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23화 (913/1,404)
  • #923화 격전의 거점 쟁탈전 (10)

    거점 페가수스를 향한 양동작전.

    혼령의 요구사항을 적극 반영한 작전을 떠올리다 보니 결국 이런 그림이 나오게 되었다.

    원래 재중이 형과 계획했던 작전에서 조금 살을 더 붙인.

    이 녀석만을 위한 플랜이었다.

    굳이 보자면 우리가 얻는 게 더 많겠지만.

    혼령은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

    “내가 미끼가 되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어때?”

    “음…….”

    고민이 되는 눈치.

    아무래도 혼령은 이 제안을 꽤 어렵게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기서 미끼가 된다는 건.

    죽을 확률이 아주 높다는 걸 말한다.

    그리고 이 전장에서 죽어 버리면 오히려 다른 연합장들이 이득을 보게 될 테니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제안은 아니었다.

    “내가 얻는 그 하이 리턴은…….”

    “거점 페가수스. 아니지. 가지게 되면 그 이후로는 거점 혼령이 될 거다.”

    무너진 거점을 새로 세워야 한다는 점과 꽤 많은 자금이 들어가겠지만.

    혼령은 돈이 꽤 많다고 하니 거점을 다시 올리는 데 들어가는 돈은 전혀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이 녀석에게 있어선 거점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지.

    “거점 혼령…… 그렇다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곳은 포기해야겠군.”

    “뭐 그건 알아서 하고. 우리가 고려할 사항은 아닌 듯하군. 거점을 얻게 해주는 것까지만 하면 되잖아.”

    “하긴 그런가.”

    혼령도 꽤 큰 연합을 가지고 있었고.

    본인이 소유한 거점 역시 있을 터였다.

    물론 좀 한적한 곳에 있겠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걸 보면 그다지 좋은 장소도 아닌 듯하고.

    거점을 세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아.

    얼마나 좋은 위치에 세우느냐가 문제지.

    그런 의미에서 거점 페가수스는 최상의 지형을 자랑했다.

    난공불락.

    심지어 아직까지 다른 유저에 의해 한 번도 공략당하지 않은.

    아주 따끈따끈한 거점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혼령이 결국 결정했다는 듯 눈빛을 빛내며 물어왔다.

    <윈> 드디어 결정했나 보네요.

    <심연> 녀석 입장에서도 이건 모험이니까.

    “후, 좋다. 세부적인 내용을 의논해보도록 하지.”

    혼령이 허락하자 더 이상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저 봉우리에 있는 모든 연합장들을 이리로 모아 줘야겠어.”

    그러면서 우리가 침투해 갔던 봉우리를 가리키자 혼령이 고개를 저었다.

    “굳이 모을 필요는 없다. 아니, 못한다고 봐야 하나? 애초에 저기서 나올 녀석도 없으니까. 차라리 우리가 이동하도록 하지.”

    “뭐 좋은 대로.”

    이러나저러나 우리야 저 녀석들만 보면 되니까.

    그렇게 혼령을 따라 다시 봉우리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녀석들이 우리에게 창을 겨누었다가 깜짝 놀란 듯 외쳤다.

    “언제 나가셨습니까? 그리고 저들은?”

    혼령도 손을 들어서 그들을 만류했고.

    “내 손님이다. 너희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흠, 그래도 다른 연합장님들이 계신 곳인데…….”

    “쯧. 지금 총연합장이 누구냐?”

    “당연히 혼령님…….”

    “그런데 내가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나?”

    “아닙니다!”

    황급히 경비를 서고 있던 유저들이 길을 비켜 주었고, 그제야 우리가 지나갈 수 있었다.

    “경비병이 일을 잘하네요.”

    하지만 혼령은 내 말을 다른 의미로 들은 모양이었다.

    “하아, 경비가 제대로 말을 안 듣는군요.”

    나름 칭찬을 한 건데?

    그때 재중이 형이 귓속말을 보내왔다.

    <심연> 방금 전 녀석들은 혼령의 패거리가 아니라는 거지.

    <윈> 아, 이해했어요.

    분명 연합 안의 유저이긴 한데.

    아마 그 경비들은 다른 연합장의 부하인 모양이었다.

    말을 듣기는 하지만.

    완전히 혼령의 사람은 아닌.

    굳이 따지자면 소속이 다른 유저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 혼령이 저렇게 띠꺼운 표정을 짓는 것이다.

    <윈> 확실히 연합을 장악하지 못했나 보네요.

    <심연> 녀석이 계속 다른 연합장들을 쳐내려고 하는 이유겠지.

    <윈> 그런다고 자신의 연합에 흡수되진 않을 텐데…….

