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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92화 (882/1,404)

#891화 대천사의 무덤 (9)

처음에는 그저 산맥에 있는 녀석들을 몰아서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중간에 생각을 바꿔 먹었다.

일단 지나온 산맥에서 그렇게까지 강력한 녀석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할까.

추격자들을 피해 대천사의 무덤까지 쭉 달려오면서 확인한 결과.

못 잡겠다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뭔가가 없었다.

내가 이런 기분을 느낀다면…….

과연 이 정도의 녀석들로 몹몰이를 한다고 그게 효과가 있을까?

곧장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대하려는 녀석들은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일반 유저들을 씹어 먹는 수준을 가진 녀석들이니까.

거기다 그런 녀석들이 한둘만 있는 것도 아니지.

길드 단위.

연합 단위.

에이스급만 못해도 최소 몇 백은 될 거야.

그리고 다른 유저들도 천 단위는 가볍게 넘어가고.

거기다 그 유저들의 전력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은 다들 서버에서 뽑고 뽑아서 추린 녀석들이었다.

그냥 일반적인 유저들을 상대한다고 움직였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결과가 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중간에 계획을 바꾼 것이다.

분명히 대천사의 무덤에 들어와서 전멸했다고 했었지.

그렇다는 건.

녀석들도 이 대천사의 무덤 안에 있는 몬스터들은 꽤 버거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쭉 살피다 보니 감각 속에 재중이 형과 발록으로 느껴지는 존재가 걸려들었다.

아무래도 안쪽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바깥쪽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직 대천사의 무덤에 진입할 방법을 찾지 못한 듯했고.

차라리 저게 다행이지.

<윈> 형, 어때요?

<심연> 뭐, 그냥 적당히 외곽만 돌고 있다.

역시.

생각했던 대로인가.

<윈> 발록은 어때요?

<심연> 그냥 근질근질해서 난리지. 너무 오래는 못 붙들어 둘 것 같다. 아마 좀 더 참다가 그냥 폭발하지 싶은데?

<윈> 시한폭탄이네요.

<심연> 그렇지. 그것도 대형 폭탄.

<윈> 정 안 되면 제대로 알려 주고 말려 봐요.

<심연> 넌 여기서 계속 살라고 하면 가만 있겠냐?

<윈> 아니죠.

<심연> 결국 터질 거야. 그전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놔.

재중이 형도 귀환을 못 하는 게 저 발록을 잡아둘 마지막 카드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발록을 데리고 나갈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할 수 없나.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고 돌아올 수밖에.

<윈> 그럼, 근처 좀 돌아다닐게요.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바로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확인한 몬스터들은…….

“후, 대박이군.”

어지간해서는 이런 말을 안 하는데.

대천사의 무덤 곳곳에 포진되어 있던 몬스터들은 완전히 급수가 달랐다.

일단 네임부터가 빨갛다 못해 시뻘겋다고 해야 하나.

피를 잔뜩 머금은 딱 그런 색의 네임들을 보고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스탯이 높아 스치면 사망은 아니겠지만…….

잘못 걸리면 그 자리에서 경직에 걸려 난타를 당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윈> 형, 여기 몬스터들요. 안 이상해요?

<심연> 많이 다르지?

<윈> 네, 유독 여기만 종류가 다르네요.

보통 사냥터마다 존재하는 몬스터들은 그 네임드의 특성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테면 얼음 여왕의 사냥터에는 얼음 계열의 몬스터들이.

그리고 팬텀 나이트는 유령 계열이라던가.

발록의 사냥터에서는 죄다 화염 계열 몬스터들이었고.

대체적으로 그 사냥터나 유적지의 특색을 따라가는데.

여긴 그런 통일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흡사.

다른 곳에서 살던 녀석들이 대거 이사 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대충 몬스터들만 살펴봐도 네임드의 성향을 추측할 수 있지만 여긴 그게 아예 불가능했다.

저주받은 켄타로우스.

절규하는 세이렌.

다크 그리핀.

지옥불 유니콘.

블러드 페어리.

.

.

뭐지.

이 통일성 없는 조합은.

거기다.

몬스터들의 상태도 굉장히 이상했다.

너무 평화로운데?

마치 이곳이 천국이라도 되는 듯 아주 편안한 자세로 자리 잡고 있었다.

사납게 돌아다니는 마계의 몬스터들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느낌.

일단 켄타로우스는 반인반마의 형태를 띈 전사였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나무 옆에서 열매나 따며 아주 편안한 상태였다.

레벨은 미친 듯이 높아 보이는데 말이지.

