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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14화 (904/1,404)

#913화 폭주하는 네임드들 (15)

그 많던 유저들을 상대로도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는 결코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쪽이 압도한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 와중에 뱀파이어 로드가 계속 레벨이 올라서 그런 것도 있겠고.

유저를 잡는 족족 경험치니.

지금도 뱀파이어 로드는 흡족한 표정으로 레벨이 오른 자신의 상태를 만끽하고 있었다.

발록은 뭐…….

그냥 아무 감흥이 없는 표정이었고.

어차피 이 녀석이야 유저를 더 잡아 봐야 별 의미도 없으니까.

그런데 그들과 달리 더 신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오, 귀여운 것들 같으니라고.”

재중이 형이 은신을 한 상태로 여기저기 쏘다니며 전투의 흔적을 따라다녔다.

그리고는 노랫소리를 흥얼거리며 바닥에 돌아가는 드랍템들을 알뜰하게 주어 인벤으로 집어넣었다.

하긴.

나도 남 말할 처지가 아닌 게.

재중이 형이 훑는 방향의 반대로 돌아다니며 드랍템을 줍는다고 여념이 없었다.

이건…….

창이고.

저건…….

반지구나.

또 이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서 그런지 떨어진 아이템들의 개수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했다.

그간 내가 보지 못했던 아이템들도 제법 보였고.

뭐 딱히 다 필요하냐고 물어본다면.

무기야 애초에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가 있기 때문에 다른 녀석들은 크게 필요치는 않았다.

최상위 네임드 무기가 아닌 이상에야.

방어구들은 좋기는 한데.

성향상 맞는 아이템을 찾기는 쉽진 않았다.

그것도 부위별로 종류가 다르게 들쑥날쑥 떨어졌으니.

물론 이것들도 잘 조합하면 꽤 좋긴 하겠지만.

일반적인 방어구 정도로는 이젠 성이 차지 않는다.

앞으로를 생각하면 이보다는 더욱 좋아야 해.

결국 고강이라는 것만 빼 버리면 크게 의미 있는 건 아냐.

하지만 이것들도 시장에 내다 팔면 돈이 된다.

지금처럼 양 거대 연합이 치고받는 상황에선 더욱더 그렇고.

그리고 악세서리는 그간 못 보던 것들도 있어서 이건 좀 살펴봐야 했다.

일단 전부 회수만 해 둘까나.

그런데 가장 아쉬운 건…….

역시 데스는 죽지 않았다는 것.

눈치가 얼마나 빠르던지 발록이 좀 큰 공격을 한다고 생각하자 뒤도 보지 않고 내빼 버렸다.

그 녀석이 죽어야 그나마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는데 말이야.

글래시어.

계속 눈독을 들였던 그 네임드 아이템.

혹여나 그게 떨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대박 사건인데.

아쉽게도 데스가 죽어 주질 않아서 이건 물 건너가 버렸다.

흐음.

억지로 막아서라도 녀석을 죽였어야 했나.

하지만 그땐 아직 적들도 건재한 상태여서 말이지.

그런 적들의 방어벽을 뚫고 빠져나가는 데스를 잡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쉽게 됐네요.”

근처에 드랍된 모든 아이템들을 수거해 온 뒤 만난 재중이 형에게 아쉽다는 듯 말하자 곧바로 눈치를 챘다.

“아, 글래시어?”

“네, 떨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큭, 쉽게는 안 죽어 주지. 그리고 죽었어도 그게 드랍되려면 정말 운이 좋아야 해.”

아이템이 드랍되는 것은 랜덤.

수많은 것들 중에 글래시어 하나가 딱 떨어진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확률상 너무 낮지.

거기다 적들의 정예라고 할 수 있는 녀석들이 거의 죽지 않았다.

레이드를 하던 녀석들 중에서도 꽤 높은 레벨에 장비가 좋은 녀석들이 있었는데.

이 녀석들은 좀 불리해지자 곧장 사방으로 산개해서 따로 도망을 갔다.

문제는 우린 숫자가 적고.

따라가야 할 녀석들은 너무 많았지.

할 수 없이 도망가는 녀석들의 대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레이드를 방해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충분히 성과가 있었지만.

