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6화 대천사의 무덤 (4)
전에 재중이 형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렇게 급하게 대천사의 무덤의 공략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그때에는 재중이 형이 두 가지를 말했었다.
유적지를 반드시 지금 공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나.
혹은 완전히 공략에 자신이 있는 경우.
그리고 우리는 첫 번째를 예상하기보다는 두 번째 의견에 더 무게를 실었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거대한 원정대의 규모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두 번째가 더 적합했었으니까.
공략에 어느 정도 확신이 있으니까 이렇게 준비를 했다고 판단했었는데…….
방금 베일과 나눈 대화는 그 예측을 확 뒤집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윈> 전에 원정대의 정찰조를 했던 베일이 대천사의 무덤의 중간까지밖에 못 들어갔다고 해요.
<심연> 그래?
내가 확인한 사실에 재중이 형의 눈빛이 확연하게 날카롭게 변했다.
재중이 형도 눈치챈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바로 재중이 형에게서 대답이 돌아왔다.
<심연> 중간까지밖에 가지 못한 정찰대라……. 그럼, 제대로 공략을 준비한 게 아니군.
단호한 답변.
재중이 형은 이미 결론을 내려버렸다.
지금 이 원정대는 잘못됐다는 걸.
사실 유적지나 특수 아이템이 있는 장소일 경우.
대부분의 공략은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유적지에 들어가기 위한 실마리를 찾는다던가.
혹은 함정을 해제하거나 던전 지도를 밝히는.
아니면 특수 NPC와의 관계에서 오는 진행도 있을 테고.
유적지마다 공략하는 방법이야 천차만별이기는 한데.
결국은 시간을 꽤 요하는 작업이었다.
솔직히 아주 넓은 범위를 탐색하는 일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아무리 인원이 많다고 해도.
유적지에 들어갈 수 있는 해법을 찾지 못하면 결국 그 많은 인원을 그냥 놀리는 것과 다름 없었다.
만약 대천사의 무덤이 미로 형식의 길 찾기로만 끝나면 이렇게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괜찮은 방법 중에 하나였다.
혹은 유적지 내 몬스터가 엄청나게 많다던가.
하지만.
그동안 다섯 번에 걸친 원정대.
누군가 생각이 있다면 그사이에 한 번쯤은 그런 식으로 공략을 해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국 그 방법들이 다 실패했으니 지금의 정찰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건 물량으로 먹히는 유적지가 아니라는 거지.
반대로 말하면 최소한 유적지의 심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확실한 실마리를 찾아놓고 시작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베일은 중간까지만 들어갔다고 했지.
거기까지 생각을 하자 바로 확신이 섰다.
대천사의 무덤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이 녀석들에게는 없어.
이 많은 유저들이 전부 헤딩을 하더라도.
아마 쓸데없는 과정이 될 터.
물론 그렇게 헤딩을 하는 사이에 뭔가를 찾아낼 수 있기야 하겠지만.
문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수천의 연합 유저들을 전부 여기다 모아 두고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실마리를 찾으라고 붙들어 둔다고?
이건 거의 미친 짓이지.
아니.
미친 짓이라기보다는 연합의 장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에 가까웠다.
연합원들의 원성은 둘째치더라도.
그사이에 사냥도 못 하고 네임드 공략도 못 하는 데 들어가는 손실이 훨씬 클 테니까.
잘못하다가는 정말 밑에서부터 반란이라도 일어날 수도 있으려나.
뭐 지금까지의 지배 구조를 보면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가지는 않겠지만.
위험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반란은 아니라도 균열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
그런데도 전신은 이 일을 강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확신도 없는데 말이지.
애초에 앞뒤가 안 맞아.
하지만 반대로 뭔가 다른 노림수가 있다면?
처음부터 노리는 게 대천사의 무덤이 아니었다면?
재중이 형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지 내게 말했다.
<심연> 아무래도 이 원정대는 위장이겠군.
<윈> 네, 그럴 확률이 아주 높아요.
