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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84화 (874/1,404)

#883화 대천사의 무덤 (1)

거점의 지키던 경비 조장이 슬쩍 눈짓으로 주변에 있던 동료들을 물렸다.

“얘들은 내가 알아서 한다.”

“하지만 형님, 절차가…….”

“쓰읍. 우리가 언제부터 절차 따졌다고 그래?”

“그래도 이거 알면 위에서 귀찮게 걸고 넘어질 겁니다.”

“아씨. 그 새끼들은 좋은 건 지들이 다 해 먹으면서 왜 맨날 우리보고 난리래? 이번에도 그래. 고작 거점 경비 세우려고 혈맹을 이리 쓰는 게 말이 돼?”

“음, 그렇긴 합니다만…….”

“아니, 까고 말해서 솔직히 말이 혈맹이지, 우리를 완전 지들 시다바리로 보잖아.”

평소에도 불만이 많았는지 경비 대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러자 경비도 당황한 기색이었고.

“형님, 누가 듣습니다.”

“에라이씨. 들을 거면 좀 들으라지. 그리고 여기 우리밖에 없는데 누가 듣는다는 거야?”

잔뜩 성이 난 경비 대장이 근처 땅을 확 차고 거점 내로 들어가면서 전사 형이 건네주었던 보석 주머니에서 작은 보석 하나씩을 꺼내 경비들에게 던져 주었다.

“우리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몰라. 알았어?”

“흠흠, 그렇죠. 아무렴요.”

다들 작지만 보석을 하나씩을 받고서는 조용히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따라오슈. 우린 그 새끼들하고 달리 그래도 받은 만큼은 일하니까.”

아까까지만 해도 반말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녀석이 반존대를 쓰고 있었다.

최소한 손님으로는 본다는 건가.

혹시나 먹고 그냥 들어가 버리면 어쩌나 했는데.

적어도 보석 먹은 건 째지 않겠다는 거네.

일단은 전사 형의 재치로 다행히 관문을 지키는 거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크게 문제가 없어졌다.

“이쪽으로. 정문의 대로로 바로 가면 보는 눈이 많으니까.”

경비 대장이 정문을 지나자마자 바로 옆 건물로 우리를 빼내어 골목길로 들어섰다.

확실히 이곳은 잘 알고 있네.

녀석이 안내하는 곳은 유저들이 씨알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어두운 골목만 지나다니다 보니 점점 몸에 힘이 들어갔다.

<윈> 괜찮을까요?

<심연> 괜찮을 거다. 치려고 했으면 아까 했겠지.

말은 그렇게 해도 재중이 형도 경계를 낮추고 있진 않았다.

언제든 품에서 무기를 뺄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얼마나 경비 대장을 따라 빙빙 돌았을까.

어느새 어두운 골목 끝에 다다라 다시 환한 대로로 옮겨왔다.

“보는 눈이 많아서 좀 돌았슈다. 여기서부터 나가면 이제 괜찮습니다.”

경비 대장을 따라 대로로 진입하자 골목과는 확연히 다른 잘 꾸려진 건물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돈을 많이 들였나 본데?

거점을 바깥에서 볼 때도 그랬지만.

단순히 이곳을 임시방편으로 쓰기 위해 자리 잡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방어 시설도 충분하고.

거점 내부에도 거점을 유지하기 위한 부대 시설이 제법 잘 갖춰져 있었다.

“형, 여기 꽤 공을 들였는데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마왕의 부하들에게 뚫리면 바로 자기들 세력권으로 들어오니까.”

재중이 형 말에 따르면 여긴 그냥 평지 한복판에 물약이나 보급품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점이 아닌.

마왕에게서 정말 한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점이라고 보는 편이 옳았다.

뭐 마왕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냥 거점을 거치지 않고 지나갈 방법이야 널렸겠지만.

그 아래의 부하들은 또 그렇진 않을 테니.

그리고 그렇게 대놓고 넘어가게끔 초월 연합의 경계가 소홀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선가 계속 유저들을 써서 정찰을 하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의 시설에서 곧 관심을 거두었다.

어차피 거점 내부의 시설은 우리도 잘 아는 편이라서.

크게 다를 것도 없었고.

대로를 돌아다니는 유저들도 건물 중간에서 나온 우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 하는 것 같았다.

다만 잔뜩 날이 서 있다는 정도만 다를까.

거기에 지나치는 유저들의 장비가 예사롭지 않았다.

