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1화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 못 먹어 (9)
대천사의 무기.
왜 이런 아이템이 천계와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인 마계에 존재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중간에 너무 퀘스트를 뛰어넘어 버려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아마 이 아이템을 얻기 위한 어떤 다른 복잡하고도 어려운 경로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이를 테면.
메인 퀘스트급의 진행 경로.
그리고 대천사라는 직위가 천계에서 결코 낮은 직위는 아니야.
발록의 반응만 봐도 그건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했다.
만약 대천사라는 게 천계의 그냥 그저 그런 정도의 직위였다면 발록이 선뜻 이 대천사의 무기를 가지기 위해 나서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테니까.
녀석도 마왕을 잡는데 필요한 무기가 대천사의 무기라는 것을 알고 나서야 확신을 가졌다.
그러니까.
대천사라는 게.
적어도 마계의 마왕급은 된다는 말이지.
그러면 대천사의 무기가 마왕에게 통한다는 건 당연한 말이 될 것이다.
같은 등급.
완전히 반대되는 다른 속성.
이것만 해도 마왕에게 치명타를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물론 발록에게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같은 마왕급의 무기를 구하는 건데.
그게 지금은 쉬워 보이진 않았다.
대부분의 마왕급 아이템들은 그들의 주인이 있었고.
당장 발록은 그들과 대치 중이었으니.
마왕 중 누구 하나 건드려서 확실히 빼앗아 올 수 있지 않는 이상에서야 이건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지.
반면에 이 대천사의 무기는 상황이 달랐다.
일단 주인이 없단 말이지…….
누군가 주인이 있었다고 한다면 저렇게 유적지에 처박혀 있을 리는 없으니까.
거기다 저 대천사의 무기가 묻혀 있는 장소가 대박이었다.
마계의 마왕이나 몬스터들이 가기 힘든 천계가 아닌 이곳 마계니까.
만약에 천계였다면 이미 손을 들었을 지도 모른다.
애초에 발록이 갈 수가 없으니.
힘들게 간다고 하더라도 천계에서 제대로 힘을 낼 수 있을까라고 물어본다면…….
이건 뭐 답도 없는 상황이라.
가득이나 화염이 넘치는 곳이 아니면 최대치의 힘을 낼 수 없는 녀석인데.
천계는 말하면 입 아프지.
그곳에서 용암과 화염이 넘실거리는 장면을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되지.
정해진 주인이 없고.
무려 마계에 존재하는.
어둠 속성과 반대되는 대천사의 무기.
이건 정말 마왕들에게는 치명적인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그런 희귀하고도 희귀한 아이템을 얻기 위해 이번 여행의 파트너가 될 발록과 함께 용암 지대를 떠났다.
뭐 그렇다고 우리가 의싸의싸 하면서 어깨동무하고 친해진 사이는 결코 아니었고.
서로 꽤 거리를 벌린 상태로 우리가 먼저 걸어가면 발록이 뒤를 따라오는 정도였다.
아직은 서먹서먹한 관계랄까.
하긴 좀 전까지만 해도 서로 칼부림을 한 사이라…….
발록은 괜찮다고 해도 우리가 꽤 부담스럽지.
갑자기 가다가 뒤에서 목이라도 날리면 대처하기가 꽤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어울리지 않는 동행을 하는 중이다.
네임드와 동행이라니.
누가 상상이나 해 봤을까.
그것도 당장 거점이나 나라 하나 정도는 숨 쉬는 것처럼 어렵지 않게 박살 낼 수 있는 위력을 가진 녀석을 뒤에 달고 말이지.
이건 거의 핵폭탄을 뒤에 달고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걸어 나가 용암 지대의 끝에 다달았을 때.
결국 한숨을 푹 쉬고는 발록을 돌아보았다.
“야, 우리가 이대로 가긴 좀 어렵지 않겠냐?”
이미 존대 같은 건 물 건너간 사이니 대충 부르니 발록이 눈썹을 확 치켜세웠다.
“문제가 있냐?”
“어, 네 그 모습 자체가 문제야.”
“음?”
녀석은 애초에 그렇게 다녔으니 전혀 인식하지 못하겠지만.
아니 굳이 인식하거나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 자체가 없겠지.
“앞으로 거점이나 마을, 도시를 지나쳐야 할 건데. 네 모습이 문제된다고 생각하진 않아?”
