음 들어보는데요.”
“흐음, 역시 그렇지? 너 접속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내 접속 시간을 고려해보면 애초에 맞지 않았다.
둘이 같은 사람인데 겹칠 리가.
“그런데 그 사람은 왜 찾아요?”
“아, 알면 좀 스카웃 하려고 했지. 이번에 보니까 전신을 제대로 물 먹였더라고. 전신이 공들여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그냥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더라니까? 누구도 못한 걸 갑자기 나타나서 확 엎어버리다니 대단하지 않아?”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시침을 떼면서 겉으로 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 녀석 참 대단한 녀석이네요.”
“쳇, 갑자기 사라지더니 대체 어디 짱박혔는지 찾아낼 수가 없어. 너 나중에 알면 나한테 좀 알려줘.”
“네, 그러죠.”
아마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 장담한다.
화련의 궁금증을 풀어주고는 금속의 정령, 별을 보면서 물었다.
“새 이름은 마음에 들어?”
그러자 고개를 휙 돌린 별이 대답해주었다.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네.
“바꿔줘?”
순간 다시 나를 본 별이 날개를 부르르 떨었다.
“됐어.”
그러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걸 보면 마음에 드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별이. 별아. 별님. 별…….”
“봉인 안 풀어 준다아?”
“하하, 장난이야. 그럼 부탁 좀 할게.”
인벤에서 『 +0 봉인된 대천사의 검 』을 꺼내 별에게 넘겨주었다.
내가 든 대천사의 검신 위로 날아든 별이 화려한 빛을 뿜으며 대천사의 검신 사이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순간.
대천사의 검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검붉은 색의 문자열이 대천사의 검신 표면에 투명하게 잔뜩 떠오르더니 뭔가에 저항하는 듯 거세게 반발했다.
그리고 그에 대항하듯 금색의 스파크가 검신을 강하게 찢어냈다.
마치 부수려는 자와 버티려는 자의 싸움이랄까.
한동안 계속 그 형형한 빛들의 먹고 먹히는 싸움이 이어졌다.
검신에서 퍼져 나온 빛들은 VIP룸 벽면 전체를 물들일 정도의 맹렬한 기세였다.
형태와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전투가 살벌하게 펼쳐지자 모두가 놀란 듯 그 전투에 집중했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전용 봉인 해제 템도 없는데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지금의 싸움을 보면 어쩌면 될지도 모르겠는데.
팽팽했던 싸움이 결국 한쪽의 빛이 허공으로 말려 들어가듯 그 자취를 완전히 감추면서 끝났다.
《 존재하는 모든 금속을 지배하는 금속의 정령왕이 【 금속 봉인 파괴 】를 시전합니다. 》
《 『 +0 봉인된 대천사의 검 』의 봉인이 금속의 정령왕의 능력으로 해제됩니다. 》
【 금속 봉인 파괴 】
이건 금속의 정령왕의 고유 스킬인 모양이었다.
그동안 금속의 정령일 때는 전혀 보지 못했으니까.
마신의 파편 봉인이라던가.
대천사의 무덤 봉인이라던가.
그런 봉인을 피해서 우회하는 건 꽤 봤지만.
직접 파괴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호오, 정말 해냈잖아?”
재중이 형도 다소 놀란 듯 웃음 지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이건 기대 이상이다.
힘겨운 싸움을 마친 금속의 정령이 다시 대천사의 검신에서 빠져나왔다.
아까 금속의 정령 주변을 돌던 화려한 빛무리가 마치 허공에 희석된 것처럼 아주 옅은 빛만을 내며 깜박였다.
아무래도 꽤 무리한 모양인데?
다소 지친 듯한 별이 우리를 빤히 바라보면서 허리에 두 손을 얹고는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내가 이 정도야!!”
“하하, 장하다.”
그런데 그때.
힘없이 날개가 멈추면서 공중에서 별이 떨어져 내렸다.
내 몸이 뛰어나가며 별을 잡은 것도 동시였고.