녀석들을 다 죽이지 못 했다는 건 여전히 아까운 부분이었다.

휴.

어쩔 수 없나.

결국 아쉬운 마음을 훌훌 털어 버렸다.

안 되는 걸 억지로 붙들고 있을 정도로 시간이 넘치는 건 아니라서.

“다음에 기회가 있겠죠.”

“그래. 조만간 또 부딪힐 기회가 있을 거야. 지금처럼. 다른 전장에서.”

“네, 기대하고 있어요.”

그때는 그냥 내빼게 놔두질 않을 거다.

아마도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를 테니.

그렇게 우리가 전투를 끝내고 드랍한 아이템들을 회수하는 동안 저 멀리서 불러오던 냉기 바람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이제 풀려나 보네요.”

그 순간.

완전히 트리플 템페스트가 걷혀지면서 그 속에서 혹한의 얼음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에게 있던 전투의 흔적은 꽤 많이 복구했는데도.

아직은 피해가 꽤 누적된 것처럼 보였다.

뭐 죽기 직전까지 같던 상황이라.

평소보단 확실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런 혹한의 얼음 여왕이 걷혀진 얼음 폭풍을 뒤로하고 우리를 흘깃 바라보았다.

약간의 정적이랄까.

그녀도 말을 하지 않고.

우리도 말을 하지 않는 딱 그런 상황.

뭔가를 살피는 것 같기도 한데.

그리고는 전투를 벌였던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를 유심히 쳐다봤다.

아무래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존재들 중 저 둘이 강하니까.

자연스럽게 눈이 갈 것이다.

그렇게 둘을 빤히 바라보던 혹한의 얼음 여왕이 이번에는 나와 재중이 형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더니 곧 내게 시선이 딱 고정이 되었다.

“내게 물약을 넘긴 자가 그대인가? 느껴지는 파장이 같다.”

파장?

아, 유저 인식 시스템 같은 그런 종류인가 보네.

아까는 은신을 하고 있어서 모습을 보지 못 했을 테니.

그런 혹한의 얼음 여왕을 보면서 환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 서비스는 괜찮았지?”

그러자 혹한의 얼음 여왕이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그것도 꽤 격조 있는 말투로.

“그대의 이름은?”

내 머리 위에 있는 게 안 보이는 건 아닐 테고.

진짜 이름을 알려 달라는 거려나.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어차피 알게 될 건데. 쟤들도 다 알고 있고.”

“하긴. 그렇죠.”

그리곤 곧장 바뀌기 전의 아이디를 알려 주었다.

원래의 네임.

“주호라고 한다.”

“주호.”

네 네임을 듣더니 곧장 내게 걸음을 옮겨왔다.

얼음 여왕이라더니 마치 새하얀 피부의 모델을 보는 것 같잖아?

진실로 여왕이 있다면 딱 저런 포스와 느낌이랄까.

마냥 네임드로만 죽어나가기에는 너무 아까운 감도 있었다.

드랍템만 바라고 달려드는 유저들에게 그런 게 딱히 의미가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반대로 이렇게 살려놓고 보면…….

굉장히 고급스런 외형의 NPC였다.

일반적인 녀석들과는 다르게.

그렇게 내 앞에 완전히 다가와 서자 발록과 뱀파이어 로드가 아닌 척하며 내 옆으로 슬쩍 걸어왔다.

“아, 괜찮아.”

아니라고 해도 이 녀석들도 날 신경 쓰는 모양이네.

아무래도 바깥으로 돌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나니까 내가 위험해지는 건 알아서 차단하려는 모양이었다.

상황이 꽤 좋다고는 하지만 혹한의 얼음 여왕도 네임드인 건 마찬가지라.

방심한 사이에 내 목이라도 잡고 흔들면 꽤 곤란하긴 하지.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달리 혹한의 얼음 여왕은 꽤나 안정적인 움직임으로 내게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내 뺨을 스치듯이 만지자 피부에 차가운 기운이 확 퍼져나갔다.

흐음.

너무 돌발 상황인데?

이거 그냥 놔둬도 되는 거려나?

그런데 딱히 위협적인 느낌은 아닌지라…….

만약 그랬다면 벌써 이 손을 쳐내고 전투 자세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냥 이건 감이다.

