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900화 (890/1,404)

#899화 폭주하는 네임드들 (1)

크르르릉!!

대천사 루스의 악에 받친 하울링이 얼마나 강한지 다시 한 번 강렬한 지진과 함께 몸이 들썩 거렸다.

산맥 전체를 울리는 힘이라…….

덕분에 롤러코스터를 타듯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재중이 형도 그 파장에 맞춰 함께 점프를 하며 신나게 웃었다.

“오우, 저놈, 제대로 열 받았나 본데?”

이 형은 너무 신났고.

지금 상황이 꽤 즐거운 모양이었다.

“네, 아주 목청만으로 다 뒤집어 놓네요.”

단순히 하울링만으로 이 넓은 지역에 지진을 만들어 내는 녀석이라니.

그리고 그런 녀석이 얼마나 열 받았는지는 지금의 지진만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옆에서 발록도 같이 도망가듯 달리며 뒤를 흘깃 보면서 혀를 찼다.

끔찍한 뭔가를 봤다는 듯 꽤 놀란 표정으로.

“저건 정말 괴물이군.”

발록이 보기에도 지금의 현상은 괴물 같아 보이는가 보다.

하긴 산맥 전체를 울리는 힘이니.

이건 발록이라고 하더라도 아마 구현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런 발록에게 흘리듯이 한 번 물어보았다.

“다음에 붙으면 저놈 이길 수 있겠어?”

그러자 그런 질문을 한 나를 이상한 놈 보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미쳤냐?”

“으음, 요즘 그 소리 정말 자주 듣는 것 같은데.”

좀 답변이 이상하긴 했는데.

어쨌든 발록은 저걸 이길 자신이 없다는 걸 우회해서 말한 것이었다.

네임드도 본능적으로 위아래를 알 건데 이 정도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그런데 당장 저 대천사 루스가 풀려나면……?

마계고 뭐고 할 것 없이 완전히 초토화가 될 것이다.

당장 발록도 상대가 안 되는 판에.

혹시 마왕들이 단체로 모이면 어떻게 되려나?

이건…….

가능성이 좀 희박하고.

애초에 마왕이라는 것들이 힘을 모으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전부 모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불가능하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결국 마계에서는 저 미친놈을 잡을만한 녀석이 없다는 뜻이 된다.

마왕 서열 1위인 녀석에게 숨겨둔 힘이 엄청나게 있다면 또 모를까.

흐음.

괴물은 잡으라고 존재하는 건데 말이야.

저 괴물을 잡으려면 뭘 준비해야하는지 감도 안 잡히네.

계속 산맥을 달리면서 흘깃 손에 들고 있는 대천사의 검을 바라보았다.

혹시 이걸로 가능하려나?

그러자 옆에서 같이 달려가던 재중이 형이 내게 물었다.

“뭘 그렇게 봐?”

“아, 대천사의 검요. 이걸로 대천사 루스를 잡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게 가능하면 저 녀석이 순순히 넘겨줬겠냐? 자기 목줄인데?”

“으음, 역시 그렇죠?”

대충 예상은 했지만.

재중이 형의 말을 듣고 나니 더욱 확실해진다.

대천사의 검은 애초에 대천사 루스 저놈이 가지고 있던 거니까.

그리고 상성상 역상성은 되어야 제대로 된 타격을 줄 텐데…….

이 검이 마왕을 잡는 용도로는 어쩔지 모르겠는데 그 반대는 꽤 힘들어 보였다.

재중이 형이 잠시 대천사의 검을 바라보더니 흡족한 듯 미소 지었다.

“꽤 균형이 좋은 걸?”

그 말에 곧장 손에 힘을 적당히 주고 옆으로 휘둘러 봤는데 감각에 전해지는 느낌이 굉장히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네, 밸런스가 훌륭하네요. 휘두르는데 전혀 부담이 없어요.”

이건 누가 봐도 좋아.

안에 옵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도 정말 균형이 잘 잡힌 검이었다.

그 모습만은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에 비견될 정도로.

“옵션은 어때?”

“아, 잠시만요.”

바로 시스템을 띄워서 확인하자 대천사의 검의 옵션들이 보였다.

『 +0 봉인된 대천사의 검 (?) (에픽)

/ 출혈 ? 타격 ?

- ?

- ?

- ?

.

.

- 조건이 맞지 않아 옵션을 볼 수가 없습니다. 』

봉인된 대천사의 검?

