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8화 대천사의 무덤 (6)
처음에는 단순히 녀석들의 그림에 휘말려들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빠르게 다르얀 산맥으로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안에 들어와서 확인한 상황은 우리가 생각했던 방식과는 다소 차이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차이의 핵심은 바로 이곳 몬스터들의 성향이었다.
아주 멀리까지 몬스터를 몰아오더라도 바로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
이게 바로 녀석들이 굳이 다른 장소가 아닌 이곳 다르얀 산맥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거기다 많은 인원을 숨길 수 있는 거친 산맥의 특성.
여기에 또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대천사의 무덤으로 가는 길목을 자신들이 확실히 차단하고 있다는 점이려나.
몰래 작전을 펼치기에는 이보다 나은 환경은 없겠지.
그리고 지금 그 점을 우리가 똑같이 이용해 먹을 작정이었다.
곧장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었다.
“형, 이 산맥 안에 얼마나 많은 적들이 있을 것 같아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곧장 되물었다.
“몬스터를 말하는 건 아닐 테고. 몹몰이를 하고 있는 녀석들을 물어보는 거지?”
“네, 방금 전처럼 몹몰이로 정찰조와 채집꾼들을 몰살시키려는 녀석들요. 한 녀석만 있을 것 같진 않거든요.”
“흐음, 혹시나 빠져나갈 것을 고려하면 방위마다 한 녀석씩은 있을 테고. 그리고 몇 안 되는 정찰조들을 잡기 위해 굳이 여럿이 힘 뺄 필요는 없을 테니까, 대략 넷 정도이려나? 방금 네가 죽인 녀석을 빼면 셋 남았겠네.”
“생각보다 얼마 없네요?”
“너도 봤잖아. 어차피 유저들을 죽이는 건 몬스터가 해. 많은 숫자는 필요 없지.”
확실히 녀석들이 직접적으로 손을 쓰진 않을 것이다.
몬스터들의 손을 빌려야 불의의 사고로 죽은 셈이 될 테니.
이건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사고여야 한다.
그건 지금도 어디선가 몹을 몰면서 준비 중이라는 뜻이겠지.
그 녀석들 중에 하나는 방금 내 손으로 죽였고.
이게 문제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는데.
“아무래도 의심을 사겠죠?”
“뭐 녀석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은. 몹몰이를 하던 녀석도 꽤 실력이 있는 녀석일 텐데. 반격도 못 해 보고 죽었으니까.”
정확하게는 몬스터들에게 죽긴 했지만.
그 원인은 결국 내가 한 공격에 있었다.
잠시 턱을 괴고 생각을 하던 재중이 형이 말했다.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는 명궁이 있으니 일단 이 산맥에 그냥은 안 들어올 테지. 녀석들에게 위협이 되는 유저가 있다는 걸 알았을 테니.”
“정찰하러 먼저 들어온 우리라고 생각할까요?”
“글쎄? 그건 반반. 녀석들이 미리 파악한 우리 상태가 그렇게 좋진 않았으니. 적어도 방금 몹몰이를 한 유저 정도를 죽이려면 최소 랭커 수준은 되어야 할 텐데.”
“정체를 숨기고 들어온 게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래, 혼란은 줄 수 있겠지. 그래도 너무 오래는 아닐 거야.”
“잠시 시간을 번 정도라는 거겠죠?”
“어, 저 많은 병력들을 계속 바깥에 멈춰 세워 둘 수는 없어. 적어도 자신들의 흔적을 숨기려면 무조건 시간 내에 이 다르얀 산맥 안으로 완전히 들어와야 하거든.”
재중이 형이 방금 말한 시간이라는 것은 바로 패황의 진격 시간과 연관이 있었다.
곧장 고개를 돌려서 전사 형을 바라보았다.
“전사 형, 패황 쪽 연합들 동향 알아봐 줄 수 있죠?”
“어렵지 않지.”
그리고는 전사 형이 어디론가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락을 넣고 난 얼마 뒤.
원하는 답을 얻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패황 연합이 본거지인 유적지에서 몰래 빠져나왔다고 한다. 거기다 대규모로 연합군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하고. 아직 채팅창은 조용하지만 이미 연합에 있는 길드장들에게는 다 연락이 들어간 것 같아.”
“우리는요?”
“다크 애로우?”
“네, 일단은 우리에게도 손을 뻗었잖아요.”