그리고 그 옆에서 세이렌이 듣기 좋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나릇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심지어 유니콘은 그런 세이렌 옆에서 잠들 듯이 누워 있었고.

그 위로 페어리가 빙빙 돌며 재잘재잘하면서.

공중에는 짙은 갈색의 거대한 그리핀이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무심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레벨만 높지.

이곳만 보면 그냥 마계와는 다른 세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말 저 레벨이 맞긴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조금은 마음이 풀어져서 녀석들의 근처로 다가서는데.

갑자기 녀석들의 고개가 확 치켜지면서 내쪽으로 일제히 돌아갔다.

그리고 약속이나 하듯 동시에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침입자!!!!”

“찢어 죽여!!”

“캬아아악!!”

“케에에엑!!”

켄타로우스는 바로 몸이 보라색으로 물들면서 시꺼멓게 죽은 색으로 변했고.

세이렌은 피부가 막 갈라지더니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노래를 대신해 청각을 괴롭혔다.

거기다 하얗게 빛나던 유니콘의 전신은 급격하게 불에 타올라 완전히 불의 화신이 되어 버렸다.

페어리는 두 눈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며 매섭게 날 보려보았고.

하늘에서는 그리핀이 온몸과 눈의 색까지 검게 변해 지상으로 빠르게 하강을 했다.

발톱을 크게 치켜세우며.

큭.

아까와는 완전히 다르잖아?

그리고 이런 녀석들이 한둘도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몬스터들이 죄다 링크가 걸리면서 순식간에 내 사방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심지어 하늘에는 그리핀과 어느새 날아오른 유니콘의 공중 부대가 빽빽하게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아니.

이것들 대체 얼마나 먼 녀석들까지 링크가 걸리는 거지?

따로 몹몰이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내 주변은 몬스터 천국이었다.

세이렌의 절규는 그 자체로 디버프인지 발이 느려진 기분이 들었고.

페어리가 날아다니며 사방에 뿌리고 다니는 피의 꽃가루는 바람에 휘날리면서 피할 수가 없게 만들었다.

켄타로우스는 다리를 크게 바닥에 찍으며 지진을 만들어 냈고.

미친.

디버프가 죄다 광역이잖아?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그리핀들이 날개를 세차게 휘둘러 돌풍을 만들어 더니 곧 지상을 굉장한 압력으로 내리 눌렀고.

유니콘은 뿔이 진동하더니 바로 뇌전을 사방에 뿌리며 일대를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하나같이 미친놈들이네.

무려 광역 디버프가 다섯 종류가 동시에 겹치며 내 몸을 짓누르려고 하자 바로 스킬부터 시전했다.

【 워프! 】

이건 피할 방법이 없어.

완전히 둘러싸인 상황에서는 아무리 잘 빠져나간다고 하더라도 결국 발목을 붙들렸을 것이다.

그렇게 워프로 녀석들 바깥으로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대천사의 무덤을 일주하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멈추면 죽는다.

이러면 그냥 계속 달리는 수밖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계속해 무덤 전체를 드리블하듯이 달려 나가자 곧 무덤 내에 있던 몬스터들 중 꽤 다수가 내 뒤에 개떼처럼 붙었다.

아마…….

저들이 펼치는 디버프 중 하나라도 스치면 바로 죽을지도?

그만큼 내 뒤를 따라붙은 몬스터들의 기세는 흉흉했다.

숫자 역시도 어마무시했고.

어찌나 링크가 잘 되어 있는지 개떼처럼 몰려서 지상과 하늘 할 것 없이 내 뒤를 따라왔다.

휴.

땅에서 따라오는 녀석들은 어떻게든 하겠는데.

유니콘과 그리핀이 문제다.

심지어 하늘을 날면서 앞서나갔다가 내가 달리는 경로에 먼저 뛰어드는 놈들도 있었다.

그런 녀석들은 감각으로 미리 발견하고 철저하게 피해 다녔으니 망정이지.

일반적인 유저들이었으면 이미 죽어도 백번은 넘게 죽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녀석들의 속도가 절대 느리지 않았다.

제일 느릴 것 같았던 세이렌마저 스포츠카가 달리듯 따라붙는 마당에.

그것도 모자라 목소리가 퍼지는 아주 멀리까지 디버프가 걸리는 탓에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페어리는 그보다 더했고.

날개를 몸에 바싹 접더니 마치 총알 같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날아와 나보다 앞서가는 녀석까지 보였다.

그런 녀석들을 피한다고 거의 춤을 추다시피 몸을 꺾는 곡예를 보여 주었다.

땅도 켄타로우스의 지진에 들썩거려 제대로 달리기가 쉬운 게 아니고.

