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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90화 (880/1,404)

#889화 대천사의 무덤 (7)

이렇게 쉽게 떨어져 나가다니.

여기까지 우리들의 지나간 흔적만을 발판 삼아 정말 집요하게 쫓아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쉽게 포기한 감이 있었다.

다시 감각을 펼쳐보아도 녀석들이 아예 내 인지 범위 바깥으로 벗어났는지 전혀 확인이 되지 않았다.

쫓아올 땐 그렇게 느렸는데.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네.

“형, 녀석들이 아예 사라졌어요.”

“그래? 언제부터?”

“우리가 이 대천사의 무덤 경계에 들어서고 난 뒤부터요. 인지 범위를 벗어나더니 이젠 잡히지도 않아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재중이 형도 의아하단 표정으로 저 멀리 녀석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뒤를 바라봤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주변 풍경이 바뀐다거나 뭔가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이 대천사의 무덤 경계를 넘어온 것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추격을 포기한다?

이건 대천사의 무덤 경계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어.

혹시나 몰라 감각을 펼쳐서 경계 주변을 살폈는데 아직까지는 그 어떤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설마 이곳은 몬스터가 없는 건가?

오히려 이 경계 바깥의 산맥에서 몬스터들이 다수 감지되었다.

경계를 기점으로 거짓말처럼 몬스터들이 없네.

이걸 재중이 형에게 말하자 재중이 형도 다소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 이유도 없이 추격을 포기할 놈들이 절대 아닌데…….”

“네, 죽일 것처럼 따라붙더니 너무 쉽게 떨어졌어요.”

“여기 이 장소가 문제이려나?”

잠시 생각을 하던 재중이 형이 내게 물었다.

“베일에게 뭔가 들은 게 있었어?”

“아뇨, 전 없죠. 아, 전사 형은 이야기를 많이 했으니 혹시 알지 몰라요.”

그리고는 바로 전사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윈> 형, 혹시 아까 베일하고 대화하다가 여기 대천사의 무덤에 대해서 좀 들은 것 있어요?

<최강쉴더> 왜? 무슨 일 생겼어?

<윈> 아직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문제가 생길 것 같기도 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나면요…….

일단 지금의 상황을 알아야 전사 형이 맞춰서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사 형이 귀환하고 난 뒤에 초월 측에서 추격조가 붙은 것과 계속해서 산맥을 탄 점.

거기에 녀석들 역시도 흔적을 따라 추격했다는 사실을 모두 알려 주었다.

마지막에 대천사의 무덤 경계에서 도망치듯 사라진 것까지도.

그러자 전사 형이 뭔가 생각나는 게 있는지 내게 말해 주었다.

<최강쉴더> 흠, 베일이 특별한 말은 따로 하진 않았는데…….

<윈> 뭔가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이 없을까요?

<최강쉴더> 음, 그러고 보니 뭔가 찝찝한 말을 하긴 했었어.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들었거든.

<윈> 그게 뭐예요?

<최강쉴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비석이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 벽화가 그려져 있고 문구도 적혀 있다고 했어. 무슨 문구라고 했더라…….

전에 유저들이 대천사의 무덤인 이 유적지를 발견했을 때 분명히 벽화를 봤다고 했었다.

이게 그건가 본데…….

잠시 생각한다고 뜸을 들이던 전사 형이 다시 말을 이었다.

<최강쉴더> 기억에 ‘자격이 없는 자. 이곳에 뼈를 묻으리라.’ 아마도 그런 말이었던 것 같다.

자격이 없는 자?

<윈> 특별할 건 없네요.

<최강쉴더> 어, 그때는 그냥 유적지에 흔히 있는 그런 멘트 정도라 생각했거든.

<윈> 저도 그래요.

사실 그렇게 굉장하거나 대단한 말은 아니었다.

흔히 있을 법한.

딱 그런 문구니까.

그래서인지 전사 형도 크게 신경을 안 썼던 모양이고.

문제는 저 말이 지금 도움이 되는 문구이냐는 건데.

곧장 재중이 형을 보며 물었다.

“들었죠?”

“어, 이곳에 뼈를 묻으라고.”

“자격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일까요?”

