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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74화 (864/1,404)

#873화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다 못 먹어 (1)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체력이 계속 빠지는 화염의 대지.

그곳에서도 가장 중앙에 있는 지저에 존재하는 녀석.

발록.

떨어지는 체력을 수시로 체크하면서 재중이 형과 대지 중앙을 쭉 달려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턱까지 올라오는 열기에 굉장히 움직임이 둔해졌다.

단순히 체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끝이 아니야.

지금의 이 열기는 시스템적으로 호흡 자체를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만들었다.

당연히 전체저인 움직임이 둔해질달까.

아주 못 버틸 정도는 아닌데…….

너무 오랜 시간은 못 있겠어.

전사 형이야 워낙 체력이 높아서 그런지 체력 회복 속도 역시 굉장히 빨라 여기서 충분히 버틸 만하겠지만.

호흡이 멈춰 오는 것에는 그렇게 적응하진 못한 것 같았다.

“으…… 여긴 올 때마다 고통스럽군요.”

“여기 온 적 있……?”

그렇게 물어보려다가 이내 말을 멈추었다.

발록을 잡을 때 탱킹을 할 수 있는 건 전사 형 정도밖에 없었다.

수호 형도 있긴 한데…….

아마도 메인은 전사 형에게 맡겼겠지.

반면에 재중이 형의 상태는 우리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아니.

더 활력이 넘쳐 보인다고 해야 할까.

“버틸 만해요?”

“지금 나한테 물어보는 거냐?”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입고 있던 외투를 살짝 벌려 안에 있는 갑옷을 보여 주었다.

“아…… 그게 있었죠.”

발록 풀 플레이트.

무려 발록의 네임을 달고 있는 플레이트를 착용하고 있는데 이런 환경이 무슨 짐이 될까.

오히려 주변의 화염과 열기들이 재중이 형에게 밀려 들어가 흡수되는 것 같이 보였다.

“이게 가만히 있어도 상태와 체력을 리프레시해 주거든.”

“엄청나네요.”

확실히 저런 방어구를 가지고 있다면 이 용암이 넘치는 대지에서 버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곳 환경에 최적화된 아이템이랄까.

그리고 단순히 환경에 버틸 수 있는 기능만 가진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엄청난 방어력을 지니고 있겠지.

나중에 한 번 보여 달라고 해야겠네.

그런데 보통은 저런 풀 플레이트는 탱커에게 넘기는 게 맞겠지만.

굳이 그걸 물어보지는 않았다.

현 상황상 재중이 형이 입는게 더 어울렸으니까.

어차피 발록 레이드를 할 수 없는 상황.

거기다 지금은 사방이 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투도 자주 일어났을 테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확실하게 잡기 위해서는 에이스 역할을 맡아야 하는 재중이 형이 더 강한 방어구를 쓰는 게 이치적으로 맞았다.

그래서 전사 형도 아무렇지도 않게 양보해 주었겠지.

“너무 오래는 못 버텨요.”

“알아. 그러니까 비밀 경로로 가고 있다.”

확실히 재중이 형이 먼저 나서서 달리는 동안 주변에 몬스터는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미리 몬스터가 없는 길을 다 알아두었다는 뜻이고.

일대를 전부 꾀고 있지 않으면 이런 길을 절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주 들락날락했나 봐요.”

“우리 집보다 많이 다녔을걸?”

음.

여기서 거의 살았다는 말이네.

재중이 형의 농담 섞인 말에 전사 형이 추가로 설명을 해 주었다.

“재중이 형님이 여길 뚫어놔서 우리도 이 지대를 발판 삼아 레벨업 했지, 아니었으면 꽤 힘들었을 거야.”

“아, 형은 마족의 무기가 있었죠.”

화염 흡수에 특화된 마족의 무기.

베사노스.

5개월이나 지난 무기라고는 해도.

그 특성상 이곳은 정말 최적의 사냥터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냥터보다 수배는 넘는 대미지를 기본으로 뻥튀기해서 쓸 수 있었을 테니까.

거기다 체력적인 저하도 없었을 것이고.

이런 재중이 형이 먼저 고렙 사냥터를 뚫어놓고 아이템을 구해서 우리 편들에게 나눠 줬으면 충분히 주력 사냥터로 쓸 만했다.

애초에 다른 유저들을 접근조차 하지 못했을 테니 적들의 시선을 피해 레벨을 올리기에는 이곳이 최고의 사냥터였다.

발록 역시 그런 식으로 잡을 수 있었을 테지.

하지만 지금은 이곳의 모든 사냥터가 금지가 된 상황이었다.

단 하나.

레벨이 잔뜩 올라간 발록 때문에.

거의 폐허 수준이라고 봐야 하려나.

