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0화 대천사의 무덤 (8)
“나가는 게 가능하다고?”
“응.”
이 대천사의 무덤의 경계는 일종의 던전이 아니었던가?
보통 이런 장소에 한 번 진입을 하면 다시 빠져나가기 위해 던전을 완전히 클리어하거나 유적지를 공략해야만 했다.
그런데 지금 금속의 정령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듯 너무 쉽게 대답해서 잘못 들었을 거라 착각할 정도였다.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도 어깨를 으쓱했다.
“나갈 수 있으면 좋은 거지.”
“네, 뭐 그렇긴 하죠.”
곧장 금속의 정령을 보면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지?”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제때 나갈 수만 있다면야.
너무 오랜 시간 이곳에 묶여 있을 수는 없어.
지금도 외부에서는 일이 진행되는 중이다.
그사이에 원하는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앞으로 진행해야 할 것들이 모두 밀리게 된다.
금속의 정령을 바라보자 녀석이 내 품을 벗어나 날아가더니 이내 대천사의 무덤 결계를 향해 쭉 날아갔다.
발록과 재중이 형을 그냥 튕겨낸 것만 봐도 저 결계가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 수 있었다.
저런 결계에 닿았다가는 금속의 정령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위험……!”
빠르게 손을 뻗어 금속의 정령을 잡으려했는데 그 순간.
마치 거짓말처럼 금속의 정령이 대천사의 결계를 슥 하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듯.
튕겨 나오지도 않았고.
아니.
그냥 통과해 버렸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음?”
“흐음.”
재중이 형과 발록도 꽤 놀란 눈빛으로 금속의 정령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은 지나가지 못해 벽으로만 생각했던 결계를 금속의 정령은 너무 쉽게 건너가 버렸으니까.
“지나갔네요?”
“어, 그러네.”
나 역시도 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이렇게 쉽게 지나가?
그때 대천사의 결계 바깥으로 넘어간 금속의 정령이 내게 손짓했다.
“뭐 해? 안 올 거야?”
“……나도 되나?”
“응. 안 갈 거면 다시 돌아가고.”
“아니. 지금 간다.”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는데.
금속의 정령이 말하는 걸 봐서는 나 역시도 지나갈 수 있는 모양이었다.
“형, 넘어가죠.”
그러자 반대편에 있던 금속의 정령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너만!”
“나만?”
“응. 자격이 없는 자는 못 지나가.”
“방금 뭐라고……?”
“아이, 정말. 너만 자격이 있다고.”
그 순간.
아까 전사 형에게 들었던 말들과 방금 금속의 정령이 한 말이 겹쳐졌다.
“자격이 있는 자라…….”
이건 뭔가 조건이 있다는 뜻인데…….
그리고 그 조건이 나만 가능하다는 건.
결국 내가 가진 뭔가가 작용했다는 말이 된다.
다만 그걸 굳이 힘들게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제일 잘 아는 녀석에게 물어보면 되니.
“혹시 이거야?”
어차피 네임드인 발록이야 나나 재중이 형과는 너무 달라서 오히려 공통점을 찾긴 힘들었다.
반대로 재중이 형과의 차이를 찾자면…….
내가 가진 아이템 정도랄까.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건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
그중에서도 금속의 정령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라면.
르아 카르테겠지.
한 손에 르아 카르테를 들어 올리자 금속의 정령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정령신의 무기라는 거려나…….”
이게 어떻게 대천사의 무덤에서 작용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다른 유저들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을 갖추게 된 건 확실했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이곳을 들락날락거릴 수 있으니까.
“형, 일단 넘어가 볼게요.”
“그래.”
금속의 정령이 확신을 하니 괜찮겠지만 혹시나 해서 긴장을 하며 결계를 넘었는데 내 몸이 다 넘어갈 때까지 내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금속의 정령에게 물어보자 잠시 재중이 형과 발록을 바라보더니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그것도 아주 또렷하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 결계는 정령들의 힘이야.”
“뭐?”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대답에 나나 재중이 형이나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갑자기 정령이 왜 나오지?
그것도 마계 한복판에서?
거기다 대천사라는 존재도 사실상 정령과는 다른 존재 아니던가?
