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26화 (916/1,404)

#926화 격전의 거점 쟁탈전 (13)

거점 페가수스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방어하기가 용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양쪽이 협곡으로 막힌 산맥 중앙에 자리 잡고 있어서 측면을 배제한, 정면의 성문이 있는 성벽과 후방으로 나가는 성문만을 방어하면 됐다.

그러니까 저런 소수의 방어 병력만을 거점에 남겨놓고 협곡을 넘어가는 패황 연합 유저들을 추격할 생각을 했겠지.

이천 대 오백.

성벽만 있다면 이 차이는 별 게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금같이 성문이 열려 버리는 순간.

그 차이는 순식간에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우아아아!! 밀고 들어가!!”

“성벽 열렸다!! 달려!!”

“오늘 이 거점은 우리가 먹는다!!”

“늦는 놈은 엉덩이를 차버릴 거니까 빨리 달리라고!”

마치 그동안 두들겨 맞던 울분을 한 번에 토해내는 것처럼 다들 신나게 무기를 쥐어 들고 이미 열려 버린 성문에 달려들자 거점 성벽에서 당황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젠장, 타르포부터 일단 쏴! 성문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저 새끼들 하나도 넘어오면 안 돼! 우리 숫자가 밀린다고!”

“궁수! 마법사! 전부 성문 앞에 스킬 쏟아부어!!”

“탱커하고 힐러들은 빨리 성문으로 내려가서 몸으로 막아!”

“절대 뚫리지 마라!! 연 님이 돌아올 때까지만 버텨!!”

그러자 탱커로 보이는 유저들이 일제히 성벽에서 그 육중한 장비를 그대로 입은 상태로 뛰어내렸다.

쿵!

쿵!

하나같이 고레벨의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탱커들.

그런 그들과 함께 힐러로 보이는 유저들 역시도 빠르게 성벽 계단을 타고 뛰어 내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진짜.”

“멀쩡한 성벽이 왜 뚫리냐고!”

“일단 탱커들은 성벽 대신 바리게이트 치고! 힐러들은 힐 집중해 줘!”

이런 쪽으로는 훈련이 잘 되어 있는지 탱커들이 당황하지 않고 성벽 앞으로 달려나갔다.

힐러들 역시도 크게 당황하지 않은 채 탱커들에게 각종 버프를 걸어주기 시작했고.

【 대지의 가호! 】

【 헤비 아머! 】

【 활력 리커버리! 】

【 블레스 웨폰! 】

【 인텐스 가드! 】

【 하드 스트렝스! 】

【 디펜스 오라! 】

【 라이프 인핸스! 】

【 쉴드 디펜스! 】

【 매직 레지스턴스! 】

.

.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상당수의 버프 마법들이 일제히 걸리자 탱커들의 몸에 환한 빛이 연달아 생성되었다.

그리고 탱커들 스스로 자신들에게 거는 스킬들도 상당수였다.

보유하고 있는 스킬 자체가 너무 차이 나는데?

<윈> 얘들은 스킬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네요.

<심연> 어, 아무래도 그동안 사냥터를 오래 통제했으니까. 쌓아둔 저력이 있지. 당장 확 밀리지는 않을 거야.

저런 버프들이 하나도 아닌 십여 개나 축적되면 그 차이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것들만 봐도 단순 전력상 패황 연합이 이기는 건 꽤 어려운 일이겠지.

“어?! 저 새끼들 탱커들이 내려왔어!”

“지금 성문을 몸으로 막겠다는 거야?!”

“야! 별거 없어! 그냥 밀어버려!”

“어차피 우리가 쪽수가 훨씬 많아!”

“탱커들부터 쭉 밀어!”

그렇게 몸으로 밀집해 막고 있는 탱커들과 패황 연합의 탱커들이 동시에 붙은 결과.

콰앙!

쿠웅!!

서로 다른 진영의 탱커들끼리 라지 쉴드가 동시에 부딪혔는데 오히려 숫자가 적은 페가수스 연합의 유저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켜냈다.

반대로 패황 연합의 탱커들은 약속이나 한 듯 뒤로 튕겨 나갔고, 몇몇은 균형을 잡지 못해 그 자리에서 나뒹구는 우스운 꼴까지 보여 주었다.

“크윽! 이 새끼들 뭐가 이렇게 무거워?!”

“안 뚫리잖아?!”

“젠장, 저놈들 몸이 돌덩이 같아!”

“아, 진짜. 탱커들 다 뭐 하냐고!”

“돌파가 안 되면 그냥 스킬로 찢어버려!”

