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94화 (884/1,404)

#893화 대천사의 무덤 (11)

속전속결.

지금 패황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초월 연합의 거점을 차지했다.

거리상 이 속도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데?

혹시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윈> 패황이 이렇게 빨리 도착했어요?

<최강쉴더> 녀석도 준비를 꽤 했어. 아예 최정예들만 뽑아서 누구보다 먼저 초월의 거점에 도착했거든.

<윈> 흠. 그렇다고 해도 초반에 저항이 있었을 텐데 너무 쉽네요.

패황 연합 쪽에 발이 빠른 유저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패황이 있던 장소와는 거리가 꽤 있는 편이었다.

그건 고르고 골라도 많은 수를 한 번에 투입하지는 못했다는 말이고.

통상 이런 곳에 지어지는 거점은 성벽도 있고 방어 NPC도 어느 정도는 배치가 되어 있었다.

마계의 몬스터를 막으려면 어느 정도의 투자는 필요하지.

그리고 그런 면을 허술하게 처리할 전신도 아닐 테고.

당연히 거점의 방어를 뚫고 성벽을 넘으려면 꽤 시간이 걸렸을 텐데.

그런데 너무 쉽게 함락이 되어 버렸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때 전사 형이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최강쉴더> 거점 안쪽에도 지원군이 있었어.

<윈> 그래요?

<최강쉴더> 어, 우리처럼 채집꾼으로 위장한 녀석들이 바로 정문을 열어 버렸거든.

<윈> 음…… 그러면 성벽 자체가 무의미해지죠.

애초에 거점의 성벽이라는 건 외곽에서 적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용도라.

아무리 성벽에 방어를 많이 투자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그냥 성문이 열려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윈> 패황도 아주 생각이 없던 건 아니었나 봐요.

<최강쉴더> 흐흐, 그렇지. 패황이 얼마나 돈을 뿌려 놨는지 곳곳에서 배신을 때려 주잖아.

전사 형 말대로 처음부터 초월의 거점을 먹을 생각이 없었다면 이런 준비는 하지도 않았을 터.

그리고 그런 패황의 준비들이 내가 초월 연합을 물 먹이는 것과 합쳐지면서 최고의 시너지를 내게 되었다.

<윈> 초월 쪽은 어때요?

<최강쉴더> 아? 거기? 흐흐. 지금 완전 초상집 분위기지. 원래라면 지들이 패황 연합을 손쉽게 꿀꺽할 생각이었는데 말이야.

<윈> 지금은 완전히 당했죠.

심지어 아직도 초월 연합은 내가 몰아다 준 대천사의 무덤 몬스터들과 전투를 하는 중이었다.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기에 거점으로 귀환이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이젠 귀환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자신들의 거점을 패황에게 뺏겨 버렸으니.

<윈> 제일 가까운 초월 연합들의 다른 거점은 어디죠?

<최강쉴더> 흠, 보자. 여기에서부터 한 시간 거리쯤 되는 곳에 다른 거점이 하나 있긴 해.

초월 연합이 가진 거점이 이곳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직위가 있고 그곳을 몬스터들에게 방어만 가능하면 거점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으니까.

이걸 물어본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지금 초월 연합 유저들이 귀환할 장소가 그곳일 테니.

이미 제일 가까운 거점은 날아가 버렸기에.

저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최강쉴더> 흐. 짜증 좀 제대로 나겠는데?

거점의 기능 중에 하나.

《 적대 유저는 해당 거점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거점을 가진 유저에 반하는 적대 유저는 그 거점 자체를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패황의 연합과 초월의 연합은 적대 관계지.

거기다 다른 문제도 존재했다.

《 이후 일정 범위 안으로 다른 거점은 설치할 수 없게 됩니다. 》

이것 때문에 초월이 근처에 거점을 세우려고 해도 더 이상 세울 수가 없었다.

거기다 애초에 다른 유저들이 거점을 세우지 못하도록 초월은 거점의 위치를 아주 절묘하게 산맥의 입구에 걸쳐 놨었다.

굳이 추가로 세우려면 마왕의 영역 안에 세워야 하는데…….

이건 그냥 죽여 달라는 말과 동일하니 불가능.

마왕이 자기 앞마당에 거점을 세우는 유저를 그냥 둘 리가 없으니까.

한마디로 초월은 저 멀리 원래 세워 둔 자신들의 아군의 거점까지 가서 부활을 해야 한다.

당장 대천사의 무덤의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죽어 나가는 유저들이 모두 그쪽으로 강제 귀환을 당하고 있는 중일 테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건 더 가속화될 것이다.

