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화 격전의 거점 쟁탈전 (6)
재중이 형의 돌발 물음에 순간 레스가 당황함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대가리라니…….”
한 연합의 장을 대놓고 대가리라고 부르는 사람이 어디 그렇게 흔할까.
적이 아니고서야.
그것도 아군의 앞에서 말하다니.
“음, 그럼 그냥 머리라고 할까요? 어차피 그게 그건데.”
키득 웃으면서 재중이 형이 말하자 레스도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이내 정신이 돌아왔는지 곧 답변을 해주었다.
“으음, 애들한테 물어보면 혼령이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만나기도 쉽지 않아.”
“어차피 같은 유저 아닌가요? 정 안 되면 귓속말이라도 하던가.”
“끙. 그게…… 딱 정해진 간부들의 연락만 받는 사람이라. 아마 제대로 연락하기도 힘들 거야. 전에 듣기로 밑에 애들하고는 말을 안 섞는 모양이던데.”
“이건 뭐. 상전도 아니고.”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납득하듯 웃어 버리자 레스도 한시름 놓았다는 듯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다음에 들어올 말을 예측하지 못한 채.
“정 그러면 이쪽에서 찾으러 가죠. 아쉬운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그러자 레스가 한껏 당황한 듯 손바닥을 휘저으며 만류했다.
“어어, 그러면 안 될 건데…….”
“큭, 어차피 못 볼 거면 그냥 가서 보면 되는 거잖아요. 쉽게 생각합시다. 무슨 나랏님 보는 것도 아니지 않나? 아니면 그쪽에서 연결해 주면 일이 더 쉽겠죠.”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거점 페가수스 앞 필드에 우글우글하게 모여 있는 연합들의 진형을 바라보았다.
<심연> 이 녀석이 말 안 해줘도 대충 어디쯤 있는지는 알겠다만.
<윈> 그래요?
<심연> 어, 녀석이 아무리 막 나간다고 해도 최소한의 전쟁 경험 정도는 있을 거야.
맞다.
한 연합을 이끄는 대표 유저가 싸움 한 번 안 해보고 컸을 리는 없으니까.
간혹 가다 그런 놈들도 있긴 한데…….
그건 예외로 치고.
그때 재중이 형이 다시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보이는 꽤 높아 보이는 산언저리를 바라보았다.
근처 지대가 협곡이다 보니 워낙 들쑥날쑥한 지형에 가까웠는데 그중 딱 한 봉우리의 정상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더 높아 보이는 다른 봉우리들을 전부 배제한 채로.
<심연> 아무래도 저곳이 전장을 전부 바라보기에는 제일 좋아 보이네. 거기다 위치도 딱 적당해. 돌발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지 전장으로 개입할 수 있는 거리이기도 하고. 심지어 넓기까지 하지. 많은 유저들이 몸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재중이 형의 설명을 듣고 나니 저 평범해 보이는 봉우리가 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거리도 적당하고 높이 역시 마찬가지다.
전장 전체를 내려다보기에 나쁘지 않은.
그리고 눈높이가 딱 거점의 성벽보다 조금 더 높은 정도랄까.
이렇게 되면 오히려 아군이 적의 진형을 전부 내려다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거기다 성벽 안의 적들의 움직임까지도 잘 하면 살펴볼 수 있을 테고.
여러모로 전장을 살피기 좋은 위치였다.
<윈> 형이 혼령이면 저기 있을 거라는 거죠?
<심연> 어, 뭐 그냥 하수는 자기 안전하려고 저 대군 속에 꽁꽁 파묻혀 있겠지만. 혼령이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테니까.
혹시 그 정도로 바보라면……?
순간 입 밖으로 말이 나오려는 걸 꾹 넘겼다.
그래도 옆에 레스가 있는데 연합장을 바보라고 하긴 좀 그렇지.
그런데 재중이 형이 저 봉우리를 보자마자 레스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흐음.
처음부터 혼령의 위치를 알고 있었던 건가?
자력으로 알아냈으면 이 사람도 쓸 만한 거고.
아니면 누군가에게 들었거나.
뭐 어쨌든 지금 레스의 이 반응으로 봐서 저곳에 혼령이 있다는 건 확실해 보였다.
<윈> 눈빛을 속이진 못하네요.
<심연>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아군의 머리들이 어쩌고 있나 구경 가볼까?
