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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40화 (930/1,404)
  • #940화 승자 없는 전장 (10)

    내 말을 듣자마자 발록을 비롯해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이 동시에 시가지를 향해 뛰쳐나갔다.

    솔직히 혼령이 들으면 그다지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밀집해 있는 시가지가 대규모 전투를 하기에는 다소 좁은데다가 네임드가 가진 힘 특성상 그 피해 범위가 넓은 것도 문제가 되었다.

    뭐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게 아주 약하게 싸우라고 하면 어떻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저 셋을 잡는 데는 그게 불가능해보여서 말이지.

    초월 연합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전신과 지아, 낙화.

    아주 잠시지만 보여준 전투력은 다른 유저들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쉽게 잡힐만한 녀석들이 아니라고.

    당연히 네임드들도 어느 정도는 힘을 내야 할 테니까.

    아군이라고 주변 녀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싸우라고 하는 건 솔직히 손발 다 묶어두고 싸우라는 것과 마찬가지라.

    아군의 피해.

    그리고 네임드들이 입을 피해나 손해.

    둘을 비교하자면 한 없이 네임드 쪽으로 기운다.

    어차피 혼령의 연합 유저가 얼마나 죽어 나가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솔직히 저들이 다 죽어 나간다고 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테니.

    “적당히 하지 말라는 거군.”

    “네, 뭐…… 잡을 수 있을 때 확실히 잡아야죠.”

    “그래, 괜히 네임드들에게 이런 저런 제한을 걸어두면 저 녀석들이 빠져나갈 수도 있으니까.”

    재중이 형도 내 생각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잡을 수만 있다면.

    확실한 게 좋다.

    그리고 어차피 혼령의 연합 유저들은 거점의 부활 포인트가 있어 죽어도 금방 다시 부활해서 돌아올 수 있었다.

    좀 죽는다고 닳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는 혼령이 이해해야지 않겠어?

    “잡을 순 있겠죠?”

    “아아, 녀석들이라면 부족하지 않지.”

    재중이 형은 못 잡는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듯했다.

    그 순간 시가지 내로 뛰어든 발록의 몸 전체에서 화끈한 화염의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는 잠시 눈으로 전장을 살피더니 한 사람을 지목했다.

    “여기서 제일 강해 보이는 건 저놈인가. 저건 내가 맡도록 하지.”

    발록이 지정한 유저는 바로 전신.

    화려한 대검을 들고 혼령의 연합 유저들을 무아지경으로 썰어버리는 전신에게 발록이 흥미를 느꼈다.

    그러자 뱀파이어 로드도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자신의 상대를 찾았다.

    “난 그럼 마법사 쪽으로 할까나.”

    뱀파이어 로드는 낙화를 시야에 담았고.

    혹한의 얼음 여왕은 할 수 없다는 듯 하얀 갑주의 지아에게 붙었다.

    그걸 본 재중이 형이 팝콘을 꺼내들며 감상평을 남겼다.

    “다 상성상 최악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래요?”

    “어, 뱀파이어 로드가 마법사를 잡는 데 최적화된 놈이라서. 암흑화, 은신, 영체화, 침투, 저격, 저주, 습격, 흡혈, 출혈, 시야 교란, 고속 이동, 후방 공격, 치명타, 스펠 캔슬, 디버프. 하나같이 다 마법사들에게는 상성상 최악의 속성들이야.”

    확실히 뱀파이어 로드가 빠르게 이동하면서 적들의 약점을 노리는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클래스로 보면 거의 암살자 수준이랄까.

    거기다 네임드 특유의 강력함까지 가지고 있어 평균보다 다소 느린 마법사 계열은 한 번 걸리면 그냥 죽는다고 보면 된다.

    그것뿐만 아니라 본인 자체가 마법사에 준하는 마법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근접, 중거리, 원거리 할 것 없이 모든 부분에서 강력한 네임드.

    심지어 광역기까지 강하니.

    정말 뱀파이어 로드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곳의 유저들은 혼자서도 다 썰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니나 다를까.

    뱀파이어 로드가 검은 안개처럼 흩어져 낙화에게 접근하더니 후방에서 강렬한 손톱으로 낙화의 뒤를 쳤다.

    까가강!!

    “호오? 배리어?”

    콰지직!!

    그리고 단 한 방에 배리어가 깨져나가며 낙화의 안색을 하얗게 만들었다.

    “뭐야?!”

    깜짝 놀란 낙화가 급하게 블링크를 써서 빠지자 뱀파이어 로드가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웃으며 낙화에게 다시 달려들었다.

    “이익!! 뭐냐고! 넌!!”

