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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24화 (914/1,404)

#924화 격전의 거점 쟁탈전 (11)

혼령의 급격한 이 제안은 다른 연합장들을 혼란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당연히 연합장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계속되었다.

“아니, 이게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공성을 혼자서 하겠다니요?”

“우리 연합 전체 병력을 다 합쳐도 될까 말까인데…….”

그런 웅성거림 속에서 아예 욕에 가까운 작은 말소리도 들려왔다.

“쯧, 혼령 연합장이 드디어 미치기라도 했나.”

“이 새끼 지금 질 거 뻔하니까 막 지르는 건가 본데.”

“혹시 초월 쪽에 붙은 건 아니겠지?”

“갑자기 왜 협곡을 넘으라는 거야? 전에 넘다가 전멸 당한 놈도 있구만. 치매도 아니고 벌써 잊어먹은 건가.”

아주 그냥 지라고 저주를 걸지 그러냐.

자기들 편을 잡아먹지 못해서 저렇게 떠드는 꼴이란…….

배가 많아서 산으로 가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배가 죄다 구멍이 뚫려서 바다에 가라앉는 수준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녀석들을 믿고 일을 벌이고 있는 패황이 불쌍해 보이기까지 하고.

너, 아무래도 밑에 놈들 잘못 들인 모양이다.

이런 놈들이 머리에 있으니 연합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지.

미리 패황에게 애도를.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혼령을 보자 혼령 역시도 짜증이 나는지 인상을 확 찡그렸다가 이내 고함을 질렀다.

“그만.”

봉우리를 웅웅 울리는 한 마디의 외침에 연합장들이 깜짝 놀란 듯 혼령을 쳐다보았다.

“거점 패황이 함락되면 이 연합은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그때도 그렇게 서로의 탓만 하면서 물고 뜯을 생각인가?”

그런 혼령의 외침에 연합장들 모두 꿀 먹은 병아리처럼 어느새 입을 다물었다.

“좋아. 이제 좀 말할 분위기가 되었군.”

다들 연합의 장이라 각자의 연합에서는 최고겠지만.

그런 이들도 혼령의 기세에는 눌린 듯 찍소리도 하지 못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윈>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요. 그냥 돈 많은 백수 형처럼 보이더니.

<심연> 아랫사람을 많이 다뤄본 솜씨야. 자연스럽게 나오는. 아마 평소에도 꽤 해봤을 거다.

썩은 물속에서 그나마 쓸 만한 물건을 찾아낸 격이랄까.

하긴 패황이 아무 생각 없이 자신 외에 전체를 통괄할 연합장을 맡긴 게 아닐 테니.

“다들 알다시피 거점 페가수스를 차지하는 일만큼이나 거점 패황으로 지원을 빨리 보내는 일도 필요합니다.”

“아니, 그래도 거점을 뚫어야 지원을 보내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오. 지나가지를 못 하는데.”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협곡을 넘어 주시죠. 그것도 동시에.”

“하지만 이미 실패한 전적이 있는데…….”

“그때는. 상의도 없이 단독으로 넘어가려고 했으니 페가수스 연합들의 집중 포화를 받은 겁니다.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피해를 다소 보더라도 전부 한꺼번에 협곡을 넘어갑니다.”

웅성웅성.

각 연합장들이 전부 이 제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바빠졌다.

그리고 어느새 이전 혼령의 부재에 대한 책임은 완전히 잊혀진 듯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

눈앞에 더 큰 일에 시선이 다 쏠렸달까.

이 녀석.

관중을 어떻게 휘어잡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잖아?

그때 한 연합장이 손을 들어 의견을 냈다.

“그렇다고 한들 피해가 엄청날 겁니다. 협곡 자체의 험한 지형도 그렇지만 적들이 숨어서 공격하면…….”

“아니요. 이번에는 제가 정면에서 거점 페가수스를 칠 생각이라 병력을 함부로 돌리지 못할 겁니다.”

“그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입니다. 전멸 당할 텐데…….”

“제 연합 병력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셔도 좋습니다. 전 반드시 함락시킬 생각이니.”

혼령의 호언장담에 다들 의아한 눈빛을 감추지 못 했다.