예전에 봤다면 전부 상위 랭커라고 생각될 정도로 장비의 질과 품이 좋아 보였다.

지금에서는 저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모르겠지만.

<윈> 형, 저들 장비면 괜찮은 건가요?

<심연> 어, 최상위 랭커까지는 아니어도 개인 랭킹을 보면 몇 페이지 안에는 들어갈 거다.

재중이 형이 말한 몇 페이지 안이라면…….

최소 1000위 정도라는 건가.

한 페이지에 100명씩 나오는데 열 페이지 이상을 넘겨 말하진 않았을 테니.

솔직히 그 순위를 넘어가는 랭킹이라면 그냥 검색을 해보는 게 차라리 더 낫다.

그런 유저들이 곳곳에 보이는 걸 보면.

지금 여기 모인 유저들이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니라는 거겠지.

우리가 경비 대장과 함께 움직이자 다른 유저들도 잠시 우리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자신들의 볼일을 보기 바빴다.

<윈> 정말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네요.

<심연> 그렇지. 자기 일이 아니라면.

특히 우리 뒤를 따라오는 발록은 아이디가 완전 시뻘겋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유저들의 관심을 받지 못 했다.

아니, 오히려 좀 피한다는 느낌이 강하려나.

마치 귀찮은 건 알아서 피해가듯.

그러고 보니 딱히 발록이 아니라고 해도.

대로 주변에 아이디가 시뻘건 유저들이 결코 적지 않았다.

“괜히 여기서 다른 유저들하고 시비 털진 마슈. 귀찮아지니까.”

그런 경비 대장의 피곤함 가득한 조언에 슬쩍 고개를 끄덕여줬다.

다른 유저들의 충돌을 자주 봐온 딱 그런 표정이라.

경비 대장이라는 입장에서 그걸 그냥 넘겨볼 수도 없었을 테고.

뭐 이 사람 같으면 그냥 넘겼을 지도 모르겠네.

일단 경비 대장 덕분인지 다른 유저들의 시선을 잘 피해 한 건물로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

“이번 원정대에 필요한 인원을 수속하는 길드 건물입니다. 들어가서 벤을 찾으면 알아서 해줄 거요.”

그러면서 우리에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였다.

“그리고 그쪽은 따로 지불해야 할 겁니다. 말썽 부리지 마시고.”

무슨 말인지 알겠네.

경비 대장에게 그랬듯 벤이라는 유저에게도 역시 뇌물을 줘야 한다는 말이었다.

암묵적으로 하는 일이라는 건가.

곧 경비 대장은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벤이라는 유저가 슬금슬금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흠흠, 미리 들으셨겠죠?”

이 사람도 눈짓을 보아하니 평소에도 이렇게 많이 해 먹은 것 같은데.

그러자 전사 형이 먼저 나서서 일을 처리해 주었다.

손에 보석 주머니를 쥐어 주는 걸로.

그렇게 보석을 받아먹자 흡족해하는 눈빛으로 벤이 우리를 안내했다.

“흠흠, 원래는 안 되지만. 마치 원정대 정찰 파트에 티오가 나서 말입니다.”

아니다.

이 사람은 없는 자리도 만들어서 줄 딱 그런 사람이었다.

돈만 받을 수 있다면.

그리고 어차피 그렇게 넣어주는 자리가 정상적인 자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고.

“위험한 원정 속에서 누구 하나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겠군요.”

“하하하하, 제 말이 그겁니다.”

보통은 꾸려진 인원이 사라지거나 줄어들면 경계를 하겠지만.

오히려 사라져 주는 걸 더 원하는 녀석이라니.

생각해 보면 없는 자리를 억지로 만들어서 넣는 분위기라.

<윈> 정말 너무 허술하네요.

<심연> 밑에는 이래도 위로 올라가면 달라. 정예 쪽은 인원이 확실히 짜여 있으니까.

<윈> 잔챙이들은 어차피 의미 없다 이거네요.

<심연> 아마 시간벌이나 방패막이, 눈속임 정도로 쓰려는 거겠지.

재중이 형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용도가 아니라면 굳이 이렇게까지 크게 원정대를 꾸릴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제대로 전투가 벌어지면 결국은 버틸 수 있는 놈들만 남을 테니.

덕분에 우리도 아무 의심을 받지 않고 원정대의 한구석에 끼어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유저들이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휴, 마용석을 이번에는 발견할 수 있으려나…….”

“난 반대쪽 트랜 버섯을 좀 캐 와야 해. 이게 돈이 짭짤하다니까.”