에픽 등급?

“형, 이거 봉인되어 있다는데요?”

“뭐?”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바로 대천사의 검을 받아서 확인해 봤다.

그리고는 어이가 없는지 웃어 버렸다.

“아, 한 방 먹었네. 대천사 이놈도 그냥 넘겨준 게 아니었잖아?”

우리가 복사된 르아 카르테를 줬듯이.

이놈 역시도 우리에게 장난을 쳐 둔 셈이었다.

가지더라도 바로 쓸 수 없도록.

“서로 한 방씩 먹였네요.”

“뭐 우리 쪽이 더 먹인 셈이긴 하지.”

재중이 형 말대로 어쨌든 우리는 대천사의 검을 손에 넣었고.

대천사 루스는 원하는 바를 해결하지 못 했다.

단순 비교를 하면.

우리 쪽이 훨씬 이득이었다.

“형, 에픽이면 어느 정도 급이에요?”

“흐음, 네가 가진 테르타로스가 전설이었지?”

“네. 전설 등급이죠.”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전설 무기는 그거 딱 하나뿐이거든. 그러면 같은 전설은 아니라고 볼 때 바로 아래등급일 거다.”

“전설 밑에 에픽?”

“그래. 가정상 대천사들과 마왕이 동급이라고 본다면…… 그럼 대천사의 무기가 에픽이니 마왕의 무기도 에픽일 거다.”

확실히 재중이 형 말대로 마신의 파편이 전설이니…….

마왕 벨라가 마왕성에 모셔놓고 제조하던 게 이 테르타로스라는 걸 고려해 보면.

같은 무기가 또 있다고 보긴 어렵고.

애초에 마왕 벨라의 무기는 이보다는 한 단계 아래일 테니까.

에픽이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유일은 아니네요?”

“흐음, 그건 아마도 대천사의 무기가 여러 개라는 뜻이겠지.”

“하긴. 대천사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그리고 마왕도 하나가 아니지.”

사실 유일이나 전설 등급 아이템도 그렇지만.

에픽 등급 아이템 또한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아직 유저들은 구경도 못 해본 아이템들이라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마왕을 때려잡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아이템 등급이니 어쩌면 당연한 거려나.

남들은 아직 가지지 못한 전설과 에픽을 모두 가지고 있다니.

이걸 알리는 순간 아마 전 서버가 확 뒤집히지 않을까.

“일단은 숨겨야겠네요.”

괜히 소란스러워지는 건 피곤해서 말이지.

그리고 그렇게 되면 너무 주목을 끌게 된다.

그건 우리가 바라는 게 아니니까.

문제는 이걸 어떻게 쓰느냐인데.

“대천사 루스가 일부러 못 쓰게 하려고 이렇게 해놨겠죠?”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약간 짜증나는 표정을 지었다.

“왜요?”

“아, 그냥. 이거 아마 제대로 거래가 됐었다고 해도 우리가 전부 죽었을 걸?”

“네?”

“그 녀석. 애초에 우릴 다 죽일 작정이었다고.”

그 말에 잠시 생각을 해보자 녀석의 노림수가 떠올랐다.

분명히 봉인이 풀리면…….

“아, 자기 것부터 바로 되찾으려고 했겠네요.”

“어, 녀석은 그럴 만한 힘이 있으니까. 네가 꼼수로 한 방 먹이지 않았다면 그냥 가져다 바친 셈이 됐을 걸?”

“하…… 어째 요즘 NPC는 제대로 된 녀석이 하나도 없네요.”

그간 만난 NPC들을 떠올리니.

다 뒤치기 할 생각에 음모만 꾸미고 있고.

정상적인 녀석들은 거의 드물었다.

그리고 지금 옆에 있는 발록도 정상이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당장 서로 목적이 같지 않았다면.

아.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애초에 목적이 이 대천사의 검이었지.

달리다가 고개를 돌려 발록을 보자 발록 역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내가 들고 있는 이 대천사의 검을.

“꽤 멀리 온 것 같은데 잠깐 서지.”

달리던 내가 먼저 서자 재중이 형과 발록 역시도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봉인된 대천사의 검을 발록에게 보여 주었다.

“자, 받아.”

그런데 발록은 의외로 뜻밖이라는 듯 신기한 눈빛을 해보였다.

마치 이럴 줄 몰랐다는 듯.

“호오. 그냥 넘겨주는 건가?”

