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9화 다시 찾은 마계 경매장 (1)
베르테니아 마왕성은 마왕 벨라의 잠적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많은 존재들이 마왕 벨라의 흔적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아마 이미 죽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마왕 벨라라는 단어에 안내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곳에서 그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
그런 반응은 내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가지게 했다.
만약 안내자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면.
어쩌면 난 이 생각을 접었을 지도 모른다.
이곳 마계 경매장은 마계의 모든 정보와 희귀한 아이템들이 모이는 장소.
그런 장소에서조차 정보가 없다면 굳이 더 찾아봐야 시간만 날릴 뿐일 테니.
마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마왕 벨라를 찾는 일은.
우리에겐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혹 할 수 있다고 해도.
선택지에서 배제해야 한다.
“벨라 마왕님 말입니까…….”
당황이 약간 섞인 듯한 대답.
“없습니까?”
난 안내자의 입에서 나올 대답을 한 가지로 제한했다.
있는지 없는지.
딱 그것만 대답할 수 있도록.
잠시간의 침묵.
눈알이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얼핏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집요한 눈빛을 본 안내자가 어느새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있기는 한데…….”
“한데?”
“특급 정보라…….”
말끝을 흐리는 안내인.
“비싸다는 말이군요.”
“네, 특급 중에서도 꽤 상위의 정보입니다. 무려 사라진 마왕의 정보니까요.”
아주 비싸다는 말을 참 돌려서도 말한다.
그런 안내인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가져와요.”
“네?”
“얼마가 됐든. 지금 내 앞에 가져오라는 겁니다.”
“하면…… 가격은?”
“일시불. 이 자리에서 처리해 주죠.”
어차피 아무리 비싸 봐야 가진 돈을 전부 털어갈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흠, 그럼 허가를 받고 다시 오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죠.”
안내인이 후다닥 VIP룸을 나가자 화련이 눈썹을 올리면서 물었다.
“마왕 벨라는 왜?”
“아, 이젠 필요하거든요.”
이전까지야 구멍 때우듯 어떻게든 넘어갔다고 해도.
지금부터는 제대로 된 전력이 필요해.
무엇보다.
마왕의 직을 가지고 있는 벨라는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
단순히 강한 것만으로 해결이 되는 문제라면 네임드들을 데리고 있는 걸로 충분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그 이상이라.
“이번엔 무슨 일을 하려고?”
한껏 궁금해하는 화련의 질문에 일단은 말을 아꼈다.
지금 시점에서 말할 것은 아니라서.
“흐음, 글쎄요. 확신이 없는 일이라…….”
아직 알려줄 수 없다는 걸 둘러서 말했더니 마치 흥이 식었다는 듯 화련이 고개를 돌렸다.
“됐어. 별로 궁금한 것도 아니고.”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화련이 그냥 넘어가자 우리의 관심은 경매로 다시 돌아갔다.
옆의 암흑 상인에게 물었다.
“이번에 좋은 게 나올까?”
“그럴 겁니다. 오랜만에 열리는 마계 경매장이라서요.”
암흑 상인의 대답을 듣자 곧 생각나는 게 있었다.
“혹시 다른 마왕들도 참가했어?”
“듣기로는 그렇습니다.”
“올펠, 아르곤 같은 녀석들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 그 외에도 상위 마왕들은 자주 경매장에 들립니다.”
예전과 달리 한 자리에 모여서 경매를 하는 것이 아닌 별도의 VIP룸에서 경매를 참여하기 때문에 누가 참석해 있는지는 딱히 알 방법이 없었다.
굳이 알아보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상대측도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될 수도 있어 이쪽은 일단 조심하는 게 좋겠지.
아직 올펠이나 아르곤 같은 녀석들과 얽히기에는 우리가 준비가 부족했다.
최소한 여기서 많은 걸 얻어가야 해.
재수가 좋다면.
