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86화 (876/1,404)

#885화 대천사의 무덤 (3)

다르얀 산맥.

대천사의 무덤이 위치한 산맥의 이름이었다.

초월 쪽 연합과 마왕의 세력권이 아슬아슬하게 겹치는 지역이기도 하고.

산맥의 북쪽은 마왕의 영역.

그리고 남쪽은 초월을 필두로 한 연합이 포진해 있는 형국이랄까.

굳이 따로 표현을 하자면.

남쪽에서 유저들이 점점 북진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산맥 초입에서야 유저들이 설치고 다니든 마왕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여기는 마왕의 세력권이 아니니까.

세력권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냥 그 마왕이 마실 나가듯 나오는 구역의 끝자락을 표현한 하나의 경계일 뿐이었다.

사실상 주변에 유저들이 집을 차리고 농사를 짓든 뭘 하든 마왕은 관심이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렇게 유저들이 계속 북진을 해서 마왕의 세력권으로 자꾸 발을 들여놓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그런 행동들이 마왕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말이 되니까.

뭐 아직까지는 마왕이 직접 나서서 유저들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만.

만약 직접적으로 마왕과 드잡이를 했다면 아무리 유저들의 레벨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의 대부분의 유저들이 몰살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왕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예전에도 느꼈지만.

이 녀석들은 결코 쉽게 잡으라고 놔둔 녀석들이 아니었다.

거의 끝판왕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마계의 세계관을 보면 마왕이라는 것 자체가 최종병기나 마찬가지니.

물론 그보다 더 강한 네임드들이 존재하기도 하는데.

이 녀석들은 예외로 쳐야지.

애초에 마왕도 꺼리는 녀석들이라.

당장 뒤에서 우리를 따라오는 저 발록만 봐도 그렇다.

마왕하고 한판 뜨려고 하면 정말 가능할지도.

여튼 이런 녀석들의 세력권으로 직접 들어간다는 건 그만큼 터지기 일보직전의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마왕의 세력권이다 보니 근처에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들의 레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혹은 레벨대 이상으로 굉장히 강하거나.

그런 몬스터들이 즐비한 곳이 바로 이 다르얀 산맥이었다.

까딱 실수하면 바로 죽어 나가는.

어지간한 고레벨 유저도 여기서는 안전을 장담하지 못한다.

아직은 유저들의 레벨과 장비가 낮기에.

정말 무리해서 레벨업에 목숨을 걸거나.

혹은 아이템 욕심에 눈이 돌아가지 않는 이상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지역.

당연하게도 이곳의 위험도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인지하고 있었다.

이런 긴장감은 아직 산맥 초입인데도 원정대 모든 인원들에게 전염되듯 퍼져 있었다.

우리는 일단 덤덤하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이 얼어있는 분위기라 좀 조심하는 편이었고.

그런 우리를 보던 정찰조 리더인 베일이 내게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허, 자네. 너무 굳어 있는 것 아닌가?”

“아, 그렇게 보이시나요?”

“이곳 산맥이 초행이라 걱정되는 건 알겠지만 너무 굳으면 위기 때 바로 반응을 하기 힘드니 긴장 풀게. 아직까지는 괜찮아. 초입까지는 보통 몬스터들이 나오지 않거든.”

“조언 감사합니다.”

일행들 중 다소 어려 보이는 내게 신경 써 주듯이 말하는 베일도 내가 정중하게 답변하자 마음에 드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래. 어차피 중간에는 다들 죽을 테지만. 최대한 깊이 들어가서 제대로 한번 뽑고 나가자고. 들어가면 갈수록 페이가 세지니까 잘 버텨야 해.”

아.

그런 말이었나.

일단 이 베일이라는 유저는 여기서 살아 돌아갈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 역시도 레벨 대에 어울리지 않게 단출했고.

아마 속도를 올리기 위해 최대한 가볍게 변경을 한 것 같은데.

당연히 방어력 면에서는 그렇게 좋은 성능이 나지 않을 것이다.

뭐 정말 가벼우면서도 방어력이 상당히 높은 아이템도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나.

그런 아이템을 착용하고 다닐만큼의 유저라면 지금의 정찰조에 지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념하죠.”

겉으로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당연하게도 우린 죽어서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때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전사 형이 옆으로 붙어서 물었다.

“베일 님, 혹시 전에도 이렇게 거점을 비우고 나왔습니까?”

“아, 최강실더 님. 아닙니다. 그때는 유적지까지 가는 길을 뚫는다는 느낌이 더 강했죠.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습니다. 이렇게까지 병력을 많이 끌고 나오지도 않았고요. 사실 좀 놀라긴 했습니다. 연합에서 거의 전 병력을 끌고 갈 거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정보의 부재.

아마 베일이 속한 이 정찰조는 소모품이다 보니 제대로 된 정보를 주지 않은 듯했다.

베일도 직접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이 정도 규모라는 걸 알게 된 것 같았고.

그렇다는 말은 애초에 같이 원정대를 꾸리는 유저들에게까지 따로 알릴 생각이 없었다는 건데.

규모는 최대한 크게 가져가되.

보안은 유지.

그렇다고 정보를 엄청나게 틀어막는 것 같지도 않고.

만약 그랬다면 우리가 이곳 원정대에 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인원을 틀어막았을 테니.

과연 내가 전신이라면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진행할까?

그것도 자신들 세력의 대부분을 포함한 원정대를 거느리고?

뭔가 이상한데…….

왜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이지?

어떤 것에서 어긋난 건지 모르겠지만 뭔가를 하나 놓친 것 같은 기분 나쁜 간질간질함이 내 가슴을 살살 긁어 댔다.

전사 형과 베일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슬쩍 뒤로 빠져나왔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내 옆으로 붙어 섰다.

