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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45화 (935/1,404)

#945화 승자 없는 전장 (15)

사방을 포위한 채 연이어 타르포가 불을 뿜자 패황 연합 유저들의 표정이 거의 죽을상으로 변했다.

“타르포?!”

“저 미친 새끼들!”

“야! 저거 우리 꺼 아냐?!”

타르포가 당연하게 자기들 물건이라 생각하는 녀석들을 보고는 코웃음이 나왔다.

아니.

정확하게는 너네 껀 아니란다.

저거 사는데 든 돈은 다 내 주머니에서 나갔거든.

뭐 지금은 연에게 거점째로 다 팔아치워서 내 것도 아니긴 하지만.

거점의 가격을 책정할 때 당연히 그동안 내가 거점에 들인 자금 역시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너희들 지분은 1프로도 없다는 거지.

옆에서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어 버렸다.

“거점을 좀 쓰게 해주었더니 아주 지들 거라 생각하나 봐?”

“그러게요.”

타르포의 포격 특성상 적들이 한 장소에 몰려 있으면 있을수록 더 효과를 발휘했다.

보통 성벽에서 쏠 때는 다소 넓게 퍼져 있는 적들을 향해 쏘기 때문에 온전히 위력을 낸다고 보긴 좀 힘든 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패황 연합 유저들은 어떻게든 중앙 크리스탈을 지키기 위해 여러 겹의 바리게이트를 치고 있는 중이었다.

이건 타르포가 최대치의 위력을 내기에 최적화된 환경이라는 거지.

콰아앙!!

콰아앙!!

쿠우웅!!

그렇게 타르포가 불을 뿜기 시작하자 적들의 전열이 순식간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탱커의 방어력을 훨씬 상회하는 위력을 지닌 타르포에 직격으로 맞고도 살아남을 녀석들이 있을 리가.

“으악! 살려~!”

“젠장!! 힐!! 뭐 하는 거야!”

“탱커들 어떻게든 막아 봐!!”

포격 소리 속에 악에 받친 외침들이 들려오는 와중에도 여전히 타르포는 불을 뿜어대며 적들을 계속 녹여갔다.

그리고 워낙 많은 유저들이 한자리에 몰려 있다 보니 한 방에 수십 명은 기본에다가, 포격에 맞은 유저들이 튕겨 나가며 주변의 유저들과 함께 나뒹구는 광경이 곳곳에서 나왔다.

방어를 위해 몰려 있던 게 오히려 지금은 독이 되는 상황이랄까.

적들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연이 다시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다! 전원 광역기 쏟아부어!!”

그러자 연의 연합 쪽에서 수도 없이 많은 광역기들이 빛을 발하며 적들에게 쏘아져 나갔다.

하늘을 수놓은 수백이 넘는 광역기들.

그것도 적들 머리 위로 바로 떨어지는 광역기라 그 위력이 고스란히 들어갈 것이다.

원래라면 탱커들이 전면에서 그런 광역기들 대부분을 몸으로 맞아 주면서 버텼을 터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버텨 줄 탱커들이 이미 다 타르포에 쓸려 나간 상황이었다.

콰콰쾅!!

화르륵!!

퍼어엉!!

파지지직!!

각종 광역기들이 패황 연합 유저들의 진영에서 터지면서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으아악!!”

“피해!!”

“빨리 벗어나!!”

“젠장! 다들 어딜 가는 거냐! 진영을 지켜!!”

중간 지휘관으로 보이는 누군가는 악을 쓰면서 외쳐보지만.

애초에 패황 연합 자체가 여기저기 유저들을 끌어모아 만들어 낸 모래성 같은 존재였다.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혀를 찼다.

“쯧, 개판이군.”

“도저히 수습이 안 되나 봐요.”

“처음부터 마구잡이로 덩치만 불렸으니까. 이기고 있을 때나 성벽에서 방어할 때야 적당한 명령에 여유 있게 대응하겠지만…….”

“지금처럼 긴급한 상황에서는 엉망이라는 거죠?”

“그런 셈이지. 저 봐, 명령 체계고 뭐고 하나도 없잖아.”

각자 다 따로 논다고 해야 하나.

한 번 무너진 진영을 다시 복구하기는 너무 어려워 보였다.

결국 이럴 때는 누군가 나서서 뭔가를 보여 줘야 하는데…….

“구심점이 너무 없네요.”

“어, 저건 패황의 지배력을 한참 벗어났다.”

