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8화 마왕성 구축 (3)
마계 경매장.
여기 입장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딱 세 가지였다.
특정한 자격을 갖춘 자.
혹은 상인 연합에서 일정한 기준을 넘어서는 VVIP가 될 것.
그리고 남은 세 번째는 기존 입장자의 추천이었다.
얼핏 보면 꽤 조건이 쉬워 보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현재 이 조건을 획득할 수 있는 유저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소문에 마계 경매장이라는 장소가 있다는 것만 얼핏 알 수 있을 뿐.
실제로 마계 경매장에 들어가서 물건을 샀다는 유저가 없으니.
그나마 조건이 맞았던 건 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내가 꽤 오래 접속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우리에게 우호적이던 마왕 벨라마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도 유저들은 소문으로만 접할 뿐 누구도 마계 경매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일단 마계 경매장의 위치는 대략적으로 알고는 있었다.
몇 번이나 마계에서 쓸 수 있는 수송용 비공정을 통해 가봤으니까.
문제는…….
당장 그곳에 갈 수단이 없다는 것.
거길 그냥 단순히 걸어서 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험악한 산맥과 산맥을 타고 넘어가 시간을 전부 낭비할 생각이 아니라면.
그나마 비공정이 있었으니까 오가는 거지.
인벤을 열어봤다가 낭패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전에 수리 좀 해둘 걸 그랬어요.”
그러자 재중이 형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되물었다.
“그래, 수리할 수 있는 곳은 있고?”
“……없죠.”
재중이 형 말대로 현재 유저들이 소유한 거점에서는 비공정의 수리가 불가능했다.
나중에라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비공정의 도크가 거점에는 추가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당장 그게 가능한 곳은…….
“마왕성이 없으면 비공정을 수리할 수가 없지.”
“하. 마왕성이 없으니 정말 불편하네요.”
“솔직히 비공정만 있었어도 훨씬 편했을 거야.”
“네, 뭐…… 이번에 했던 공성도 사실 비공정을 타고 넘어가 버리면 되니까.”
황실 비공정은 마계에서 쓸 수 없으니 일단 패스.
하지만 수송용 무역선들은 그대로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해적들에게 포획한 공격용 약탈선 역시도 마찬가지고.
마계 공중 곳곳에 포악한 비룡들이 많긴 한데.
그렇다고 아예 못 넘어갈 것도 아니었다.
몇 대 박살 날 각오를 하고 넘어가면 되니.
문제는.
그렇게 탈 수 있는 비공정들이 내가 접속을 하지 않았던 시간 동안 야금야금 내구도가 깎인 탓에 지금 전부 활동 불가에 걸려 있었다.
“너무 현실 반영을 한 것 아닌가요? 인벤에 있던 녀석들이 삭아 버리다니.”
“큭, 그동안 접속 못 한 네가 나쁜 거야.”
접속을 하지 못했던 게 몇 개월이 넘어가니 비공정들의 내구도가 바닥나 하늘을 날기는커녕 당장 파괴되지 않으면 다행일 수준이었다.
만약 마왕성만 그대로 있었어도 이걸 전부 수리해서 움직일 수 있겠지만.
우리가 마왕성을 가지려는 이유 중에 하나도 이 비공정 때문이기도 했다.
마왕성만 있으면 비공정을 활용할 수 있으니.
휴.
일단 아쉬운 대로 일단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그래서 생각한 차선책이…….
“혹시 다른 마왕성에 들어가서 수리를 할 수 있을까요?
마왕성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마왕들이 가진 마왕성들도 마계 곳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중이 형은 어림도 없다는 듯 웃어 버렸다.
“들어가기도 전에 입구컷 당할걸? 마왕 벨라야 유저들에게 우호적이니까 그나마 마왕성에 유저들이 발을 붙인 거지. 다른 곳은 애초에 불가능해.”
“하아, 되는 게 없네요.”
내가 한숨을 쉬자 재중이 형이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말했다.
“흠,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방법이 있어요?”
“어, 비공정을 이용하는 녀석들이 우리만 있는 게 아니니까.”
“혹시 해적선을 약탈하자는 건가요?”
효율은 좀 떨어지겠지만 나 혼자쯤은 어떻게 아퀼라스 주니어를 타고 날 수 있으니.
하려고 마음먹으면 아주 못 할 것도 없었다.