재중이 형은 단순히 혼령만 봉우리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윈> 다른 녀석들도요?
<심연> 원래 가진 게 많은 녀석들이 더 몸을 사리거든. 아마 몸에 주렁주렁 고가의 아이템들을 걸치고 있을 거다.
<윈> 찾기는 편하겠네요.
“같이 가던가? 아니면 여기 있어도 상관없고요.”
재중이 형이 말하자 레스가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가지. 어차피 찬밥 신세인데 이보다 못하겠어. 그리고 댁이 말한 대로 저기 혼령이 진을 치고 있는 중이야.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역시 알고 있었네.
생각보다는 능력이 있으려나.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그럼 갑시다.”
재중이 형이 먼저 나서자 나와 기다리고 있던 발록, 뱀파이어 로드, 얼음 여왕이 동시에 따라나섰다.
그때 내 옆에 붙은 뱀파이어 로드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왜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하는 거지? 그냥 내가 넘어가서 싹 죽여 줄 수도 있는데.”
“으음, 생각보다 그렇게 쉽진 않을걸? 저 거점 안에는 전에 너랑 싸웠던 애들 수준으로 대략 수십 배는 더 많은 녀석들이 포진해 있어.”
그 말에 뱀파이어 로드도 순간 멈칫했다.
네임드가 강하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저 많은 유저들의 집중포화를 견딜 정도로 강력하다는 뜻은 또 아니었다.
단순히 문을 열어 주는 정도라면 괜찮겠지만.
정면 승부는 또 다른 말이지.
네임드라고 무적은 아니니까.
“칫, 인간들 따위 뭐가 무섭다고.”
그래도 네임드라 이거네.
“발록만큼만 크면 마음대로 해도 돼. 그전에는 얌전히 따라다니고.”
그러자 뱀파이어 로드가 곁눈질로 발록을 바라보았다.
마왕과 필적할 것으로 예상되는 온전히 오버된 네임드.
“맘에 안 든다.”
그러면서 획 고개를 돌려 옆으로 빠졌다.
솔직히 나도 그냥 네가 거점에 들어가 난장판 내주는 게 더 편하긴 해.
하지만 필요한 칼은 필요한 순간에 써야 했다.
지금보다는 오히려.
그다음의 전장.
여긴 그냥 스쳐가는 곳일 뿐이야.
너무 힘 뺄 필요는 없어.
시선을 돌려 혹한의 얼음 여왕을 보자 이 녀석은 딱히 상관없다는 듯 별다른 의사표시는 해오지 않았다.
저 담담한 표정만 보면 영 모르겠단 말이지.
그렇게 대군의 뒤편에 위치한 산봉우리 근처로 빠져나오자 어느 순간부터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유저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감각을 전개했다가는 오히려 내 몸이 버티지 못해서 일부러 감각 자체를 꾹꾹 눌러놓은 상태였다.
저 많은 데이터를 한 번에 받아들였다가는 이쪽이 고생이지.
그래서 대군 속에서 감각으로 누군가를 찾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감각이 너무 예민한 것도 이럴 때는 문제랄까.
반면에 후방으로 나오자 상쾌한 공기를 받아들이듯 다시 감각을 펼쳐낼 수 있었다.
그러자 저 산 봉우리 속에 꽤 많은 숫자의 유저들의 움직임이 걸려들었다.
재중이 형 말이 딱 맞았네.
슬쩍 레스를 보면서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우리만 다녀올게요.”
“뭐?”
“괜히 불필요한 손님맞이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요.”
감각에 걸리는 건 또 있었다.
산 전체를 아우르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디텍트 에어리어.
산을 올라가는 루트 곳곳마다 전부 이 스킬로 중복해 도배가 되어 있었다.
<윈> 형, 디텍트 에어리어가 잔뜩 깔려 있어요.
<심연> 이미 몇 번 기습을 당해서 펼쳐놨겠지.
페가수스 연합 쪽에도 은신을 쓸 수 있는 유저는 얼마든지 있었다.
당연히 그런 유저들이 노리는 건 적의 수뇌부일 테고.
저렇게 디텍트 에어리어를 깔아놓는 게 과한 조치는 아니라는 거다.
문제는 여기서 좀 더 들어가면 우리는 몰라도 레스는 바로 걸린다.