재중이 형 말대로 어느 정도 규모에서야 패황이 오더를 내리면 즉각 반응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래 거점 용아를 지키던 유저들과 다른 두 거점에서 건너온 유저들까지.

엉망진창으로 섞여 있는 진영이기에.

지금 같은 상황이 오면 그냥 패닉이 올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정신을 차리고 싸워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싸우는 건 너무 불리하지.

“에이, 이렇게 된 이상 다 나가 싸워!!”

“몰려 있다가 죽는 것보다는 그게 낫겠다!”

“패황 말 듣고 있다가 여기서 다 죽는 거보단……!”

“한 대 패보기라도 하면 억울하진 않지!”

“한쪽이라도 뚫자!!”

뒤가 없이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문다고 했던가.

워낙 정신없이 두들겨 맞다 보니 결국 패황 연합 유저들이 위의 명령과 달리 각기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완전히 명령권에서 벗어난.

물론 반격이라도 해보는 게 저들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긴 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그냥 전멸할지도 모르는 일이라.

그렇게 시작된 일부 유저들의 행동에 다른 유저들도 연이어서 반격을 위해 바리게이트를 풀고 그대로 적들을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게 나쁘지 않다는 거지.

결코 좋은 건 또 아니거든.

“하, 이것들 봐라!?”

“포위 풀고 나오는 족족 다 죽여 버려!”

“하나도 살려 두지 마!!”

아쉽게도 포위된 상태에서 그 포위를 푸는 게 생각보다 그렇게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듯.

튀어나오는 녀석들이 먼저 두들겨 맞으면서 순식간에 죽음의 빛으로 변해 우르르 죽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한 마디를 꺼냈다.

“차라리 산발적으로 하지 말고 집중해서 뚫었으면 나았을 뻔했는데 말이야.”

“역시 안 되겠죠?”

“이미 저렇게 몰렸는데 될 리가. 아예 바깥에서 지원군이 온다면 또 모를까. 외곽에서 쳐주고 그에 상응해서 포위를 부스면 지금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차피 패황 연합의 목표는 중앙 크리스탈을 보호하는 거야.”

“결국 포위를 뚫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거네요.”

“어, 실컷 뚫어 봐야 이쪽의 바리게이트만 느슨해질 뿐. 답은 아니라는 거지.”

재중이 형의 신랄한 비판은 그대로 약속이나 한 듯 들어맞아 패황 연합은 안팎으로 점점 무너져갔다.

“이젠 마왕이 강림한다고 해도 안 되겠는데?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서.”

“하긴. 거의 끝나는 분위기에요.”

그러자 한 번 죽어 나간 유저들이 다시 부활해 복귀하지 않는 기묘한 그림까지 나오게 되었다.

“설마 그냥 포기하는 걸까요?”

“저기 바닥을 봐라. 죽어 나간 녀석들이 떨어뜨린 아이템들 보여?”

확실히 숫자가 숫자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아이템들이 바닥에 드랍되어 있었다.

저게 다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

그만큼 지금 패황 연합 측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차피 저들 입장에서는 이미 진 싸움이라는 거다.”

누가 봐도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

여기서 다시 부활해서 달려가 봐야…….

또다시 죽어서 저들에게 아이템을 헌납하는 일뿐.

결국 부활한 유저들이 복귀를 하지 않으면서 더 많은 공백이 만들어졌다.

울고 싶은데 뺨까지 때리는 거려나.

안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며 이번 전투는 최악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거기다.

다른 거점에서도 문제가 생겼는지 채팅창이 바쁘게 올라왔다.

“형, 이건…….”

“어. 여기를 지키려고 다른 거점에서 너무 많은 병력을 빼버렸어, 패황이.”

무리가 갈 정도의 병력 차출.

이건 다른 거점의 방어를 그만큼 허술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가자 결국 원래의 거점에서 다시 병력을 돌려달라는 원성이 빗발치게 되었다.

“이거 참…… 패황은 꽤 힘들게 됐는데?”

재중이 형 말대로 패황이 행한 방법들은 지금 전부 다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이었다.

거기다 잘못하다가는 다른 거점 두 곳도 동시에 날아가게 생겼으니.

“패황이 어떻게 할까요?”

“뭐, 녀석이 조금이나마 생각이 있다면…… 다른 거점들이라도 살리려고 할 거다.”

“만약에 아니라면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하더니 딱 한 마디 말로 일축했다.

“이 전쟁, 판도 전체가 밀린다. 그리고 그냥 패황 연합이 공중분해될 수도 있어.”