“글쎄. 대천사의 무덤에 무단으로 침입한 유저를 뜻하는 건가?”

“그게 맞겠죠.”

너무 흔해서 그런지 아무리 봐도 딱히 힌트가 될 만한 게 없어…….

정말 이 문구가 적들이 그냥 돌아간 것과 연관이 있을까?

아님 다른 이유 때문에?

괜히 찝찝함을 남겨놓고 움직이긴 불편한데.

녀석들이 돌아간 것과는 별개로.

곧 우리 작전을 위해 움직이긴 해야 했다.

바로 알아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관 없겠지.

그런데 나와 이야기 중이던 재중이 형의 뒤편에서 뭔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발록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뭐하는 거지?

“발록. 무슨 문제 있어?”

이제껏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발록이 뭔가에 흥미를 가진다고?

내가 물어보자 발록이 돌아보면서 말했다.

“여기 묘한 경계가 있군.”

“그게 보이는 거야?”

그 물음에 발록이 맞다는 듯 살짝 고개를 까닥거렸다.

“방금 지나올 때는 없었는데 새로 생겼군.”

일단 나와 재중이 형 눈에는 따로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와 달리 발록은 아마 네임드라서 그런 것들이 확인되는 것 같았고.

흐음.

아마도 저건 대천사의 무덤에 포함되는 경계인 모양인데.

눈으로 확인하진 못 해도 아까 시스템 메시지에 나왔으니 틀리진 않을 것이다.

그때 발록이 허공으로 손을 뻗는 순간.

발록의 손끝과 맞닿은 경계가 강렬한 하얀빛의 스파크를 일으켜 녀석의 손을 튕겨내었다.

그것도 발록의 피부를 까맣게 태워 가면서.

파지지직!

전격은 아닌데?

방금 저건 마치 빛의 파장이랄까.

그렇게 허공에서 갑자기 생겨난 빛은 곧 다시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순간, 확실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형, 봤어요?”

“어, 결계군.”

“네. 아주 또렷하게 보이네요.”

그것도 하나의 거대한 벽처럼 세워진 결계.

아니지.

우리 쪽으로 굴곡이 져 있는 것을 보면.

저건 마치 돔 형태로 우리를 감싸고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규모로.

타격을 받아 좀 짜증이 났는지 결계를 노려보던 발록이 부딪힌 손을 휙 흔들자 시커멓게 탄 피부가 바로 원상태로 복구가 되었다.

발록에게 유효한 타격.

그렇다는 건…….

“역시 신성 계열이겠네요.”

“어, 아니면 저 정도로 타격을 주진 못하겠지.”

확실히 이곳이 대천사의 무덤은 맞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경계에 넘어올 때는 아무런 타격이 없었…….

“형, 여기서 뼈를 묻는다는 말이…….”

“그래, 일단 한 번 들어오면 못 나간다는 뜻이겠지.”

무려 발록 정도의 네임드가 건드린 것만으로도 저런 타격이라면 뚫는 건 거의 무리일지도 모른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저거 뚫을 수 있겠어?”

내 물음에 발록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쳇, 이까짓 것. 내가 힘만 쓰면……!”

그러면서 힘을 끌어올리려고 하자 재중이 형이 급하게 발록을 막았다.

“마왕과 하루 종일 드잡이질하고 싶으면 해보시던가.”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발록의 몸이 바로 멈칫했다.

아마 이 결계를 뚫으려면 발록도 쉽지 않을 터.

그러면 결국 본신의 힘을 끌어다 써야 한다.

이게 썩 그렇게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고.

재중이 형도 상황을 인지했는지 내게 말했다.

<심연> 일단 발록은 이곳을 못 나간다고 생각해야겠어.

<윈> 네, 어차피 나갈 필요도 없겠죠.

애초에 발록의 목적은 이곳 대천사의 무덤이니까.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재중이 형이 곧 발록 옆으로 걸어가더니 결계쯤으로 보이는 곳에서 그대로 섰다.

“형, 뭐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중이 형이 창을 크게 휘둘러 결계를 후려쳤다.

콰지지직!!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역시 강렬한 빛을 내뿜으면서 재중이 형이 지니고 있던 창을 태워 버렸다.

재중이 형은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바로 창을 바닥으로 던졌고.

