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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36화 (926/1,404)

#936화 승자 없는 전장 (6)

“알았다.”

그렇게 세 네임드가 성벽을 바로 뛰어내리자 적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셋이서 성벽을 뛰어내려오는데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그 때문인지 다들 반응이 한 발짝 늦었고.

한 번의 실수가 그들에게는 치명적으로 돌아왔다.

콰아아앙!!

파아아앙!!

키이이잉!!

네임드에게서 나간 화염과 어둠, 빙결 마법이 동시에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병력들을 수십의 병력을 파먹어 버리자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외쳤다.

“젠장, 이 새끼들이 왜 여기 있는 거냐!”

“본대는 패황으로 간 거 아니었어?!”

“악마야……! 이 새끼들은 악마라고!”

“이 괴물들 어떻게 좀 죽여 봐!”

“미친놈들아, 이걸 어떻게 상대해!”

“도망쳐!”

이미 공성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 사라진 듯.

다들 혼비백산해서 흩어지기 바빴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나온 악마나 괴물이라는 말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 그래.

걔들 원래 악마 맞아.

아, 정확하게 악마는 아니지.

뭐 저들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겠지만.

“휘유, 확실히 셋 다 강력하네.”

재중이 형이 감탄하자 나도 역시 웃어 보였다.

“애초에 급이 다른데요.”

“그러네. 거의 소 잡는 칼로 쥐 잡는 수준이야.”

이전에도 봤지만 지금의 세 네임드를 막을 만한 유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들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면 적어도 유저들 중에서 탑 수준에 도달해야 겨우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격차가 있다 보니 그냥 양 무리에 늑대를 풀어놓은 것 마냥 착실하게 저들의 목줄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적 진영 가운데는 이미 공중분해 수준으로 박살나 있었고, 대부분의 적들이 전의를 상실한 듯 제 살길을 찾아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딱 패잔병의 모습이랄까.

이미 공성은 생각지도 못하고 수많은 드랍템들만 남겨둔 채로 싱겁게 전투가 종료되었다.

전투가 일어날 때 깜짝 놀라 성벽에 오른 레스와 부대원들은 지금은 그저 입을 쩍 벌리고 놀란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럼 수거하러 다녀올게요.”

안 그래도 우리만 나두고 전부 거점 패황으로 떠나자 놀라서 내게 물어보았던 레스였다.

병력이 다 떠나면 누가 거점을 지키냐고.

그런데 애초에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듯 했다.

“하하하하…… 얼른 다녀오시죠.”

전에 싸우는 걸 봤으면 이 정도쯤 된다고 생각했을 텐데.

흐음.

아닐 수도 있으려나?

그때는 저들이 아군들 사이에서 전투를 했으니 이렇게 압도적인 전력이라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와 재중이 형이 뛰어 내려가 필드에 잔뜩 널려 있는 아이템들을 주워 올렸다.

“이거 너무 남는 장사 아냐?”

“아니라고 할 순 없겠네요.”

아무리 페이크용으로 놔둔 유저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장비 정도는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죄다 아이템을 떨구고 갔으니.

전보다는 못해도 이번 역시 큰 수익이 남았다.

그리고 슬쩍 뱀파이어 로드와 혹한의 얼음 여왕을 보니 레벨이 조금 더 오른 것 같기도 했다.

풀 오버가 될 정도로 오르면 더 좋겠지만.

잔챙이들은 아무리 많이 죽여도 안 된다는 거겠지.

마치 부족하다는 양 입맛만 다시고 있는 둘을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흐음.

아무래도 쟤들을 더 굴려야 하려나.

이미 이쪽은 다 쓸어버린 상태라 더 먹을 게 없겠고.

“형, 꽤 부족해 보이죠?”

“뭐? 아이템이?”

“아뇨, 쟤들 먹이요.”

“아아, 그렇긴 하지. 발록만 해도 정말 어마무시하게 유저들을 많이 죽였거든.”

“어느 정도요?”

발록이 오버가 되는 데는 유저들의 도움이 컸다.

저 발록 한 번 잡아보겠다고 개떼처럼 몰려가서 죽어줬다고 하니까.

“흐음, 지금 죽인 것보다 두세 배쯤 더?”

“적지 않네요.”

“어, 생각해보면 발록은 꽤 오래 걸린 셈이야. 그에 비하면 뱀파이어 로드랑 얼음 여왕은 초고속 렙업 버스를 타는 중이지. 이 정도면 쟤들이 우리한테 돈 줘야 한다니까?”