    근접전에 약한 낙화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초월 연합의 탱커들의 뒤로 숨어들었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뱀파이어 로드는 스킬을 써서 주변에 저주의 장막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는 곧장 추가적으로 피의 저주가 걸린 스킬까지 사용했다.

    【 커스 웹 스콜! 】

    다수의 유저를 상대하기에는 최적의 스킬이지.

    열화된 스킬을 빌려 쓰는 우리와 달리 저건 네임드 특유의 원판 스킬이니까 위력 자체가 아예 달랐다.

    곧장 앞을 가리고 있던 탱커들이 전부 피의 폭발로 터져 나가며 그 자리에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퍼어억!!

    퍼엉!!

    콰앙!!

    “끄아악!!”

    “으윽! 저 새끼 뭐야!”

    “무슨 스킬이 이렇게……!”

    순간 전열의 탱커와 근접 유저들이 쓰러지자 다시 낙화가 훤히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익!!”

    그리고는 뭔가의 스킬을 빠르게 영창했는데 그보다도 훨씬 빠르게 뱀파이어 로드가 사라지듯 이동해 낙화의 뒤편에 나타났다.

    “그런 배리어가 두 번은 없겠지?”

    곧장 뱀파이어 로드가 그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낙화의 목을 치려고 휘둘렀는데.

    그 사이로 급하게 뛰어드는 한 인영이 있었다.

    까가강!!

    끼기긱!!

    쇠와 쇠가 맞부딪히면서 갉히는 소리와 함께 뱀파이어 로드의 팔이 살짝 튕겨나왔다.

    “호오?”

    “큭!”

    뱀파이어 로드를 막아선 건 하얀 갑주를 입은 지아.

    그리고 전신의 갑옷과 라지 쉴드에서 눈이 부신 하얀 기운을 끌어올리며 앞을 막아섰다.

    “네 마음대로는 안 돼.”

    으음, 아무래도 저 갑주와 방패.

    평범해 보이진 않네.

    네임드인 뱀파이어 로드의 일격을 막아내다니.

    거기다 그렇게 막았는데도 라지 쉴드에 흠집이 나지 않았다.

    “형, 저거 여기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 맞아요?”

    아무리 봐도 마계 쪽 아이템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신성 제국의 물건이라고 하기에는 그쪽의 레벨 대가 너무 낮은 편이었다.

    저런 아이템을 공수할 만한 장소는 아니라는 거지.

    “아마 영웅의 아이템일걸.”

    “그래요?”

    “이곳 네임드 템은 일단 아니야. 그럼 남은 건 그쪽뿐이겠지.”

    “흐음, 아깝네요.”

    영웅의 아이템들은 가급적 다 얻고 싶었는데.

    그것도 쉴드 계열이라면 전사 형이 특히 좋아했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그들을 전투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번엔 혹한의 얼음 여왕이 나섰다.

    “넌 내 상대인데 어딜 가?”

    그러자 얼음 여왕의 등 뒤로 수도 없이 많은 마법진들이 동시에 생성이 되었다.

    【 몰아치는 얼음의 폭풍! 】

    그리고는 그 마법진들 개개별로 거대한 얼음으로 된 스피어가 생성되더니 끝없이 지아를 향해 날아갔다.

    마치 얼음 폭격이라고 해야 할까.

    하나하나가 다 강력해 보이는데 그 수가 한 번에 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쐐애애액!

    파아아아!!

    폭풍과도 같은 얼음의 쇄도에 지아가 입술을 꽉 깨물더니 이내 낙화를 자신의 뒤에 숨기고는 자세를 낮춰 라지 쉴드를 앞으로 내밀었다.

    콰콰광!!

    쾅쾅!!

    그렇게 얼음 스피어가 작렬할 때마다 지아의 신체가 크게 들썩거리면서 두 다리가 후들거렸고 그 위력을 이기지 못해 땅을 파고 점점 몸이 뒤로 밀려나갔다.

    방패 자체가 우수해서 박살나지는 않았지만.

    그냥 마법의 위력 차체가 너무 강해 밀린다는 느낌이 강했다.

    다른 유저들에 비해 강해 보이던 저 둘이 연신 밀리기만 하는 걸 보면 그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네임드들이 마음먹고 후드려 패면 이렇게까지 몰아칠 수가 있구나.

    그 여파로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죽어 나가는 건 보너스였다.

    적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같이 몰려 있던 모든 유저들이 갈려 나간다고 해야 할까.

    초월 연합이나 혼령 연합이나 어차피 전쟁은 맞붙어서 해야 하는데 그런 곳에 저런 괴수들을 풀어놨으니.

    “크윽, 피해!”

    “뭐냐, 저것들은!”

    “대체 레벨이 몇이야?”

    “유저가 이렇게 세다고? NPC 아냐?”

    “큭, 그럼 영웅 NPC인가?”