혹한의 얼음 여왕이 날 해하지 않을 거라는.

그리고 혹한의 얼음 여왕이 손을 걷더니 내게 흥미로운 눈빛을 보이며 말했다.

“고맙다. 주호. 얼음 여왕의 이름을 걸고 이 은혜는 꼭 갚겠다.”

《 빙설의 주인. 혹한의 얼음 여왕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빙설의 주인. 혹한의 얼음 여왕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빙설의 주인. 혹한의 얼음 여왕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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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

한 번에 이렇게나 오른다고?

이건 예전에 마리아 가르시아에게서나 볼 법할 정도로 엄청난 호감도 상승폭이었다.

처음 호감도가 바닥이었다고 하면 아마 이걸로만 거의 반은 넘게 채우지 않았을까.

뱀파이어 로드가 겨우겨우 올랐던 것을 생각해 보면 이건 거의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위기 상황에서 살려 준 게 이렇게나 효과가 좋다고?

그것도 네임드인데?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게 나이긴 한데.

이렇게까지 혹한의 얼음 여왕이 바로 넘어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옆에서는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심연> 얘가 제일 낫잖아?

<윈> 하하……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발록은 일종의 전략적인 우호 관계랄까.

같이 거쳐 온 전장도 좀 되고.

그래서 서로 호감도가 꽤 높긴 한데.

만약 사이가 틀어지게 되면 아주 서슴없이 손을 놓을 녀석이기도 했다.

그리고 뱀파이어 로드는 당장은 우리가 있어서 레벨도 올리고 호감도도 역시 올라간다고는 하지만.

정작 이 녀석이 다 크고 나면 어디로 튈지도 모르고.

확실히 믿을 수가 없달까.

같은 호감도라도 차이는 확실히 존재했다.

그런데 지금의 이 혹한의 얼음 여왕은 좀 달랐다.

은혜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쓴다는 것.

그리고 호감도의 상승이 예전과 완전 다르다는 점이 나를 기껍게 만들어주었다.

그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괜히 잘 따르는 녀석을 더 키워 주는.

마음에 드는 캐릭터를 이것저것 챙겨 주며 더 알뜰하게 챙겨주는 것도 있고.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랬다.

그리고 역시 속이 시커먼 녀석들보다야…….

이쪽이 낫지.

뭐 그렇다고 딱히 내색을 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리고는 뱀파이어 로드에게 했던 것처럼 혹한의 얼음 여왕 역시 똑같이 설명을 해 주었다.

“음, 괜찮으면 날 따라갈 생각이 있어?”

“그대를 따라다니라는 건가?”

“어, 방금 보다시피. 여기 있으면 방금 전 같은 녀석들이 또 나타날 거야.”

내 흘리는 말에 혹한의 얼음 여왕의 아미가 팍 구겨졌다.

방금 전의 그 상황을 떠올린 건가.

녀석들에게 죽을 뻔한 순간.

여기 계속 있는 것 자체가 혹한의 여왕 입장에서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그 순간.

혹한의 얼음 여왕이 내게 한 가지 의외의 제안을 했다.

“그대를 따라가면 방금 그 녀석들을 전부 죽일 수 있는 건가?”

“어?”

그러자 재중이 형도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심연> 호오, 이 녀석 봐라? 제법 강단이 있잖아?

<윈> 네, 이걸 물어볼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음, 당연히 죽일 수 있지. 그리고 몇 번이라도 반복해서 죽이는 것도 가능해.”

“그런가.”

그 말을 듣고 난 뒤에 혹한의 얼음 여왕이 다시 내게 하얀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그럼, 그대를 따라가겠다. 내가 녀석들을 전부 죽일 수 있게 도움을 다오.”

그리고는 선언하듯 말을 이었다.

“그러면…… 나도 역시 그대를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다.”

얼음 같은 표정 안에 이글거리는 두 눈빛이라…….

살벌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저 복수심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네임드가 이 정도까지 살기를 내뿜을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큭.

이제부터 일어날 일들은 내 책임이 아니다.

이 일을 만든 녀석들의 책임이지.

그리고 모르긴 해도.

앞으로 전 서버를 발칵 뒤집어질지도 모르겠는걸?

이 녀석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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