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화 격전의 거점 쟁탈전 (17)
“이건 대체……!”
“뭐냐 저건……?”
“적들이 녹아……?”
세 네임드가 벌인 화려한 불꽃 쇼는 적이나 아군이나 할 것 없이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말도 안 돼!”
“한 번에 몇 명이나 죽은 거야……?”
“이런 위력의 스킬이라니……!”
우리 편이 놀란만큼이나 적들도 놀라긴 마찬가지.
발록,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의 강렬한 스킬에 순간 다들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전장 전체가 멈추면서 적막이 흘렀다.
워낙 임팩트가 크니까.
솔직히 이런 위력은 네임드가 아니면 내기 힘든 위력이었다.
그리고 혼령도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당황한 표정으로 네임드들을 보다가 이내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 셋. 정말 유저가 맞냐?”
재중이 형은 그런 혼령을 보면서 흥미롭다는 듯 웃어 보였다.
<심연> 이 녀석, 아주 눈치가 없진 않네.
<윈> 네, 저 위력을 보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나 역시 웃는 표정으로 혼령을 보며 답해 주었다.
“유저가 아니라면?”
“음, 영웅급 NPC라던가…….”
꽤 근접했네.
굳이 분류하자면 NPC 쪽에 들어갈지도 모르지.
“뭐 좋을 대로 생각해.”
혼령이 저 녀석들을 NPC라 믿는다면.
아마 다른 유저들도 이 녀석과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심연> NPC라 믿어주면 더 좋지.
<윈> 네, 누가 네임드를 부린다고 생각하겠어요.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최선이 NPC일 것이다.
그리고 실제 NPC들이 유저들을 도와서 움직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우호도에 따라서 정말 아군이 되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었고.
“하, 저런 수준의 NPC라니. 네가 자신만만하게 싸우라고 말한 이유를 이제 알겠군.”
“음, 딱히 그것만은 아니긴 한데…….”
“뭐?”
“아니, 그건 됐고. 판은 깔아 줬으니까. 이젠 해볼 만하겠지?”
“흠, 그렇다 해도 여전히 전력이 모자라는 건 어쩔 수 없어.”
이천 대 오백일 때야 이쪽이 우세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혼령이 영웅급 NPC 셋이 있다고 해도 부족하다고 말한 건 그만큼 지금 전력이 열세란 뜻이었다.
“남은 건 알아서 해봐. 그 정도 능력은 있지 않나?”
“……큭, 말은 쉽게 하는군.”
“죽지 말고 잘 싸우라고.”
“하, 이기고 보지.”
그렇게 잠시 소강 상태에 빠져 있는 전장을 둘러 본 혼령이 곧장 자신의 연합과 연계 되어 있는 다른 연합장들을 불러모았다.
“어떻게든 이길 생각인가 보네요.”
그렇게 정적이 흐르던 전장도 잠시.
적들도 곧 검을 들이대면서 다시 전투 상태로 돌입했다.
“뭐해!! 그저 좀 센 놈이 있을 뿐이다! 싸우라고!”
“적들을 앞에 두고 한눈 팔지 마라!”
“이기자아!!”
“오늘 여기가 너희들 무덤이다!”
“일단 저 녀석들부터 죽여!”
“저런 스킬을 계속 쓸 순 없다! 빨리 잡아!”
우르르르.
기세가 죽었던 것도 잠시.
곧 정신을 차린 녀석들이 기세를 피워 올리며 곧 전체 병력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견제 1순위는 바로 네임드들이었다.
나 역시 바로 세 네임드에게 말했다.
“발록, 뱀, 퀸은 우리 부대들 사이로 숨어들어 가.”
그러자 혹한의 얼음 여왕이 내게 물었다.
“저들을 방패로 삼으라는 건가.”
확실히 이 녀석.
똑똑하단 말이야.
“그래,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고 하는 말도 있고. 굳이 나서서 타겟이 되어 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면서 아군들이 쓰고 있는 로브와 유사한 로브를 꺼내 셋에게 넘겨주었다.
이걸 뒤집어쓰고 아군 사이에 숨어버리면?
어지간해서는 찾아내기도 힘들게 된다.
첫 표적이 될 확률이 지극히 낮아진다는 말이지.
