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7화 대천사의 무덤 (5)
재중이 형, 전사 형과 함께 들어온 다르얀 산맥은 생각 이상으로 산세가 굉장히 거칠었다.
평지보다는 경사가 심한 곳이 더 많았고,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나무들의 형태도 꽤나 불규칙하게 자라나 있어 시야를 확보함에 있어 굉장히 어려운 면이 있었다.
조금만 발밑에서 한눈을 팔면 푹 꺼지는 낭떠러지 같은 지형도 많이 존재했고.
단순하게 뒷산 등산 가듯 다닐 수 있는 산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거칠고 달리기 힘든 지형에도 불구하고 저 많은 몬스터들을 이끌고 돌아다니다니.
새삼 몹몰이를 한 유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단순히 달리기도 힘든데 수시로 목숨을 위협하는 몬스터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계속 이 산맥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그 잘난 몹몰이의 끝은 결국 내 손에서 끝나게 되었다만.
아마도 후방에 뒤따라오는 몬스터들을 너무 신경 쓰다 보니 정면에서 날아오는 내 공격을 피하는 것에는 반응이 늦었던 것 같기도 했다.
몹몰이 하던 녀석의 시선이 대부분 후방으로 가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처음에 날린 테르타로스 공격을 피해 낸 것만 해도 충분히 박수 받아 마땅했다.
그리고 첫 번째 공격을 피한다고 흐트러진 자세로 인해 두 번째 공격은 피하지 못해 죽어 버렸고.
사실 저 유저 입장에서도 갑자기 시야가 꽉 막힌 나무들 사이로 이런 공격이 날아올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 했을 것이다.
아마도 수시로 본대에서 연락을 받고 있었을 테니까.
아직 원정대는 이곳과는 제법 거리가 떨어진 곳을 행군하고 있었다.
그 말은 이 다르얀 산맥에 자신의 적이 될 만한 유저가 없다는 걸 뜻했다.
아니.
그보다는 애초에 원정대 자체가 자기 편이니 굳이 신경 쓸 이유도 없었고.
그냥 뒤에 달고 다니는 몬스터만 신경 쓰면 되는데 이런 기습을 당했으니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어쩌면 평범한 상황에서라면 이렇게 쉽게 당해 주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테르타로스를 날리고 녀석이 죽은 것을 확인하는 순간.
밑에서 재중이 형 역시 나무를 타고 올라왔다.
아마 나무 아래에서는 너무 시야가 나오지 않아 확인해 보기 위해 올라온 모양이었다.
“어때? 잡았어?”
“네, 잡긴 했어요.”
“호오. 한 번에?”
재중이 형이 보인 약간의 감탄에 곧장 손가락으로 녀석이 죽은 방향을 가리켰다.
“포효를 들었을 때 대충 짐작했다만. 꽤 많네.”
아래에서는 시야가 나쁘더라도 소리로는 확인 가능했다.
그리고 재중이 형은 녀석이 달고 온 몬스터들의 숫자에 놀라는 중이었고.
이 정도까지 많은 숫자를 끌고 다니는 건 솔직히 나도 놀랬으니까.
그런데 조금 더 녀석들을 살펴보다가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흐음, 녀석들이 돌아갈 생각을 안 하는 데요?”
원래 위치하던 사냥터에서 멀리 끌고 나오면 원래 위치로 돌아가게끔 되어 있을 텐데.
이 녀석들은 딱히 그런 게 없는 모양이었다.
“고정형 몬스터들이 아니라면야. 그리고 어차피 산맥 안이기도 하고. 가만히 두면 결국은 돌아갈 거다.”
이건 이것 나름대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한편 내가 던진 테르타로스는 한 번의 공격 이후 내구도가 떨어져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복사 템으로는 아마 한 번 이상은 사용이 힘들 것 같았다.
뭐 오히려 이게 더 낫겠지.
흔적이 남지 않게 되니까.
괜히 남아서 누군가 확인하게 되는 것보다야.
덕분에 뒷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단순히 사냥을 위한 몹몰이는 아니죠?”
“어, 저 녀석은 저거 절대 못 잡아.”
