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21화 (911/1,404)
  • #920화 격전의 거점 쟁탈전 (7)

    거의 들리지도 않게 아주 약한 소리로 말한 거지만.

    바로 앞에 있던 혼령이 듣기에는 충분히 큰 소리였다.

    그리고 아마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았을까.

    움찔.

    허공의 목소리에 혼령이 깜짝 놀란 듯 순간 어깨를 들썩이면서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냥 하던 대로 정면 보시죠? 고개 돌리면 그대로 목 날아 갑니다?”

    고개만 돌렸다 하면 정말 목을 날려 버릴 것처럼 선포하자 혼령의 어깨가 다시 내려앉았다.

    뒷모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딱 그런 느낌이랄까.

    지금 이 장소는 혼령 뿐만 아니라 다른 연합장들도 함께 자리한 곳이었다.

    당연히 산봉우리 아래에서부터 휘하의 길드원들이 디텍트 에어리어로 확실히 진을 치고 올라오는 모든 유저들을 감시하는 중이기도 했다.

    거기다 스킬만으로만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수시로 부하들이 돌아다니며 눈으로 확인을 하니 사각이라는 건 거의 존재하지도 않았다.

    최소한 이 꼭대기에 접근하려면 그들의 모든 감시를 뚫고 지나와야 하는데.

    아니.

    그냥 초입부터 발견되어 신호를 받는 게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난 혼령의 바로 뒤에 서서 혼령에게 속삭이는 중이었다.

    이건 혼령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딱 뛸 일이지.

    감시하던 병력들이 아예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싹 뚫려버렸다는 거니까.

    심지어 주변을 지키고 있던 휘하의 유저들도 역시 내 존재 자체를 몰랐다.

    만약 뭔가를 봤다면 지금쯤 난리가 났을 테지.

    하지만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아래의 전쟁 장면을 즐기듯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혼령이 그런 그들을 보고 짜증이 난다는 듯 이를 씹었다.

    “이런…… 쓸모없는 새끼들…….”

    “딱히 그들이 못한 건 없습니다만.”

    디텍트 에어리어를 뚫고 넘어온 유저를 발견하려면 정말 지나치는 공기가 흔들리는 수준까지 잡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항상 긴장을 하면서 주시를 해야 하는데.

    말이 쉽지.

    그렇게 파악하는 것 자체가 정말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만약 그게 가능한 유저가 이쪽 진영에 있었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전쟁이 길게 이어질 리도 없었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기다리자 혼령도 역시 침묵을 지키다가 아직 목이 날아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는 내게 협박하듯 말했다.

    “내가 소리치면 당장 이 부근에서 널 찢어 죽일 녀석들은 얼마든지 있다.”

    맞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은신이라는 것도 몰래 하는 게 의미가 있는 거고 바로 목을 따고 빠져야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이렇게 목에 칼을 들이밀고 말하는 건 꽤 위험천만한 일이지.

    하지만 혼령, 이 녀석은 절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전 당신의 목을 이대로 날려 버리겠죠.”

    그렇게 테르타로스의 검신을 슬쩍 흔들자 녀석도 목젖 바로 앞에서 흔들리는 검날의 파동 정도는 느껴지는지 침을 꼴깍 삼켰다.

    일단 이 녀석은 내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뭐 대충 여기까지 몰래 파고 들어올 정도라면 자신보다 더 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당연히 지금 목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걸 굳이 몸으로 확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녀석이 생각하기에도 정말 가능한 일이라.

    당장 이 순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인지 이를 악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죽는 순간. 너도 여기서 반드시 죽는다.”

    “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 말에 녀석이 깜짝 놀란 듯 몸을 움찔했다.

    “아, 내 한 몸 빼는 건 자신 있어서 말이지.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있는 건지 아직도 모르는 저 바보들에게는 말이야.”

    그렇게 말하니 혼령이 더 이상을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당장 이렇게 접근하기까지 눈치조차 못 채는 녀석들이 다시 숨는 날 잡을 수 있을까?

    혼령이 생각하기에도 이건 어렵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그리고 만약 상황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면 자신의 목만 따이고 난 유유히 빠져나가게 된다.