“왜? 무슨 일 있어?”

“으음, 이건 제 기우일지 모르겠는데…… 이 원정대,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않아요?”

“원정대가?”

그리고 나와 베일이 했던 대화를 알려 줬더니 재중이 형이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시선을 주변으로 돌렸다.

“유례없이 많은 규모의 유저 숫자라…….”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전사 형이 알려준 초월 쪽 연합의 숫자를 생각해 보면.

지금 거의 대부분의 연합 유저들을 포함시켰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베일이 말했듯 거점에 그렇게 많은 숫자를 남겨 놓지 않을 정도로.

물론 거점이 중요하긴 해도.

이 원정대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실패하면 정말 답도 없는 수준의 규모라.

재중이 형도 뭔가가 걸리는 듯 두리번거리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실마리를 찾은 듯 눈빛이 반짝였다.

“호오, 이건 직접 들어와 보지 않았으면 몰랐겠는데?”

“뭔가 찾은 건가요?”

“아아, 일단은 위를 봐봐.”

그러자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로 향했다.

응?

왜 위를 보라는 거지?

그저 까만 하늘만 보일 뿐인데…….

마왕의 경계인데다가 다르얀 산맥에 점점 들어가다 보니 사위가 어두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늘 역시도 마찬가지였고.

재중이 형이 단순히 하늘을 보라고 말했을 리는 없고.

뭔가 이상한 건가?

저 하늘이……?

그렇게 계속 쳐다보고 있는데 뭔가의 위화감이 계속 눈에 밟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실체를 확인하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하나도 없어?

“없네요?”

“없지?”

“네, 없네요.”

혹시나 싶어 먼 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는데 여전히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확실하네.

일부러 노리고 하는 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왜 촬영하는 유저가 하나도 없을까요?”

“그래, 저 뽐내기 좋아하는 녀석들이 이런 거대한 규모의 원정대를 놓칠 순 없을 텐데.”

당연하겠지만.

서버 내에서 핵심이 되는 레이드나 원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컨텐츠가 된다.

그리고 그 컨텐츠를 방송해서 내보내는 일은 자신들을 뽐내기 위한 아주 좋은 방법이었고.

앞서나가는 선두 주자의 최초의 방송은 그 자체로도 많은 시청률과 함께 인기를 몰고 온다.

이걸 하지 않는다고?

물론.

사활을 건 원정대의 성격상 전력을 숨기기 위해 방송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 전력을 지금 누구한테 숨긴다는 거지?

방송도 보지 못하는 마왕에게?

그것도 아니라면 다르얀 산맥에 득실되는 몬스터들에게?

하.

애초에 이건 말도 안 되지.

할 필요도 없고 해 봐야 의미도 없는 짓이었다.

당장 이 원정대를 방송하기만 해도 달라붙을 광고와 스폰서를 생각해 보면, 방송하지 않는 게 오히려 미친 짓에 가까웠다.

마왕과의 조우를 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이 시점에서?

만약 마왕에게 전멸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컨텐츠가 된다.

마왕과의 대규모 전쟁을 최초로 보여 준 방송이 될 테니까.

그런데도 방송을 아예 하지 못하게 한다라?

“이건 말이 안 되죠.”

“그리고 우리가 예전에 굳이 방송을 하지 않았었던 이유는 뭐였지?”

재중이 형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네임드의 공략 방법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사실 우리는 소수로 네임드를 공략했기에 그 방법이 알려지면 곤란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

거기다 꼭 네임드 공략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유저가 보면 곤란한 장면도 한둘이 아니었고.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행적을 노출시키는 건 더 꺼려지는 일이라…….

순간 머릿속이 팡하고 터지면서 해답이 떠올랐다.

바로 재중이 형에게 시선을 맞췄다.

“아무래도 이 경우에는 위치겠네요.”

“빙고. 행적이지. 이 원정대가 움직이는.”

대규모 원정대가 출발하는 걸 흘리기는 하는데.

행적을 알리고 싶지 않다?

이게 뜻하는 건 딱 하나뿐이다.

뭔가를 노리고 있을 때.

그것도 아주, 아주 큰 것 한 방을.

“이 정도 규모로 연합을 소집해 놓았다면…….”

솔직히 처음에는 마왕의 세력과 정말 한판 뜰 생각으로 이런 원정대를 구성한 것으로 생각했다.

겉에서 보기에는 누가 봐도 그러니까.

그리고 누구보다 빨리 유적지를 얻어 마왕을 죽일 수 있는 아이템을 가지기만 한다면.

혹여 마왕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게임이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든 마왕을 죽이고 마왕의 세력권까지 가져갈 수 있을 테니.

성공하기만 하면.

이보다 나은 원정은 없지.

하지만.

중간에 무리수가 너무 많아.

실패를 했을 경우 뒤가 없는 원정을.

굳이 이 시점에?

재중이 형과 대등한 싸움이 가능한 전신이……?

단순히 전신의 전투 컨트롤을 떠나서 전략적으로도 능력이 출중하기에 재중이 형은 그를 높게 평가했다.

그런 전신이 이렇게 허술하게 원정을?

거기다 페가수스의 명궁은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는 녀석이라는데?

그리고 이렇게 되자 한 가지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곧장 앞에서 나가고 있는 베일에 다가가서는 물었다.

“혹시 전에 어느 정도까지 원정이 진행됐어요?”

줄곧 리더를 맡은 베일이라면.

아마 원정이 상당히 진행되는 순간까지 살아남았을 터.

“어디더라……? 아마 유적지를 절반 정도 뚫었을 때까지였던가? 그게 절반인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느낌상 그랬던 것 같은데.”

그 말을 듣는 순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바로 재중이 형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윈> 형, 이건 역시나…… 덫이에요.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유혹이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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