도처에 바글거리는 수백의 몬스터들을 유저 혼자 몰아서 잡는다고?
그것도 자신보다 레벨이 높을지도 모르는, 혹은 동급인 몬스터들을 혼자서 동시에?
아무래도 이건 불가능한 미션이지.
그렇다는 건 결국 저 몬스터들의 용도가 따로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역시 예상이 맞았나 보네요.”
“어, 애초에 준비를 하고 기다렸어. 그것도 꽤 공을 들여서. 주변을 봐. 이곳에서 몹 몰이를 하려면 그냥 한두 번 해 본 걸로는 힘들어. 연습을 좀 해 봐야지 능숙하게 할 수 있을 걸?”
“네, 굉장히 쉽게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몬스터들 성향에 따라 원거리를 공격하는 녀석들도 있고 디버프를 거는 녀석들도 있었다.
공격 패턴이 다 다르기도 하고.
미리 그런 녀석들을 몇 번 달고 다녀 봤어야 죽지 않고 제대로 몹몰이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얻는 건 역시…….”
주변에 눈이 될 만한 모든 유저들을 죽여 놓고.
방송조차 전부 다 아웃해서 얻을 것은…….
“이곳에서의 위장이겠지.”
“여기에 와서 산맥 속에 숨는다는 말이군요.”
“어, 겉으로 보기에는 다르얀 산맥으로 계속 들어가서 유적지를 공략하는 것처럼.”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워낙 산세가 심해서 나무 위로 올라왔음에도 산맥 안의 풍경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까 몹몰이를 하던 녀석을 원거리에서 맞춘 것이 기적일 정도로.
시야도 나쁜 데다가 심지어 빛도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이러면 공중에서 산맥을 향해 아무리 방송을 하려고 해도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일단 들어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어.
애초에 거칠고 울창한 나무들에 가려져 보이지도 않는데.
한마디로 입구까지는 어떻게든 확인이 가능하나.
그 뒤로는 깜깜 무소식이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위장을 위해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대규모의 병력을 숨기는 데는 더 좋았고.
여긴 확실히 노리고 들어온 거다.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
“아까 베일에게 확인했는데 거점을 비워 뒀다고 했잖아요.”
“어, 그랬었지.”
“그럼 역시 하나뿐이죠.”
덫이라고 생각했던 게 처음에는 조금 가설일 수도 있었지만.
이 산맥에 들어오고부터는 확실하게 굳어졌다.
거기다 우리를 노리고 몹몰이를 해오는 녀석을 확인한 순간에 더 완벽해졌고.
재중이 형도 같은 결론에 도달해 역시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그래, 이 녀석들. 애초에 패황의 연합을 노리고 판을 짜온 거다.”
패황의 거대 연합.
원래라면 이렇게 급격하게 커지지는 않았겠지만.
우리가 중간에서 불과 기름을 냅다 들이부어서 그 속도를 엄청나게 가속화시켰다.
반 통제 연합이라는 이름하에 뭉치게끔.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와서 네임드 작업을 하지 않는 사이에도 여전히 패황의 연합은 그 덩치를 불려가는 중이었다.
“한 번 굴려진 눈덩이는 끝을 모르고 커지는 거야. 눈이 존재하는 한.”
“네, 솔직히 이렇게 빨리 커질 줄은 저도 몰랐거든요.”
재중이 형 말대로.
이미 커져 버린 눈덩이는 그 규모를 다 확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너무 한 번에 커진 것도 이유이긴 하겠지만.
애초에 중소 연합과 일반 유저들을 통째로 삼키는 수준이라…….
겉으로 보기에는 이 연합이 얼마나 커졌는지 가늠하기도 벅찰 것이다.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게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패황의 반 통제 연합이 커지면 커질수록 부담을 가지게 되는 쪽은 어느 쪽일까?
당연하게도 딱 한 곳뿐이었다.
패황이 선을 그은 연합.
“초월 연합 쪽에서 생각보다 이 속도에 압박을 받는 모양이네.”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게 없지.
잠정적인 적이 미친 듯이 세력을 불려 나가는데 그걸 그냥 두고 보고 있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만약 이걸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연합의 장을 맡을 자격조차 없었다.