“이번에 산맥 안쪽에 가서 아그마티움을……. 이거 하나만 캐면 바로 차 한 대라니까?”

“그렇게나 해요?”

“흐흐, 이거 고위 네임드 템 제작에 꼭 들어가는 필수 템이라. 삼산보다 귀해. 광맥에서 한 개 볼까 말까야.”

“으, 나도 캐보고 싶네요.”

다들 뭔가 노리는 게 다양하네.

그만큼 마왕의 경계 안에 돈 되는 광석이나 채집템들이 많다는 소리였다.

그러니 이렇게 뒷돈을 줘가면서도 따라가려고 하지.

뭐 우리만큼 전력을 꾸린 사람들은 몇 없어 보였지만.

우리와 달리 저들은 진짜 채집꾼들일 것이다.

그런데 몇몇 유저들은 몸이 굉장히 날랜 장비를 착용하고 자신의 몸을 점검 중이었다.

흐음.

저들이 미리 말했던 정찰대라는 건가?

아마 가 보지 못했던 곳을 들어가기 위해 버리는 패로 쓰여지는 이들 같은데…….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 했던가.

이들 사이에 섞여 들자 정말 우리에게는 일체의 관심이 없어져 버렸다.

벤은 그런 그들에게 우리를 밀어 넣으면서 씨익 웃음 지었다.

“다음에 또 봅시다.”

보석 주머니를 흔들면서 좋아하는 모습이란.

벤이 사라지고 얼마 지니자 않아.

우르르 몰려 있던 유저들에게 다가오는 한 유저가 있었다.

누가 봐도 휘황찬란하게 장비를 꾸린 랭커.

그런 그가 한숨 가득 귀찮은 투가 다분하게 말을 꺼냈다.

정말, 정말 귀찮다는 딱 그런 표정과 함께.

“우리가 올라가는 경로에서는 어지간하면 안전하지만 그곳을 벗어나면 솔직히 책임져줄 수 없어. 이건 다 알겠지?”

그리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다들 그렇게 여의치 않아하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정찰조로 편성된 인원들은 우릴 따라 오고. 보수는 선지급 하겠다.”

채집꾼들과 달리 이쪽은 위험수당을 미리 주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래야 원하는 지점에서 자기 한 목숨 날릴 수 있을 테니.

다들 살아남으려고 온 것도 아닌 모습이었고.

정말 자기들이 들어가기 까다로운 위험한 장소에 밀어 넣을 작정이네.

위험도로 보면 이쪽이 월등히 높았다.

곧 재중이 형을 보면서 신호했다.

<윈> 어느 쪽? 정찰? 채집?

<심연> 당연히 정찰. 우리가 빠지는 타이밍을 잡으려면 정찰 쪽이 더 오래 따라갈 수 있을 거야.

아무래도 채집꾼은 원정의 정말 깊숙한 곳까지는 따라가지 못할 터.

그러려면 결국 정찰조로 빠지는 게 나았다.

그리고 정찰은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지.

“따라 와.”

일련의 정찰 역할을 맡은 유저들을 데리고 건물을 나서자 이번엔 연무장 같은 장소로 이동을 했다.

그리고 거기서 아주 익숙한 몇 명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

이놈들을 드디어 보게 되네.

<윈> 오랜만에서 봐서 반갑다고 해야 하나요?

<심연> 큭, 반갑기는 나도 마찬가지야.

초월 길드의 장.

전신.

페가수스 길드의 장.

명궁.

천사 길드의 장.

하논.

영혼 길드의 장.

연까지.

거기다 다른 몇 개의 프로게이머 길드들의 장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원정대의 최전선에 서서 유저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이번 원정이 중요하긴 중요한 모양이네.

그간 얼굴도 보기 힘들었던 녀석들이 모두 나온 것을 보면.

그런 그들 사이에서도 가장 선두에 서서 주목을 받는 이가 있었다.

우르르 모인 수많은 연합원들 사이로 외치는 단 한 명의 유저.

전신.

그들을 모아두고 한참을 연설을 하던 전신이 곧 주먹을 크게 치켜 올리면서 외쳤다.

“……그럼 지금부터 대천사의 무덤 공략을 시작한다!”

“우워어!!”

“가자아!!”

“할 수 있다아!!”

거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유저들 사이에서 빛나는 전신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그래.

공략 실컷 해 봐.

결국 마지막에 웃는 건 우리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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