보여주기식의 원정대랄까.
마치 누가 보란 듯이 출발을 하고는 정작 출발한 다음의 행적은 확실히 지우고 있었다.
뭐 인원이 인원이다 보니 완벽하게 제어하지는 못하겠지만.
오히려 그것까지 노린 거라면?
<심연> 겉으로 보기에는 원정을 정말 가는 것처럼 보여야 하니까.
섞여 있는 유저들 중에 일부는 지금의 상황을 방송을 한다던가 혹은 글을 올려서 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윈> 중간에 합류한 유저들.
정찰조.
그리고 채집과 채굴꾼들.
연합원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유저들은 이들이 전부였다.
그중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었고.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연> 그래, 이미 연합의 핵심 간부들에게는 오더가 내려갔을 거야. 외부에서는 전혀 알 수 없게.
마치 눈으로 확인한 양 확신하는 재중이 형이 곧 눈빛을 굳히고서 말했다.
정말 진지한 눈빛이라…….
재중이 형이 저렇게 표정을 굳히는 건 아무래도 곧 문제가 생긴다는 건데.
<심연> 당장은 괜찮아. 하지만 곧 녀석들이 이빨을 드러낼 거다.
그러면서 턱으로 저 멀리 보이는 다르얀 산맥의 중간을 가리켰다.
깊고 깊은 산맥의 중심부.
가득이나 산맥이라는 게 주변 환경을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산세가 거친 다르얀 산맥은 더 그런 면이 있었다.
거기다 마왕의 경계에 걸쳐 있으니 일반적인 산맥과는 그 어둠이 차원을 달리했다.
일단 진입하면 그때부터는 정말 짙은 어둠 속에서 싸워야 한다.
<윈> 산맥으로 완전히 들어가면…….
<심연> 그래, 준비해 둬. 쉽지 않을 거야. 우연을 가장해서 점점 숫자를 줄일 거다.
산맥 속으로 들어가 어둠에 묻히는 순간.
그때부터는 누가 무슨 짓을 해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재중이 형의 말대로.
본인도 모르게 죽일 방법은 차고 넘치니까.
치명타 공격이라는 아주 좋은 녀석도 있고.
방심한 상태에서 제대로 노리면 정말 찍소리도 못하고 죽게 된다.
특히나 장비를 가볍게 해 허술한 유저일수록 더하고.
<윈> 정찰조에 알릴까요?
알고서 들어가는 것과 아예 모르고 들어가는 것.
이 둘의 차이는 정말 크다.
대비를 할 수 있으면 피해도 줄어들 터.
하지만 재중이 형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심연> 지금 정찰조 유저들이 들으면 분명히 중간에 이탈자가 나온다. 아니면 따지는 녀석도 나올 테고. 그럼 녀석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아니, 그보다는 말한다고 해도 믿어 주긴 하려나?
<윈> 아, 우린 초행이죠.
<심연> 그렇지. 자기들은 몇 번이나 여기 온 유저들이고. 우린 이제 처음 오는 건데 의심이 된다고 가지 말자고 하면?
<윈> 듣지도 않겠네요.
애당초 우린 그냥 여기 끼어 가는 유저일 뿐이었다.
거기다 거의 다 추측을 통한 의심이니.
설득이 될 만한 상황은 아니지.
<윈> 차라리 빠질까요?
<심연> 이미 늦었어. 우리가 너무 많이 들어와 버렸다.
이런 예측까지는 좋았는데 정찰조를 하고 있다 보니 우리가 선두에 가까웠다.
위험이 있는 곳에서 투입하기 위해서.
만약 여기서 수상하게 발을 빼면?
반드시 추적조가 붙겠지.
전신의 오더를 받은.
거기다 문제는.
나나 재중이 형이나 모두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눈에 보이는 전투는 어려워.
후.
결국은 떠밀리듯이 들어가야 한다는 건데.
그렇다면 아예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윈> 형, 우리 그냥 더 빨리 진입하는 건 어때요?