금속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고대 정령의 가호 같은 물건을 또 얻을 지도 모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인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간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정말 후다닥 달려갔다 온 모양이었다.
“헉헉, 기다리셨습니까.”
“숨 좀 고르시죠?”
잠시 숨을 고른 안내인이 말했다.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 마계 경매장 안내인이 코인 교환을 제안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
전에 분명 1코인당 백만 원쯤 됐던가?
지금도 시세가 비슷한지는 모르겠는데.
다시 물어보니 시세는 그때와 같았다.
이곳 경매장에서만 쓰는 코인이라서 그런지 딱히 변경될 일도 없었다.
“몇 코인이죠?”
“특급에 해당하는 정보라. 100코인입니다.”
“얼마 안 하네요.”
담담한 반응에 오히려 안내자가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하, 그렇지요. 얼마 안 합니다.”
《 마계 안내인에게 특급 정보 『 마왕 벨라의 행적 』을 구매합니다. 》
《 100코인을 지불하였습니다. 》
코인을 지불하자 안내인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딱 ‘더 비싸게 부를 걸 그랬나?’ 라는 표정이네.
그렇다고 싼 가격은 또 아니었다.
억이 애들 이름도 아니고.
마왕의 정보 하나를 얻기 위해 쓰는 돈 치고는 비싼 편이다.
물론 전에 금속 정령을 얻을 때 썼던 15000코인에 비하면 확실히 작은 돈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딱 하나뿐인 물건인데 반해.
이건 정보니까.
텍스트로 얼마든지 복사가 가능하다.
다른 말로.
나 외에도 이 정보를 열람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지.
특히.
“또 누가 이 정보를 열람했습니까?”
내 물음에 안내인이 멈칫했다.
그리고 곧장 나오는 매뉴얼.
“누구에게 정보가 들어갔는지는 보안 때문에 알려드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외에 다른 녀석들도 열긴 했다는 거군요.”
대답 없는 안내인의 모습.
오히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 순간이고.
“뭐, 알겠어요.”
딱히 걱정은 하지 않았다.
누군가 이미 이 정보를 열어봤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마왕 벨라의 행적이 잡히지 않은 것을 보면.
다 실패했다는 말이니까.
아니면 지금 진행 중일 수도 있을 테지.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또 필요한 것 있으십니까?”
이미 정보를 팔아먹어서인지 추가적인 정보를 안내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어쩌면 더 팔아먹으라고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안 그래도 물어보려 했습니다. 마계의 사냥터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어느 수준의 사냥터를 말씀하시는지…….”
역시 이것도 정보가 있네.
혹시 없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바로 안내인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600레벨 이상의 사냥터. 그리고 아직 공략 안 된 네임드의 정보까지 있으면 더 좋겠군요.”
내 요구에 안내인의 동공이 다시 멈췄다.
이거 참.
자주 이러네.
딱히 비싼 정보도 아닐 텐데.
이 뒤에 물어볼 정보까지 하면 꽤 곤란하긴 하겠네.
“아, 그리고 랭킹 1위부터 최하위 마왕까지 모든 마왕들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소유하고 있는 마왕성의 위치부터 각 마왕의 특성, 주력 아이템, 이끌고 있는 세력까지 다.”
<불멸> 큭, 아주 온 김에 다 쓸어갈 생각이냐.
<주호> 좋은 기회잖아요.
사장님과 전사 형이 조사를 해서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있는 반면.
이곳 마계 경매장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도 분명히 존재했다.
아마 정보의 깊이를 고려하면 이곳 마계 경매장 쪽이 조금 더 나을 수 있었다.
유저가 들어갈 수 없는 마왕성의 정보는 어떻게 알아내려고 해도 알 수가 없는 정보들이니.
“……다른 마왕님들의 정보 말입니까?”
“네, 또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만.”
날 보는 안내인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내 의도를 알고 싶어 하는 딱 그런 눈빛.
의뭉스러운 내 요구들을 파악하려다 결국 졌다는 듯 손을 들었다.