그 전에 다른 비룡들을 상대해야 하는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언제 어디서 해적이 나올 줄 알고?”
“흐음, 그렇긴 하네요.”
재중이 형 말대로 하루 종일 죽치고 기다린다고 해서 해적이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거기다 애초에 약탈할 물건이 없으면 해적들이 나타날 일도 없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약탈선을 뺏어도 문제다.
선체를 온전하게 뺏지 않은 이상은 또 수리를 해야 할 판이라.
“그럼 무슨 방법이 있어요?”
수리도 안 돼.
그렇다고 해적선 약탈도 안 돼.
딱히 방법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그러자 재중이 형이 검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해. 예전에 우리와 거래했던 녀석 알지? 무역상.”
“아, 암흑 상인요?”
“그 녀석, 조만간 멀지 않은 한 마왕성에 들릴 예정이거든. 그것도 서열이 아주 바닥인 마왕의 마왕성에.”
암흑 상인과는 연락이 아예 끊겼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어, 중간에 녀석과 접촉할 생각이다.”
“확실히 암흑 상인이라면…….”
“그래, 너와는 꽤 좋은 사이지.”
재중이 형 말대로 암흑 상인과의 호감도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지.
오히려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할까.
그 녀석에게 큰돈을 벌게 해주었으니.
그때 당시 암흑 상인이 무역선을 몇 대나 늘릴 정도로 아주 호황을 누릴 수 있게 우리가 도와주었다.
“암흑 상인이 도와주면 마계 경매장으로 바로 갈 수 있겠군요.”
무역선을 잔뜩 가지고 있으니 그중 하나에 얻어 타면 금방 갈 수 있을 터.
그런데 재중이 형이 미소 지으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근데 그놈. 지금은 쫄딱 망했더라고.”
“네?”
“지금 아마 겨우 무역선 한 대만 굴리는 수준일걸?”
“설마요.”
당시에 무역선만 열 대가 넘어갔는데?
그것도 타르를 가득 실고 무역을 했…….
그걸 생각하자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설마 타르 장사가 망한 건가요?”
“어, 아주 쫄딱. 마왕 벨라의 마왕성이 망하면서 녀석도 같이 망해 버렸어.”
재중이 형의 말을 듣자 암흑 상인이 망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그때 우리는 신성 제국에서 하르를 구해와 이쪽의 타르로 싸게 바꿔 먹었다.
그리고 암흑상인은 그 많은 물량을 수송해 주면서 계속 규모를 키워 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가 쏙 빠져 버렸으니.
실컷 무역선만 늘려놨던 암흑 상인은 중간에 붕 뜰 수밖에.
“타르 물량이 계속 늘어날 거라 생각했던 암흑 상인 입장에서는…….”
“아주 뒤통수 세게 맞은 거지. 전 재산을 들이부었다가 지금은 빚에 허덕인다 하더라. 조만간 파산할 거라는 말도 있고. 남은 수송선 하나도 수리할 돈이 없어서 말이야.”
“끙…….”
이거 괜히 미안한데?
우리를 믿고 과감한 투자를 했는데 그게 완전히 휴지 조각이 되어 돌아온 셈이니.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게 아마 저런 경우가 아닐까.
“혹시 보자마자 공격하는 거 아니에요?”
“그럴지도?”
대답하며 생글생글 웃는 재중이 형을 보니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나도 솔직히 장담은 못 하겠네.
“휴, 일단 한 번 만나보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당장은 녀석을 만나볼 수밖에.
* * * * *
마왕성에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가고 싶지만.
마계 경매장은 자격이 있는 자와 동행한 한 사람만을 추가로 입장할 수 있었다.
“금방 올게요. 다들 준비하면서 기다려주세요. 올 때는 반지로 텔레포트 해서 오면 되니까.”
그러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가까운 중립 지역 거점에 가 있을게. 오면 연락하고.”
그렇게 다들 자리를 뜨자 그때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이 큰 나무 그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아쉽지만 다들 당분간 기다려줘야겠어. 지금 마왕성에 가야 하거든.”
발록이 내 말을 듣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마왕성인가…….”
“어, 당장 필요한 게 있어서.”
그러자 뱀파이어 로드가 불쑥 끼어들었다.
“우리가 가면 마왕 정도는 죽여 버릴 수도 있는데?”
뱀파이어 로드의 당찬 말에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이 셋을 데리고 가면 당장 마왕 하나 정도의 목을 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다음.