“이미 많이 벌어다주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손에 가득한 드랍템들을 가리켰다.

“아아, 그렇군.”

재중이 형도 두 손 가득 드랍템을 보며 미소 지었다.

“가기 전에 한몫 챙겨야 하려나?”

“더 개입하게요?”

“겸사겸사? 쟤들은 레벨 올려서 좋고. 우린 돈 벌어서 좋고.”

이곳과 다르게 지금 거점 패황 쪽은 그야말로 양 연합의 정예들만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휘하의 연합들만 십여 개 이상이다.

숫자로 치면 만 단위는 가볍게 넘어갈 테지.

양과 질.

모두를 충족시키는 최상의 코스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을 전부 죽일 수 있다는 가정 하에서지만.

적어도 일정 수준 이하의 유저들은 아이스크림 녹이듯 죽여 버릴 수 있는 녀석들이니까.

코스를 잘만 짠다면야.

최적의 쩔 코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아, 이래서 욕심이 무섭죠.”

“그래서 안 하려고?”

“음, 가기 전에 조금만 건들이고 가죠. 그럼.”

“저 정도로 잘 드는 칼을 두고 가만히 썩히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뱀, 퀸. 혹시 부족해?”

어느새 다가온 둘에게 물었더니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난? 이거 가지고 누구 코에 붙이냐.”

“아직 내 손에서 냉기가 빠지지도 않았다.”

하.

만약 그냥 여기서 죽치고 기다리라고 했으면 욕먹을 뻔했네.

부족한 건 마찬가진지 아쉬운 표정을 짓는 둘을 보면서 제안했다.

“그럼 조금 더 빡센 곳으로 갈까?”

“있나?”

“있어?”

그래.

있긴 하지.

“어, 너희들 마음대로 죽여도 아무도 신경 안 쓰는 곳.”

“마음에 드네.”

“좋다.”

그 말이 끝나고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놀다 가지 뭐.”

“네, 그래야겠네요.”

그리고는 곧장 사장님을 불렀다.

사장님은 이번에 세 네임드의 전투를 처음 봐서 그런지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저게 다 뭐냐?”

“하하, 아군이죠.”

“후, 무시무시하구나. 유저 같지는 않은데.”

그때 슬쩍 네임드라고 말해 주자 사장님이 화들짝 놀라서 날 쳐다보았다.

“하…… 저게 네…….”

“말하시면 안 되고요.”

“읍, 알았다. 대체 그동안 뭘 하고 다닌 건지 모르겠구나.”

“이것저것 많이요. 아, 사장님이 해주셔야 할 게 있어요.”

“길드 말이냐?”

“네, 다 불러들이고요. 그리고 갈만한 사냥터 좀 물색해주세요. 가급적이면... 다른 유저들의 때가 안 탄 곳이면 더 좋겠어요. 난이도는 높아도 상관없으니까.”

“으음, 그런 곳이야 당연히 많지. 하지만 사냥은커녕 버티지도 못 할 텐데.”

“아, 일단 저랑 재중이 형이 먼저 사냥터를 뚫어놓고 점차 늘려 가면 될 것 같아요.”

“흠, 알았다. 조만간 연락을 다 돌려놓으마.”

“네, 거점도 새로 만들 거니까 준비 많이 해놓으셔야 할 거예요. 자금도 만들어 두시면 좋고요. 이거 받으세요.”

그리고는 적들이 떨어뜨린 드랍템들을 모두 모아 사장님에게 넘겨주었다.

“흐, 한가득이구나.”

“네, 조만간 다시 모아갈 테니, 빠르게 처리 좀 해주세요.”

“알았다.”

그렇게 사장님이 바쁘게 사라지자 세 네임드를 불렀다.

“자, 이제 갈 시간이야.”

* * * * *

거점 용아에 대한 것은 일단 레스에게 맡겨두고 바로 포탈을 탔다.

당분간 쳐들어올 녀석들이 없으니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은 안전 할 터.

그리고 포탈을 타고 거점 패황으로 넘어오자마자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가 우리를 먼저 맞이했다.

거점 내 빼곡하게 뛰어다니는 유저들에게서 전달되는 기운이랄까.

분주한 전장의 모습은 그간 보던 전장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휘유, 달아올랐네. 다들.”

“네, 바쁘네요.”

눈에 보이는 유저들마다 다 풀 세팅을 한 채로 성벽으로 달려가는 걸 보면 한창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벌써 시작했네요.”