단순히 탱커들의 몸싸움으로는 밀고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았는지 패황 연합에서 주춤했지만 곧 다른 방법을 썼다.

“탱커들 뒤로!”

“궁수! 마법사! 스킬 날려!”

그리고 그런 신호에 따라 탱커들이 뒤로 빠지면서 궁수와 마법사들이 일제히 성문을 지키고 있는 페가수스 연합의 탱커들을 향해 스킬을 퍼부었다.

화아악!

콰르릉!

파아악!

화르륵!

【 파이어 스톰! 】

【 라이트닝 퓨리! 】

【 스톤 라이징! 】

【 아쿠아 플로전! 】

【 아이스 샤워! 】

【 애로우 레인! 】

【 콘센트레이트 애로우! 】

【 피어싱 애로우! 】

【 크레이지 애로우! 】

【 봄 애로우! 】

.

.

“크윽! 이 새끼들이!”

“젠장 최대한 버텨! 여기서 밀리면 절대 안 된다!”

“힐러들 힐 최대로 넣어!”

그러자 성문 안쪽에서 대기 중인 힐러들이 혼이 나갈 정도로 힐을 계속 들이부었다.

【 올라운드 힐! 】

【 올라운드 힐! 】

【 올라운드 힐! 】

.

.

그리고 성문에 겹쳐 있던 탱커들에게 중복으로 계속 강력한 힐이 들어가자 겨우 체력을 보존하면서 성문에서 버텨 내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적들이 쏜 스킬들의 폭격 여파로 인해 착용하고 있던 갑주가 거의 부서지거나 혹은 반파된 상태였다.

앞에서 먼저 대미지를 받은 라지 쉴드들도 갈라진 것들 태반이었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힐러들 역시도 단시간에 마력을 전부 뽑아내서인지 얼굴이 다들 해쓱하게 변해 버렸다.

이건 정말 탱커들을 성문의 대용품으로 겨우 틀어막은 그림이라고 해야 하려나?

만약 성문이 건재했다면 지금처럼 공격을 몸으로 때워 가면서 힐러들의 마력을 전부 소모하는 일은 없었을 터.

우리가 성문을 제거해 놓은 것으로 적들의 전력을 단번에 약하게 만들어놓을 수 있었다.

다만 탱커들이 성문에서 버텨 주면서 페가수스 연합에게는 딱 한 번의 찬스가 나게 되었다.

“녀석들이 만들어준 기회를 놓치지 마라!”

“타르포 전부 날려!”

“저 새끼들 죄다 죽여 버리라고!”

“쏴!!!!”

패황 연합 유저들이 달려드는 동안 성벽 위에서는 조준과 함께 타르포가 장전되었는데 그 시간 동안 버텨주지 못했다면 아무 쓸모도 없었을 것이다.

하르포도 그렇고 타르포 역시도 장전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라.

퍼어어엉!!

퍼어어엉!!

콰아아앙!!

“크아아악!”

“으악! 피해!”

“힐 빨리! 죽으면 안 돼!”

“보호 스킬 죄다 써!”

“어떻게든 버텨라!”

“젠장! 이래서 공성이 싫다니까!”

장전 시간이 긴 만큼.

이 타르포의 위력은 남달랐다.

이전의 하르포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터지는 데다가 심지어 범위도 넓었다.

이천이나 몰려 있는 공성 유저들을 녹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지.

거기다 애초에 이런 하르포나 타르포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무기가 아니었다.

바로 대네임드용 무기.

위력 자체가 네임드의 엄청난 방어와 체력을 깎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다.

그러다 보니 일반 유저들은 이 타르포의 포격에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폭격을 맞는 순간.

바로 체력이 제로로 떨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죽음의 빛으로 산화해 버렸다.

직격은 이 정도 위력.

포격이 폭발하는 중앙이 아닌 포격의 범위 외곽에서 맞은 유저들은 그나마 목숨 하나는 겨우 건져 냈다.

워낙 피해가 커서 그 자리에 다운되긴 했지만.

“끄아악! 내 다리!”

“힐러! 이쪽에 힐! 빨리!!”

“여기도! 아직 안 죽었어!”

일단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물약이나 힐러들의 힐로 회복은 된다.

그런데 그런 시간을 성벽 위에서는 절대 내어주지 않았다.

이 시간에 적의 전력을 깎지 못하면 그다음은 자신들이 누울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마법사! 궁수! 일제히 쏴!”

“겨우 살아있는 녀석들 위주로!”

“최대한 수를 줄여놔야 해!”

“조준 잘하라고!”

당연하게도 성벽 위에 페가수스 연합 유저들은 패황 연합의 가장 아픈 부위를 후벼 팠다.