그리고 레스와 함께 움직이는 다른 유저들도 마찬가지.
예약되지 않은 손님을 맞이하려면 저쪽도 분주해질 테니.
일단은 여기 잠시 두고 갈 수밖에.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나오지 않으면 바로 이 경계를 넘어 주시죠. 혹시 문제가 되면 저들의 신경을 분산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설마 자네들끼리 들어간다고? 그나마 내가 가야 이야기라도 통할 텐데.”
“아, 우린 몰래 들어갈 거라.”
“어?”
어리둥절한 표정의 레스를 보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건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라.
디텍트 에이리어를 파훼해서 들어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도 않고.
“그럼 부탁합니다.”
【 은신! 】
【 은신! 】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먼저 디텍트 에어리어의 경계에 몸을 내딛었다.
나 역시 같이 따라 들어가면서 발록, 뱀파이어 로드, 혹한의 얼음 여왕은 일단 그들과 함께 대기하도록 했다.
“여기서 기다리다가 신호를 주면 같이 움직여 줘.”
네임드가 디텍트 스킬에 걸리는지는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단 말이지.
괜히 나서서 귀찮은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나와 재중이 형이 아무렇지도 않게 디텍트 에어리어를 파훼하며 산을 오르자 확실히 꽤 많은 유저들을 중간에 세워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이 다 바보가 되는 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겠지.
<심연> 곧 정상이다.
<윈> 네. 죄다 모여 있네요.
정상에 오르자 패황 연합의 수뇌부 녀석들이 보였다.
그런데 아예 식탁까지 차려놓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바로 혀를 찼다.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것 마냥 편안한 광경이라…….
애들은 밑에서 뺑이치고 있는데 말이야.
여기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면서 구경만 한다 이거지?
보통 장군이라면 앞서 나서서 싸워야 할 판에.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 먹어서는.
<윈> 그냥 여기서 다 목을 따 버릴까요?
<심연> 큭, 나도 아주 잠시 고민했다.
물론 앞장서서 싸우는 장군 같은 녀석들도 분명히 있긴 할 거다.
하지만 적어도 여기 녀석들은 그런 케이스가 아니었다.
하아.
갑자기 회의감이 드네.
솔직히 이 녀석들을 이기게 해 주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초월 연합 쪽이 적이 아니었으면 아마 이 녀석들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윈> 어쩔 수 없죠. 썩은 칼이라도 쓰긴 써야 하니까.
이 녀석들을 대신할 녀석들을 찾으려면 그게 더 오래 걸릴 테니.
아쉽지만 대안이 없는 게 문제다.
패황은 대체 어떻게 이런 녀석들만 불러 모은 건지 모르겠네.
거기다 한술 더 뜨는 건.
이 녀석들의 거리다.
서로 원수지간이라도 되는 건지 멀찍이 떨어져서 진을 치고 자신들의 길드원들과 따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러면 굳이 이렇게 모여 있을 필요가 없지 않나?
뭔가 여기서 회의라도 하면 또 모르겠다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고.
<심연> 이러니까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소리가 나오겠지.
<윈> 반박을 못하겠네요.
아군의 사기를 확 깎아 줄 딱 그런 모습이라.
<윈> 하아, 그래도 일은 해야죠. 누가 나을까요?
그러면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각 연합의 장들을 쳐다보았다.
딱 봐도 화려한 아이템을 걸치고 있는 게 연합장일 테니.
골라내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거기다 다른 유저들의 보호를 받는 위치라 모르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렇게 살피다 보니 총 9명의 연합장들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확실히 규모가 크긴 커졌나 보네.
재중이 형도 잠시 살펴보다가 결정을 내렸다.
<심연> 일단 예정대로 가자.
<윈> 혼령요?
<심연> 그래. 이왕 할 거면 최고 대가리지.
<윈> 그럼 다녀올게요.
이곳 역시 유저들에 둘러싸여 보호를 받고 있긴 한데 디텍트 에어리어를 믿어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경비가 삼엄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 유저들 사이를 아주 조용히 지나가 바로 혼령의 옆에까지 가서 섰다.
코앞까지 와도 모르다니.
쉬워도 너무 쉽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테르타로스를 꺼내들어 혼령의 목 부분에 가져다댔다.
여차하면 목을 날려 버리지 뭐.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속삭이듯 혼령에게 속삭였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누죠? 혼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