공성 쪽에서 좀 더 시간을 두고 보고 칠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그러다가 주변의 유저를 한 명 붙들고 물었다.

“저기, 수성은 어때요?”

“아, 바쁜데. 뭐가 궁금해? 성벽 라인 무너지기 전에 겨우 지원 온 거?”

흠.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급박했던 모양이었다.

그럼 혼령을 그때 보낸 게 정말 좋은 타이밍 이었을 지도.

“지금은요?”

“아, 말도 마. 개판이야. 어떻게든 성벽 올라오려는 녀석들하고 치고받는다고 죽을 맛이라니까. 아무튼 너도 빨리 올라가. 한 사람 손이 부족할 때니까.”

그러면서 그 유저가 빠르게 달려나가 다른 유저들 사이로 사라져버렸다.

“의외로 밀리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저력이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이 재중이 형에게는 즐겁게 느껴진 것 같았다.

가는 길에 부활석 근처를 지나갔는데 그곳에서는 눈이 부실 정도로 연신 빛이 번쩍이면서 수도 없이 많은 유저가 부활을 하는 중이었다.

이 정도로 죽어 나갈 정도라면.

저항이 장난 아니겠는데…….

“일단 상황을 좀 봐야겠어요.”

<윈> 혼령, 너 어디야?

그런데 혼령에게서는 한참 뒤에야 답이 왔다.

<혼령> 아, 좀 치고받는다고. 이제 봤다. 무슨 일이지?

<윈> 우리 패황에 넘어왔는데 여기 완전 개판인데?

<혼령> 뭐? 너희들 용아를 지켜야 하지 않나? 혹시라도 여기가 밀리면…….

혼령의 말은 우리가 거점 용아를 비워두고 온 사이에 적들이 거점을 차지해버리면 정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다는 말이었다.

최후의 보루랄까.

그런 곳을 안 지키고 넘어왔다니 저러는 거지.

<윈> 아, 그쪽은 싹 정리했어. 이제 쥐새끼 하나도 없다.

<혼령> 뭐? 적들이 몇 백은 남아있었을 건데...

<윈> 내가 이런 걸로 농담 하겠어?

<혼령> 흠, 아니지. 아무튼 지금 내가 좀 곤란해.

곤란하다라…….

아무래도 주변에 말을 들으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패황이라던지.

사실 패황은 우리와 그다지 접점이 없으니까.

굳이 찾자면 좀 안 좋은 기억뿐이지.

그리고 나와 혼령의 대화를 들으면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윈> 뭐, 일단은 알겠어. 혹시 몰래 거점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 있어?

<혼령> 흠, 뭐 하려고?

<윈> 너무 밀리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정리가 좀 필요해 보이네.

내 말에 잠시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연락이 왔다.

<혼령> 정면 성벽은 힘들고. 측면에 비밀 통로가 하나 있다는군.

<윈> 오케이, 알았어. 그럼 좌표 보내놔.

얼마 후 혼령에게서 좌표가 날아왔고 한참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유저들 사이에서 빠져나와 네임드들과 함께 측면 성벽에 도달했다.

이쪽은 애초에 산맥으로 막혀서 나갈 수가 없는 지형인데.

못 지나가는 곳을 말해줬을 리는 없고.

재중이 형과 조금 더 살피니 성벽 중에 한 곳의 벽이 내려가더니 통로가 바로 나타났다.

“이런 거 있으면 바로 털리는 거 아니에요?”

“아니, 보아하니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갈 때만 쓸 수 있는 것 같다.”

“혹시 이거 대비하고 있을 확률은요?”

“가 보면 알겠지.”

이 비밀 통로를 우리만 알고 있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전에 거점을 차지하고 있던 녀석들이 모른다고 하긴 어려웠다.

누군가 지키고 있다면 뭐.

그냥 내빼면 되고.

그렇게 비밀 통로를 지나 산맥을 통과해 나오자 적들의 진영 측면에 해당하는 장소로 나올 수 있었다.

딱히 누군가 없는 거려나.

한참을 기다려도 공격이 없자 밖으로 발을 내딛었는데 그 순간 하나의 화살이 강하게 날아왔다.

쐐액!!

채앵!!

바로 검을 뽑아 화살을 쳐내자 꽤 강력한 반동이 느껴졌다.

이거 참.

역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건가.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녀석을 살피자 아주 자주 봤던 그 녀석이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 녀석을 보자마자 바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연…… 이라. 이거 시작부터 완전 대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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