아니지.
대천사라는 녀석이 정령의 힘을 쓸 수 있다면.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닌데…….
궁금한 것들이 계속 떠올라 물어보려 했는데 그때 금속의 정령이 날아와 손가락으로 입가를 막았다.
그러면서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은 안 돼.’
금속의 정령이 슬쩍 발록을 바라보는 걸 보니 아마 발록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 듯했다.
나도 곧장 눈치를 채고는 바로 화제를 돌렸다.
“아, 형. 일단은 계획대로 해야겠어요. 금속의 정령 덕분에 바깥으로 나왔으니까.”
“흐음, 그래. 일단 우린 못 나가니까 바깥은 네게 맡긴다.”
“형은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그러자 재중이 형이 발록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를 살살 공략해 보고 있어야지.”
“둘이 가능하겠어요?”
“발록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음.
그 발록이 제일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다.
<윈> 발록이 딴생각을 할까 봐 그러죠.
<심연> 어차피 녀석은 보험이 필요해. 여기 계속 갇혀 있을 게 아니라면.
<윈> 만약에 발록이 대천사의 무구를 쓸 수 있으면요?
<심연> 뭐, 그때는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지.
말은 저렇게 해도 생각을 안 하고 온 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대천사의 무구를 발록에게 그냥 넘겨준다고 해도 우리에게 딱히 손해가 될 건 아니지.
적어도 마왕이 날뛰는 건 막아 줄 테니까.
뭐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생긴다는 건 문제가 될 테지만.
그나마 최악보다는 차악 쪽이 낫다.
마왕 자체가 우리와 적대 관계라.
반면에 발록은 적어도 적대 상태는 아니니.
적대적인 마왕을 눌러 주기만 해도.
길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여서 정상적인 상황으로 바꿀 수도 있는 일이고.
가급적이면 우리가 가지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일단 무조건 지금보다야 상황이 좋아진다.
손해 볼 게 없는 게임이지.
“네, 그럼 이쪽은 형에게 맡길게요.”
대천사의 무덤 공략에 부족한 무력은 발록이 맡을 수 있었다.
그럼 재중이 형은 반드시 해답을 찾아낼 터.
잘하면 정말 대천사의 무덤을 둘이서 끝내지 않을까.
“너도 잘하고.”
그렇게 서로 결계를 사이에 두고 안과 밖으로 나뉘었다.
어느 정도 대천사의 무덤에서 멀어졌다고 생각이 들 때.
아까의 이야기를 금속의 정령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이제는 못 들을 거야.”
그러자 내 주변을 빙빙 돌던 금속의 정령이 멀리 떨어진 결계를 보면서 완전 예상에 빗나가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령왕들이 모여서 여길 봉인한 거야.”
“정령왕이라고?”
금속의 정령에게 정령왕에 대해 듣자마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정령왕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
《 정령왕에 대한 정보가 열람됩니다. 》
《 관련 NPC들에게서 정보를 추가 습득할 수 있습니다. 》
최상급 정령을 본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바로 정령왕이라니.
아마도 급수로 따지면 마왕과 동급이 아니려나?
아니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그것도 복수로 말하는 걸 봐서는 하나도 아닌 모양이었다.
최소 둘 이상.
그런데…….
정령왕이 마계 한복판에서 봉인을 했다고?
왜?
그리고 무엇을?
아니 그보다 어째서 금속의 정령이 발록이 있는 곳에서 말하길 꺼렸던 거지?
혹시 정령왕의 존재가 문제가 되는 건가?
발록에게?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정령왕이 왜 여기 결계를 만든 거야?”
궁금한 것들이 많지만.
일단은 근본적인 문제부터.
내 물음에 금속의 정령이 시선을 돌려 대천사의 무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안에 무시무시한 녀석이 있으니까.”
“뭐?”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금속의 정령의 날개가 바르르 떨렸다.
설마 이건 겁을 먹은 거려나?
그동안 뭐가 나오든 코웃음 치던 녀석이?
“그게 대체 뭐지?”
아무래도 대천사의 무덤이라는 것이 생각만큼 평범한 장소는 아닌 모양이었다.