혹시라도 다른 마왕들이 합심해서 반격이라도 하게 되면 그때는 꽤 골치 아픈 상황이 생기니까.
적어도 우리가 마왕을 직접 상대할 수 있을 수준을 되어야 해.
그래야 문제가 생겨도 컨트롤을 할 수 있으니.
지금 이들의 무력에만 기대서 마왕들과 전쟁을 하는 건.
굉장히 위험한 도박에 가까웠다.
딱히 그런 도박에 판돈을 걸 필요는 없겠지.
“알다시피 마왕들과 전면전을 할 게 아니라면 당장은 전투를 피해야 해. 우린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그냥 다 죽여 버리면 될 것을.”
“곧 하기 싫어도 수도 없이 치고받을 거야.”
“쳇, 알았다. 기다리지.”
혹한의 얼음 여왕을 바라보자 그녀는 아무 동요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확실히 이쪽은 말하기가 편하지.
“그럼, 저들을 따라가서 조금만 기다려줘. 이야기는 해둘 테니까.”
그렇게 셋을 전사 형에게 떠넘기면서 말했다.
<주호> 형, 이 셋 좀 잘 부탁해요. 가급적이면 유저들하고 트러블 나지 않게.
<방패전사> 쟤들이 네가 말한 네임드지?
<주호> 네, 아마 그냥 얌전히 있진 않을 테니 수시로 연락해 주시고요.
<방패전사> 휴, 이거 참. 알았다. 다녀와.
저들 셋이 난동을 피우면…….
거점 하나 날아가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지도.
그렇다고 아무 데나 놔두고 갔다가는 정말 마왕과 한판 뜨러 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사 형이 잘 맡아주기 바랄 수밖에.
“애들 놔두고 외출하는 기분이네요.”
“애는 있고?”
“말이 그렇다는 거죠.”
곧 재중이 형과 유저들이 평소에 돌아다니는 곳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외곽 지역의 마왕성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사실 마왕성이 위치한 장소를 피해 유저들이 거점을 잡는다는 편이 오히려 맞는 말이었다.
영역이 겹치는 순간.
털리는 곳은 마왕성이 아니라 거점이 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거점 패황의 위치는 그야말로 꿀 같은 자리라고 할 수 있었다.
새로 나온 고레벨 사냥터가 코앞이고.
마왕에게도 간섭을 받지 않는 최적의 장소니까.
때문에 서로 그곳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하는 중이기도 했다.
반면 이곳은 마왕성 때문인지 주변에 유저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참을 이동해서야 거친 평지에 덩그러니 서 있는 마왕성이 눈에 들어왔다.
마왕성은 유저들의 거점과 달리 복잡한 지형이 필요 없었다.
어차피 마왕은 산맥 따위야 그냥 달려서 넘어가 버리는 존재들이라.
지형이 의미가 없지.
“여기가 스티어의 마왕성인가요?”
“어, 얼마 전 마왕성을 차지한. 마왕 중에서는 말단인 녀석이지.”
“암흑 상인이 이곳과 거래를 하는 이유가?”
“이제 마왕이 되어서 입지가 없으니까. 예전에 마왕 벨라에게 했던 것과 같겠지. 다른 곳은 이미 거물 상인들이 붙어 있을 테니.”
상당히 외곽임에도 굳이 암흑 상인이 찾아오는 이유랄까.
어차피 마왕성 안에는 들어갈 수 없어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자 곧 마왕성 바깥으로 날아오르는 한 무역선이 보였다.
“형, 저거…….”
“어, 맞다.”
당장 부서져 추락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볼썽사나운 모습의 비공정.
저건 누가 봐도 암흑 상인의 비공정이네.
곧장 아퀼라스 주니어를 불러내 재중이 형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라 녀석의 무역선을 뒤따라갔다.
그렇게 속도를 내 완전히 따라잡자마자 비공정의 갑판으로 뛰어내렸다.
그 순간 화들짝 놀란 암흑 상인이 우리를 돌아보면서 고함질렀다.
“누구냐!!”
이전과 달리 완전 꼬질꼬질해 보이는 외관이라…….
괜히 미안해지잖아?
“오랜만이야. 암흑 상인.”
“너…… 너?!”
날 알아보고 당황한 듯한 녀석을 향해 한껏 반가움을 담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우리 다시 돈 좀 벌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