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81화 (871/1,404)

#880화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 못 먹어 (8)

시스템 메시지가 울리면서 그동안 그다지 오르지 않았던 발록과의 호감도가 이번에 대폭 상승했다.

그리고 이 정도의 호감도 상승 폭이라면…….

발록이 확인한 내용과 우리가 이야기한 내용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만약 우리가 예상했던 아이템이 없었다면.

지금쯤 발록과 호감도를 쌓는게 아니라 당장 칼부림을 하고 있었을 테니.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재중이 형에게 귓속말을 넣었다.

<주호> 형, 진짜 그런 아이템이 있긴 있나 봐요.

솔직히 반쯤은 도박이었는데.

초월 쪽 연합 사람들이 유적지 외곽에서 벽화만 보고 확인한 것에 불과했으니 사실상 거의 추측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불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발록에게 배팅한 셈이고.

어떻게 보면 이건 미친 짓이지.

그런데 지금 발록의 반응만 보면 실제로 그런 아이템이 존재한다는 거다.

<불멸> 그러게. 나도 반반이었는데 말이야.

형도 확신은 없었구나.

저 반응만 보면 이건 거의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격인데?

<주호> 없었으면 어쩌려고 했어요?

<불멸> 뭘 물어? 그냥 튀어야지.

그런 재중이 형의 웃음기 섞인 대답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결과가 좋으니 뭐.

그렇게 내가 재중이 형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발록이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것도 거의 전투가 가능할 정도로 가까이.

순간 르아 카르테와 테르타로스의 손잡이에 손이 올라갔는데 재중이 형이 내 손을 잡아서 멈췄다.

<불멸> 일단 두고 보자.

<주호> 으음. 이런 식으로 가까이서 볼만큼 친한 사이는 아닌 것 같거든요.

좀 전까지만 해도 서로 칼부림을 하던 사이였는데.

그것도 죽이니 사네 하면서.

호감도가 오르긴 했으나 안심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놈의 호감도가 완전 자기 마음대로라서 말이지.

같은 호감도라 하더라도 대상에 따라 반응이 천차만별이었다.

그건 저 발록이 갑자기 기분 나빠졌다고 칼을 휘둘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고.

전사 형도 긴장한 듯 무기와 라지 쉴드를 앞으로 꺼내들었다.

사람 마음이 다 똑같단 말이야.

그렇게 긴장감이 흐르는 사이.

발록이 우리 앞에 스무 발자국쯤 거리를 유지하면서 멈춰 섰다.

더 가까이 올 생각은 없나 보네.

어쩌면 우리가 경계한다는 것을 알고 저러는지도 모르고.

잠시 우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발록이 두 손을 뒤로 빼더니 허리 뒤편으로 뒷짐을 쥐었다.

“너무 경계하는군. 이러면 되는가?”

저건 공격할 의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주는 자세였다.

뭐 자세가 저렇다 뿐이지 실제로 공격을 하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라 크게 의미는 없긴 했다.

“그건 함께하겠다는 뜻으로 알면 되나?”

“좋을 대로 생각하도록.”

더 확실한 뭔가가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 발록은 최대한 양보를 한 셈이었다.

“정보는 어떻게 알았지?”

발록이 알아보겠다고 사라진 시간은 고작 이십여 분에 불과했다.

그런데 저렇게 확신을 가지고 나타나다니.

우리도 이건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호감도가 전부는 아니니.

그러자 발록이 눈길로 옆에 있는 녀석을 가리켰다.

발록과 유사하게 생기긴 했는데…….

그보다는 많이 작은 덩치를 가진 녀석이었다.

아마 부하쯤 되려나?

그리고 발록이 공중에 손을 휘저으니 곧장 녀석의 형체가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사라질 때 뭔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착각인가?

“그건……?”

“최상급 불의 정령이다. 처음 보나?”

불의 정령?

그것도 최상급?