그리고 전신은 그렇게 무능한 녀석도 아니었고.
반대로 너무 유능해서 문제지.
곧장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이것 때문에 초월 연합에서 대놓고 병력을 모으면 패황은 일단 몸을 피할 거야.”
“더더욱 안으로 숨는다는 거죠?”
“어, 거북이가 목을 숨기듯이. 단단한 거점에서 당분간 움직이지도 않겠지. 그것도 반 통제 연합이라는 껍데기를 두르고.”
문제는 그 껍질이 점점 커지고 단단해진다는데 있었다.
전신으로서도 손대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아니.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사활을 걸고 붙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그런 쪽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고.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야 일반 유저들이 아무리 모여도 겁나지 않겠지만.
패황이라는 구심점이 생긴 이상은.
초월도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패황의 연합이 지금보다 더 커지기 전에 잘라 내고 싶었겠지.”
그래.
이게 이번 원정대의 핵심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천사의 무덤으로 가는 거대한 원정대이지만.
실상으로는 이렇게 모은 원정대가 전쟁을 위한 준비였다는 거다.
패황의 연합을 찍어 누를.
한 번에 녀석을 등껍질에서 나오게 해 목을 쳐 버릴 생각.
그게 지금의 이 대천사의 무덤으로 가는 원정대의 진짜 모습이다.
“우리를 받아 준 것도 역시 위장이었겠죠.”
덕분에 쉽게 다르얀 산맥으로 들어온 면도 있지만.
이게 적의 아가리 속이라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 위험부담 없이 적의 눈을 피할 수도 있게 됐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지금은 그 입 속에서 가시가 되어 줄 생각이었다.
아주, 아주 아프게.
녀석들을 찔러 줄.
* * * * *
곧장 바닥에 내려와 전사 형에게 물어보았다.
“전사 형, 혹시 패황 연합 쪽에 동향을 알 수 있을까요?”
“어? 거긴 왜?”
그러자 나와 재중이 목격한 것들과 함께 추측한 모든 것들을 전사 형에게 알려 주었다.
“이 모든 게 전신의 큰 그림이라 이거지? 우린 그 속에 있는 거고.”
“네, 애초에 대천사의 무덤 원정대 자체가 위장이었다는 거죠.”
“흐음, 그럼 우린 꽤 곤란해지는 거 아냐?”
그러면서 전사 형이 뒤쪽에 있는 발록을 눈길로 가리켰다.
확실히 발록은 다르지.
처음부터 원정대가 목적이 아니라 대천사의 무덤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대천사의 무덤은 갈 겁니다. 물론 그전에 깽판을 좀 쳐야겠지만요.”
만약 지금 전신이 그린 그림대로 패황이 넘어가 버리면.
그간 공들여 놨던 일들은 한 번에 무너지게 될 수도 있었다.
내 입장에서 패황은 장기판 위에 가장 쓸모 있는 패니까.
그걸 이런 식으로 잃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럼, 패황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면 되는 건가? 전신이 함정을 파고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전사 형 말도 일리는 있었다.
지금 최적의 방법은 패황의 연합이 전신이 준비한 함정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당장 초월 쪽 연합들과 패황의 반 통제 연합들이 붙으면 십중팔구는 전신이 이길 테니.
지금 싸우지 않는 게 베스트.
하지만 이 베스트보다 더 좋은 것도 있지.
“음, 뭐 그것도 나쁘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해 봐야 어차피 전신의 세력은 그대로 남아 있잖아요. 그냥 일어날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거니까요.”
“그렇겠지. 서로 한판 붙질 않으면 세력 유지야 어려운 게 아니니.”
“네, 딱 현상 유지죠. 하지만 전 그렇게 놔두고 싶진 않거든요.”
최소한.
엿과 비슷한 것이라도 먹여 줘야 성미가 풀리니까.
“그래서 뭘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음, 별것 없어요. 일단은 녀석들이 우리에게 했던 걸 그대로 돌려줄 생각이에요.”
너희가 만든 함정.
우리가 그대로 써 주겠다.
겸사겸사 돈도 좀 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