대체 뭘 믿고 저러는가 싶기도 할 테고.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의 수비 병력을 빼놓고는 전부 거점 페가수스를 나와 우리를 공격할 테죠. 이건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그 물음에 혼령이 손가락을 모두 펼쳐보였다.

마치 숫자를 꼽듯이 하나씩 접어가며.

“산술적으로 우리는 1만에 가깝습니다. 아! 한 2천은 멍청한 녀석이 말아먹었으니 이제 8천이겠군요.”

그 2천을 말아먹은 녀석은 지금 열심히 달려오는 중이다.

다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딱히 말을 하진 않았고.

“제가 가진 병력이 2천. 남은 8천의 1/4 정도 됩니다. 그 병력이 거점 페가수스를 치면 최소한 거점에는 500 이상은 남아 있어야 하죠. 수성을 하기 위해서는요.”

“흠흠, 그렇긴 합니다. 그 숫자 이하로 내려가면 저 거대한 성벽 전체를 커버할 병력도 안 나오니까.”

모두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다들 청자가 되어 버린 모습이려나.

“그러면 협곡을 넘어갈 병력은 총 6천. 반면에 저들의 여유 병력은 천오백이 됩니다. 산술적으로 네 배가 차이 나게 되죠. 그것도 성벽이 없는 상태로.”

4대1 정도의 병력 비.

만약 성벽을 끼고 있다고 한정하면.

이런 숫자는 수성을 하는 1이 무조건 유리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필드로 나와 버리게 된다면?

협곡에서 도망가는 네 명을 한 명이 쫓아야 하는 아주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다.

다른 말로.

거점을 뚫어야 하는 혼령의 연합은 굉장히 힘든 미션을 부여받은 셈이고, 협곡을 지나가기만 할 남은 연합장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쉬운 미션을 받은 셈이 된다.

그것도 4대1의 술래잡기를 하며.

막말로 협곡에서 서로 흩어져서 도망가면 한 명이 네 명을 쫓는 건 숫자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약 적들이 정말 천오백의 추격대로 보내서 중간에 따라 잡혀서 죽더라도. 우린 6천 명의 병력 중 최대 4천이 넘는 병력을 협곡 너머로 지원 보낼 수도 있겠죠.”

그런 계산이 나오자 다들 놀란 눈빛을 했다.

원래 이 많은 병력으로 공성만 할 생각이니 당연히 불리해 보이는 숫자였겠지만.

막상 거점 밖이라면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진다.

<심연> 아주 알려준 대로 술술 잘 이야기하네.

<윈> 하하, 그렇게 설명을 해 줬는데요.

혼령이 이 정도로 자세히 말할 수 있는 건.

나와 재중이 형이 아주 잘 알려 주었으니까.

그걸 전부 따라 줄지는 의문이었는데.

지금 혼령의 모습을 보면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았다.

칼을 빼들 정도의 판단력은 있다 이거군.

혼령의 제안을 들은 연합장들이 서로 의견을 나눈다고 웅성거리는 사이 혼령이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눈빛을 강하게 보냈다.

<혼령> 이번 일에 내 모든 것을 걸었다. 만약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런 혼령을 보면서 나 역시 눈빛을 받아쳤고.

<윈> 어차피 이대로 있어 봐야 망하는 건 똑같잖아요?

내 답변에 혼령은 다시 답을 하진 않았다.

본인도 그게 사실이라는 걸 잘 아니까.

그러니 지금 이 정도까지 극단적인 모험을 거는 셈이었다.

어차피 여기서 이기지 못하면.

후에 초월 연합과의 전쟁에 밀려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테니까.

패배자인 혼령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잠시 연합장들의 회의를 거친 후.

그들 중 대표로 나선 녀석이 혼령에게 다가와 말했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거요? 정면에서 버텨주지 못하면 우린 앞뒤로 포위를 당하게 되는 셈인데.”

“어차피 이대로면 자멸하는 건 마찬가지. 선택권을 가진 지금이 유일한 기회지 않습니까?”

“흠. 알겠습니다. 받아들이겠소.”

우리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한 혼령을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이젠 정말 뒤가 없다.

혼령은 반드시 이 일을 성사해야 해.