    여기에다가 난 이 녀석이 뭘 꺼려하는지 재중이 형과 레스에게 들어서 아주 잘 알고 있거든.

    “그리고 당신 말이야. 이렇게 둘러싸여 보호받는 위치에서 한 방에 목 따이고 죽어 버리면 옆에 있는 연합장들이 꽤 즐거워하겠어.”

    그 말에 혼령의 손이 불끈 쥐어졌다.

    자세히 보니 창피한지 목도 붉게 변한 것 같았고.

    쪽팔림도 이런 쪽팔림이 없지.

    심지어 연합장이라는 작자가.

    그것도 혼란한 전쟁 한 가운데서 죽는 것도 아니고.

    줄줄이 보호를 하고 있는 곳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적에게 목을 따이고 죽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최고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단지 적뿐만이 아니라 아군 전체에게서도.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는 다른 연합장들이 줄줄이 널려 있단 말이지.

    레스가 그랬던가.

    예전에 다들 한 번씩은 치고받았던 경력이 있다고.

    지금이야 목적이 같아 한 깃발 아래 손을 잡고 있는 모양이다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건 얼마 전에 협곡을 휘하의 연합 단독으로 넘다가 다 뒤진 일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만약 지휘체계가 확실했고.

    명령을 제대로 이행했다면 절대 전쟁 중에 나올 수 없는 그림이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 연합장들끼리는.

    상하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느낌이 더 강해.

    굳이 유추해보자면 언제라도 서로를 끌어내릴 수 있는 관계랄까.

    그리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자리에게 목이 날아가서 죽는 건.

    단순히 쪽팔림을 넘어서.

    그동안 쥐고 있던 전체 연합의 주도권을 죄다 뺏길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아마도.

    이 혼령이라는 놈을 패황이 어떻게든 밀어주는 모양새인데.

    당장 여기서 목이 날아가면 다른 연합장들이 얼마나 우습게 여길지는 안 봐도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연합장들이 즐거워할 거라는 한 마디에 혼령의 기세가 확연히 변했다.

    “누가 감히 날…….”

    “아아, 그러니까. 서로 그런 불상사는 없게 만들자 이겁니다. 솔직히 그쪽이 조금만 협조해주면 서로 편할 것 같은데.”

    그러자 녀석이 화를 내려던 걸 멈추고 다시 기운을 가라앉혔다.

    다행히 말은 통하는 녀석이라 다행이네.

    이렇게 나오지 않고 다짜고짜 너 죽고 나 죽자라는 식으로 나오면 정말 피곤해질 뻔 했다.

    그럼 아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을 테니.

    뭐 꼭 이 녀석이 아니라고 해도.

    다른 연합장 목을 쥐어틀고 다시 시도해 봐도 되긴 하지.

    그냥 이 녀석이 이대로 가주면 더 고맙고.

    잠시 화를 삭힌 녀석이 결국 포기한 듯 한숨을 쉬면서 내게 말했다.

    “넌 누구냐? 누군데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이제 좀 머리가 다시 굴러가는 건가?

    독불장군이라 들어서 상당히 막 나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상황 파악은 잘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춘 녀석이 슬쩍 고개를 뒤로 돌리며 다시 물어왔다.

    내가 목을 안 칠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

    사실 칠 생각은 없으니 잘 찍은 거라고 봐야 하는데.

    뭐 수틀리면 그냥 날려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라.

    그럼에도 녀석은 내가 한 몇 가지 말들에서 어느 정도의 확신은 받는 모양이었다.

    “혹시 초월 연합에서 보낸 건가? 그렇다면 내 밑으로 들어와라. 네가 초월에서 얼마를 받던. 그 다섯 배를 지급하겠다.”

    호오.

    이렇게 포섭을 하시겠다?

    목이 날아가 바닥에 누울 수 있는 상황에 오히려 녀석은 내게 꽤 높은 제안을 걸어왔다.

    “내가 얼마를 받는지 알고?”

    “흥, 그게 얼마든 전혀 상관없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큭.

    이놈 생각보다 재밌네.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야.

    그럼 그냥 좀 놀려 볼까나?

    “달에 백억 정도 받는데 감당 가능해?”

    “뭐?”

