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4화 대천사의 무덤 (2)
“출정한다!”
초월의 길드장인 전신이 외치자 전신 옆에 계속 서 있던 유저들 중 일부가 바쁘게 나서서 주변 유저들에게 뭔가의 신호를 전달했다.
그리고 그 유저들은 다시 연무장 바깥으로 뛰어나가더니 곧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얼마 뒤.
연무장 바깥이 떨리는 듯한 진동이 느껴지더니 이내 연무장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르릉.
이건…….
발 진동?
갑자기 분주하게 움직이는 수도 없이 많은 발자국의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그렇게 너무 많은 유저들이 움직여서일까.
그들이 발 굴림에 이곳 연무장까지 울림이 너무 커져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흐음.
생각보다 너무 많네.
그들 전체의 숫자를 알아보기 위해 감각을 퍼트려 봐도 이미 너무 많은 움직임이 감각에 잡혀 이렇게 감지하는 게 의미가 없었다.
시간을 들이면 어떻게든 알아낼 수 있겠지만.
괜히 피로도만 올리는 셈이라.
곧장 고개를 돌려 전사 형에게 물었다.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쓸데없이 힘을 뺄 필요는 없겠지.
<윈> 형, 여기 전체 인원이 얼마나 돼요?
<최강쉴더> 초월 연합 전체?
<윈> 네, 예상을 훌쩍 넘는 인원이라…….
사실 많아도 몇 백 명 정도를 예상했는데.
지금 대략적인 감각에 느껴지는 건 그보다는 아득하게 많았다.
그리고 예상 이상으로 연무장에 채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 대기하는 유저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사실상 밖에 밀려 있는 유저들이 하위의 길드라면 보면 지금 연무장 중앙에 있는 유저들은 거의 1군 급이라고 봐야 했고.
그런 녀석들조차 눈에 빽빽하게 보일 정도니.
전체 인원이 얼마나 많은지는 짐작도 안 된다.
<최강쉴더> 보자. 이쪽 연합에 소속해 있는 길드가 대략 100여 개는 될 걸?
소속 길드만 100개라고?
<윈> 그렇게 많아요?
<최강쉴더> 연합이 몇 개가 합쳐진 거니까. 뭐 주력 길드만 따로 추리면 그보다는 훨씬 줄어들겠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그 수치가 맞아. 숨겨진 길드까지 합치면 오히려 더 많을 수도 있을 테고.
이 녀석들.
그동안 대체 얼마나 몸집을 키운 걸까.
말이 100여 개지 소속된 길드 인원을 다 합치면 거의 몇 천에 가까운 수치가 나온다.
감각에 너무 많다고 느껴진 게 틀린 것이 아니었단 소리다.
이 많은 녀석들을 다 찍어 눌러야 한다라…….
예상보다 미션이 빡세진 감이 있었다.
그때 먼저 빠져나간 외곽의 인원들을 필두로 거점 내 모였던 수많은 연합 유저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그런데 이렇게 인원이 많은 만큼이나 잡음도 많아 보였다.
“아, 좀 빨리 빨리 움직입시다.”
“앞에 얼른 안 가?”
“휴, 인간들 드럽게 많네. 언제 따라 가냐.”
“모처럼 다 모아두니 진짜 개판이잖아.”
“뒤처지면 남는 것도 없어. 빨리 좀 가자.”
웅성웅성.
그 소리를 듣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런.
웃으면 안 되는데.
하이딩 페이스를 쓰고 있어서 따로 표정이 보이거나 하진 않아서 다행이려나.
<윈> 전사 형, 여기 생각보다 통솔이 잘 되거나 하진 않네요.
<최강쉴더> 흠, 너무 인원이 많은 것도 문제지. 저 봐. 저쪽에 저놈들도 표정이 썩잖아.
전사 형이 시선을 돌려 1군에 포함되는 길드 사람들 중 일부를 가리켰는데 그들의 표정도 내 시선에 똑같이 들어왔다.
저건 아마…….
한심하다는 표정이려나?
마치 마지못해 이끌고 간다는 딱 그런 표정이라니.