으음.

그건 좀 곤란한데…….

패황 연합은 아직은 남아서 초월 연합 측과 계속 싸워줘야 했다.

“패황이 너무 욕심을 부렸네요.”

“어,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해볼 만은 해.”

“어떻게요?”

“다른 거점 두 곳은 어떻게든 살리는 거지. 그리고 이곳은 과감하게 포기. 그다음에 승부는 다시 거점 패황에서 내는 거다. 그곳이라면 지금처럼 허무하게 당하진 않을 거니까.”

“혼령의 세력도 있고요.”

“세력을 다시 모아서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오히려 나중에 초조해지는 건 초월 연합 쪽일 거니까. 패황은 거기에 승부를 걸어야지.”

재중이 형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상황은 최악까지 치닫고 있었다.

과연 어떻게 되려나.

“잘못되면 개입할 생각도 해야겠네요.”

그런 상황이 오질 않길 바란다만.

패황이 너무 삽질을 해버리는 바람에 잘못하면 꼬일 수도 있으려나.

그때 병력이 움직이는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오호, 패황이 아주 멍청이는 아닌 모양이군.”

일부 병력들은 전면을 틀어막으면서 아군들에게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는 어떻게든 우리가 시간을 번다. 빨리 각자 거점으로 다시 돌아가!!”

“뭐?! 다시 돌아가라고?”

“다른 거점들은 살려야 할 거 아냐! 빨리 움직여!”

그러자 다들 정신을 차린 듯 빠르게 포탈을 타고 원래의 거점으로 병력들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여기 거점이 살아있는 이상은 병력을 다시 다른 거점으로 보낼 수 있었다.

만약 이대로 거점이 터졌으면 저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돌아가지 못했을 터.

그러면 다른 두 거점도 박살 났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일단 최악의 상황은 면한 셈인가.

그렇게 지원 왔던 병력들이 다시 원래의 거점으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처음부터 거점 용아에 있던 병력들마저 다른 두 거점으로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패황이 이곳은 아예 포기했나 보네요.”

“그래, 자존심이 좀 상하기는 해도. 어차피 자기가 소유한 거점도 아니니 손절할 때는 빠르네.”

“이곳이 패황이 소유한 곳이었으면요?”

“큭, 그럼 혼령을 불러서라도 막았겠지.”

거점 용아 자체가 우리가 소유했던 곳이라 보니 포기하는 것도 아주 빠른 것 같았다.

이곳을 날리더라도 패왕 자신에게 피해는 없으니.

어떻게 보면 손익 계산이 확실한 녀석이기도 하고.

그렇게 빠져나갈 녀석들이 죄다 빠져나가자 어느새 거점 용아가 휑하게 비어 버렸다.

연은 어이없다는 듯 그 광경을 보고 있었고.

아마 마지막까지 저항하면서 최대한 드랍템을 뱉어 주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네.

그럼 자신이 쓴 돈을 어느 정도 보전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물론 지금도 충분히 많은 전리품을 건졌을 것이다.

누가 봐도 압도적인 전투였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거점 용아의 중앙 크리스탈이 박살 나면서 거점이 온전히 연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환호하는 유저들의 외침과 함께.

“우와아!! 이겼다!!”

“되찾았어!”

“고향에 돌아온 기분인데?!”

“이제 거점 패황만 차지하자!”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모습.

바로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다른 두 거점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바로 다른 거점들의 전투 상황을 띄워 주었다.

“흐음, 어떻게든 막겠는데? 병력을 뺀 판단이 나쁘지 않았어. 거기다 원래 거점 용아에 있던 병력들까지 다른 거점을 지원 간 셈이 되었으니.”

“그럼 두 곳은 버티겠네요.”

하나는 내어 주고.

둘은 결국 지켰다.

“패황 입장에선 최악은 피한 거지. 만약 세 거점이 다 털렸으면 다시 거점 패황이 포위당하는 형국이 되거든.”

“이전처럼요.”

“그래, 반대로 초월 쪽 연합들도 숨통이 트였을 거다. 적어도 한 곳을 차지했으니. 여기서부터 병력을 보내면 거리가 훨씬 줄어들어.”

그러자 비로소 우리가 원하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어느 한쪽이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계속 싸워야 하는.

가장 거슬리는 두 세력을 서로 싸우게 만드는 그림은 여기까지다.

누가 이길지는 두고 볼 일이고.

휴.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재중이 형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그럼 우린 이제 마왕들 좀 두들겨 패러 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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