“흐음, 내게 연락이 안 온 걸 보면 확실히 포섭이 안 된 길드에게는 따로 연락 안 한 모양인데? 아마도 아주 조심히 움직여야 할 시기에 정보가 셀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럼 목표는요?”
내 물음에 전사 형이 발로 바닥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이곳. 음, 아니지. 정확히는 초월 쪽 애들이 쥐고 있던 거점일 거다.”
그 말에는 재중이 형도 동의했다.
“이 다르얀 산맥은 그냥 사냥터일 뿐이니까. 전략적 가치는 초월의 거점이 월등히 높아. 단순히 거점 하나가 아니라 완전한 통행 거점이기도 하고. 양옆으로 산맥을 끼고 있어서 거점만 잘 틀어막으면 정말 천혜의 요새가 된다.”
전사 형이 곧장 말을 이었다.
“지금처럼 초월 연합의 모든 병력들이 원정대에 나선 때라면 충분히 노려볼 만하겠죠. 거점 방어가 유례없이 약한 순간이니까요.”
“그래, 그리고 그 거점만 차지할 수 있게 되면. 패황이 앞으로 많이 유리해질 거야. 다르얀 산맥 쪽 사냥터를 초월 연합 애들이 더 이상은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고. 이 근처의 모든 고렙 사냥터는 다 패황에게 넘어간다고 보면 돼.”
거점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무섭다.
특히 이렇게 고렙 사냥터를 끼고 있는 거점일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런 경향이 있었고.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지금 패황이 다소 병력이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군세를 일으킨 것이다.
먹이가 너무나도 좋으니.
만약 이 정도의 먹음직스러운 먹이감이 나오지 않았다면?
패황은 절대 움직이지 않았겠지.
“전신도 정말 큰 떡밥을 던져 놨네요.”
까딱 실수했다가는 정말 판세가 확 뒤집힐 수도 있음에도.
배짱이 두둑하다면 두둑하달까.
아무나 쉽게 할 만한 작전은 아니었다.
“이 녀석도 승부사 기질이 있으니까. 이대로 가만히 두면 패황이 먹히겠지만.”
“그럴 순 없죠.”
모든 상황은 만들어졌으니 이젠 우리가 본격적으로 힘을 쓸 때였다.
일단.
우린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형, 자리를 옮겨요. 곧 이곳에 우릴 보길 원하는 손님들이 들이닥칠 것 같거든요.”
아까부터 감각을 계속 퍼트리면서 주위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뭔가가 아주 멀리서부터 빠르게 접근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이건 예전보다 감각이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감지할 수 있는 범위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기분이었다.
재중이 형도 어느 순간부터 눈치를 챈 듯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생기자마자 바로 추적자들인가? 녀석들도 대처가 빠르네. 숫자는 대략 서른 정도고.”
“네, 맞아요. 그리고 접근하는 속도를 봐서는 굉장히 빨라요.”
“안 봐도 랭커겠네. 일단 피하자.”
어지간하면 재중이 형이 피하자는 말을 하지 않을 텐데.
지금은 상황이 좀 많이 달랐다.
현재 우리 숫자는 넷.
반면에 녀석들은 당장 서른 명뿐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추가해 병력을 투입해올 수도 있었다.
저 녀석들만 다 잡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거지.
거기다 난 대놓고 전력으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숨겨야 하는 패가 많다는 건 좋은 거지만.
그만큼 보여 줄 수 없다는 뜻도 되니까.
발록은 뭐…….
나서면 끝이긴 한데.
반대로 마왕의 문제가 있으니.
마냥 전투를 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걸리는 게 많았다.
그때 재중이 형이 전사 형을 보면서 말했다.
“전사는 거점으로 귀환해.”
“저만 말입니까?”
“어, 우리가 돌아가는 상황을 전달받으려면 실시간으로 연결해 줄 사람이 필요해. 그리고 지금부터는 고속의 추격전이 될 거다.”
따로 더 말을 붙이진 않았지만 전사 형의 이동속도는 나와 재중이 형에 비해 다소 밀리는 감이 있었다.
애초에 탱커에게 고속이동까지 바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특히 이런 극악의 산악지형에서 무거운 갑옷까지 있는 전사 형이 제대로 활동하기에는 무리였다.
“알겠습니다. 거점에 한 명은 가 있어야 상황 파악이 되겠죠. 계속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더니 전사 형이 지체 없이 귀환을 해 거점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전사 형이 안전하게 돌아간 순간.