그리고 저걸 보자 그들이 밑에 유저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왠지 잘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 표정은 주변에서 누군가 눈치를 주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런데 미세하게 바람결에 스쳐지나가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야, 표정 관리 안 해?”
“아, 진짜. 나만 가지고 그러냐. 넌 뭐 달라?”
“요즘 길마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하아, 길마도 뭘 그렇게 조심할까.”
“나중에 깨지기 싫으면 잠자코 해.”
“네네, 그럽죠.”
흐음.
이것들 봐라.
감각을 워낙 증폭시켜 놔서 들리던 소리 중에 하나가 잡혀든 건데 이런 것들도 잡힐 줄은 몰랐다.
대화만 들어보면 말이 2군이지.
저들은 그냥 부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물론 이것을 보란 듯이 표현하지 않으니 어지간해서는 모르겠지만.
썰물처럼 유저들이 거점을 빠져나가면서 점점 주변의 진동들도 함께 수그러들었다.
그리고 미처 신경 쓰지 못 했던 사이에 다가온 예의 그 우리를 데려왔던 유저가 턱짓으로 말했다.
“어이, 늦잖아. 너희들도 빨리 출발해. 정찰조가 이렇게 느리면 어떻게 하나?”
흐음.
저들 말대로 일단은 정찰조였지.
아마 통솔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우리조가 굉장히 뒤처지게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짜증내는 목소리까지.
“하, 미치겠네. 위에서 또 한 소리 듣겠군.”
그러자 우리 쪽 정찰조에서 제법 관록이 있어 보이는 유저가 앞에 나서 대답했다.
“빨리 따라잡도록 하죠. 다들 따라와. 우리도 출발하자.”
누가 나서서 리더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잠정적으로 리더가 되어 버린 그가 모여 있던 정찰조들을 이끌고 앞으로 나섰다.
<윈> 그냥 따라가면 될까요?
<심연> 뭐 알아서 나서주겠다는데.
재중이 형도 딱히 반대는 하지 않았고.
전사 형 역시도 순수히 따라나섰다.
슬쩍 눈짓으로 발록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최대한 힘을 쓰면 안 돼.”
“흠, 인간들은 귀찮군.”
이미 해둔 말이 있어서 그런지 발록도 딱히 귀찮다는 투 외에는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발록이 날뛰기라도 하면 정말 피곤해져.
잘못하다가는 정말 마왕까지 끼어들어서 개판이 될 수도 있으니까.
“적당한 화염 마법사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쯧. 알겠다.”
그래도 아니라는 말은 안 하는군.
신체는 완전 격투가인데 마법사인 척하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으니 오히려 이쪽이 더 낫겠지.
그렇게 초월 쪽 연합에서 1군이라 할 수 있는 유저들을 뒤로한 채 원정길에 올라섰다.
일단 거점을 나서자마자 전사 형이 준 마계 켈베로스를 꺼내들었다.
【 마계 켈베로스 소환! 】
이건 나뿐만 아니라 원정길에 나서는 유저들 대다수가 소환수들을 꺼내 올라탔다.
둘러보니 다른 개체들도 많았는데 이 마계 켈베로스가 대중적인지 꽤 다수의 유저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전사 형이 눈에 안 띈다고 했던 이유를 알겠네.
“자, 거점부터 산맥 초입까지는 탈 것으로 이동하고 곧 거친 지형이 나오니 거기서부터는 걸어간다!”
다들 대답은 안했지만 정찰조의 리더에게 고개를 끄덕여 답을 해주었다.
딱히 리더도 여기에 의미를 두는 것 같진 않았고.
능숙하게 앞에 서서 정찰조를 이끌고 움직였다.
<윈> 자주 해본 솜씨 같지 않아요?
<심연> 그래, 아까 그 녀석 반응을 보면 전에도 참여한 적이 있나 본데.
흠.
아무래도 경험자니까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으려나?
그리고 이런 생각은 나만 한 게 아닌지 어느새 전사 형이 그 리더의 옆을 달리면서 뭔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흠흠, 말 좀 물읍시다.”
“좋슈다. 산맥에 완전히 들어가기 전까지는 우리 정찰조는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그동안 말동무는 나쁘지 않지.”