    “그러니까 달에 백억 정도 받고 움직인다고. 네가 방금 다섯 배라며. 그 정도면 나도 칼을 거꾸로 쥐지 않을 수 없겠네.”

    산술적으로 백억의 다섯 배는 오백억이다.

    달에 오백억씩 지급하라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이건 얘가 만약 무슨 재벌 총수라고 해도 그 정도 돈을 한 사람에게 쥐어주는 건 거의 불가능.

    그것도 한 달에 말이야.

    녀석도 어이가 없는 듯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거냐?”

    “어, 방금 거는 장난. 그래도 혹시 정말 줄지 알았는데. 네가 방금 그랬잖아. 내가 누군지 아냐고. 뭐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군.”

    “큭! 내가 누군지……!”

    “아, 됐고. 어차피 줄 생각 없으면 그만하자고.”

    아주 녀석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약 올리자 녀석의 머리에게 바로 김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심연> 크큭, 적당히 약 올려. 울컥해서 일 망칠라.

    <윈> 네네.

    <심연> 슬슬 본론 가자. 은신도 너무 오래는 힘들어.

    재중이 형이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옆에 대기 중이라.

    그러니까 저 녀석들은.

    지척에서 무려 두 명이나 숨어 있음에도 아직도 모른다는 거다.

    쓸모없다고 한 말이 아주 틀린 게 아니지.

    “아, 그리고 나 초월에서 온 자객은 아니니까 인상 좀 피고. 굳이 따지자면 아군이랄까? 그러니까 일단 얘기나 좀 하자고. 이렇게 있는 건 서로 불편하잖아? 조금 더 있으면 너 다리에 쥐나겠다.”

    “초월에서 보낸 게 아니다? 이 정도 실력자는 그쪽 최고 라인밖에 없을 건데?”

    “아, 이놈이 평소에 속고만 살았나.”

    “……흠.”

    내 말에 혼령이 다시 주판을 튕기는 모양새였다.

    적어도 초월은 아니니까 뭔가 이야기해볼 여지는 있다고 여길 터.

    이런 단단한 포위망을 뚫고 들어온 나다.

    혼령처럼 돈 많고 지휘하는 녀석이 욕심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렇다면 잠시 주변을 물리도록 하지.”

    그래.

    아주 이야기가 안 통하는 녀석은 아니구나.

    그런데 그런 식으로는 주변 녀석들에게 우리를 보여줘야 하니까.

    “그건 곤란한데? 이곳 한복판에서 우리가 정체를 드러내는 건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냐?”

    “따로 장소를 주도록 하지. 올지 말지는 네가 알아서 판단하고. 그리고 함정 같은 건 아니니까 딱 필요한 인원만 데리고 와. 목을 날릴 생각이었으면 벌써 날렸다는 건 네가 제일 잘 알 테니.”

    그렇게 혼령의 목 앞에서 테르테로스를 빼내는 순간.

    뭔가 서늘한 느낌이 없어지자 녀석도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안 보이니까 애쓰지 말아. 그리고 이 전쟁. 꼭 이기고 싶다면 오는 게 좋을 거다.”

    “뭐?”

    “그것도 네가 제일 활약하는 그림으로 말이야. 저 옆에 있는 팔푼이들 말고.”

    내 말에 뭔가가 걸리는 듯 혼령의 돌아본 표정이 확 굳어졌다.

    아픈 곳을 찌른 거려나.

    “그럼 이따 보자고. 난 윈이다. 귓속말 풀고 연락이나 잘 받아.”

    그리고 재중이 형과 동시에 다시 감시하는 유저들과 디텍트 에어리어를 피해 감시망을 빠져나왔다.

    확실히 벗어난 뒤 혼령에게 귓속말로 장소를 적어 보냈다.

    “어때요? 올 것 같아요?”

    “흐음, 모르겠네. 녀석이 야망이 있으면 오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냥 쫄따구들 다 데리고 와서 깽판 칠 거고.”

    “일단은 기다려봐야겠네요.”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누군가 약속 장소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흠.

    과연 녀석은 어떤 판단을 했으려나?

    #921하 격전의 거점 쟁탈전 (8)

    패황 연합.

    기본적으로 패황 길드를 주축으로 하는 중앙의 연합 하나와 그에 동조하는 수많은 연합들의 총칭.