발록에게 불의 정령에 대해 듣자 역시 시스템 메시지가 반응했다.

《 불의 정령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

《 정령계에 대한 정보가 열람됩니다. 》

《 최상급 정령에 관련된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

《 관련 NPC들에게서 정보를 추가 습득할 수 있습니다. 》

고개를 저어서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을 보자 둘 다 처음 보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주호> 몰라요?

<불멸> 어, NPC들에게 소문은 들었는데…… 이런 곳에 있을 줄은 몰랐잖아?

<주호> 제가 없는 동안 업데이트 된 거였나요?

<불멸> 아직은. 하지만 눈앞에서 보니 안 믿을 수가 없군.

정령이라.

나야 뭐 금속의 정령을 실제로 가지고 있으니까 정령이 없다고 할 순 없었다.

그런데 저런 최상급 정령 같은 경우는 처음 보았다.

그러고 보니…….

르아 카르테가 정령신의 무기라고 했던가.

저 최상급 불의 정령과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그 불의 정령이 알아온 건가?”

“그렇다.”

후.

정령이라는 거.

생각보다 유용하잖아?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왕을 죽일 수 있다는 아이템이 있다는 장소와 이곳은 상당히 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를 단지 이십 분도 안 되는 사이에 오갈 수 있었다는 말이니.

금속의 정령은 딱히 그런 기능은 없는 것 같지만.

이 녀석은 애초에 종이 다르니까.

그리고 최상급이라서 그게 가능한 것일 수도 있고.

<주호> 탐나는데요?

재중이 형의 대답으로 봐서는 당장 저 정령을 얻는 방법은 없어보였다.

그렇다는 말은…….

저 발록에게 해답이 있다는 건데.

재중이 형도 같은 생각인지 내게 말했다.

<불멸> 한 번 물어봐.

<주호> 네,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혹시 그 불의 정령. 나도 얻을 수 있나?”

그러자 발록이 바로 거절의 뜻을 밝혔다.

“우리가 그렇게 친한 것 같진 않군.”

《 발록과의 호감도가 부족합니다. 원하는 대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

흐음.

이것 참.

호감도가 곳곳에서 말썽이네.

당연하겠지만 지금 녀석에게서 뭔가의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일이 끝나면 나중에 다시 물어보지.”

“좋을 대로.”

만약 녀석이 정말 마왕을 죽일 수 있는 아이템을 손에 넣는다면 그때는 지금과는 확연히 호감도가 다를 것이다.

아마도 지금보다는 대폭 상승하지 않을까.

그래도 일단 여기서 만족했다.

적어도 어디서 정령에 대한 단서를 얻어야 하는지 답이 나왔으니.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이 정령의 검과 관련된 것들도 더 알아낼 수 있겠지.

저 발록과 반드시 친해져야 하는 이유가 더 생겨 버렸네.

일단 정령에 대한 것은 접어 두고.

지금 중요한 것은 마왕을 잡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유적지에 있는 물건이 어떤 건지 알려 줄 수 있어?”

솔직히 이건 우리 덕에 정보를 알게 되었으니 녀석이 숨기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이 그에 관련된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불의 정령이 말하기로는…… 대천사의 무기라고 하더군.”

그 순간.

시스템 메시지가 먼저 반응했다.

《 천계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

《 천계에 대한 정보가 열람됩니다. 》

《 대천사의 무기에 관련된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

《 관련 NPC들에게서 정보를 추가 습득할 수 있습니다. 》

대천사의 무기?

이건 최상급 불의 정령만큼이나 놀라운 정보였다.

<주호> 형, 이거…… 대박이죠?

<불멸> 그래, 설마 유적지에 있는 아이템이 이런 종류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아니다.

지금 다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마왕을 죽이려면.

그에 상응하는 아이템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그냥 천사도 아니고 대천사라면…….

거기다 아이템의 종류까지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무기의 형태.

방어구나 악세서리 계열이 아닌 무기라는 것.