어쩌면 단순한 유적지 정도가 아닐 수도…….
잠시 주저하던 금속의 정령이 이내 큰 숨을 몰아쉬고는 내게 말해 주었다.
“대천사…… 아니, 마신에 근접한 악마가 잠들어 있어.”
응?
대천사라고 했더니 이젠 악마라고?
그것도 마신에 근접한?
그리고 그다음에 금속의 정령이 말해 준 것을 다 듣고 난 뒤에는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윈> 형, 우리가 틀렸어요.
<심연> 뭐?
<윈> 거기서 절대 내부까지 들어가지 마세요.
잘못 건드렸다가는.
유저들의 전쟁이고 뭐고 다 끝이니까.
* * * * *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하고 난 뒤.
곧장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위장 아이템으로 두 검을 모두 가려 놓았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누군가 볼 수도 있을 테니 미리 조심해야겠지.
잠시 고개를 돌려 대천사의 무덤 쪽을 바라보았다.
설마…….
저 안에 그런 미친 것이 숨겨져 있었다니.
솔직히 감당도 안 되는 수준이라.
거기다 이제 와서 느끼는 건데 왜 마왕이 저 대천사의 무덤에 접근도 안 하는지 잘 알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마왕 같았어도 그냥 둔다.
돌 바라보듯 없는 셈치고 있는 편이 낫겠지.
“전신 그놈은 저 안에 뭐가 있는지 알고 움직인 거냐…….”
뭐 알고 그랬을 리는 없겠지만.
만약 다 알고도 이 앞마당에서 이렇게 설치고 있는 거라면...
전신의 배짱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발록은 재중이 형이 적당히 끌고 다니면 되고…….”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오히려 저 대천사의 무덤에 들어간 발록이었다.
휴.
이거 괜히 발록을 데리고 온 건가.
처음부터 저 녀석이 대천사의 무덤에 들어가게 두는 게 아닌데.
왠지 실수했다는 생각이 확 밀려왔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발록은 대천사의 무덤 안에 들어가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재중이 형이 최대한 시간을 끌어 주길 바랄 수밖에.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한마디를 할 수밖에 없었다.
“밸런스가 미쳐 날뛰는군.”
말이 유적지지.
저건 그냥 핵폭탄이었다.
건들면 터지는.
애초에 무슨 생각으로 저런 비정상적인 존재를 산맥 가운데 박아놨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되네.
공략이 정말 가능한 건가 의문이기도 하고.
“아, 모르겠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 순서가 바뀌긴 했지만.
대천사의 무덤에 들어간 덕분에 우리를 따라붙던 추격조의 눈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그렇다는 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 산맥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거지.
녀석들은 내가 여기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걸 전혀 알 수 없을 테니까.
“어쨌든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잖아.”
“응응, 결계가 무너지면……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야.”
그래.
무서운 일이 뭔지 대충 알 것 같다.
“그런데 그 무서운 곳에 다시 들어가야 할 것 같거든.”
“왱?!”
“산맥에 있는 놈들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내 뜻을 전혀 모르겠다는 듯 금속의 정령이 표정이 물음표로 바뀌었다.
“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지.”
어설프게 산맥에 있는 몬스터들을 써 봐야 역효과만 날 것이다.
최소한.
대천사의 무덤 정도는 써 줘야지.
“결국 제일 안에 있는 녀석만 안 건들면 되는 것 아냐?”
“우…… 미쳤어.”
“큭, 그런 소리 자주 들어.”
설마 금속의 정령에게 그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만.
하지 말라는 건 괜히 해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와서 다시 대천사의 무덤 안으로 입장했다.
금속의 정령도 마지못해 따라왔다.
《 빛과 어둠이 뒤섞인 혼돈. 대천사의 무덤 경계에 입장하셨습니다. 》
“보자, 가장 가까운 곳이…….”
감각을 잔뜩 끌어올려서 주변을 살피자 꽤 많은 녀석들이 감각에 걸려들었다.
【 고대 마수의 심장 (베히모스)! 】
【 헤이스트! 】
【 유령보! 】
“후, 그럼 몹몰이를 한번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