    그런데 사실 처음에는 이 정도까지 커질 만한 연합체는 절대 아니었다.

    패황 길드 자체가 초월 연합에서 떨어져 나와 칼자루를 거꾸로 쥔 길드였으니까.

    아무리 세력을 잘 갈무리해서 떨어져 나왔다고 해도.

    결국은 분화된 길드일 뿐이다.

    아마도 패황 연합을 그대로 두었으면 좀 반항을 하다가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변수가 일어난다.

    바로 우리라는 변수.

    반 통제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패황 연합에 세력을 몰아주는 일을 해준 결과.

    지금은 그 덩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버렸다.

    패황 자신도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처음에야 좋았겠지. 세력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행사할 수 있는 힘이 강해지니까. 하지만 말이야. 그게 너무 커지면 과연 어떻게 될까?”

    재중이 형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다 답변을 내놓았다.

    “너무 크면 아마 관리하기 어려워지겠죠.”

    “그래,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패황의 신경을 거스르는 일을 하는 녀석들은 없을 거야. 애초에 저들도 원하는 바는 명확하니까.”

    “초월 연합과 다른 연합들이 무너지는 거요?”

    “맞아. 어차피 저들이 노리는 건 딱 그거 하나지. 초월 연합들이 해먹던 기득권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자신들에게 가져올 수 있느냐. 핵심은 거기 있어.”

    결국 말이 반 통제 연합이지.

    원래 있던 힘 센 놈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거다.

    다들 허울뿐인 관계랄까.

    물론 그중에서도 정말 간절히 저 반 통제를 원해서 가담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세력을 만들어 내기 전의 일이었다.

    뭉치고 나면 그건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이 되는 거니까.

    어떻게 해서는 이득을 취해야할 세력 중에 하나가 된다는 거다.

    “이 녀석들도 딱히 다르진 않아. 당장은 눈에 가시 같은 녀석들이 있어도 숫자를 맞춰야 초월 연합을 끌어내릴 수 있으니.”

    “사이가 안 좋은데도 손을 잡았다는 게 그 말이군요.”

    “어, 레스가 말했듯. 서로 치고받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게 그냥 나온 말이 아니야.”

    실제 우리가 봉우리 정상에 올라가 확인한 모습은 마치 서로 못 볼 것을 보는 눈빛으로 서로 경계를 하고 있었다.

    한 팀으로 뭉쳐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저러고 있는 걸 보면…….

    참 답도 안 나오는 녀석들이지.

    이제껏 왜 초월 연합을 상대로 기죽어서 살았는지 안 봐도 딱 그림이 나왔다.

    만약 그냥 뒀으면.

    이 녀석들로는 절대 초월 연합을 건들지도 못한다.

    다 개박살 나서 공중분해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지금은 숫자가 많으니 그나마 어떻게든 비벼 보는 거고.

    “저들도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요?”

    “알기야 하겠지. 그런데 남 밑으로 들어가는 게 말처럼 쉬운 건 또 아니라서. 일단 반 통제 연합이라는 찬란한 명패는 패황이 가지고 있거든. 그럼 이 녀석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음.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건데.

    일단 패황은 이 연합의 대표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다른 녀석들은 그에 속하는.

    패황 입장에서야 수많은 병력들이 자신에게 동조를 하니 기쁘겠지만.

    반대로 아래로 들어간 연합들 입장에서 보면…….

    힘은 힘대로 쓰고.

    중요한 알맹이는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딱 그런 그림이려나.

    “죽 써서 개 준다?”

    “오…… 비슷해. 당연히 이기면 좋지. 어떻게든 이득을 취할 테니까. 그런데 막상 이기고 나면 그 몫의 상당부분은 패황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어.”

    “내가 먹을 게 줄어든다 이거군요.”

    “어, 이래서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니까. 지금 가담하는 유저들의 인기 대부분이 패황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그걸 깨려면 본인들이 유명해져야 하는데…….”

    “사실상 어렵지. 누구나 인정하는 뭔가 특출난 성과를 내지 않고서야.”

    “하아, 아직 제대로 이기지도 않았는데 밥 그릇 싸움부터 하는 거예요?”