타르포의 포격에서 가장자리에 겨우 살아남은 유저들이 쓰러져 있는 장소로 광역 스킬을 때려 부었으니.

콰아앙!

콰아아앙!

쿠우웅!

화르륵!

“크악!”

“살려……!”

“젠장할!”

“여기서 죽을 순 없……!”

이천이라는 숫자가 빼곡하게 모여 있던 탓에 이런 타르포나 광역기에는 엄청나게 취약한 면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점이 공성과 수성의 유리함에서 큰 차이를 만들어내었다.

분명히 공성 쪽이 숫자가 많음에도.

오히려 밀리고 있었으니.

성문만 틀어막을 수 있다면.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한들.

공성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성문을 활짝 열어주었음에도 이 모양이라…….

애초에 처음 성문을 돌파했더라면 페가수스 쪽 연합 유저들은 지금쯤 성벽 위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텐데.

오히려 지금은 수성 측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느낌까지 들었다.

<윈> 형, 그림이 이상하게 변했는데요?

<심연> 어, 설마 저걸 못 뚫을 줄이야.

재중이 형도 어이없다는 듯 성문을 보면 역시 한숨 섞인 표정을 지었다.

아예 먹으라고 밥상까지 다 차려줬는데.

그걸 걷어찬 느낌이랄까.

지금도 성문 쪽에서는 차륜전을 하듯 겨우 페가수스 연합 유저들이 버텨 내고 있었다.

결국 시간을 끌고 버텨 내기만 하면 어떻게든 페가수스 연합이 유리해진다.

성벽 위의 저 타르포 때문에.

거기다 또 하나의 문제점.

아까 누가 외쳤듯이 협곡을 넘어갔던 유저들을 추격하는 본대가 다시 돌아오게 되면 지금의 숫자적인 이점도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한마디로 우리에게는 시간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시간은 절대 우리 편이 아니야.

<윈> 형, 어쩔 수 없어요. 시작하죠.

<심연> 그래. 정말 별수 없네.

가급적이면 여기서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더 중요한 순간에 나설 생각이었는데.

지금 당장의 문제를 처리하는 게 더 급했다.

<심연> 힐러들 전부 목을 쳐.

<윈> 네, 갑니다.

재중이 형과 내가 선택한 것은 성문을 막고 있는 탱커를 노리는 게 아니었다.

바로 힐러들.

그들은 탱커의 후방에서 힐을 해주는 터라 주변에 호위를 하고 있는 그 어떤 유저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다 거점 안이라 더욱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나와 재중이 형은 여기 안에 있지.

바로 재중이 형과 함께 몰래 달려들어 힐러들의 목을 하나둘씩 따기 시작하자 곧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어?! 힐이……?”

“힐 제대로 안 해?!”

“아닙니다! 크억!”

“으억!”

그리고 이상함을 눈치챈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습격이다!”

“젠장! 힐러들 다 죽어 나가잖아!”

“뭐야? 대체 어디야?”

“누군가 잠입했다!”

“빨리 찾아내! 탱커들 바리게이트 무너진다고!”

아니.

이미 늦었어.

저들이 눈치채기 시작한 시점은 이미 나와 재중이 형이 힐러들의 목을 절반 정도 따 버린 순간이었다.

눈치챈 시점 자체가 너무 늦었다는 거지.

그리고 탱과 힐의 밸런스가 무너지는 시간이 오자 탱커들도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악! 안 돼!”

“뚫린다!!!”

“전부 내려와! 입구 막아야 해!”

“미친, 이제 와서 어떻게 막아! 전부 안에서 막는다! 시가지로 튀라고!”

전열 붕괴.

그리고 그 뒤의 수순은 당연하게도.

“우아아아! 탱커라인 뚫었어!”

“가즈아!”

“빨리 통과해! 뒤에 애들 다 죽는다!”

“달려! 전부 쓸어!!”

그렇게 탱커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가면서 수도 없이 많은 패황 연합 유저들이 밀고 들어왔다.

그 모습에 성벽 위는 패닉 상태였다가 곧장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시가지를 향해.

<윈> 일단 버텨 보겠다는 건가요?

<심연> 그렇겠지?

그리고 그중 은신하던 우리 옆을 달려가던 몇몇 페가수스 연합 유저들이 외쳤다.

“시발……! 쪽팔리지만 다른 거점에 지원군 불러!”

“뭐라고 하면서?”

“아, 몰라! 그냥 성문 뚫렸다고 해!”

흠.

아무래도 이건 좀 문제가 되겠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