눈꺼풀이 반쯤 감긴 금속의 정령이 힘겹게 말했다.
“피곤해. 나 좀 잘게.”
그리곤 바로 르아 카르테 안으로 역소환되어 버렸다.
깜짝 놀라 시스템 창에서 별의 상태를 확인해봤는데 사라지거나 한 것은 아니어서 안도의 숨을 쉬었다.
“꽤 무리했나 봐요.”
“그렇겠지. 무려 대천사의 봉인인데. 난 솔직히 이걸 푼 게 더 놀랍다.”
금속의 정령이 괜찮다는 걸 확인하고야 봉인이 풀린 아이템을 확인했다.
마신의 파편인 테르타로스 같은 전설 등급 바로 아래의 단계.
에픽 단계의 검은 과연 어떨까?
기대를 가지고 확인을 했는데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
『 +0 라페르나 - 대천사의 검 (에픽) 』
/ 출혈 1 타격 1
- ?
- ?
- ?
.
.
.
- 스킬 : 대천사의 가호 LV.1 ◀ NEW
- 스킬 : 그랜드 크로스 LV.1 ◀ NEW 』
- 특수한 힘에 의해 대천사의 봉인이 깨진 상태입니다.
- 모든 악 성향 대상에게 한하여 치명적인 추가 효과를 냅니다.
- 성장형 아이템입니다.
- 악 계열 몬스터나 유저를 처치할 시 성장합니다.
- 대천사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 대천사의 가호를 받은 존재는 사용 가능합니다.
성장형 아이템.
좋다.
내겐 이미 성장형 아이템이 두 개나 있으니까.
르아 카르테는 다른 무기를 흡수해서 성장시키는 무기.
테르타로스는 각종 몬스터를 포획해 특성을 가져온다.
반면 이 라페르나는 조금 달랐다.
악 계열 몬스터만 성장의 대상이 되었다.
딱히 속성을 흡수한다는 말도 없고.
아마 무기 고유 특성을 따로 가지는 것 같은데…….
스펙이 대부분 가려져 있긴 한데 이미 드러난 스킬이 두 가지가 보이는 걸 보면.
아마 그쪽이 맞는 모양이었다.
【 대천사의 가호 】
【 그랜드 크로스 】
이것만 봐도 이미 정해진 형태가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다른 두 무기와는 달리 내가 성장의 방향을 정할 수는 없다는 뜻이겠지.
얼마나 빨리 키울 수 있느냐의 문제 정도려나.
아직 당장 써먹을 정도로 강하진 않으니까.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 대천사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문구.
대천사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어?
그러고 보니 대천사 루스 그놈이 이걸 그냥 내주었을 때부터 의심을 해봤어야 했는데…….
거래라고는 하지만 너무 순수히 대천사의 검을 내게 줬었다.
“형, 이거 문제가 생겼어요.”
“왜?”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대천사의 검의 스펙을 살펴보았다.
옆에서 화련도 궁금한지 슬쩍 대천사의 검을 봤으나 딱히 막진 않았다.
“흐음, 문젠데.”
“야, 이거 쓰지도 못하는 거잖아.”
둘 다 똑같은 반응.
이 대천사의 검은 누가 봐도 못 쓰는 아이템이다.
“아무래도 한 방 먹은 것 같아요.”
“그러네. 그 새끼가 얌전히 넘겨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대천사의 고유 무기라는 건.
봉인을 풀 수 있든 업든.
애초에 유저들이 못 쓰는 물건이다.
혹은 대천사의 허락하에 쓸 수 있다던가.
그렇지만 우리는 그 대천사를 등쳐 먹고 뺏어온 물건이다.
허락 따위 가능할 리가 없다.
그나마 대천사의 가호를 받은 존재는 가능하다는데…….
이 스킬 자체가 무기를 쓸 수 있어야 사용 가능했다.
하아.
이 새끼를 어떻게 가서 족치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뭔가의 생각이 갑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바로 재중이 형을 보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형, 어쩌면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