    “어쩌면 이미 초월 연합에게 이겼다고 생각하고 저러고 있는 걸 수도 있어.”

    “하긴 쪽수를 생각해 보면 지는 게 더 이상하긴 한데…….”

    지금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나날이 숫자가 불어나 지금은 패황 연합 전체의 숫자가 초월 연합 전체의 숫자를 압도하는 중이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실상 제대로 붙어보면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눈치채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거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누구나 알 수 있는 공을 좀 세우고 싶다 이거지. 이를테면, 저 거점 페가수스를 함락한다던가 하는.”

    “하긴, 저 정도 먹이면 누가 봐도 인정하겠죠.”

    “그래, 거기다 가급적이면 자신들 세력만으로 할 수 있으면 더 좋고. 혹 그게 아니더라도 위기에 빠진 패황의 거점을 구해내는 역할도 괜찮겠네.”

    이전에 단독으로 협곡을 넘어가려던 연합이 있었다고 했었나.

    어차피 거점 페가수스를 함락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면 그것도 나쁜 판단은 아니었다.

    넘어갈 수 있었다면 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한 뒤 지금 저 멀리 다른 거점에서부터 열심히 뛰어오는 중이었다.

    오히려 실패로 인해 인지도가 더 바닥이 됐을지도 모르겠네.

    “아까 정상에서 보니, 다른 녀석들도 뭔가 해보고는 싶은데 전의 그 연합 꼴이 날까 봐 함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모습이었지.”

    “서로 눈치만 본다는 거군요.”

    “욕심은 많은데. 막상 자신들 연합 세력은 아직 깎아 먹고 싶진 않다. 이 정도랄까?”

    재중이 형 말이 틀리진 않는 게.

    말이 한 번의 전투지.

    혹시 대패라도 하게 되면 드랍하는 아이템의 양이 엄청나다.

    붙는 숫자가 숫자인 만큼.

    개인 별로 피해도 피해지만.

    연합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전력이 크게 감소하는 셈이었다.

    전면전을 피하는 이유도 이런데 있을 테고.

    아니.

    정확히는 재중이 형 말대로 붙기는 하되.

    최대한 자기 연합이 손해를 덜 보고 더 많이 이득을 보길 원한다고 해야 할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더니.

    지금이 딱 그 꼴이었다.

    “저대로 놔두면 언젠가 한판 붙기는 붙을 거야.”

    “그렇겠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저 많은 대군을 유지하며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다들 바쁜 시간 쪼개서 싸우러 나온 건데.

    언제까지고 저 숫자가 유지된다고 보긴 힘들었다.

    “문제는 그게 거점 패황이 함락되고 난 뒤일 수도 있고.”

    “음, 최악이겠네요.”

    지금 거점 패황에 가 있는 건 패황 연합의 최고 세력이라고 보면 된다.

    그쪽이 패하고 나면.

    나머지는 속수무책으로 밀려나올 테고.

    다시는 대천사의 무덤으로 가는 거점을 차지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예전처럼 입구컷 당하는 상황이 또 온다는 거지.

    “그런데도 저렇게 여유를 부리다니.”

    산 정상에서 마실 나온 것처럼 구경하는 녀석들을 생각하니 한숨이 푹 나왔다.

    정말 이것들을 끌고 이길 수 있는 게 맞나.

    요즘 같아서는 정말 예전의 우리 쪽 연합이 그립다.

    “그냥 우리 연합 전부 다시 끌어모으는 게 더 쉽겠네요.”

    “큭, 그건 그렇지.”

    다만 이쪽은 시간이 좀 걸린다.

    아쉽지만.

    “그래서 혼령이 어떻게 나올 것 같아요?”

    “흠,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저기 온다.”

    마침 저 멀리서 약속 장소를 향해 걸어오는 몇 명의 유저들이 보였다.

    그중 가운데는 혼령으로 보이는 유저가 로브를 뒤집어쓰고 걸어오는 중이고.

    지금 녀석의 상황이 저렇게 정체를 숨기고 올 정도인가?

    우리야 보여주기 불편해서 이런 장소를 택한 거지만.

    “주변을 훑어볼게요.”

    그리고 감각을 펼쳐서 멀리까지 확인을 해봤는데 딱히 걸려드는 유저들은 없었다.