그러자 그제야 녀석이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덩치가 커도 너무 컸다.
원래 네임드가 그렇듯 이 녀석도 덩치가 꽤 큰 편이라.
물론 베히모스 같은 야수형은 아니라서 덩치가 산만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반 유저들보다 녀석이 월등히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내 모습이 문제라면, 바꾸면 되겠군.”
그렇게 말한 뒤.
발록의 몸에서 갑자기 화염이 확 피어올라 녀석의 신체를 태울 듯 감싸 올랐다.
그리고 얼마 지니자 않아 화염이 걷혀지자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신체로 녀석의 모습이 바뀌었다.
흡사 유저와 비슷한 형태의.
꼬리 역시도 사라진 상태였고.
신체 밸런스가 유저의 그것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덩치는 여전히 좀 크긴 해도.
얼핏 보면 이전의 최상급 불의 정령이 유지하고 있던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재중이 형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저러면 유저하고 구분히 힘들겠는데?”
“네, 그렇죠?”
당장 누군가 뛰어들어서 공격해보지 않는 이상은.
미니어처 발록이 우리를 바라보고는 물었다.
“이러면 됐나? 너희와 같은 모습으로 변형시켰는데.”
“나쁘지 않아. 그런데 조금 더 해야 할 게 있어.”
그리고는 입고 있던 검은 로브를 벗어서 발록에게 휙 던져 주었다.
“흠? 인간들의 옷인가?”
“몸매 자랑할 거 아니면 입어 봐.”
여전히 근육질의 탄탄한 모습에 눈길이 가긴 하는데 저러고 돌아다니는 유저는 없으니.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유저는 아무리 아이템을 벗어도 속옷은 존재한다는 점이다.
반면에 저 녀석은 맨몸이라.
신고를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그나마 내가 입고 있던 외형을 가리기 위한 검은 로브를 걸치자 얼핏 보기에는 유저처럼 모습이 바뀌었다.
곧장 전사 형을 보면서 물어보았다.
“저러면 구분 못 하겠죠?”
“음,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들통 날 거야.”
“아! 그건 방법이 있어요.”
그리고 다시 품에서 아이템을 하나 더 꺼내었다.
『 하이딩 페이스 / 방어력 0.
- 가면 아이템.
- 시전자의 얼굴을 가려준다.
- 내구도 하락 시 파괴. 』
과연 이걸 유저가 아닌 네임드가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 로브를 걸친 것만 봐도 아마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녀석이 하이딩 페이스를 얼굴에 가져다 대자 이번에는 완전히 얼굴까지 가려지게 되었다.
얼굴에 씌여진 가면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만져보던 발록이 만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오, 신기하군.”
신기할 것도 많다.
“그러면 당장 모습을 감추는 덴 무리가 없을 거야.”
“인간은 신기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군.”
당장 모습만 저렇게 감추어도 중간에 걸리적 저리는 녀석들은 걸러낼 수 있었다.
만약 몬스터라고 달려들면…….
“아, 맞다. 형. 저건 어떻게 안 되나요?”
그러면서 발록의 머리 위에 떠있는 네임을 가리켰다.
어지간한 유저가 봐도 발록 같은 네임드는 시뻘겋게 네임이 보였다.
레벨이 어지간히 높아야 말이지.
물론 발록은 그냥 아이디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면 그만이라 상관없는데.
특유의 저 색상이 문제지.
플레이어 킬을 많이 해서 생긴 붉은 색상하고는 얼핏 차이가 났다.
정말 미친 듯이 유저들을 죽이고 다니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색상이라.
그러자 전사 형이 괜찮다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말했다.
“뭐, 저건 저것 나름대로 괜찮지 않아?”
“그래요?”
“그만큼 유저들을 많이 죽이고 다녔다는 표식이잖아. 어지간한 유저들은 쫄아서 덤비지도 못할 걸.”
“색상 차이가 좀 있지 않아요?”
그러자 전사 형이 한껏 웃음을 보였다.
정말 괜찮다는 표정으로.
“그렇게까지 남 일이 관심 많은 녀석들은 없지. 잠깐 쳐다보고 말 건데. 그리고 색깔이 저렇게 붉으면 근처에도 안 가. 보통 색 뻘건 애들은 미친 애들이 많아서. 대놓고 칼질 하는 녀석들도 있으니까.”
“그건 뭐 다행이네요.”
