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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63화 (853/1,404)

#863화 가짜 영웅 만들기 (1)

결국 우리의 방해로 인해 아라크네 로드 레이드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아라크네 로드가 증발해 버린 거겠지만.

“젠장, 아라크네 로드 드랍템 어디 간 거야?”

“없어?”

“정말?”

“이 새끼가 장난하나. 진짜 없다니까.”

웅성웅성.

당황한 목소리 반.

흥분한 목소리 반.

아라크네 로드가 사라진 자리에 멀쩡하게 있어야 떨어져 있어야 하는 드랍템이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당황할 수밖에.

“야, 아라크네 로드 확실히 죽은 것 맞아?”

“맞다니까. 아까 폭발 사이로 실루엣이 사라졌잖아.”

“난 못 봤는데?”

“어차피 폭격 끝나고 나면 죽어 있으니까 마지막엔 막 쏘잖아.”

“3페이즈 빠르게 넘기려면 풀 차징 날려야 하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명궁의 페가수스 길드 유저들이 한껏 난감한 표정을 짓고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패황 쪽 애들도 마지막에는 정말 있는 힘껏 남은 마력을 쥐어짜서 최대한 3페이즈를 빠르게 넘기려고 했었다.

이유는 뭐…….

3페이즈 때의 네임드는 정말 강해지니까.

그래서 다들 마력을 최대한 비축해 뒀다가 마지막에 들이붓는 식이었다.

마치 정해진 공식처럼.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폭발들이 겹쳐서 네임드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할 때도 많았고.

당연히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아라크네 로드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동안은 잘 통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달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방식이 최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분명 아라크네 로드가 죽은 것 같은데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 유저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명궁도 레이드 중에 죽어 나간 판이라.

“아씨, 그러니까 잘 보이게 쏘지 그랬어.”

“지도 막 쏴 놓고 그러네.”

“이거 진짜 어떻게 할 거야? 명궁 오면 완전 개지랄을 할 텐데.”

“그러게, 안 그래도 죽어서 신경 날카롭단 말이야. 아마 다 뒤집어 놓을걸?”

“휴, 능력이 있어서 좋긴 한데…… 성격이 개판이라.”

그리고 그런 그들을 지켜보던 한 유저가 주변의 연합원들에게 짜증을 가득 담아 외쳤다.

“야, 썅. 방송하는 새끼들 당장 꺼!”

그러자 몇몇 유저들이 화들짝 놀라서 생중계하던 개인 방송을 끄기 시작했다.

- 아! 시청자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아라크네 로드 레이드 방송은 여기서 접어야 할 것 같네요. 본의 아니게 방종하게 되어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방송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페가수스 파이팅!

그리고 우리가 보고 있던 방송 역시도 급하게 종료가 되었다.

실시간 댓글을 남기던 사람들도 어이없어했고.

- 갑자기 뭐야? 잘 보고 있었는데.

- 레이드가 쫑난 듯.

- 아라크네 로드 놓친 거야?

- 놓쳤으니까 저렇게 방종한 거 아님?

- 꿀잼. 페가수스 애들 완전 물 먹었네.

- 쟤들 당황하는 것 봐라.

- 맨날 잡고 나서 자랑하던 명궁도 죽어 버리고 꼬시다.

- 그러게. 맨날 독점해서 잡드만. 이번엔 날아갔나 봄.

- 알고 보면 페가수스 연합도 약한 거 아냐? 유저 하나 뛰어들었다고 저 꼴이 났잖아.

- 에이, 그건 아니다. 전에 페가수스 길드원 한 명한테 길드 하나 박살 난 거 모름?

- 하긴. 걔들은 인정. 그래도 연합 애들이 다 그런 건 아니잖아.

- 연합 애들도 붙어 보니 세던데?

- 그럼 저렇게 한 명한테 썰려 나간 건 어떻게 설명할래?

- 으음. 확실히 그렇긴 하다.

- 그런데 은신은 어떻게 유지하는 거지? 요즘 은신 쓰는 애들 거의 없잖아.

- 맞아, 다 들키니까. 사냥터에서 급습할 때는 좋긴 해도. 저렇게 대놓고 유저들이 몰려 있는 레이드에서는 못 쓰지.

- 아, 그리고 마지막에 쓴 스킬. 그거 패황 길드 쪽에만 있는 스킬 아님?

- 난 잘 모르겠는데. 본 적이 없음.

- 아냐, 위에 분 말이 맞아. 그거 전에 패황 길드에서 패황이 쓰는 거 봤음. 아마 다른 유저들은 없을 거야. 전에 대놓고 자랑했었잖아. 자기네 길드만 쓸 수 있다고.

- 와, 미친. 그럼 패황에서 지금 페가수스를 들이받은 거야?

- ㄴㄴ. 걔들 동맹이잖아. 지금처럼 네임드들 독식하고 있는데 서로 들이받을 이유가 있나?

- 뭐 더 뜯어먹을 게 있나 해서 아닐까?

- 에이, 그런다고 연합의 명운을 거냐. 잘못하다가 그냥 한쪽은 그냥 골로 갈 건데.

- 난 패황 연합이 망한다에 내 소중한 두 쪽을 건다.

- 방금 위에 놈. 캡쳐했음. 패황 안 망하면 친히 잘라 주러 간다.

- 미친 놈들ㅋㅋㅋㅋ.