    <심연> 연합 전체의 주도권을 얻으려고 하는 거니까. 이번 기회에 확실히 못을 박겠다는 거다.

    확실히 다른 연합장들이 반발할 수 없을 정도의 주도권만 가져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기에 패황까지 누를 수 있으면 연합 전체가 손아귀에 들어올 테고.

    봉우리의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니 이전에 봤던 대로 연합장들이 서로 떨어져 앉아 지금은 소강상태인 전장을 보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황을 보니 페가수스 쪽 연합에서 나온 녀석들은 견제를 어느 정도 넣다가 피해를 충분히 줬다 생각했는지 거점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렇게 공성이 잠시 멈춘 상태.

    그런데 멈춘 공성과 달리 연합장들의 언성이 점점 커지면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

    “젠장, 또 우리 쪽 애들만 상했지 않습니까.”

    “아니, 거기서 방비를 못한 것까지 우리가 신경 써야 합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애초에 돌아가는 녀석들을 왜 따라가려고 해서는…….”

    “단독 행동 좀 그만 하시죠.”

    “쯧쯧. 매번 이렇게 당하기만 해서야 우리 연합이 우습게 보일 겁니다.”

    “그러면 구경만 하다가 다 죽을 셈이요?”

    “어허, 그런 말이 아니지 않소.”

    “에잉, 꼬랑지 말은 개도 아니고서야.”

    “말이 좀 심합니다? 자꾸 막 나가시는데 한 번 해볼 생각인가요?”

    “왜? 했다. 어쩔래? 여기서 들이받을 거야?”

    “아놔, 이 새끼 말본새 좀 보소. 확 처박아 버릴까 보다.”

    의견 충돌.

    속수무책으로 연이은 피해를 보자 연합장들이 짜증이 잔뜩 났는지 서로에게 고성방가를 지르듯 언성을 높여갔다.

    그런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생각보다 개판인데?”

    “……할 말이 없군.”

    나름 각 연합을 대표하는 연합장이라고 모아둔 자리인데.

    건설적인 대화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남 탓하기만 바쁜.

    재중이 형도 어이가 없는지 손을 들며 혀를 내둘렀다.

    <심연> 이거 참. 이런 녀석들로 정말 할 수 있는지 모르겠네.

    <윈> 휴, 그러게요. 앞으로가 걱정이네요.

    <심연> 그래도 이것들로 하긴 해야지. 대안도 없고.

    워낙 급하게 모인 연합들이다 보니 의견이 전혀 조율되지 않았다.

    패황을 보고 모인 녀석들인데.

    가득이나 패황까지 없으니.

    어쩌면 패황이 있어도 마찬가지이려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마나 좀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연합장 둘이 따로 떨어져 나와서 대화를 이어갔다.

    그것도 꽤 심각한 표정으로.

    “이대로 계속 여기 머물 생각이야? 우리 연합 사람들은 이렇게 오래 싸우진 못한다고. 학생들도 있고. 직장인들이 거의 절반이야. 주말이니까 이 시간에 겨우 버티고 있는 거지.”

    “하아, 우리 쪽 사정도 별반 다르진 않아. 앞으로 몇 시간만 지나면 접속을 끊고 대부분 나가야 해. 억지로 이 시간에 다 붙들어놓은 것도 한계다.”

    “이대로 계속 소강상태면 절대 못 뚫는다고.”

    “이거 이번에 못 뚫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젠장, 어떻게 되기는. 이 상태로 우리가 지원 못 하면 패황은 거점 패황에서 메말라 죽을 거고, 그럼 다시 거점을 내줘야 해.”

    “그럼, 또다시 원점이군.”

    “원점이지. 그리고 반대로 이번엔 역습 당할 거야. 우리와 달리 저들 연합 유저들 대부분이 직업으로 뛰는 녀석들이니 접속 시간이 널널하잖아.”

    “휴, 우리 숫자가 줄어들었을 때 미친 듯 사냥 당하겠네.”

    “그러니까. 이번 공성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타임인데…… 저 새끼들 지금 하는 꼴 봐라. 답이 나오냐?”

    “하아, 미치겠다. 이젠 나도 그만 두고 싶어진다.”

    “지 새끼들만 새끼냐. 어떻게든 손해 안 보려고 다른 연합 애들만 들이밀려고 하니…….”

    “내 말이. 어떻게 앞으로 나서려는 놈이 하나도 없어.”

    이것도 공성이 지지부진한 이유 중 하나였나.

    이게 너무 많은 연합들이 모여서 나오는 폐해였다.