    “젠장, 이 새끼들 믿는 구석이 있었잖아.”

    당연히 저들 중 누구도 이들이 네임드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애초에 네임드가 유저들 사이에서 같이 싸운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라.

    물론 이들이 쓰는 스킬들을 보면 누군가는 알 수는 있겠지만.

    어차피 우리가 공개하지 않고 계속 발뺌하면 의심을 할 뿐.

    그 이상은 힘들지.

    특히나 지금은 혼령 연합이라는 방패도 준비되어 있었다.

    용아라는 위장 길드와 거점도 존재했고.

    계속해서 지아와 낙화가 밀리자 결국 전신이 빠르게 휘하의 유저들을 데리고 중간에 뛰어들었다.

    특히 전신은 아예 혹한의 얼음 여왕을 썰어버릴 요량으로 아까의 그 강력한 스킬을 구사했다.

    대검 전체에서 뻗어져 나가는 기술.

    그런데 그 스킬이 중간에 나타난 발록의 손에 잡혀 그대로 공중에서 터져버렸다.

    콰아앙!!

    마치 빛이 소멸되듯 깨져버린 모습에 전신이 살짝 눈썹을 구겼다.

    아마도 저 기술이 전신이 가진 기술 중에 꽤 강한 위력을 가진 모양이네.

    그리고 그 기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발록이 막아버렸으니 인상을 구길 수밖에.

    곧 전신이 알듯말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발록에게 말했다.

    “이거 참. 패황이 뭘 믿고 계속 들이대나 했더니 너희 같은 놈들을 숨겨놓았었군.”

    그러자 발록이 입가가 살짝 올라가더니 받아쳤다.

    “말이 필요한가?”

    그러더니 발록의 신형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중간에 사라졌다.

    저건…….

    “형, 발록이 꽤 진심인 듯한데요?”

    아마 유저들의 레벨을 파악할 수 있는 뭔가가 있을 터.

    그리고 내게 썼던 그 고속 이동을 전신에게도 써 보였다.

    저 속도에 반응 못 하면 그냥 목이 날아가는.

    눈으로는 쫓기 힘든 최악의 공격이랄까.

    까가강!!

    끼기기긱!

    그때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반응한 대검의 움직임에 발록의 공격이 막혔다.

    저걸 막았어?

    그러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전신이 어떻게 본능적으로 막긴 했어. 그런데 그게 끝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장 이어지는 발록의 연타에 전신의 복부가 터져나가며 건물 외벽에 가서 그대로 몸을 부딪혔다.

    콰과광!!

    그것도 모자라 건물 벽을 몇 개나 부스면서 안쪽까지 완전히 처박혀 버렸다.

    “크으윽!”

    저건 한 방에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이려나.

    현재 전신이 입고 있는 갑옷도 최상급일 텐데 그 갑옷이 그대로 박살이 나 있었다.

    재중이 형이 그걸 보고는 혀를 찼다.

    “쯧, 네임드라는 걸 알았다면 더 신중히 막았을 건데 말이야.”

    “발록이 전력으로 친 것도 있겠죠.”

    그렇다고 전신이 완전히 긴장을 놓은 것도 아니었다.

    나 때와 달리 발록이 처음부터 전력으로 쳐버렸으니.

    눈에 익힐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전신의 경우는 운이 없었다고 해야 하려나.

    “전신!!”

    “형님!!”

    “오빠!!”

    다들 전신이 당연히 막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경악한 눈빛을 감추지 못 했다.

    저들에게 있어 전신은 일종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재중이 형이 그렇듯이.

    낼 수 있는 최고의 패.

    그런 전신이 밀려 버렸으니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발록이 달려들면 전신은 무조건 죽는다.

    그러자 초월 연합 유저들 대부분이 그런 발록의 앞을 막아섰다.

    최소한 전신이 회복할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이려나.

    전신이 아니면 발록을 상대할 사람이 없다는 걸 본능으로 다 아는 모양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더 못 간다.”

    “우리도 한번 죽여 보라고!”

    기세가 전혀 죽지 않은 강렬한 눈빛들.

    확실히 눈빛부터가 다르긴 하네.

    그런데 발록은 그런 녀석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전신이 날아간 방향을 보면서 말했다.

    “흠, 괜찮군.”

    “뭐?”

    “무슨?”

    어느새 전신에게 달려간 지아가 전신을 부축하고 건물 사이로 빠져나오자 발록이 다시 말을 이었다.

    “너, 더 강해져서 와라. 넌 자격이 있다.”

    그러자 잠시 발록을 노려보던 전신이 짧게 한숨을 쉬더니 초월 연합 유저들에게 어렵게 한 마디를 꺼냈다.

    “전원……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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