관록 있어 보이는 리더도 딱히 거절하지 않고 옆을 내주었다.
“그래, 우리 초행분은 뭐가 궁금하신가?”
“우리가 초행인 걸 아십니까?”
“여기 녀석들 대부분은 한 번씩 봤지.”
호오.
생각 이상으로 경험이 많은 것 같은데?
“최강쉴더라고 합니다.”
“난 베일이네.”
그렇게 통성명을 한 뒤 베일이 전사 형을 슬쩍 보면서 좀 뜨끔한 말을 했다.
“흠, 자네, 하이딩 페이스를 한 걸 보면 사정이 있나 본데…….”
하이딩 페이스가 정체를 숨기기는 좋지만.
항상 쓰고 있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얼굴을 숨기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니까.
우리도 하이딩 페이스는 네임드를 뺏어올 때나 썼지.
지금 같은 경우에는 이를 트집 잡으면 곤란할 수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경비 대장은 딱히 이걸 문제 삼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마 보석의 힘이였을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 이건…….”
“하하, 긴장하지 말게나. 어차피 여기 사정 있는 놈들이 한둘도 아니고.”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뒤를 가리키자 내 시선도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던 정찰조에 돌아갔다.
어?
저건?
그리고 그들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공통점을 발견해 버렸다.
거의 다 하이딩 페이스를 쓰고 있어?
“어때 답이 됐나?”
베일의 말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나무를 숲에 숨기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나무밖에 없었다.
애초에 다 하이딩 페이스를 쓰고 있다면.
“우릴 가면 부대라고도 하지. 저들도 그걸 문제 삼진 않아. 어차피 소모품이니까.”
“소모품 입니까?”
“그렇지. 봤지 않나. 처음부터 돈을 쥐어주는 게. 그리고 좀 더 위험한 코스로 들어가면 계속 돈을 추가로 쥐어주지.”
“돈을 주면 다 하는군요.”
“그래. 여기 한탕 뛰고 나면 돈이 짭짤해.”
“여러 번 오셨나 봅니다?”
“흠, 이 원정 말인가? 아마 지금이 다섯 번째였나.”
다섯 번이나?
원정을 해서 전부 실패를 했으니 다섯 번이 있는 거겠지만.
난이도가 어쩌면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겠는데?
거기다 자연스럽게 이 정찰조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여기까지 오면서 본 그 수많은 수천 명의 유저들을 두고 굳이 이렇게 보안을 열어가면서까지 정찰조를 운영해야 하는 이유를.
실패를 이렇게 많이 했으니.
저들도 방법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죽어 나가는 유저들에게 무작정 희생만으로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원정이 실패함은.
곧 전멸을 의미하니까.
물론 강제적으로 앞에 가서 총알받이를 하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쉽진 않았겠지.
그런데 내가 접속한 지 그렇게 오래 된 것은 아니긴 해도 그동안 여기 원정대를 꾸렸다는 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형들에게도 들은 적이 없었고.
재중이 형을 보니 재중이 형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심연> 아마 소규모로 했거나 혹은 그동안은 철저히 비밀로 했겠지.
그러자 한 가지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원래는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하는 원정대를 이렇게 대규모로 빠르게 진행한다.
그것도 보란 듯이 대놓고?
<윈> 그런데 이렇게 하는 건... 뭔가 변수가 생겼다는 거죠?
<심연> 흐음. 반드시 이번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거나. 혹은…….
<윈> 혹은……?
<심연> 이번에는 완벽하게 공략할 자신이 있다던가.
<윈> 확실히 공략할 자신이 있어서 지금 이런 식으로 한다는 거죠?
<심연> 그래, 그게 아니라면 지금의 이 규모는 좀 무리수지. 이렇게까지 동원해 놓고 원정을 실패하면 그 역풍은 이 원정대를 꾸린 전신에게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아무리 전신의 세력이 강하다고 해도 그건 부담이지. 자칫 잘못하다가 이번 원정을 실패해서 연합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어.
그런 실패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나섰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재중이 형을 보면서 웃어 보였다.
<윈> 그럼, 한번 제대로 흔들어 보죠. 이 원정대가 쫄딱 망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