이것만 해도 날 흥분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순간 본능적으로 내 손에 들린 르아 카르테를 바라보았다.

과연 이 르아 카르테가 대천사의 무기도 흡수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경우만 보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 마왕의 무기를 흡수해 본 적이 없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상황이 이렇게 되기 전에 한 번 시도해 볼 것을.

그때 마왕 벨라의 창을 흡수해 봤다면 확실히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을 잠시 눌러놓고 다시 생각을 정리 했다.

그런데 왜 마계에 대천사의 무기가 봉인되어 있는 거지?

그것도 유적지의 형태로?

여기가 천계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겠지만…….

<주호> 형, 천계도 아닌데 대천사의 무기는 이상하지 않아요?

<불멸> 확실히. 이건 만약인데. 저 유적지. 어쩌면 천계로 가는 열쇠가 될 수도 있어.

천계라…….

그동안은 마계만 열려 있어서 아직 유저들이 가 보진 못했지만.

처음 로그인을 할 때 분명히 천계와 마계를 동시에 보여 주었었다.

그건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지.

준비를 해놓지도 않고 로고에 나올리는 없으니.

마계, 천계, 그리고 정령인가…….

휴.

셋 다 공략을 하긴 해야 하는데.

일단 우선순위는 역시나 이곳 마계였다.

확실한 거점을 만들어놔야 다른 곳도 안정적으로 공략할 수 있을 터.

곧장 발록을 보고는 물었다.

이건 확실히 해놔야 해.

“대천사의 무기를 얻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발록의 생각.

단순히 마왕들만 공격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던가.

지금 녀석에게 쥐어 주는 무기는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대천사의 무기가 얼마나 굉장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마계의 판도를 뒤엎을 수 있는 무기지.

이름에서도 보이듯 반대 속성인 마왕에게는 치명적일 테고.

뭐 발록이 대천사의 무기를 쓸 수 있고 없고는 차지하더라도.

사실 발록 역시도 마계의 존재이다 보니 아마 대천사의 무기를 얻더라도 못 쓸 확률이 아주 높았다.

<주호> 형, 발록이 대천사의 무기를 쓸 수 있을까요?

<불멸> 흐음? 글쎄. 그건 착용 제한을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주호> 불가능할 수도 있겠죠?

<불멸> 꽤 높은 확률로?

재중이 형 역시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저 녀석이 쓰지 못하는 대천사의 무기가 공중에 붕 뜨게 되니까.

그리고 이럴 경우는.

우리가 충분히 협상할 만한 여지가 있었다.

발록을 보면서 일단 제안을 했다.

“대천사의 무기. 습득하고 나면 우리가 한 번 볼 수 있을까?”

“흐음. 무엇 때문이지?”

“마왕이 아닌 대천사의 무기이니까.”

그제야 발록도 내가 할 말을 이해한 모습이었다.

“내가 못 쓸 수도 있다는 건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데.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까.”

혹시나 하는 가능성.

그리고 만약 상황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게 되면 발록 역시도 중간에 붕 떠 버린다.

잘못하다가는 유적지에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 테니까.

마왕을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위험도가 있는 건 녀석이 감수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만약 그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녀석의 리스크를 최대한으로 줄여 줄 수도 있었다.

“만약 그 상황이 되면…….”

“된다면?”

“마왕을 우리가 견제해 주면 되려나?”

내 말에 발록이 혹한 표정을 지었다.

최악의 상황에서의 동아줄 같은 제안이랄까.

“그러니까 대천사의 무기를 네가 쓸 수도 있게 해달라는 거군.”

“그렇게 알아들었다면 맞겠네.”

잠시 고민을 하던 발록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나도 차선책 하나 정도는 들고 있는 게 좋았지.”

그 순간 손을 불끈 쥐었다.

좋아.

협상 완료다.

“그럼, 대천사의 무기를 가지러 가 볼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