내 말에 셋 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아군 부대들 사이로 뛰어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는 겨우 한숨을 놓았다.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하면 어쩌나 했어요.”
“셋 다 꽤 똑똑하니까. 어느 쪽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을 거야.”
최악은 저 셋이서 몸빵하듯 앞에 나가 싸우는 거다.
그럼 아무리 네임드라고 하더라도 몇 천이 넘는 유저들의 표적이 되어버리면 이건 아무리 좋게 봐줘도 마이너스지.
반면에 저런 식으로 숨어 버리면 정말 무서운 존재가 되어 버린다.
정신없이 부딪히는 전장에서 일반 유저인 줄 알고 붙었는데 그게 네임드라면?
그냥 죽는다.
찍소리도 못 해보고.
지금 세 네임드의 역할은 부족한 전력의 기울기를 원래대로 맞춰주는 것.
그때 옆에서 대기 중이던 레스와 부대원들이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뭘 하면 되나?”
양쪽 다 몇 천의 부대가 한꺼번에 격돌하는 화끈한 전장 한가운데 있어서 그런지 다들 상기된 표정이었다.
전장의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것들은 사람들은 흥분하게 만드니까.
이들도 이런 큰 전투는 처음인지 다소 격양되어 보였다.
그런데 내가 한 말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아, 다들 구경해요.”
“어??”
“네??”
“음??”
어리둥절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얼굴들.
지금 다들 칼을 들고 싸운다고 난리인데 구경을 하라고 하니 이상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러니까 우린 할 일 다 했어요. 이젠 구경만 하면 돼요.”
“어…… 정말 구경만 한다고?”
“네, 정말요.”
사실이다.
딱히 저 전장에 뛰어들 필요가 없었다.
이제부터 저건 우리의 싸움이 아니라.
저들의 싸움이니.
“그냥 우린 차려 주는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면 됩니다.”
“하하…….”
그런 레스를 향해 웃으며 물었다.
“혹시 팝콘은 없나요?”
* * * * *
우리가 외곽으로 빠져나오는 동안 혼령의 연합과 페가수스 연합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정확히는 페가수스 연합에 다른 거점에서 온 지원 연합들까지 포함이었다.
“죽여!”
“여기서 없애 버려!”
“밀어붙이라고!”
양쪽에서 쏘아올린 수도 없이 많은 화살이 하늘을 수놓았고 마법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형형색색 듣도 보도 못한 각종 마법과 스킬들이 난무하면서 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캬가강!
컁!
쿠웅!
콰아아앙!
쐐애애액!
퍼어엉!!
스킬마다 터지는 화려한 이펙트하며 검기가 검의 잔상을 따라 휘둘러지면서 나오는 다양한 궤적들.
웅장한 탱커들의 고함소리와 그들에게서 수도 없이 번쩍이는 힐들의 샤워에 멀리서도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팝콘이 없는게 아쉽네요.”
“아아, 동감.”
이미 나와 재중이 형은 관망하는 자세로 멀찍이 자리를 잡고 구경만 하고 있었다.
옆에서 레스는 이미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푹 쉬었다.
“좀 즐겨요.”
“잘못하다 지기라도 하면…….”
“아뇨, 우리 참전 여부를 떠나 승패는 이미 정해져 있어요.”
“뭐?”
“절대 못 이기죠.”
발록은 이미 완성형이라 더 올라갈 곳이 없다고는 해도.
뱀파이어 로드와 혹한의 얼음 여왕은 아니었다.
아직 성장 중인 녀석들이지.
거기다 그 성장을 도와줄 엄청난 숫자의 적들이 눈앞에 즐비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강제로 오버하는 셈이랄까.
유저를 죽일수록 강해지는 네임드의 특성상.
이 전장은.
그들에게 있어 최고의 만찬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억지로 만들어 낸 전장인데 최대한 뽑아 먹어야죠.”
“무슨 말인지…….”
“아, 그런 게 있어요. 아무튼 우리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더 없이 좋은 상황이라는 거예요.”
발록만 해도 최상위 마왕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수준의 마왕과는 어떻게 비벼볼 만한 능력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발록에 필적하는 녀석들이 둘이 더 늘어난다면?
무려 마왕급만 셋.
