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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37화 (927/1,404)

#937화 승자 없는 전장 (7)

거점 용아에 있어야 할 연 녀석이 여기 거점 폐황에 와 있다는 건.

역시나 우리를 속이기 위해 정예 병력만 빼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비밀 통로로 나오는 우리를 향해 공격해 왔다.

하지만 처음부터 조심하고 나왔기에 녀석의 첫 공격은 크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이쪽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너무 수월하게 공격을 막아내자 연 쪽에서도 약간의 소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연이 크게 주변에 외쳤다.

“모두 죽여!”

그 뒤로 통로 입구를 향해 미친 듯이 공격들이 퍼부어졌다.

화살 세례부터 해서 각종 폭발 마법들까지.

콰콰광!

콰아앙!

쿠웅!!

이걸 통과하는 건 좀 무리겠는데.

뒤로 빠지면서 다시 통로로 들어가자 녀석들의 공격이 그대로 막혀서 더 이상 통로 안까진 넘어오진 않았다.

그리곤 재중이 형을 보고 말했다.

“연이 지키고 있네요.”

“호오? 녀석이?”

“네, 역시 이쪽에 가세한 게 맞아요.”

“흐음, 그렇다 해도 정면의 공성에 참여했어야 할 텐데. 굳이 이곳에?”

현재 전장은 수성 측이 꽤 유리한 상황.

거점 패황에서는 아군이 부활해서 바로 투입되는 데다가 다른 세 거점에서 계속 지원이 날아 들어왔다.

반면에 초월이나 페가수스 연합 쪽은 그게 불가능했다.

한 번에 공성을 승리로 마치지 못한다면.

여러모로 불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돌파를 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중에 이 측면의 비밀통로는 쓰기에 따라서 완벽한 카운터가 될 수도 있었다.

다만.

이미 듣기로 이곳은 거점에서 나가는 것만 된다고 들었는데…….

입구를 점거한다고 해서 저들이 들어올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다.

“혹시 녀석이 이곳 산맥 비밀통로를 통과할 방법이 있었던 걸까요?”

“확실히.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되네. 전장 지휘를 할 녀석이 굳이 이곳으로 왔다면, 지휘에 준하는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일 거야.”

“생각보다 정면이 뚫리지 않아서겠죠?”

“뭐, 그런 것도 있겠지. 지금은 패황 쪽에 지원이 계속 이어지니까. 쉽게는 안 뚫릴 거야.”

재중이 형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연 정도면 페가수스 연합의 장인데 전신과 더불어 전장의 전체 지휘를 해야 할 판에 이곳 비밀 통로 쪽으로 와 있다니.

굳이 와 있지 않아야 할 녀석이 이곳에 위치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이곳으로 나와 보지 않았다면 전혀 몰랐겠어요.”

방법은 모르겠지만.

연은 이곳 통로로 해서 거점 패황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와 마주친 것이었다.

“네 말대로 연이 이곳 통로를 통과할 방법을 알고 있고, 그대로 뒀으면 거점 패황이 안에서부터 무너졌겠군.”

지금 패황 연합은 모두 수성을 한다고 성벽 쪽으로 몰려가 있었다.

이 산맥을 통하는 비밀 통로로 들어오지는 못한다는 걸 맹신했기에.

“뭔가의 퀘스트. 혹은 그에 준하는 특수 아이템이겠죠?”

“아마도. 패황 쪽은 전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거야. 녀석들이 이곳을 점거한 지는 꽤 오래 지났으니까.”

거점 패황은 원래 초월 연합이 가지고 있던 거점이었다.

애초부터 비밀 통로는 그쪽이 훨씬 잘 안다고 보면 된다.

반면에 패황은 이곳 거점을 차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시스템적으로 모르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많을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또 다른 생각이 나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이곳 비밀통로 말고도 다른 통로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원래 두더지는 하나의 굴만 파놓지 않는다.

한 곳이 막히면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 위해.

당연히 또 다른 통로가 있을 터.

그리고 단순히 이곳만이 아니라 다른 통로로 적이 들이닥친다면?

방심하고 있는 패황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쩐다. 일단 저것들부터 잘라놔야 하나?”

재중이 형이 고개를 돌려 발록,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저 셋이면 비밀 통로 바깥에 얼마나 많은 유저들이 있든 어렵지 않게 뚫어버릴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밖으로 나가더라도.

다른 녀석들이 또 다른 비밀통로로 들어와 버리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여기서 연을 죽인다고 해결될 것 같진 않아요.”