* * * * *

연합장들이 봉우리를 내려가 자신들의 병력을 통합하는 사이, 혼령 역시도 본인의 2천 병력을 끌어모으기 위해 봉우리를 내려왔다.

이제껏 위에서 정치질만 하던 연합장들이 내려오자 유저들도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거참, 공성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이렇게 많이 모아 놓고 멍만 때리냐.”

“답답한데 차라리 그냥 한판 붙자 좀.”

“나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잠도 못 자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우리 연합도 그런데 저쪽도 개판이지.”

“그나마 여기는 지원이라도 빵빵하게 해 주니까. 다른 연합 봐라. 욕하고 난리 남.”

“그래도 뭔가 결정이 났나 본데? 저쪽 애들도 꽤 바빠 보이고.”

유저들의 반응은 역시나였다.

답답함.

이 많은 병력을 거점 앞에 모아놓고 두들겨 맞고만 있으니까.

그런 유저들의 갈증을 풀어 줄 결정을 이제 혼령이 내려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는 따로 준비를 해야 했다.

어느새 기다리고 있던 발록,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이 내게 다가왔다.

같이 대기 중이던 레스와 그의 부대들도.

“갔던 일은 잘 됐나?”

“네, 뭐. 그럭저럭요.”

“휴, 그냥 막 봉우리를 올라갈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하하…….”

걱정해 준 거려나.

지금도 어디로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던 걸 보면 뭐.

의리도 있는 것 같고.

다른 곳으로 충분히 갈 수 있음에도 지금은 우리를 기다렸다.

“부탁드릴 게 있는데.”

“뭐지?”

“이제 곧 거점의 성문이 열릴 겁니다.”

“정말? 혹시 스파이라도 넣어놓은 건가? 아니지. 그렇다고 해도 지키고 있는 녀석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대체 어떻게?”

“음, 그건 뭐 기업 비밀이죠.”

“끙, 자넨 비밀이 너무 많아.”

“네, 그래서 제 비밀을 좀 지켜주십사 해서요.”

“그게 무슨?”

“아무래도 앞으로 좀 튀게 될 것 같은데. 이 부대에 좀 묻어갈 생각이라서요.”

“일종의 위장…… 같은 건가?”

바로 알아듣는 걸 보면.

확실히 눈치가 나쁘지 않다.

“네, 뭐. 특수부대 정도로 생각되게끔.”

“으음, 거참. 일단은 알았네.”

개인이 했다고 하면 앞으로 하게 될 일들은 너무 튀게 된다.

하지만 같이 움직인 부대가 있으면.

조금은 희석이 되겠지.

<심연> 아직까지는 조심해야지.

재중이 형 말대로 아직은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거기다 정체가 불분명한 우리가 이 부대에 섞이게 되면.

하나의 소속으로 들어가 아군들 중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잠시 위장할 부대로는 이만한 부대가 또 없었다.

“아마 끝나고 나면 꽤 유명해져 있을 겁니다.”

“허, 그건 바라지도 않네만.”

“그럼, 신호를 하면 바로 본대를 따라서 거점 안으로 들어오세요.”

“신호?”

그러자 곧장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보이는 웅장한 거점 페가수스를 바라보았다.

“네, 지금부터 우린 성문을 활짝 열러 갑니다.”

“설마 자네가 직접 간다는 거야?”

“그렇게 됐네요. 아, 저쪽도 시작했나 봅니다.”

다시 본대로 고개를 돌리자 각 연합장들의 병력들이 일제히 분산되면서 거점을 뺑 둘러쳐 있는 거친 협곡을 향해 흩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6천에 가까운 병력들이 한꺼번에 움직이자 거점 페가수스의 성벽 위도 혼란에 빠졌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

“어……? 저 녀석들이 미쳤나?”

“지금 전부 협곡을 넘어가겠다는 거야?”

“설마 공성을 포기한 건가?”

그런데 눈치가 빠른 몇몇 녀석들은 이게 꽤 위험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는 바로 외쳤다.

“젠장, 빨리 알려! 비상이다!”

이제 시작됐네.

그럼 본격적으로 우리도 움직여 볼까나.

거점 페가수스를 무너뜨릴.

최강의 조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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