덕분에 창을 타고 흐르던 빛이 재중이 형에게까지는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계속 창만 태우다가 곧 사그라들었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결계를 쳐다보았다.

“이거 참. 나도 안 된다는 건가.”

재중이 형도 안 된다고?

솔직히 발록은 네임드니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유저인 재중이 형까지도 안 된다는 건…….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에 아까 추격을 그만두고 돌아간 녀석들이 떠올랐다.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내게 말했고.

“추격자들이 괜히 돌아간 것이 아냐. 아마 우리가 자신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으니 그냥 돌아간 거겠지. 대천사의 무덤으로 한 번 들어가면 아예 못 나올 테니 다시 나와서 자신들을 공격할 수도 없을 거니까.”

그 말대로 쓸데없는데 힘을 빼지 않겠다는 거였다.

굳이 우리를 따라 들어와 봐야 녀석들 역시도 갇히고 말 테니.

그러면 결국 안에 들어와서 죽는 것밖에는 길이 없는데 지금 그런 모험을 하기에는 꽤 무리가 있었다.

만약 괜히 대천사의 무덤 안의 몬스터에게 죽는 일이 생긴다면 잘못하다가 귀한 아이템을 드랍하게 될 수도 있는 노릇이라.

정말 재수가 없어서 고강화 무기라도 떨어뜨리면?

당장 큰 전쟁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녀석들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네요.”

“어, 덕분에 추격을 피한 건 좋지만.”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주변을 바라봤다.

“우리가 갇힌 셈이군.”

“혹시 귀환은요?”

“확인이 어렵진 않지.”

그리곤 곧장 귀환을 썼는데 아까 돌아간 전사 형과 달리 재중이 형은 여전히 이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귀환 불가 지역이네.”

“난감하네요.”

이제야 앞선 원정대가 왜 매번 다 죽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귀환해서 도망을 못 가니 당연한 결과이려나.

결국 녀석들은 우리가 여기서 죽을 거라고 확신하고 빠져나간 거였다.

그때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 하나 확인 좀 해 볼게요.”

<윈> 형, 빨리 확인 하나만 가능할까요?

<최강쉴더> 뭘 해 주면 되나?

<윈> 지금 바로 귀환 포탈로 가 봐요.

<최강쉴더> 알았다.

얼마 뒤.

전사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최강쉴더> 혹시 네가 찾는 게 저 녀석들이냐?

그러면서 전사 형이 영상으로 귀환 포탈을 가리켰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몇의 무리들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 귀환 포탈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누가 봐도 감시하고 있다는 기운을 풀풀 풍기면서.

거리상 저 녀석들이 이전의 추격조는 아니겠지만.

같은 길드나 연합의 녀석들인 건 확실했다.

“형, 아무래도 우리가 죽어서 나오길 기다리나 봐요.”

우리가 위장했던 인상착의 정도는 녀석들도 알고 있을 테니까.

그 모습을 확인한 재중이 형도 입가에 웃음기를 보였다.

“꽤 귀여운 짓을 하네.”

어차피 여기서 죽어서 돌아갈 생각은 없으니 아직은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이 결계 때문에 나가지 못한다면.

미리 세워 둔 계획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여기서 발이 묶이는 건 사양인데 말이죠.”

대천사의 무덤 안으로 들어왔으니 공략을 해야 하긴 하는데.

이게 지금 바로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먼저 할 일이 따로 있는데…….

흐음.

할 수 없나.

발록의 힘이 드러나 마왕의 경계심을 올린다고 하더라도.

여기서는 결계를 뚫을 수밖에.

만약 이대로 그냥 두게 된다면.

패황 연합이 초월 연합에게 완전히 먹히게 될 것이다.

그건 최악의 상황이니까.

“발…….”

곧장 발록을 부르려는 순간.

갑자기 내 어깨를 누군가가 툭툭 쳤다.

“응? 넌……?”

금속의 정령?

왜 지금 나온 거지?

근처에 먹을 만한 금속도 없는데.

르아 카르테에서 가만히 머물고 있던 금속의 정령의 예상치 못한 등장에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금속의 정령이 내게 솔깃한 말을 건넸다.

“여기서 나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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