“또 다른 통로가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지.”

우리가 안에서 멈춰 나가지 않자 연도 굳이 이곳을 파고 들어오진 않았다.

“돌다리도 저 정도면 병이다. 진짜.”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하자 나도 모르게 같이 웃어 버렸다.

“처음에 제가 너무 확실하게 막아버려서 그런 것 같아요.”

“어, 거기다 괜히 들어왔다가 역으로 당할 위험이 있어서겠지. 녀석 입장에서는 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흐음.

당장에야 들어오진 않겠지만.

곧 녀석도 이상하다 생각해서 밀고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싫든 좋든 붙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순간 뭔가의 생각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형,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게 어때요?”

그리고 내 생각을 말했더니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꽤 할 만하겠네. 그럼 빠지자고.”

그 말과 함께 주저 없이 바로 통로를 통해 거점 패황으로 돌아갔다.

* * * * *

“뭐? 비밀 통로로 적들이 더 들어올 수 있었다고?”

“그렇게 깜짝 놀라면 주변에서 다 듣겠네.”

그러자 혼령이 바로 귓속말로 바꿔서 말했다.

<혼령> 조심하지.

<윈> 확실히 모르긴 해도 비밀 통로가 좀 더 있을 수도 있어. 어떻게든 한 번은 뚫린다는 거지.

<혼령> 흠, 위치를 정확하게 모르면 네 말이 맞을 거다. 여길 점거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적들이 더 잘 알지도 몰라.

역시 혼령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혼령> 그런데 그걸 내게 알려주는 이유는 뭐지? 네가 바라는 게 있을 텐데?

이것 봐라.

확실히 머리가 제법 돌아간다니까.

<윈> 생각해 봐. 거점에 있는 비밀 통로가 뚫리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혼령> 아마 안팎으로 공격을 받다가 무너지겠지. 지금은 대응 자체를 생각도 못 하고 있으니까.

혼령의 말이 맞다.

마치 성문을 안에서 열어주었던 전의 우리 성과 이상으로 개판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 와중에 유저들도 꽤 많이 죽을 테지.

그리고 마지막에 거점도 뺏길 확률이 높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패황 입장에서는 이보다 나쁜 성적표가 없을 것이다.

대패에 이어.

거점까지 뺏긴다면.

지금의 위치가 흔들리는 것 순식간이지.

문제는.

이런 식으로 거점 패황을 뺏기게 되는 순간.

다시 초월 연합의 세력이 너무 올라가 버리게 된다.

근처의 고렙 사냥터와 네임드를 노릴 수 있는 환경들.

가지고 있는 다른 거점을 다 내주더라도.

이곳은 절대 안 되는 이유다.

패황이 무리를 해서라도 이곳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지.

앞으로 절대 뺏기고 싶지 않을 터였다.

혼령 역시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혼령에게 진중한 눈빛으로 말했다.

<윈> 일단. 그냥 내버려 둬.

<혼령> 뭐?

<윈> 적들이 들어오게 내버려두라고.

<혼령>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그려면 거점이 무너질…….

<윈> 아니, 그렇게까지 하게 만들면 당연히 안 되지.

<혼령> 흐음.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의문 가득한 눈빛으로 날 보자 가지고 있던 작전을 풀어주었다.

<윈> 처음에 적당히 맞아 주다가 카운터를 날리라고. 패황이 궁지에 몰렸을 때 말이야.

<혼령> 하…… 일부러 적을 불러들이라는 건가.

<윈> 그래. 패황의 무능한 모습을 다 보여주라는 거지.

그러자 혼령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혼령> 거기다 패색이 짙은 전장을 내가 뒤집어놓으면?

<윈> 영웅이 달리 뭐 있나. 그게 바로 영웅이지.

<혼령> 영웅이라…… 나쁘지 않군.

<윈> 그래, 이번 기회에 패황 평판을 좀 깎아 내려. 더불어 넌 최고의 위치로 올라서게 될 거다.

<혼령> 적을 오히려 이용한다라……. 너 진짜 무서운 놈이었군.

그런 혼령의 놀람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윈> 그리고 오히려 적들이 어떻게 나올지 알면 대처하기도 더 쉽겠지. 이리저리 튀는 것보다야.

<혼령>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상대 연합이 밀고 들어왔을 때 그걸 제압할 만한 병력이 부족한데…….

혼령도 잘 알고 있었다.

적들은 어딜 가나 에이스 대접을 받을 유저들을 상당히 보유한 엘리트 집단이라는 걸.