    그때 서로 너 때문이다 아니다를 두고 싸우고 있는 연합장들을 한심하게 보던 두 사람에게 혼령이 다가갔다.

    “왜 이렇게 소란스럽습니까?”

    “아, 혼령 님. 별일 아닙니다.”

    “별일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자리를 잠시 비웠다고 이렇게 개판이 됩니까?”

    혼령의 표정이 굳자 연합장 중 하나가 결국 한숨을 쉬며 말을 꺼냈다.

    “사실은…… 그 좀 전에 적의 대대적인 기습이 있었는데. 피해가 좀 컸습니다.”

    “아니. 그걸 왜 지금 말합니까?”

    “연락이 안 돼서…….”

    그 말에 혼령이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우리와 만나기 위해 몰래 나온다고 연락 라인을 다 끊어 두었던 모양이었다.

    “거기다가 지금 거점 패황이 완전 밀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연합장들이 급해져서 그만.”

    밀리고 있다고?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빠르게 확인을 위해 전사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어, 그래. 밀리고 있다는 거지? 얼마 못 버틸 거라고? 알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연> 오래 버텨 봐야 몇 시간 안이라는군.

    <윈> 어떻게든 지원을 가야 하는군요.

    <심연> 지원이 안 된다면. 최소한 여기서 부활을 더 못하게 거점 페가수스를 우리가 차지해야 해.

    거점 패황을 공략하는 녀석들은 우리와 같은 입장이었다.

    공성 중에 죽게 되면 자신들의 거점에서 부활해 다시 달려가야 하는 상황.

    그중 이 거점 페가수스가 위치상 제일 가까우니.

    대부분 이곳을 통해서 다시 전장에 투입될 것이다.

    우린 그걸 틀어막아 줘야 한다는 거고.

    하지만 지금 저놈들의 상태를 봐서는 거점 페가수스를 탈환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했다.

    <윈> 차라리 잘 됐네요.

    <심연> 혼령이 나서기에?

    <윈> 네. 저들끼리 싸워 줘야 더 빛나잖아요.

    혼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서로 네 탓 내 탓만 하고 있을 때.

    딱 혼령이 나타나서 해결책을 내어주면?

    그거보다 좋은 그림이 또 있을까.

    “마침 잘 됐는데? 혼령.”

    내가 다가가 말하자 혼령이 지금의 개판인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던지 한숨을 푹 쉬었다.

    “하,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옆에서 두 연합장들이 물었다.

    “누구?”

    “누구입니까?”

    “아, 이번에 새로 들인 참모일세. 꽤 중요한 정보를 가져오기도 했고.”

    대화 한 번에 바로 참모로 승진인가.

    딱히 원하진 않지만.

    지금은 필요하니.

    “반갑습니다. 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의 승리를 가져다줄 참모이기도 하죠.”

    알아서 장단을 맞춰 주자 혼령도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자, 시간이 없으니 전부 모이라고 하세요. 급하게 전달할 게 있습니다.”

    그러자 두 연합장들이 패를 갈라 싸우고 있는 다른 연합장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아, 진짜 혼령 님은 이 중요한 시기에 어딜 그렇게 나다닙니까?”

    “우리가 같은 연합이긴 해도 지킬 건 지켜주셔야죠. 안 계신 사이에 제대로 명령을 내리지 못해서 피해가 얼마나 났는지 아십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패황 님이 정해서 임시 연합장이긴 해도 이렇게 멋대로 하시면…….”

    와, 진짜 개판이네.

    아주 물어뜯으려고 작정한 듯 혼령에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피해를 본 건 저놈들인데 어떻게든 책임을 넘기고 싶다 이건가?

    혼령도 속으로는 짜증이 나는지 이마에 혈관 마크가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꾹 눌러 참고는 이내 연합장들에게 말했다.

    “책임 소재는 나중에 묻기로 하고. 우선 급한 것은 저 거점 페가수스를 뚫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닙니까. 거점 패황이 함락되기 전에.”

    그러자 다들 또 자신들만의 입장을 말하려고 할 때.

    혼령이 딱 못을 박았다.

    “제가 책임지고. 거점 페가수스를 함락합니다. 그것도 저 혼자서.”

    웅성웅성.

    혼란의 웅성거림.

    그만큼 혼령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저 거점을 혼자서 말입니까?”

    “네, 대신. 여러분들과 해당 연합군은 지금부터 협곡을 넘습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전부.”

    그리고는 혼령이 날 보면서 귓속말을 넣었다.

    <혼령> 이제 만족하나?

    <윈> 네. 아주 줗군요.

    그다음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혼령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었다.

    <윈> 그리고 어차피 저들은 다 죽을 겁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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