“여기서는 더 사냥 못 하죠?”

내 물음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무리지. 조금만 사냥하고 있으면 바로 발록이 날아와서 다 죽여 놓고 가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저 녀석들이 발록에 왕창 죽어준 게 여기 사냥터 못 쓰게 만들려고 그런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그래요?”

“아마 처음은 발록이 탐났겠지. 그 끝은 학살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는 달려가던 것을 멈추고는 곧장 둘을 잡았다.

“그만 가죠. 어차피 우리 목표는 중앙부가 아니라 발록이잖아요. 여기서 사냥 좀 하다보면 알아서 나타나지 않겠어요?”

“어?”

전사 형도 내 말에 허탈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발을 멈췄다.

재중이 형은 피식 웃을 뿐이었고.

“아, 간만에 삽질했네.”

“힘들게 달려갈 필요 있나요. 알아서 온다는데.”

그리고는 곧장 주변에 있는 몬스터들을 찾아보았다.

몇 번 보았던 형태의 동물형 몬스터들이 몇 배는 사납게 업그레이드되어서 온몸에 불을 붙여 놓은 형상들이라.

확실히 용암 지대다 보니 화염을 뒤집어쓴 악마형 몬스터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곳 주인 네임드의 성향을 잘 드러내는 사냥터랄까.

“저 녀석이 좋겠네요.”

들소의 형태를 한 무식하게 큰 뿔을 달고 있는 녀석.

덩치도 굉장히 커서 그냥 들이받히는 순간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포스를 풍겼다.

특히 온몸에는 갑주처럼 생긴 껍질들이 있었고 그 틈으로 화염이 계속 흘러 나왔다.

예전에 누가 봤다면 저 녀석이 보스 몬스터라고 해도 믿겠는데?

그리고 이런 몬스터들이 한두 마리도 아니었다.

주변에 우르르 몰려 있는 게 그냥 일반 몹이라는 소리지.

레벨은 당연하게도 내게는 시뻘건 색으로 보였다.

최소 300대는 넘겠지.

“저 녀석은 몇 레벨이에요?”

내 물음에 전사 형이 대답해 주었다.

“추정 레벨 450.”

“네?”

“몰랐어? 여기 사냥터 레벨 굉장히 높다고. 다른 연합 애들이 여기 와서 똥 싸고 간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라니까.”

“아…… 그럼 발록은요?”

난 재중이 형과 길드 사람들이 예전에 발록을 잡았다길래 그렇게 높은 레벨 대는 아닐 거라고 착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들어보면 일반 몬스터가 450이라고 하니…….

발록의 레벨이 최소 450은 넘어간다는 뜻이겠지.

“뭐, 자세히는 몰라도 500대는 가볍게 넘을 걸?”

전사 형의 말에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대충 그 정도쯤 해.”

“하, 대체 어떻게 잡은 거예요?”

“잘.”

그러고 보니 사냥을 못 했다고는 하는데도 재중이 형의 레벨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높았다.

지금의 랭커들과 크게 차이가 안 날 정도로.

이 사냥터의 레벨 수준이 높으니 가능했던 건가.

“아, 그리고 여긴 마왕도 안 와.”

“그래요?”

“이상하게 이 사냥터는 안 따라오더라고. 아마 발록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왕조차 꺼려할 만한 장소라.

그건 발록 자체가 무시무시하게 강하다는 걸 반증하는 소리였다.

“뭐 발록이 레벨이 너무 높아져서 사냥터를 못 쓰는 건 똑같아.”

다른 사냥터는 마왕이 설쳐서 못 쓰고.

여긴 발록이 날뛰어서 못 쓰고.

그러니 사냥을 못하고 있었다는 건가.

“그럼, 발록만 치워 버리면 되겠네요.”

“쉽진 않을걸. 그 녀석, 굉장히 빠르다고. 예전에 나르샤가 유인해 보려다가 계속 죽어서 포기했어.”

“누나가요?”

“우리라고 가만히 앉아서 포기했겠냐. 당시에 민첩은 최고였는데도 못 떨쳐냈거든.”

확실히 나르샤 누나보다 빠른 유저는 찾기 힘들었다.

그런 누나가 못 했다면 다른 유저가 하긴 어렵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탈것은요? 가르가도 있는데. 베히모스도 있고.”

재중이 형은 가르가 주니어를 가지고 있으니 화염에서도 어떻게든 쓸 수 있지 않을까.

화염과 냉기를 동시에 쓰는 가르가라면 충분히 가능할…….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여기서는 못 써. 가르가는 냉기 속성이 방해가 되는 모양이더라. 베히모스는 가르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염 저항이 낮으니 마찬가지고. 탈것은 금방 탈진해서 뻗어 버리거든. 거기다 비공정은 엔진이 불타오르지.”

