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화 격전의 거점 쟁탈전 (15)
콰아앙!!
콰아앙!!
파죽지세.
막상 힘을 쓰기 시작한 세 네임드의 전진을 막아낼 수 있는 유저는 이 거점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심연> 역시 쭉 밀고 나가네.
<윈> 네, 아무래도 네임드니까요.
작정하고 탱커들이 막아 내도 모자랄 판에 급조해서 어수선하게 만들어져 있는 시가지 내 바리게이트는 저들에게는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않았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셋.
발록이 단단한 몸으로 밀고 나가면 뒤를 이어 뱀파이어 로드가 썰어 나가고 후속으로 혹한의 얼음 여왕이 강렬한 원거리 마법으로 그들을 지원했다.
저 셋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잘 만들어진 군단이나 마찬가지지.
“크악! 뭐야! 이 새끼들은!”
“젠장! 막을 수가 없어!”
“누가 좀 저 녀석들 멈춰 봐!”
“아니, 접근도 힘든데 뭘 막어!”
단단한 바리게이트도 한 방에 날려버리는 데다가 유저들이 달려드는 족족 네임드의 맹렬한 공격에 녹아버리는데 접근이 가능할 리가 있나.
그 덕에 바닥에는 네임드들에게 죽은 페가수스 연합 유저들이 드랍한 아이템들이 잔뜩 떨어져 내렸다.
완전 아이템 밭이군.
유저와 달리 네임드인 저들에게 죽은 녀석들은 드랍템이 굉장히 잘 떨어진다.
평소 같으면 저걸 주우면서 신나게 웃겠지만.
지금은 아쉽게도 저 드랍템들을 줍고 다닐 만한 여유는 없었다.
우리 역시도 그들의 뒤를 바싹 따라 달리며 혹시나 부족할 수 있는 후방을 책임져 주어야 했으니.
아쉽긴 하지만.
지금은 저런 푼돈에 눈을 팔 때가 아니다.
한눈을 파는 순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전장이니까.
“넌 왼쪽. 난 오른쪽.”
“네, 잘 붙고 있어요.”
재중이 형과 내가 각자 좌우를 맡아 후방에서 들어오는 유저들을 빠르게 쳐내었다.
“이익! 죽어!”
“안 돼.”
카앙!!
키기긱!!
테르타로스를 크게 휘두르면서 들어오는 적의 공격을 막아낸 뒤 곧장 발로 차내 균형을 잃게 한 뒤 녀석의 목을 빠르게 베어 내었다.
“크악!”
좀 얕았나?
시가지를 미친 속도로 달려 나가는 세 네임드를 따라가면서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는 역할이라 공격에만 모든 힘을 쏟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힘이 부족해 완전히 목을 날리진 못했다.
아쉽지만 지금은 죽이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한 방에 접근하는 녀석들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견제 정도만 가능하면 돼.
그러면 길을 뚫는 건 충분하다.
그리고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레스와 그들의 부대원들이 우리 뒤를 따라 달리면서 우리에게 부족한 쪽수를 완전히 메꿔 주었다.
“우아아! 달려!”
“뒤쳐지지 마라!”
“가자아!!”
그들은 나와 재중이 형이 반쯤 쓰러뜨려 놓은 녀석들을 다수의 창과 검으로 찍어 누른 뒤 빠르게 다시 안쪽으로 복귀했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재밌다는 듯 미소지으며 말했다.
“큭, 이 녀석들 생각보다 꽤 잘하잖아?”
“정말 그렇네요.”
서로 합을 맞춘 지 얼마나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하나같이 합심해서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을 보면 아마도 꽤 오랜 시간을 같이 한 듯 했다.
덕분에 낙오자 없이 치고 빠지면서 이 전진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들어 주었다.
저들이 없었다면 후방까지 전부 신경 쓴다고 고생했을 텐데.
“너무 떨어지진 마세요. 뒤처지면 부대가 갈라집니다.”
달리면서 외치자 레스도 알았다는 듯 크게 따라 외쳤다.
“다들 들었지? 뒤처지지 마라!”
“오오!!”
“뒤쳐지는 놈은 오늘 고기 쏘는 거다!”
“크하! 절대 그럴 순 없지!”
그런데 그때 갑자기 측면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광역 마법들이 우리를 덮쳐 오기 시작했다.
레스가 그걸 보고는 크게 인상을 찌푸렸다.
“젠장, 정면이 안 되니 측면을 갈라놓겠다는 건가?”
아예 우리 행렬을 끊기로 작정을 한 듯 정면이 아닌 측면만을 노리고 들어오는 광역기들.