    “정말 단독으로 온 모양이네요.”

    “그러게. 야망이 없진 않아.”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혼령 녀석이 자신의 병력을 잔뜩 끌고 온다던가 하는 것도 선택지에 있었다.

    혹은 아예 다른 세력까지 끌고 온다던가.

    하지만 혼령은 우리가 말했던 대로 혼자서 이곳을 찾아왔다.

    그건 이야기를 들어볼 준지가 되었다는 거겠지.

    그렇게 가까이까지 걸어온 혼령이 근처에서 멈춰서더니 로브를 내리면서 내게 말했다.

    “내가 헛된 발걸음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슬쩍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연> 괜찮네.

    <윈> 네, 나쁘진 않네요.

    “그래서 내게 뭘 제안하고 싶은 거지?”

    호오.

    바로 운을 띄우시겠다.

    이건 들어보는 정도가 아니라 꽤나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해 왔다.

    생각 이상으로 몸이 달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가 판단하는 것보다 녀석의 상황이 꽤 안 좋은 상황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보다 훨씬 적극적인데?”

    “그때는 보는 눈도 있으니까.”

    목에 칼을 가져다 댄게 얼마 전인데.

    의외로 거기에 대해서는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윈> 의외네요.

    <심연> 저렇게 나와주면 우리야 고맙지. 귀찮게 찍어 누를 필요도 없고.

    재중이 형은 여차하면 다른 방법을 쓸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잘 알아먹으니까 우리 입장에선 나쁘지 않다.

    잠시 우리가 말을 하지 않자 오히려 녀석이 먼저 말을 꺼내왔다.

    “너희가 어디 세력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장 너와 옆의 녀석을 보면 꽤 실력이 있는 단체겠지.”

    “흐음. 맞긴 해.”

    그게 몇 명 없어서 문제지만.

    “우리도 너희 같은 실력자는 필요하다. 특히 지금 같은 때라면 더욱더.”

    “아, 포섭하는 이야기라면 굳이 더 안 해도 돼. 이 자리는 그걸 위해서 모인 자리는 아니니까.”

    그러자 녀석이 다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주 이 녀석이나 저 녀석이나 인재 욕심은 넘쳐나네.

    “흠, 그렇지. 꽤 불편한 접근 방식을 보면 제안할 내용이 평범한 건 아니겠지? 실망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아, 그건 너도 충분히 만족할 거야.”

    재중이 형과 나름 심도있게 짠 작전이라 말이지.

    그것도 너네들의 상황까지 파악해서 만들어 둔 물건이라.

    “일단은 네가 우리 대신 좀 움직여 줄 필요가 있어.”

    “지금 내 세력을 달라는 걸로 들리는데 잘못 들은 건가?”

    “음, 이해의 일치랄까. 너도 그렇겠지만 일단은 초월 연합이 무너져야 한다는 건 같은 목적이지.”

    내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던 혼령이 다소 싱겁다는 듯 웃어 버렸다.

    “이거 참. 내가 너희를 너무 잘못 파악하고 온 건가? 고작 그것으로 날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

    <심연> 호오, 저것 봐라?

    그리고는 녀석이 우리에게 말했다.

    “난 딱히 초월 연합이 무너지든 아니든 크게 상관은 없는데 말이야.”

    “그래?”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이 입을 꾹 다물었다.

    거참.

    의도를 알아서 파악하라 이거네.

    확실히 이놈도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흔한 녀석은 절대 아니었다.

    녀석이 원할 만한 것이라.

    초월 연합이 무너지는 게 딱히 목적이 아니라면…….

    “역시. 배포가 크네.”

    “흠?”

    이건 혹시라도 녹음이 되고 있을까 봐 녀석이 입을 때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나중에 흠이 될 수 있으니.

    그래서 직접 말하지 않고 내가 말해 주기를 기다리는 거겠지.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것과.

    내가 말하는 건 발뺌의 여지가 확실하니까.

    “혼령, 너 이 거대 연합을 통째로 먹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 순간.

    녀석과 나의 눈빛이 차갑게 맞부딪혔다.

    그 뒤에 녀석의 입가가 한쪽으로 싹 올라갔다.

    “하하, 재밌군. 어디 그럼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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