가르가와 베히모스 둘 다 여기서는 힘을 못 쓴다는 건가.

탈것들이 유저들이 달리는 것보다는 확실히 빠르지만 못 쓴다면 답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전사 형이 가진 히드라는 어차피 느려서 꺼내 봤자고.

아마 아퀼라스 주니어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화염에 강하긴 해도 특화된 성질은 아니니.

이중 가속이나 워프를 쓰면 오히려 발록이 따라오지 않을 테고.

무엇보다 같은 네임드 급이라고 해도 레벨 500대의 네임드를 떨쳐 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결국은 유저가 직접해야 한다는 말인데.

말이 쉽지.

거의 불가능한 미션에 가까웠다.

전사 형도 옆에서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네가 오자고 해서 오긴 왔는데 말이야. 정말 가능하겠냐?”

그런 전사 형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왔겠어요.”

“흠, 안 통하면 여기서 다 뼈를 묻어야 할지도 몰라.”

“여차하면 반지로 도망가죠 뭐.”

안 죽고 빠져나가는 건 쉬웠다.

하지만 발록을 끌고 가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지.

“일단 잡아 주시죠.”

그러면서 멀리 있는 들소형 몬스터, 무오트를 가리키자 전사 형이 달려가 녀석과 신나게 일대일을 시작했다.

여러 번 상대해 봤는지 확실히 여유있는 움직임으로 녀석을 제어했고.

시간만 끌기에는 이보다 나은 선택지는 없어보였다.

“얼마나 있으면 나타날까요?”

“대략 5분 안에.”

“무슨 레이더라도 있어요? 단순히 싸우는 걸 감지하고 나타나게.”

“인지 범위가 상상 이상으로 넓어. 괜히 레벨 500대 네임드가 아니다.”

“덕분에 쓸데없이 찾아다니진 않겠네요.”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의 말대로 저 멀리 하늘 전체가 우르릉 굉음을 내면서 공간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설마 공간 이동인가요?”

“가만히 달려올 줄 알았어?”

그렇게 저 멀리 일그러진 대기 중앙에 붉은 마법진이 형성되어 중간에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온몸이 검은 형체의 탄력 있고 매끄러운 육체를 지닌 악마형 네임드가.

팔다리는 굉장히 굵은데다가 손발은 특유의 광택을 내며 빛나고 있었다.

마치 금속 재질처럼 느껴질 정도로.

거기다 뒤로 쭉 길게 뻗은 꼬리가 인상적이었고.

덕분에 신체 밸런스가 기묘하게 앞으로 쭉 뻗은 것 같은 착각도 일으켰다.

인간형인데 오히려 동물적인 느낌이 더 강해 보이는 모습이라…….

순간 녀석의 고개가 우리에게 돌려지더니 이내 입가가 쭉 올라가면서 신기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여는가 싶더니.

캬아아아악!!!

갑자기 녀석을 중심으로 거대한 헤일이 몰아치는 것처럼 대기가 확 밀려 나오더니 곧 태풍이 되어 우리를 몰아쳤다.

바닥 역시도 그 태풍에 뒤집어지기 시작했고.

저 단순한 하울링에 용암지대의 온 대기가 부르르 떨리는 것도 모자라 대지가 같이 출렁거리다니.

우리 역시 몸이 크게 떨려 휘청거렸다.

이렇게 멀리 있는데 밀려난다고……?

곧장 오싹한 느낌이 온몸을 침범했다.

그냥 딱 봐도 알겠다.

저 녀석에게서 흘러나오는 아무런 이펙트가 없지만.

지금껏 봤던 그 어떤 네임드보다.

저 녀석 하나가 훨씬 더 강하다.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형, 대체 저걸 어떻게 잡았다고 했어요?”

“몰라. 예전에 생성됐을 때는 저렇게 안 셌다고.”

“마왕이 안 오려는 이유를 알겠네요.”

완전한 괴물.

솔직히 예전에 봤던 마왕들과 저 녀석과의 차이를 못 느끼겠어.

순간 하나의 생각이 머리를 관통해 갔다.

이 녀석이 이 정도로 강하다면…….

“혹시 다른 네임드도 오버가 되면 저만큼 강할까요?”

“아마도?”

“흐음, 그렇단 말이죠?”

네임드가 레벨이 올라 저렇게나 강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저건 하나의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건 우리에게는 최대의 기회가 될지도.

단순한 체스판의 폰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저건 그냥 그 자체로 왕의 수준이다.

홀로 모든 것을 뒤집어엎을.

“우리 이 판을 완전 뒤집어놔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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