저렇게 집중해서 날리는 광역기는 나와 재중이 형이라면 몰라도 여기 있는 다른 부대원들은 아마 버티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걸 알기에 부대원들도 얼굴이 일그러지며 외쳤다.
“광역이다!”
“젠장, 달리면서는 시전하긴 힘든데……!”
“탱킹 가능한 녀석들 일단 몸으로 때워 봐!”
“힐 바로 넣어주고!”
“어떻게든 버틴다!”
아마 저 부대원들의 방법이라면 버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런 수준의 광역기를 맞는 순간 바로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발이 묶일 순 없지.
곧장 위장 아이템으로 가려져 있는 르아 카르테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뒤로 빠지면서 레스와 부대원들에게 외쳤다.
“그대로 달려요!”
“아니, 저걸 다 어쩌고!”
“제가 알아서 합니다! 뒤처지지 마세요!”
간다.
【 트리플 템페스트! 】
스킬을 시전하자마자 르아 카르테에 하얀 서리가 맺히면서 푸른 빛 마법진이 크게 생성되어 내 주변으로 강력한 얼음 폭풍우가 펼쳐졌다.
싸아아아!!
휘이이이잉!!
혹한의 얼음 여왕의 최강 스킬 중에 하나.
이 스킬이라면 어지간한 광역 마법 정도는 다 씹어먹어 줄 수 있어.
비록 풀 차징이 되지 않아 완벽한 위력을 내진 못하겠지만 지금은 완벽할 필요까진 없으니까.
콰과광!!
쿠아앙!
콰앙!!
그리고 그 순간 날아오던 모든 마법 광역기들이 트리플 템페스트의 얼음 장막에 막히면서 터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중간에서 죄다 소멸되어 버렸다.
일정 이하의 스킬 위력은 아예 폭풍 장벽을 통과도 하지 못했다.
“뭐야?!”
“전부 다 막혔어?!”
“트리플 템페스트……?!”
“저걸 쓸 수 있는 마법사가 있었어?!”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제 굳이 감출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혹한의 얼음 여왕이 스킬을 쓰기 시작하면 이쪽에서 트리플 템페스트를 쓸 수 있다는 게 노출될 테니까.
내가 여기서 한 번 더 쓴다고 크게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지.
물론 이 스킬을 본 레스가 더 없이 놀란 눈빛으로 날 보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방금…… 대체 뭘…….”
“아, 이 스킬요?”
“그래! 저거 트리플 템페스트 아니야?! 어떻게…….”
레스뿐만 아니라 부대원들도 놀란 표정을 감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나같이 껌뻑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봤으니.
그런 그들을 보며 웃으면서 답했다.
“아하하…… 사실 저 마법사입니다.”
“그렇게 검으로 달려드는 유저들을 썰어 대면서 말인가?”
음.
역시 이건 안 되는군.
누가 봐도 마법사하고는 극과 극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뭐, 그냥 이 검의 능력이라고 해두죠.”
그러자 레스가 화들짝 놀라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설마 그 검…… 글래시어인가?”
글래시어?
아, 전에 데스가 들고 있던 빙검 말하는 거려나.
재중이 형의 프로미넌스와 동급이라던.
아마도 글래시어에 트리플 템페스트가 내장된 모양인데.
일단은 르아 카르테의 외형을 알 수 없게 봉인해 둔 상태라 그렇게 오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네.
“아, 뭐…… 영업 비밀요.”
“으음. 알았네. 설마 글래시어의 주인일 줄이야. 내가 오늘 제대로 된 랭커를 보는군.”
흠.
확실히 검사가 이 정도의 광역 마법을 쓸 방법은 무기의 능력에 기대는 것밖엔 없었다.
그리고 이미 레스는 내가 숨겨진 랭커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심연> 대충 오해하게 놔둬. 어차피 글래시어가 한 자루 더 있다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니.
<윈> 네, 하하.
“아무튼 계속 달려요!”
“네!”
“갑시다!”
“오오!”
글래시어를 들고 있다고 하자 부대원들도 날 보는 눈빛이 확연히 달라졌다.
음.
좀 부담되는 눈빛이네.
그렇게 측면의 한 차례의 큰 광역 공격을 막아내는 동안 이미 세 네임드는 완전히 바리게이트를 뚫고는 길을 만들어 내었다.
이젠 얼마나 빨리 중앙까지 도달하는가에 달렸네.
네임드 셋이 뚫어놓은 길로 우리 역시 빠르게 치고 나가자 다들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외쳤다.
“악! 최종 바리게이트가 뚫렸다!”
“저놈들 절대 내보내면 안 돼!”
“어떻게든 막아라!”
“크리스탈 방어는?! 누가 대기하고 있어?”