지금 그런 미친 존재를 셋이나 이 전장에서 만들어낼 작정이었다.
힘들게 적들의 상황까지 고려해가며 이 그림을 그린 것도.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서였다.
재중이 형도 그런 사실을 잘 아는지 웃으면서 말했다.
“이 전장이 끝나면 더 이상 귀찮게 덤비지도 못할 거다.”
“네, 마왕을 견제할 수 있으면 최상이죠.”
우리 대화를 전혀 따라 잡지 못하는 레스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대화 도중에 갑자기 마왕이 나오니 이해가 될 리가 있나.
“마왕?”
“단순히 이기기만 하는 게 우리 일은 아니어서 그래요. 혹시 실망했어요?”
레스는 일단은 패황 연합 소속이었다.
그리고 부대원들도 마찬가지고.
“흠, 딱히 생각해 보면 크게 상관없겠군.”
복잡하게 안 물어 와서 다행인 건가.
레스도 눈치가 빠른지 이런 쪽으로는 굳이 연관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배신만 안 하면 됐다.”
“하하, 그럴 리가요.”
뭐 애초에 패황 연합도 아니니 배신이라고 하긴 좀 그렇긴 하지.
“아, 전에 말한 거. 좀 부탁 좀 할게요.”
“뭐를?”
“거점요. 레스가 좀 먹어 줘야 겠어요.”
“그 말 진심이었나? 아니지. 지금 하는 걸 보면…….”
말은 했지만 레스는 그게 실제로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네, 이제 거점을 먹으러 갈 시간이네요.”
한참 동안 치고받던 두 진영의 승부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분위기였다.
처음에는 계속 부활이 되던 페가수스 연합 쪽의 진영이 압도적으로 유지해 보였다.
전투를 시작하던 숫자도 원래는 더 많았었고.
반면에 패황 연합 쪽의 진영은 문제가 있었다.
숫자도 적었던 것도 있지만.
유저가 죽는 순간 이곳에서 바로 부활을 할 수 없다는 점.
죽자마자 바로 부활해서 다시 투입되는 페가수스 쪽과는 이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그렇게 전세가 밀리는 듯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전세가 확 비슷해져 변했다.
바로 세 네임드가 제대로 전장에 뛰어들고부터.
작정하고 유저들을 죽이기 시작하자 속수무책으로 진영이 한 곳씩 무너지더니 결국 제대로 된 진형도 갖추지 못할 정도로 전체 밸런스가 무너져내렸다.
그러다가 결국 세 네임드를 앞세운 패황 연합의 거센 반격에 마지막 바리게이트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숫자가 훨씬 더 많은 페가수스 연합이 이렇게까지 밀린다?
그건 네임드의 특성 때문이었다.
그들이 죽인 유저들이 엄청난 가치를 가진 아이템들을 계속 드랍했기 때문에.
심지어 중간에 주력 무기를 떨어뜨리는 유저들이 부지기수였다.
전력이 심각하게 누수가 된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계속 부활을 하면서 몇 번 달려들다 보니 이젠 빈 슬롯이 나올 정도로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드랍템의 산이랄까.
“저거 다 줍기만 해도 회사 하나 차리겠다.”
“하하. 그렇죠.”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레스를 바라보았다.
“이제 갈 시간이에요.”
레스와 부대원들을 모두 데리고 이번에는 적들의 후방 쪽으로 접근했다.
전방과 달리 후방 쪽은 달려드는 유저들이 적었기도 하고 지금 전방은 세 네임드가 미쳐 날뛰는 중이었다.
도저히 후방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다는 뜻이 된다.
너무 쉽게 적들의 후방으로 돌아온 뒤 손에 잡힐 정도로 거점 크리스탈에 다가올 수 있었다.
거기다 이미 공격을 상당히 받았는지 크리스탈의 내구도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보였다.
아마 몇 대만 치더라도 부서지겠지.
그렇게 나와 재중이 형이 은신으로 몰래 파고 들어가 크리스탈을 강하게 강타하자 곧 부서질 듯 크리스탈이 흔들렸다.
“지금! 막타!”
그때 부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레스를 보호해 겨우 달려온 레스가 마지막 막타를 날리는 순간.
【 거점 페가수스가 파괴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