졸지에 과도하고도 이상한 플레이어 킬 유저가 되어버린 발록을 보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진짜 나름 저것도 나쁘진 않네.
전사 형 말대로.
이 정도의 색상이면 안 그럴 녀석들도 쫄아서 멀리 떨어질 것이다.
가만히 길가다 죽을 지도 모르니.
어떻게 하다 보니 정말 네임드가 유저처럼 되어 버린 상황에 재중이 형과 전사 형도 재밌다는 듯 웃음 지었다.
그러다가 전사 형이 아무 생각 없는 표정으로 흘리듯 말했다.
“이거 잘하면 네임드 군단도 가능한 거 아냐?”
“……설마요.”
정말 얼핏 스치듯 말한 거라.
둘 다 웃으면서 넘겼고.
네임드 군단이라…….
내가 생각해도 그건 미친 짓이지.
그런 생각을 뒤로 하면서 발록에게 말했다.
“이젠 유저들 영역이니까. 눈에 띄는 행동은 삼가 줬으면 좋겠어.”
“귀찮은데 그냥 쓸어 버리면 안 되나?”
발록이 띠꺼운 표정으로 짓고 손짓을 해보이자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은 장면이 그려졌다.
하아.
그건 곤란하지.
아직은 주목을 끌어서는 안 된다고.
“그랬다가는 당장 마왕과 유저들 연합군이 널 따라다닐걸?”
“음, 그렇군.”
솔직히 마왕과 초월 쪽 연합 유저들이 대치 중이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렇게 말해 두지 않으면 발록이 제멋대로 행동할 확률이 아주 높으니까.
최소한의 장치는 해 두어야 했다.
그리고 상황이 급박해지면 정말 마왕과 유저가 손을 잡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었다.
나 때만 봐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마왕 벨라와 손을 잡고 일을 진행했던 기억이 있는 나에겐 그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조심해야 하는 거고.
정말 대천사의 무기를 손에 쥐기 전까지는.
일부러 아퀼라스 주니어도 소환하지 않고 걸어서 유적지가 있는 방향까지 쭉 이동했다.
아퀼라스 주니어 같은 탈것은 원래 주인이 나라고 알려져 있기에 정체를 숨겨야 하는 상황에선 쓰기가 애매했고.
다른 네임드급 탈것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너무 느려 중간에 답답했는지 발록이 최상급 불의 정령을 불러내서 야수형의 탈것으로 바꾸었다.
타오르는 최상급 불의 정령에 얼핏 보기에는 베히모스 같은 형태라…….
여러 가지로 쓸모가 많네.
탐난다. 진짜.
문제는.
“기각. 이거 너무 눈에 띄여.”
정말 화려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라.
누가 봐도 너무 시선을 끌기에 이건 부적합했다.
아쉬워하는 발록을 대신해 전사 형이 마계에서도 쓸만한 탈것을 꺼내들었다.
“이거면 되겠지?”
마계 켈베로스.
일반 몬스터급인 야수형인데 요즘 유저들이 즐겨 타는 녀석이라고 했다.
구하기 어렵지도 않다고 하고.
이건 유저들이 많이 타고 다니기에 눈에 띄지도 않는다.
예전엔 켈베로스가 보스급이었는데 말이지.
여기서는 쫄따구밖에 안 되는 거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는 전사 형이 빌려준 마계 켈베로스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면서 유저들의 영역을 몇 번 스쳐지나간 다음 드디어 유적지 근처의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
이 마계 켈베로스가 없었으면 상당히 오래 걸렸겠어.
설마 이 정도로 거리가 멀 줄은.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대천사의 무기가 잠들어 있는 유적지에 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관문 지점을 누군가 거점으로 만들어놓고 완전히 틀어막아놓았다.
다른 곳을 통해 가려면.
마왕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가야 해…….
순간 고개를 저어서 발록을 봤다가 한숨을 쉬었다.
진짜 마왕이라면 발록을 눈치챌 거야.
결국 여기로 갈 수밖에 없나.
전사 형에게 바로 물었다.
“형, 여기 초월 애들 거점이죠?”
“어, 그렇지.”
“후,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그렇게 의심스러워 보이는 발록을 뒤에 데리고 거점의 입구에 섰다.
그러자 문지기 녀석들이 크게 외치면서 우리 앞을 확 막아섰다.
잔뜩 긴장한 듯 동시에 무기를 앞으로 내밀며.
“너희들! 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