“마왕님들이 숨기는 정보까지는 저희가 알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정보라도 괜찮겠습니까?”
“그 정도면 충분해요.”
아마 정말 제대로 된 정보는 따로 숨기는 모양이었다.
마계 경매장에서 그 정도의 비밀을 가지고 있지 않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내는 건 또 다른 일이라.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해도 힘든 정보가 있다.
“알겠습니다. 곧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네요.”
그런 날 보던 안내인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저희야 어떤 정보를 팔든 상관없습니다만. 혹시 마왕님들과 전쟁이라도 하실 생각이라면 말리고 싶군요.”
“그렇게 보이시나요?”
안내인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시 안내인이 나가자 재중이 형이 말했다.
“꽤 곤란해하는 것 같은데?”
“마왕들의 정보니까요.”
어쩌면 지금의 이 요구도 정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마왕들의 정보를 캐고 다닌다 정도.
하지만.
내가 요구한 건 아주 포괄적인 정보들이었다.
딱히 누군가 타깃이 되는 정보는 아니라 이거지.
단순히 정보를 요구했다고 전쟁까지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보가 필요한 녀석은 따로 있어요.”
“마왕 스티어 말이군.”
“네, 녀석은 마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테니 한참 정보가 필요할 겁니다.”
“거기다 욕심도 많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하면.
곧장 다른 마왕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 아무 정보 없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 건 사양이다.
최소한 아군이 될 녀석들과 적이 될 녀석 정도는 구분해야지.
엉덩이에 뿔 난 망아지처럼 이곳저곳 다 건들고 다녔다가는 감당이 안 된다.
우리가 최소한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는 마왕 스티어가 건재할 필요가 있었다.
“마왕 스티어에게 줄 선물은 구한 것 같은데.”
그때 보고 있던 화련이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600대 사냥터? 미친 거 아냐?”
아, 그러고 보니 그것도 물어봤었지.
“무슨 문제라도?”
“사냥터 물어본 게 그냥 물어본 건 아닐 거 아냐.”
“네, 그렇죠.”
“가다가 그냥 죽을걸?”
“으음, 보통은 그렇죠.”
화련 말이 맞다.
당장 유저들이 사냥 다니는 최상위 사냥터가 500레벨 대도 채 안 된다.
그 이상은 지금 수준에서는 칼도 안 박히는 수준이라.
무작정 높은 사냥터만 찾아다녀 봐야 효율도 안 나오고 물약과 시간만 잔뜩 낭비하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필드 사냥터는 뭐 어떻게든 한두 마리라도 잡아본다고 쳐도.
던전 형식의 사냥터는 그냥 죽여달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게 숫자가 얼마이든.
일정 수준 이상의 레벨 차이가 나면 그때부터는 일반 몬스터도 한 마리, 한 마리가 벅차다.
“그것도 모자라 네임드? 걔들은 그냥 재앙이야. 건들면 너만 죽는 게 아니라고.”
전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유저들이 욕심이 없어 상위 네임드를 사냥하지 않는 게 아니다.
일단 사냥을 못 하는 것도 있겠지만.
괜히 네임드 하나 건드렸다가 벌집 건드린 것처럼 터트려 놓으면 주변 일대가 재앙 수준으로 바뀌게 된다.
특히 활동 반경이 넓은 네임드의 경우에는 다른 사냥터도 넘어오는 경우도 많고.
근처에 걸리는 거점은 그냥 한 번에 털린다고 봐야 했다.
유저들이 접근할 수 없는 지옥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지.
그러다 유적들을 잡아먹고 오버라도 되는 날에는…….
“잘 알고 있어요.”
내 자신만만한 표정에 화련이 두 손을 들었다.
“하, 정말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그런 화련을 뒤로 하고 아까 받은 마왕 벨라의 정보를 펴 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 내 눈을 비볐다.
이거 꽤 곤란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