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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75화 (865/1,404)

#874화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 못 먹어 (2)

솔직히 처음에는 그냥 시간만 좀 끌 수 있다면 뭐든 좋다고 생각했다.

그게 네임드가 되었든 마왕이 되었든.

지금 나와 재중이 형을 포함한 우리 쪽 사람들만이 아니라 패황 연합 쪽 유저들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니까.

적들의 눈을 돌리고 시간을 벌어줄 존재가 뭐가 되었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지금 마주한 저 레벨이 오른 발록 덕분에.

저런 수준이라면…….

거의 게임 체인저나 마찬가지지.

시간을 끄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판을 뒤엎어 버릴 수 있는 괴물이 있는데 굳이 힘들게 중간에서 고생할 필요가 있을까.

“형, 저 녀석 빠르다고 했죠?”

“아아, 예전에도 빨랐지만 지금은 더 빠르겠지.”

“그럼 써야겠네요.”

혹시나 해서 준비를 해놓기는 했는데 지금은 바로 필요할 듯 했다.

【 웨폰 카피! 】

그리고는 테르타로스를 꺼내들어 바로 복사본을 만들어 냈다.

다른 사람들은 절대 쓸 순 없지만.

적어도 내가 들고 있을 때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

오른손에는 테르타로스의 원본.

그리고 왼손으로 테르타로스의 복사본.

『 +10 테르타로스 (전설) <정령의 가호>

/ 출혈 95(85+10) 타격 60(50+10)

- 근력 +75

- 민첩 +92

- 체력 +79

- 지력 +93

- 마력 +81

.

.

- 테르타로스의 카피본입니다.

- 내구도가 낮습니다. 작은 충격에도 파괴될 수 있습니다. 』

단순히 테르타로스 하나라면 내 레벨이 낮기 때문에 아무리 스탯을 뻥튀기 한다고 하더라도 겨우 한 사람 몫을 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처럼 두 개를 동시에 들면 어떨까.

이렇게 테르타로스 두 개를 동시에 들자 순간적으로 두 무기에 내장된 스탯이 전부 내게 적용되었다.

그렇게 추가된 스탯이…….

근력 150.

민첩 184.

체력 158,

지력 186.

마력 162.

이 정도면 아마 저 녀석의 스탯에 근접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스탯이 한꺼번에 올라갔다.

“호오, 그렇게 해보겠다는 거냐?”

“네, 르아 카르테를 들어도 상관은 없긴 한데. 이쪽이 스탯은 더 붙으니까요.”

르아 카르테는 손댈 수 없는 옵션들이 좀 있기 때문에 오히려 스탯 면에서는 이쪽이 더 나았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뒤 저 멀리 우리를 바라보면서 가만히 공중에 떠 있는 발록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거 생각보다 더 어려울지도.

저 발록을 쉽게 볼 수가 없는 건 단순히 레벨이 높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레벨이 깡패긴 한데.

그보다 더 위협적인 건…….

“저 녀석, 공중형이었어요?”

“어, 날개 있잖아.”

“전 그냥 장식인 줄 알았죠.”

몬스터들이 날개가 있다고 다 나는 건 아니었다.

그냥 폼으로 달아놓은 녀석들도 제법 있고.

그리고 날개가 없어도 나는 녀석들이 있으니까.

꼭 비행형의 기준이 날개라고 하기에는 변수가 많지.

거의 운영자 마음대로라고 할까.

저 녀석 날아라 하면 그 녀석은 오늘부터 날아다니는 거다.

“안타깝게도 저 녀석은 날아다녀.”

“진짜 어떻게 잡은 거예요?”

무려 비행형 네임드인데.

쉽게 잡았을 리가 만무하지.

“뭐 그땐 마지막 순간에만 좀 날아서 말이야. 지금처럼 처음부터 날진 않았다고.”

“레벨이 올라서 그런 건가 보네요.”

레벨이 오르면 마지막 페이즈를 시작부터 쓰는 놈들도 있었고.

생각해 보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할 수 있겠어?”

“안 되도 되게 해야죠.”

전에 재중이 형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저 발록이라는 녀석의 지역에 대해서.