“왜? 안 주면 한판 붙게?”

“흠.”

말을 아끼는 걸 보니 정말 그럴 생각이 있었나 본데.

발록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걸 들고 튀면 사실상 되찾을 방법이 묘연해진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발록과 우리는 아주 서로 원수지간이 되겠지.

아마 발록이 온 서버를 다 뒤져서라도 우리를 따라다닐 테고.

재중이 형은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나와 발록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물었다.

<심연> 그냥 넘겨주는 거냐?

<윈> 네, 뭐…… 지금은 이게 최선인 것 같아요.

<심연> 왜? 대천사의 검이 봉인되어 있어서?

<윈> 하하. 역시 눈치가 백단이네요.

<심연> 하긴 나도 이 상황이면 똑같이 했을 테니.

재중이 형도 판단했듯.

어차피 당장 이 대천사의 검은 쓰지 못한다.

아니.

쓸 수는 있겠지만.

제 성능을 내지 못할 확률이 아주 높았다.

그렇다면 굳이 이걸 가지고 발록과 척을 질 필요가 있을까.

무엇보다 당장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안 받아? 그냥 내가 가진다?”

발록의 목적은 명확하다.

이 대천사의 무기를 가져서 마왕의 견제를 막는 것.

그 목적 하나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와 한 배를 탓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대천사의 검을 얻고 난 뒤에 우리와 갈라질 확률도 있긴 했는데.

“아. 그전에 잠시.”

【 웨폰 카피! 】

이건 일종의 보험이었다.

어차피.

내게 필요한 것은 대천사의 무기의 옵션들이었다.

대천사의 무기 그 자체가 아니라.

옵션만 획득할 수 있으면.

르아 카르테로 옵션을 죄다 옮겨올 수가 있으니.

당장 저 대천사의 검을 발록에게 줘도 내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여기서 더욱 큰 이득을 가질 수 있겠지.

내 예상만 맞다면.

그렇게 복사본 대천사의 검을 내 인벤에 넣고는 원본은 발록에게 넘겨주었다.

“인간들은 못 믿는다 생각했거늘.”

그리고 그 순간.

《 지옥의 타오르는 왕, 네임드 발록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지옥의 타오르는 왕, 네임드 발록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

오.

대체 호감도가 한 번에 얼마나 많이 오르는 거지?

시스템 메시지 창이 한 번에 다 안 보일 정도로 대폭 상승 메시지가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나 많이 알람이 울렸을까.

《 지옥의 타오르는 왕, 네임드 발록과의 호감도가 일정 이상 올랐습니다. 》

《 지옥의 타오르는 왕, 네임드 발록이 유저 주호를 인정합니다. 》

이건 예상 이상인데?

솔직히 어느 정도 호감도가 오를 것이라고는 예상했었다.

호감도라는 시스템은 그런 것이니까.

그런데 이 정도까지 한 번에 오르다니.

그건 저 발록이 다른 무엇보다 약속 지키는 것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 성정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그리고 발록이 대천사의 검을 받자마자 내게 말했다.

“너는 믿을 수 있겠군.”

내게 전달하는 말투에서부터 이전과는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느낌.

호감도가 최대치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근처까지 도달했을 지도 모르겠는데?

이건 나쁘지 않다.

<윈> 방금 호감도가 엄청나게 올랐어요.

<심연> 안 그래도 저 녀석 분위기가 완전 바뀌었네. 전에는 마지못해서 붙어 있는 것 같더니만.

그런데 발록이 대천사의 검을 받자마자 대천사의 검에서 엄청난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으음.

저건…….

마치 밀어내기 위한 그런 빛이려나?

나와 재중이 형이 잡았을 때와는 달리.

발록이 대천사의 검을 잡자마자 바로 대천사의 검에서 거부하는 듯한 빛이 터졌다.

동시에 그 빛에 발록의 전신이 타들어 갔고.

“크윽!”

텅그렁!

발록도 잡고 있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바로 바닥에 대천사의 검을 떨어뜨렸다.

옵션을 몰라서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안에 발록의 성질에 반하는 옵션이 포함되어 있던 모양이었다.

잠시 인상을 쓰던 발록이 대천사의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흠, 할 수 없군. 이건 네가 가져라. 내가 쓸 수 없으니.”

그리고는 잠시 고민하던 발록이 내게 의외의 말을 건넸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전우여.”

어……?

이게 이렇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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