적들의 전략을 다 안다고는 하지만 성벽 없이 대놓고 붙었다가는 이쪽이 필패였다.

<윈> 아, 그건 걱정 말고. 우리 쪽에서도 이 셋을 붙여줄 테니까. 이미 잘 봐서 알지?

그러면서 발록,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을 가리켰다.

<혼령> 영웅급 NPC들이라……. 그래, 이 정도면 해볼 만하지.

이젠 아예 영웅급 NPC라고 알아서 오해하는 모습이었다.

나로선 굳이 그런 오해를 풀어줄 생각은 없었다.

거기다 혼령이야 몇 번씩 이들의 활약상을 잘 봤으니 실력을 의심하지도 않았다.

<윈> 다 들여다보고 싸우는데 지면 정말 웃음거리가 될 거야.

<혼령> 큭, 그럴 일은 없다.

뻔히 적의 노림수를 다 아는데다가 저 셋을 붙여줬는데도 해결 못 하면.

그건 정말 혼령이 무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땐 또 다른 방법을 써야 하려나?

일단은 그렇게 안 되길 바라야겠지.

* * * * *

치열한 공성을 치르는 동안 양측의 사망자는 끝도 없이 속출했다.

당연히 양쪽 다 이번 결전에 사활을 걸고 있기에 한 치도 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성벽에 못 올라오게 막아!”

“거 똑바로 못 해?! 그냥 창으로 대가리를 찍으라고!”

“한 놈도 올라오게 해선 안 된다!”

“타르포는 아직도 준비 덜 된 거야?!”

“아이씨! 방금 쐈잖아! 눈 돌리지 말고 앞에나 봐! 저기 기어 올라오잖아!”

“광역 마법은 왜 이렇게 쿨이 길어! 좀 팍팍 쏘라고!”

“마력 바닥이다! 좀 기다려!”

“탱커들 방패로 앞에 막아! 절대 밀리면 안 돼!”

“힐! 힐! 좌측 뚫린다!”

그야말로 지옥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처절한 수성이 이어졌고 이는 공성 측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뚫어!”

“사다리 아직이야?!”

“아까 박살 났어! 그냥 뛰어 올라가!”

“젠장, 한 곳만 뚫으면 싹 쓸어버릴 수 있는데!”

“화살 일제히 쏴 올리라고!”

“마법 있는 대로 전부 퍼부어! 한 명이라도 올라가면 우리가 이긴다!”

“하, 무슨 놈의 성벽이 이렇게 높은 거야!”

“칫, 방어할 때는 좋았는데…… 뚫으려니까 미치겠네.”

오르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치열한 공방전.

그런데 단순히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앞뒤 가리지 않고 공성을 하고 있었다.

마치 이곳에만 집중하라는 듯 아주 대놓고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고는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역시 총공세를 해오네요.”

“어, 시선을 끌어야 하니까. 지금 저 녀석들은 전부 화살받이일 거다. 제대로 성벽을 넘는 놈이 하나도 없잖아.”

정면에서 시선을 끄는 역할.

그게 바로 녀석들의 노림수였다.

그리고 진짜 제대로 된 놈들은…….

지금쯤 숨겨져 있는 비밀 통로를 통해 이동하고 있을 터.

“혼령이 잘해 줘야 할 텐데요. 설마 실수하진 않겠죠?”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겠지.”

혼령 역시 이번 기회에 모든 것을 걸었다.

어지간해서는 실수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욕먹을 각오까지 하고서 이미 자신이 소유한 연합 병력을 전부 따로 빼둔 상태였다.

그러니까 지금.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공성은.

양쪽 다 차포 떼고 붙고 있는, 아주 이상한 그림이라는 거지.

겉만 화려해 보이는.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성벽 안쪽에서 확실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움직임들을 감지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이거 참.

두더지 굴이 한두 개가 아니었잖아?

무려 다섯 곳이나 비밀 통로가 뚫린 상황.

만약 평범하게 대처했다면 그냥 밀려버렸을지도 모르겠다.

흠.

이쯤에서 슬슬 알려 줘야겠네.

그리고는 곧장 크게 외쳤다.

누구라도 들을 수 있게.

“적들이 거점 안에 들어왔다아~~~!!!”

그 순간 멀리서 지휘를 하는 패황의 얼굴에서 한순간에 잔뜩 일그러진 표정이 보였다.

당황함도 섞인 딱 그런 표정이랄까.

그래.

어디 한번 네 능력을 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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