“분명히 지역형 네임드는 아니라고 했죠.”

“어, 가끔씩이긴 해도 이 지역을 벗어나기도 하거든.”

만약 저 발록이 유적지를 지키는 네임드 같은 형태였다면 이 생각은 진작에 접어 버렸을 것이다.

애초에 자기 구역에서 나오지를 않는데 무슨 수로 녀석을 데리고 다닐까.

“그럼 이제 저 녀석에게 죽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는 게 문제겠네요.”

사실 이게 제일 어려운 일이지.

저 발록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해 보였다.

준비해 온 게 아슬아슬할지도 모르겠어.

“한번 해보죠.”

“무리는 하지 말고. 죽으면 절대 안 된다.”

“네, 여차하면 바로 튈게요.”

절대 안 되는 일에 목숨 거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으니까.

일단은 녀석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봐야 했다.

판단은 그 다음에.

카아악!

녀석이 멈춰 있는 우리를 보고는 이내 공중에서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전투를 준비하는 전사처럼.

“말은 못 하나 보네요?”

“그렇다고 지능이 낮진 않지. 절대 스킬의 위력에 의존해서 싸우는 녀석은 아니다.”

재중이 형이 말하는 건 아마도 전투 지능이려나.

네임드 중에 그냥 서서 스킬만 난사하는 네임드도 많이 있는데 저 녀석은 그런 범주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강한데 전투도 잘하면 뭐…….

그냥 괴물이라고 봐야지.

바닥에 완전히 내려선 발록이 그 특유의 탄력 있어 보이는 신체를 내세워 자신감 있게 우리에게 걸어왔다.

두 판을 내리고 거의 무방비 상태로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는 녀석의 상태를 파악했다.

저 모습은 아마 우리가 위협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려나?

“너무 막 걸어오네요.”

“우리가 어떻게 공격해 와도 바로 반응할 여유가 있다는 거겠지.”

“후, 기대되네요.”

아무래도 마왕만큼 강하려나.

제발 두 테르타로스의 스탯이 저녀석에게 밀리지만 않기를.

아니, 다른 스탯은 다 밀리더라도 최소한 민첩이라도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움직임을 맞출 수 있을 테니.

잠시 후 어느 정도 우리에게 걸어온 발록이 중간에서 발걸음을 뚝 멈췄다.

“더 안 오네요?”

“흐음…… 예전 같으면 바로 공격했을 건데.”

의아하다는 눈빛과 함께 긴장된 표정으로 전사 형이 내 옆에 섰다.

“한 번은 막아 볼게.”

“아뇨, 지금은 떨어져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전사 형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지금 저 발록은 상상 이상으로 강할 것 같으니까.

특히 나르샤 누나보다 민첩이 높다면 전사 형이 상대하기에는 좀 버거운 면이 있었다.

온몸으로 막으면서 힐러들이 붙어 있는 레이드라면 또 모를까.

잘못하다가는 그냥 죽어 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라.

그때 잠시 눈을 깜빡거리는 아주 짧은 한순간.

발록이 그 자리에서 없어진 것처럼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전사 형!! 가드!!”

그리고 내 외침에 전사 형이 일말의 의심 없이 바로 라지 쉴드를 정면으로 들어 올리면서 몸을 크게 낮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야에서 놓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순간에 거리를 격해 바로 전사 형 앞에 나타난 발록이 광택이 나는 팔을 크게 휘둘러 라지 쉴드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카갸갸갹!!!

전사 형의 저 라지 쉴드가 어느 등급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낮은 등급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방금 발록의 저 한 방에 쉴드의 겉면이 크게 우그러지면서 형태가 완전 변형되어 버렸다.

이건 방어력이고 뭐고 할 것도 없잖아.

그냥 내구가 한 번에 반토막 난 수준이었다.

다른 말로 저 발록의 공격 한 번이 전사 형이 들고 있는 라지 쉴드의 방어력을 압도적으로 상회한다는 뜻이었다.

미친 공격력.

만약 라지 쉴드가 없이 몸으로 받았다면 딱 한 방에 저승길을 탈 뻔했다.