“젠장, 여기서 죽은 놈들 말고는 아직 배치도 못 했단 말이야!”
호오.
그렇단 말이지?
<윈> 형, 크리스탈에 방어 병력 없는 것 같아요.
<심연> 그래, 급하게 이쪽 라인 바리게이트 쌓는다고 그쪽은 아예 비었는가 보네.
무주공산.
설마 이렇게 빨리 바리게이트가 뚫려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숫자를 생각해 보면 중앙 크리스탈까지 병력을 나누기에는 빠듯했을지도 모른다.
오백이라는 숫자로 어떻게든 이천을 시가지에서 막아내야 하는데 따로 뺄 병력까지는 없었다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이대로 달리기만 하면 이대로 거점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최대한 빨리 달려요! 저들도 이제 쫓아올 겁니다.”
“네!”
“우오오! 달려!”
바리게이트를 돌파한 후 레스와 부대원들도 한껏 사기가 올라 신난 듯 외치며 빠르게 발을 박찼다.
좋아.
이런 기세면 뭘 해도 된다.
적어도 당황해서 실수를 한다던가 하는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그리고 당연히 시가지 곳곳에서 바리게이트를 치고 있던 페가수스 연합 유저들은 새파래진 표정으로 일제히 건물에서 뛰어내려 우리를 뒤쫓기 시작했다.
“잡아!”
“놓치면 안 돼!”
“젠장, 이대로면 연합장이 우릴 죽일지도 몰라.”
“지금 그걸 걱정할 때야? 당장 거점이 날아간다고!”
“대체 밖으로 추격 나간 녀석들은 언제 돌아오는 거야!”
“왜 하필 지금 자리를 비워서는.”
“아, 다른 거점에서 지원은 언제 오냐고!!”
이미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는 상황.
저들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이상하게 돌아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우리를 추격하기 위해 시가지 바리게이트의 인원을 빼는 순간.
또 다른 곳에서도 문제가 생겨버렸다.
“어?! 저쪽 뚫렸다?”
“그리고 여기 방어하던 녀석들 숫자가 확 줄어들었어!”
“그럼 지금이 기회다! 총공격!”
“당장 밀어 버려!”
“오오! 가자!!”
한쪽을 우리가 완전히 뚫고 나가자 다른 쪽의 바리게이트가 옅어지면서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오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던 재중이 형이 흡족한 듯 미소 지었다.
“저쪽도 개판인데.”
“네, 아무래도 저대로는 방어가 안 되니까요.”
당연히 우리를 따라오기 위해 병력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상대적으로 다른 쪽의 방어가 약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
오백이라는 숫자로 저 시가지를 다 커버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성문을 내어주는 순간부터.
애초에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노리는 것은 이곳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이제 슬슬 다른 거점에서 지원이 와 있겠죠?”
“어, 아마도. 우리가 크리스탈에 도착하는 때쯤이면 꽤 많은 저항을 받을 거다.”
재중이 형과 미리 이야기를 나눌 때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 크리스탈과 함께 그 주변으로 수많은 유저들이 우리를 기다리며 대기를 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다 속속들이 어디선가에서 지원이 도착해 점점 그 숫자를 불려 나갔다.
우리가 예상했던.
다른 거점에서의 지원들.
혼령이 가장 까다롭게 생각했던 딱 그 상황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발록, 뱀, 퀸. 잠시 대기!”
그러자 앞서 달려 나가던 셋이 내 부름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한참 신났는데 말리니 다소 불만인 표정을 짓는 뱀파이어 로드.
마치 흥이 식었다는 듯 두 팔을 내리며 멀리 있는 녀석들을 쳐다보는 발록,
역시 싸늘한 표정으로 지원 부대를 보는 혹한의 얼음 여왕까지.
“아아, 메인 요리는 조금만 참아 줘.”
그리고는 곧장 혼령에게 연락을 넣었다.
<윈> 혼령. 다른 거점에서 공성하는 준비하는 녀석들 있지?
<혼령> 갑자기 무슨 말이냐?
<윈> 이쪽에 다른 거점의 녀석들이 잔뜩 와 있어서 말이지. 이 거점으로 아주 개떼처럼 몰려왔어. 똑똑한 너라면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잘 안 텐데?
잠시 말이 없던 혼령이 곧 크게 웃으면서 답했다.
<혼령> 하하하하, 넌 대체 어디까지 보고 움직이는 거냐. 잘 알았다. 당장 다른 거점들 공성 시작하라고 하지.
<윈> 그래. 이 거점 하나만 먹고 끝내기엔 너무 아쉽잖아. 최소한 한두 개는 더 가져와야 하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