<윈> 지금 전신의 표정을 한 번 보고 싶네요.

<최강쉴더> 흐음,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거다, 그거.

<윈> 하하, 나쁘지 않네요.

<최강쉴더>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을 녀석은 아니야.

<윈> 네, 뭐 그렇죠.

손실 여부를 하나씩 따져보면.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일단 거점이 날아가서 이 근처에서는 물약을 수급할 방법이 없었다.

저 멀리 있는 거점까지 가서 물약을 퍼다 날라야 하는데.

이게 지금까지 코앞에서 물약을 사왔던 녀석들에게는 엄청난 불편이었다.

거기다 부활 장소가 멀다는 건.

이제 모험적인 사냥을 할 수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혹여나 죽으면 저 멀리서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그 시간동안의 공백은 뼈 아프지.

하지만 전사 형 말대로 전신이 이대로 뺨 맞고 가만히 있을 위인은 아니니까.

바로는 아니겠지만 곧 병력을 모아서 다시 거점을 차지하고자 할 텐데.

문제는 역시.

부활과 물약 조달.

그리고 이런 이유들 때문에 거점 공략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죽으면 일단 거점 공략에서 아웃.

그리고 물약이 떨어져도 아웃.

장비가 부서져도 역시 아웃.

반면에 패황의 연합은 완전히 상황이 달랐다.

거점 내에서 부활이 가능한데다가.

물약까지 바로 조달이 가능했다.

둘의 전력 차가 단 한 번에 압살할 정도가 아니라면…….

전신은 절대 저 거점을 빼앗아올 수가 없을 것이다.

딱 한 번의 전투로 이기지 못하면.

그때부터는 엄청난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될 테니.

거기다 문제는 또 있었다.

기존에 유지해 오던 이 거점 근처의 고렙 사냥터가 전부 날아가게 생겼다는 것.

물약 조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 판에 원래 하던 것처럼 똑같이 사냥이 가능할 리가 없지.

그리고 과연 패황이 거점 근처에서 저들이 편안하게 사냥하도록 그냥 내버려둘까?

바로 고개를 저었다.

잠시밖에 보지 못했지만.

패황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은 아닐 것 같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들이 사냥하는 것을 막아 버릴 것이다.

그냥 주변에서 사냥하도록 뒀다가는 기껏 차지한 거점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전에 말한 거점을 뺏기면.

주변의 사냥터도 같이 뺏긴다는 게 이런 것을 의미했다.

<윈> 앞으로 이곳은 완전 전쟁터겠네요.

<최강쉴더> 흐, 네가 처음부터 노리던 것 아니었어?

<윈> 하하, 뭐 그렇죠.

전사 형 말대로였다.

지금껏 준비한 작업은 지금의 팽팽한 균형을 위한 그림이었다.

저들이 열심히 치고받아 줘야 우리가 비집고 들어갈 구석이 생기거든.

<윈> 이제 마왕을 견제할 수단만 구하면 되겠네요.

가장 걸림돌이었던 초월 연합과 패황 연합이 부딪히고 있는 지금.

또 다른 걸림돌인 마왕들을 견제하기 위한 패를 만들어놓아야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녀석들을 단번에 따라잡을 그림이 만들어지겠지.

<최강쉴더> 하, 정말 넌 대단한 녀석이야. 가망 없던 판을 이렇게 뒤집어놓다니.

<윈> 형이 잘 도와줘서요.

<최강쉴더> 흐흐, 말이라도 고맙다. 그럼 이제 대천사의 무덤을 팔 거냐?

<윈> 음, 그게 좀 문제가 있긴 한데…….

전사 형에게 대천사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풀어주자 전사 형도 심각하게 생각하는 듯 신음을 흘렸다.

<최강쉴더> 흐음, 그런 괴물이 있다고?

<윈> 네, 잘못했다가는 그냥 다 죽는 거죠.

<최강쉴더> 완전 판도라의 상자군.

맞다.

잘못 건드리면 터지는.

뭐가 나올지 전혀 알 수 없는 상자지.

<윈> 일단 재중이 형과 합류할게요.

<최강쉴더> 오케이. 그럼 상황을 계속 지켜보다가 변동사항 있으면 바로 알려 주마. 조만간 한판 붙을 것 같으니.

<윈> 네, 좀 부탁할게요. 형밖에 없네요.

예정된 패싸움이랄까.

어느 쪽이 이길지는 일단 두고 봐야겠고.

전사 형과 귓속말을 끊으며 발록이 쓸어 버린 경로를 따라 쭉 달려갔더니 저 앞에 재중이 형과 발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음?