<심연> 기다리지 말고?
<윈> 네, 우린 초행이니까요.
그냥 미숙하고 잘 알지 못 해서 그렇게 했다라고 하면?
뭘 해도 초보는 의심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다시 돌아올 필요도 없었고.
<심연> 차라리 그게 낫겠군. 어차피 이대로 가면 녀석들의 노림수에 걸려서 귀찮아질 테니.
지금 상황은 우리 주변에 움직이는 모든 연합원들이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혼잡한 상황에서는 눈먼 칼이 더 무서운 편이라.
휘말리기 전에.
완전히 떨어질 필요가 있었다.
바로 베일에게 다가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베일은 항상 그랬듯 아직까지는 여유 있다는 얼굴이었고.
“혹시 먼저 정찰을 좀 해봐도 될까요?”
“정찰을?”
“네, 초행이다 보니 여기 산세를 좀 익혀 보고 싶어서요. 아직은 안전한 코스니. 그러면 나중에 익숙해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흠, 좋을 대로. 어차피 쟤들은 필요할 때 빼고는 우리 안 찾으니까.”
베일은 그냥 흔쾌히 허락을 했다.
그래도 한 마디 정도는 해 줘야겠어.
“혹시 죽을 것 같으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어둠 속으로 달리세요.”
“뭐?”
“아니,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끝이려나.
베일이 죽음을 담보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그냥 죽으면 좀 찝찝하니까.
우리가 먼저 정찰을 한다는 제안에 곧 베일이 연합원들 중 한 명에게 전달을 하자 그쪽에서도 알았다는 듯 허락을 해주었다.
그렇게 연합원들을 뚫고 나와 나와 재중이 형, 전사 형, 발록이 선두로 완전히 빠져나와 산맥의 깊숙한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조금 뒤에 전사 형은 우리 이야기를 듣고는 경계를 잔뜩 했고.
반대로 발록이야 뭐 그냥 시큰둥한 표정이라.
“인간들은 꽤 복잡하군. 그냥 다 죽이면 안 되나?”
발록이 보기에는 그냥 인간들의 소꿉놀이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뭐 발록 시선에서는 당연한 걸지도.
당장 힘만 좀 쓰면 뒤에 우르르 따라오는 유저들을 싹 녹여 버릴 수 있겠지.
“아직은 참아.”
정말 급해지면…….
발록 손이라도 빌려야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그렇게 산맥 속의 어둠을 조심스럽게 돌파하면서 이동하던 도중 감각 속에 뭔가가 자꾸 걸리기 시작했다.
“이건…….”
“왜? 뭐가 걸려?”
전사 형이 긴장한 채 라지 쉴드를 앞으로 내밀면서 묻자 표정을 굳히고 대답했다.
“몬스터 몰이예요.”
“뭐?”
“누군가 몬스터들을 잔뜩 달고 이쪽으로 몰고 오고 있어요.”
그 말에 전사 형이 바로 표정을 구겼다.
“녀석들. 정말로 우릴 다 죽일 생각이었나.”
베일의 경험에 따르면 이 부근에선 어떠한 몬스터들의 습격이나 함정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보란 듯이 누군가가 아주 멀리서 몬스터들을 끌고 오는 중이었다.
그것도 정확하게 우리가 있는 지점으로.
만약 내 감각이 이렇게나 넓게 감지를 할 수 없었다면?
그냥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몬스터들의 진행 방향에 휩쓸려서 죽었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특히나 정찰조나 채집꾼들처럼 장비가 빈약하다면 더욱 그럴 테고.
“아마 유적지에 제대로 들어가기도 전에 우릴 전부 다 죽이겠죠.”
그것도 자신들의 손을 쓰지 않고.
몬스터들의 힘을 빌려서.
거기다 꽤 고레벨인 몬스터를 달고 이렇게까지 몰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저기서 몰이를 하는 유저가 최소한 상위에 위치한 랭커는 된다는 뜻이었다.