전사 형 역시도 이 한 번의 공격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아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크윽! 이건…… 전에 그 녀석이 아냐!”

전사 형도 레이드를 해 봤으니까 비교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예 다른 녀석이라고 평을 했다.

그 정도로 차이가 많이 난다는 뜻이려나?

그리고 그런 생각들과 함께 어느새 내 몸 역시도 전사 형과 발록 사이로 뛰어 들고 있었다.

민첩 수준이 200대는 가볍게 넘어가기에 평소보다 월등히 빠른 움직임으로 몸이 움직였다.

그렇게 접근하자마자 바로 테르타로스로 녀석의 몸을 찔러 들어갔다.

쐐애액!!

공기를 가를 정도의 위력적인 찌르기.

단순했지만 민첩, 근력, 체력이 모두 안정적이기에 이 한 번의 찌르기는 그만큼 위협적으로 변했다.

카악!!

그러자 발록이 곧장 내게 시선을 돌리면서 한 팔을 쭉 뻗어 내 테르타로스의 검면을 치기 위해 빠르게 휘둘렀다.

쌔액!!

역시.

민첩이 엄청나.

이미 내 공격들 들어가고 난 뒤에 늦게 반응했음에도 검속을 따라올 만큼의 속도가 나왔다.

쉽지 않겠는데…….

그 순간.

찔러 들어가던 테르타로스를 그대로 손에서 놓아 버렸다.

카가강!!

쇠와 쇠가 만나서 갈리는 소리가 아니라 아예 테르타로스가 튕겨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이 격돌에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발록의 표정을 보고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당연히 강력한 반발이 있을 거라 생각했을 텐데 그냥 무기를 손에서 놓아버렸으니 이상하게 볼 수밖에.

하지만 애초에 이번 공격은 페이크였다.

진짜 중요한 건 바로 반대편의 진짜 테르타로스지.

그리고 그런 복사본 테르타로스에 시선이 팔린 사이 아래쪽에서부터 진짜 테르타로스가 뻗어 나가 녀석의 복부를 제대로 찔러 들어갔다.

속도 싸움이라면…….

나도 지지 않는다!

그리고 방심한 발록에게 테르타로스의 찌르기가 옆구리에 맞아 들어간 그 순간.

녀석의 복부가 검게 변하면서 단단한 물질로 뒤덮였다.

뭐지?

갑옷 같은 건가?

캬가각!!

그리고는 마치 쇠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테르타로스가 검날이 녀석의 허리에 긴 상처만을 내고 바깥으로 튕겨 나왔다.

칫.

완전히 방심한 상태의 공격이었는데.

이게 통하지 않을 줄은.

물론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발록의 옆구리에 확연한 혈흔을 남겨 그곳에서부터 불길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그런 자신의 옆구리를 본 발록이 정말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와 자신의 상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던 발록의 눈빛이 시뻘겋게 변하더니 묵직한 목소리를 내었다.

“너…… 마신의 파편인가?”

응?

이걸 알아봐?

아니 그 전에 말을 못한다고 하지 않았어?

고개를 돌려서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의 표정도 굳어졌다.

재중이 형 역시도 창을 들고 공격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방금의 반응으로 잠시 틈을 놓쳐 버렸다.

그리고 발록이 가만히 서 있자 전사 형이 먼저 뒤로 빠졌고 나도 바로 뒤로 빠져나왔다.

“형, 저 녀석 말 못 한다면서요?”

“전에는 한 마디도 안 했어.”

전사 형을 보자 전사 형 역시도 처음 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레벨이 오르면서 뭔가가 변한 건가?

이 정도면 아예 다른 개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은데.

그렇게 셋 다 무기를 들고 발록을 향해 겨누었는데 의외로 발록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내게 또 다른 충격을 주었다.

네임드가 공격을 받았는데 그냥 가만히 있다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라…….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었는데 정확하게는 나에게 그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너, 마신의 파편인가?”

그런데 아까와 완전히 똑같은 물음이 또 나오자 순간 눈썹이 올라갔다.

반응이 뭔가 다른데?

이거…….

혹시 퀘스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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