전에 베일이 유적지를 절반 정도 들어갔다고 했었나?

대체 어떻게 한 건지 존경스러울 정도네.

뒤에 붙은 몬스터들의 숫자가 불어나면 불어날수록 내 생존확률은 점점 떨어져 갔다.

후.

이 이상은 못 모아.

거의 감각에 걸리는 무덤 내 몬스터들의 절반 정도를 뒤에 붙이자 한계라 생각해 바로 무덤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더 몰았다가는 오히려 내가 죽겠으니까.

<윈> 형, 저 가요!!

<심연> 야이, 미친놈아. 대체 몇 마리나 끌고 가는 거야?

<윈> 저도 몰라요!

재중이 형도 내 뒤에 구름처럼 따라붙은 녀석들을 확인했는지 바로 미친놈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고 퍼부어 주었다.

큭.

그리고 확실한 건.

이 녀석들을 몰고 가기만 하면.

누가 얼마나 되었든지 간에.

무조건 다 죽는다!

심지어 하나같이 광역기에 특화된 괴물들이라.

그런 녀석들이 대략 안 되도 수백 단위로 붙었으니.

지금 현실적으로 한자리에 끌어 모을 수 있는 최강의 괴물 군단이랄까.

딱 하나 문제는.

이 녀석들이 무덤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가였는데.

이건 달리다가 이미 확인을 했었다.

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그리핀과 유니콘이 결계 바깥에도 날아다니는 것을.

그렇게 몬스터 대군단을 이끌고 결계를 지나오자 역시 이 녀석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내 뒤를 따라 산맥을 타고 달려 내려왔다.

“좋아!”

나름 혼자 환호를 하자 금속의 정령이 헬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미쳤어…….”

“응? 뭐라고?”

“미쳤다고오!”

“정령이 말이 너무 험한 거 아냐?”

“그럼 돌았어?”

휴.

아니 됐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은 좀 제정신이 아닌 것 같기도 해.

아마 서버 역사상 이렇게 많은 몬스터들을 몰고 다니는 건 내가 최초가 아닐까.

심지어 녀석들의 광역기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달리다 보니 이번엔 산맥에 있는 몬스터들까지 자극을 받았는지 이 몬스터 군단에 합류를 해버렸다.

어디서 다 튀어나왔는지 숫자도 너무 많아서 이젠 세는 것도 포기했고.

딱 하나 위안 삼자면.

산맥의 몬스터들은 대천사의 무덤 안에 있던 녀석들보다 좀 반응이 늦다는 점일까.

그게 아니었으면 이미 바닥에 싸늘하게 누워 있을 확률이 더 높았다.

후.

슬슬 한계야.

아무리 잘 피해도 눈먼 공격들 때문에 체력 물약을 물 마시듯 비웠음에도 벌써 물약의 사분의 삼 정도를 써 버렸다.

최대한 빨리 녀석들을 떨궈 놔야 해!

그렇게 산맥을 스키 타듯이 최단거리로 미친 듯이 뛰어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감각에 뭔가가 걸리기 시작했다.

이건…….

유저다!!

아마도 산맥 속으로 들어와 모습을 감추고 있는 초월 연합들의 군영이 있는 끝단에 거의 도달한 모양이었다.

이젠 완전히 바닥난 마지막 물약을 입에 털어 넣으며 외쳤다.

“조금만 더 가자아!!”

유저들이 완전히 눈에 들어오자 곧장 머리에 로브를 확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그대로 옹기종기 모여 있던 유저들의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어? 저건?”

“정찰조 다 처리한 거 아니었어?”

“이 새끼들. 일 똑바로 안 해?!”

“아놔, 또 깨지겠네.”

“방금 뛰어 들어 온 놈 보이기 전에 빨리 잡아!”

그런데 나만 봤지 산맥의 어둠 속에서 같이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은 보지 못한 듯했다.

캬아아악!!

키에에엑!!

크어어엉!!

“어……?!”

“뭐, 뭐야?!”

“무슨 소리가……!”

“대체 몇 마리……!”

“몬스터다!!!!”

“미친!!! 너무 많아!!!”

내 뒤를 따라온, 아주 새까맣게 몰려 넘치는 사운드로 산맥을 울리는 몬스터들의 향연에 감탄할 틈도 없이 유저들 사이에서 파묻혀 곧장 스킬을 시전했다.

【 시간의 서! 】

【 워프! 】

그렇게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보이는 산맥을 빽빽하게 채운 연합군들에게 웃으면서 미션을 전했다.

“그럼, 다들 열심히들 싸워 보라고!”

과연 살아남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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