우리가 오기 전까지 계속 몰이를 하면서도 죽지 않을 정도니.
“프로게이머겠죠?”
몰이를 해오고 있는 한쪽 방향을 보면서 묻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을 어설픈 애들에게 맡기진 않지, 전신이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니까.”
“음. 흔적이라…….”
괜히 그러니까 더 남겨 주고 싶잖아?
“형, 일단 한 놈은 죽여 놓고 봐야겠어요.”
“뭐 좋을 대로.”
대답을 듣고 테르타로스를 꺼내들었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그렇게 테르타로스를 두 자루 복사해서 들자 그 순간 급격하게 근력과 민첩, 체력이 한계까지 올라갔다.
콰드득.
손에 쥐어지는 느낌이 꽤 괜찮네.
그동안 계속 손에 놓고 있었더니 확실히 차이가 나.
이 스탯이면 원하는 걸 할 수 있겠지.
“잠시 올라갔다 올게요.”
그대로 주변의 커다란 나무를 박차듯 타고 꽤 높은 위치까지 곧장 올라갔다.
“방향이…….”
시선을 돌려 멀리 한쪽 방향을 보자 나무들이 비산하게 흔들리는 중이었다.
몬스터들이 달려오면서 일으키는 흔적이랄까.
곧장 감각을 예민하게 일으켜서 어둡고 수풀진 산맥의 전체 구도를 감각 속에 받아들여갔다.
그러자 몬스터들을 달고 달리는 녀석의 움직임이 전부 머릿속에 그려졌다.
어느 위치에서 얼마나 속도를 내며 달리는지까지 전부.
그렇게 감각을 받아들이는데 순간 이상한 감각이 덮씌워지듯 추가되어 내게 빨려 들어왔다.
이건?
흡사 녀석이 앞으로 달리고자 하는 예상 경로를 그리기라도 하듯 수많은 선택지들이 그려지더니 이내 하나의 경로로 확정되듯 합쳐졌다.
전에 그 감각이려나?
그때는 정말 힘겹게 했는데 지금은 왠지 모르게 굉장히 편하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써 달라는 듯 애를 태우는 듯한.
하.
그래, 이 감각을 내게 쓰라고 주는 거라면……!
좋아, 써 준다!
부담이 확 줄어든 것 같은 미묘한 느낌을 받으며 곧장 몸을 팽팽하게 당기며 투창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나쁘지 않아.
이건 오히려 괜찮은 쪽에 가깝겠네.
그리고는 팽팽한 몸을 활처럼 풀어내면서 녀석의 예상되는 진행 경로를 향해 복사본 테르타로스를 쏘아냈다.
쐐애애액!!
어둠 속의 산맥을 가르고 공기를 찟듯이 날아가는 광경이란…….
그리고 곧장 또 하나의 테르타로스를 약간 수정된 경로로 날렸다.
쐐애애액!!
처음의 테르타로스는 어떻게 녀석이 발견했는지 깜짝 놀라더니 크게 몸을 뒤틀면서 겨우 피해 내는 모습이 보였다.
정말 아슬아슬할 정도로 스치듯이.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마치 그렇게 피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이미 자세가 너무 무너졌기에 두 번째는 도저히 피하지 못해 녀석의 왼쪽 다리 허벅지에 아주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푸우욱!!
“크악! 뭐야!”
그 비명과 함께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산맥 바닥에 흙바람을 일으키면서 녀석이 형편없이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짙은 어둠들이 녀석의 몸 위로 드리워졌고.
“키에에엑!”
“캬아아악!!”
“크에엑!!”
잔뜩 몰린 거대한 몬스터들을 보는 녀석의 입에서 곧장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이런, 씨발!”
그렇게 녀석이 달고 오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녀석의 사지를 바로 찢어버리고는 크게 포효했다.
“쿠아아아아아!!”
큭.
보기 좋네.
그럼 이제 녀석들이 어떻게 나오나 한 번 두고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