왜 그냥 서 있는 거지?

분명히 계속 전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내 예상과 다르게 가만히 서서 앞을 살펴보는 재중이 형 옆으로 다가가자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여~. 아주 화려하게 해주었던데?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려놨어.”

“뭐, 전신이 너무 날로 먹으려고 했잖아요.”

“하긴. 아마 지금쯤 주먹을 피가 나도록 쥐고 있겠는데?”

“분해서요?”

“어, 꼭 나한테 지고 나면 그러더라니까? 무섭게 째려보면서 말이야. 전에 준우승했을 때 화면에 안 나왔지?”

“네, 딱히?”

“아주 이를 바득 갈았어. 그 녀석. 나만큼 지는 걸 죽도록 싫어하거든.”

“흠, 좋은 구경 놓쳤네요.”

“그래, 지금도 좋은 구경을 놓쳤지.”

재중이 형은 이미 상상이 된다는 듯 즐거운 표정이라.

딱히 안 봐도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왜 이렇게 가만히 있어요?”

“아, 여기서부터는 뭔가 실마리가 있어야 들어가나 본데? 추가 결계에 막혀서 아예 접근도 못 하는 중이야.”

재중이 형이 눈짓으로 정면을 가리키자 발록도 짜증이 난다는 듯 애먼 바닥을 발바닥으로 찍으면서 화풀이를 하는 중이었다.

흐음.

불투명한 거대한 이중 결계라…….

당연하지만 안에 뭐가 있는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접근도 하지 말라는 듯.

괜히 불안해지는 결계네.

“힘으로는 당연히 안 되겠죠?”

“어, 발록이 힘을 좀 써 봤는데 꼼짝도 안 해.”

“마왕이 눈치챌 정도는 아니죠?”

“저놈이 그렇게 바보는 아니니까.”

“적당히 쳐서는 깨지 못한다는 말이네요.”

“그래, 이대로 시간만 보내긴 아까운데.”

아마 재중이 형도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힌트를 찾아본 것 같지만.

딱히 방법이 없는 모양이었다.

발록이 힘을 쓰는 건 마지막에 해본 방법일 테고.

“으음, 난감하네요.”

괜히 건드렸다가 안에서 뭐가 나올지도 모르겠고.

금속의 정령이 이야기했던 건 절대 무시할 만한 게 아니었다.

흐음.

역시 여기서는 좀 도움을 받아볼까.

곧장 르아 카르테를 꺼내서 금속의 정령을 불러보았다.

“보고 있지?”

“흥, 오지 말랬는데. 기어코 들어왔네.”

내 말에 금속의 정령이 뾰루퉁한 표정으로 르아 카르테의 검신에서 실체화되어 바깥으로 나왔다.

“아직까진 딱히 문제없는데?”

“우웅, 그러네.”

금속의 정령도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히 모르기는 해도 정찰조인 베일이 들어온 구간보다 훨씬 안쪽으로 들어온 상태일 것이다.

대략적인 위치상으로 보면.

이곳이 대천사의 무덤의 중앙 지점일 테고.

그러고 보니 왜 대천사의 무덤이지?

지금껏 달려오면서 무덤과 비슷한 그 어떤 형태도 보지 못 했다.

그렇다고 지금 정면의 이 불투명한 결계가 무덤이라고 보긴 좀 애매한 면도 있었다.

역시 퀘스트를 했어야 하나…….

중간을 다 끊어먹고 바로 다이렉트로 이런 곳에 달려드니 힌트가 하나도 없을 수밖에.

“전신한테 좀 가르쳐 달라고 해요?”

“큭, 그 녀석이 잘도 가르쳐 주겠다.”

“저도 뭐 그냥 해본 말이에요.”

아마 전신이라면 뭔가를 알고 있을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여기에 그렇게 목맬 이유도 없고.

결국 금속의 정령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전에처럼 결계를 통과하는 건 안 될까?”

“또 날로 먹으려고?!”

“끙, 그런 말은 누가 가르쳐 줬냐?”

“네가!”

흠.

할 말이 없네.

옆에선 재중이 형이 배를 잡고 웃어 버렸다.

“크큭, 주인 닮는 정령이라니.”

“아니야!”

후.

근데 난 꼭 하지 말라는 건 하고 싶어지더라.

거기다 방금.

내 물음에 아니라는 말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 된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그대로 르아 카르테를 들고 불투명한 하얀 결계에 발을 들이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대천사의 무덤 주인이 자격이 있는 당신을 주목합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