“자, 그럼 오랜만에 달려볼까.”
먼저 재중이 형이 거친 산맥 사이로 뛰어 나갔고 나 역시 테르타로스를 들고 민첩 스탯을 끌어올려 재중이 형 뒤를 따라붙었다.
발록이야 우리를 상회하는 이동속도를 가지고 있으니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고.
딱 표정을 보면 왜 도망가야 하는가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긴 했지만.
우리가 달리니 마지못해 따라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원래 있던 자리에서 상당히 거리를 벌리자 재중이 형이 내게 물었다.
“녀석들은 어때?”
그러자 다시 감각을 퍼트려 녀석들의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일단 아까 그 장소에서 멈췄네요. 우리가 없어서 그런지 주변을 수색하는 것 같아요.”
“흔적을 찾는 거다.”
재중이 형 말대로 우리가 있던 곳을 계속 빙빙 돌면서 뭔가를 찾는 듯 헤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녀석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한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정확히 우리가 달려온 방향을 향해서.
이건 이것대로 놀라운데?
어떻게 방향을 읽은 거지?
“형, 녀석들이 우리가 온 방향 그대로 쫓아오고 있어요.”
뭔가의 확신이 없다면 이렇게 확실하게 따라오진 못한다.
뒤를 쫓는다는 말에 재중이 형이 당연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이제부터는 진짜 제대로 된 녀석들이니까. 추격 기술은 기본 탑재야.”
추격이 기본인 건가?
이거 꽤 성가시게 생겼는데.
그런데 한 가지 불만이 생겨 버렸다.
난 저걸 배운 적이 없거든.
“저한테는 안 가르쳐 줬잖아요.”
내 투정에 재중이 형이 정말 어이없다는 듯 내게 물었다.
“진심이냐?”
“네?”
“네가 그게 진짜 필요해?”
“아…….”
생각해 보니 아니군.
“아놔, 미적분을 암산으로 해대는 놈한테 덧셈, 뺄셈 안 가르쳐 줬다고 물어보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냐.”
“할 말이 없네요…….”
재중이 형이 말한 대로 애초에 감각으로 감지해 버리면 일정 범위 안은 그냥 다 찾아낼 수가 있었다.
추적 기술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쓸데없는 데 시간 쓸 거면 그 시간에 검이나 한 번 더 휘둘러.”
“네네.”
뭐 어쨌든 녀석들이 우리를 쫓아오는 것만큼 우리도 역시 녀석들을 파악하고 계속 그 거리를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일부러 몬스터들이 없는 장소를 감각으로 찾아내 달리는 중이라 특별히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은 우리가 녀석들에게 따라잡힐 일은 없어 보였다.
속도도 얼추 비슷하고.
그리고 녀석들은 중간중간 잠시 멈춰서 흔적을 찾아야 했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형, 꽤 따돌린 것 같아요.”
하지만 재중이 형은 나와는 생각이 달라보였다.
“당장은 따돌린 것 같아도 우리가 멈추는 순간 바로 따라잡을 거야.”
저게 틀린 말이 아닌 것이 흔적을 남겨두면 시간이 지나더라도 어떻게든 녀석들은 따라온다.
“결국 흔적을 없애야겠네요?”
“그것도 한 방법이지.”
아마 재중이 형은 달리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는 데 반해 내 쪽은 그런 식으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계속 흔적을 남기는 모양이었다.
가령 예를 들면 달리면서 꺾인 수풀이라던가 발자국 같은 미묘한 흔적들.
이런 흔적이 자연적으로 사라지려면 얼마의 시간은 지나야 복구가 되니까.
반대로 그 복구되는 시간이 넘어 우리를 추적하지 못할 경우엔 녀석들도 더 따라오진 못하게 된다.
이참에 흔적 지우는 걸 좀 배워 볼까.
문제는 발록이 전혀 그런 걸 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랄까.
내가 한다고 해도 의미 없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확 변하는 느낌이 들면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빛과 어둠이 뒤섞인 혼돈. 대천사의 무덤 경계에 입장하셨습니다. 》
그리고 우리가 대천사의 무덤에 입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추적하던 녀석들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춰 버리더니 이내 왔던 길을 그대로 다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추적하지 않겠다는 듯.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음.
여기서 추격을 그만둔다고?
저 집요한 녀석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