- 그래도 페가수스 쪽이 압도적이지 않나?

- ㄴㄴ. 패황 이 새끼 돈 개 많음. 재벌이라는 말도 있던데.

- 오, 그럼 해볼 만하겠다. 근데 재벌이 뭐가 아쉬워서 네임드 템 같은 걸 노리나? 그냥 가만히 있어도 하루에 수십억은 벌 텐데.

- 아냐, 걔들이 돈 때문에 이걸 하겠냐. 다 자기 만족이지.

- 어쩌면 자기 위에 뭐가 있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걸 수도 있지.

- 음, 전에 아는 형한테 초월하고 페가수스가 패황한테 갑질한다는 걸 들은 적 있음.

- 에이, 그런 일 있었으면 벌써 소문났겠지.

- 아냐, 다들 쉬쉬하는데 이미 곪을 대로 곪았다고 하더라고.

- 카더라 죽여주고요.

- 오, 그게 진짜면 조만간 진짜 큰 전쟁 나겠다.

- 어차피 다 통제 중이라 패황이든 페가수스든 둘 다 안 좋아하긴 하는데…… 굳이 하나 응원하자면 난 패황. 언더독이 이겨 줘야 재밌지.

- 미친, 재벌이 언더독이냐?

- 아, 그러네?

- 진짜 재벌이면 재밌겠구만.

그리고 얼마 뒤 아예 방송 자체가 날아가 실시간 댓글마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으음.

정보를 좀 더 얻는가 했는데 여기까지네.

재중이 형도 김이 샜다는 듯 피식 웃으면서 시청하던 개인 방송을 꺼 버렸다.

“큭, 아주 정신 빠진 놈들만 있는 건 아닌가 보다. 수습이 빠르네.”

“음, 중간에 끊기니까 괜히 궁금하네요.”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방송들이 전부 날아가서 이젠 확인하고 싶어도 적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왜? 궁금하면 가 볼래?”

“아뇨,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좀 전까지 정체 모를 유저의 추격을 따돌리고 꽤 멀리까지 온 상태였다.

아라크네 로드의 숲을 거의 다 벗어나기도 했고.

고작 적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되돌아가기에는 귀찮음도 있었다.

“그래? 그럼 됐고.”

“네, 어차피 얻을 것도 다 얻었고요. 거기다 원하는 대로 반응이 나왔잖아요.”

“리빙아머 킹의 스킬 말이지.”

아라크네 로드를 죽이고 못 죽이고는 솔직히 크게 상관이 없었다.

핵심은.

패황 길드만이 가지고 있는 리빙아머 킹의 스킬을 보여 주었다는 데 있었다.

재중이 형도 꽤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명궁이 어떻게 나오려나?”

“바로 패황 쪽 연합을 치진 않겠죠?”

“음, 그놈 성격을 보면 아직은 아냐.”

“그러면요?”

“아마도…… 살살 패황에게 간을 보겠지. 전에 봤다시피 이 녀석이 엉덩이가 생각보다 무거워.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아니라면 절대 안 움직이거든.”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할까요?”

“십중팔구는? 멀쩡하게 거대 연합에 협력하던 패황이 갑자기 뒤를 친다? 그것도 고작 네임드를 빼먹으려고? 명궁이 당장 죽어서 눈에 뵈는 게 없긴 하겠지만. 분명히 돌다리도 두들겨 볼 놈이야.”

“너무 오래 끌면 허점이 보일 텐데요.”

“어, 보이겠지. 이를테면. 네가 들고 있는 테르타로스.”

“이거요?”

“양쪽에서 다 썼으니까. 물론 패황 쪽에서는 폭발 속에서 제대로 못 봤을 테니 크게 의미가 없긴 해. 그래도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르아 카르테는 원래 보여 주면 안 되었고.

혹시나 몰라 테르타로스도 최대한 숨겨 가면서 썼었다.

마지막 한 타를 날릴 때만 좀 드러나긴 했지만.

재중이 형 말대로 폭발 속이라 제대로 확인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정작 적들은 네임드가 증발한 것도 잘 몰랐으니까.

“그것 외에도 허점을 찾으려고 하면 어떻게든 찾아지겠네요.”

“어, 아이디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도. 가명이라는 건 누구 봐도 뻔하니.”

“너무 오래 시간이 지나면 안 된다는 거네요.”

“가급적이면 빠를수록 좋지.”

“패황 쪽에서 먼저 나설 확률은요?”

“흐음, 글쎄다. 아마도 패황이 먼저 치는 경우는 나오지 않을 거다. 세력이 아직 부족할 테니.”

“양쪽 다 아직은 부족하다는 거네요.”

“그래, 패황 녀석도 마인드컨트롤은 꽤 좋은 녀석이라. 만약 그런 침착함이 아니었다면 벌써 뒤집어도 수백 번은 뒤집었을 거야.”

명궁은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는 스타일이고.

패황은 들이받고 싶어도 세력이 부족하다라…….

그럼 결국은 녀석들을 좀 더 긁어야 한다는 뜻인데.

어지간히 빡치게 만들지 않고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정도까지 해도 참을 수 있다니, 대단하다면 대단하네요.”

“뭐, 연합의 사활을 걸어야 하니. 명궁 입장에서도 패황은 무시 못 할 녀석이야.”

“초월 길드 쪽이나 다른 녀석들의 도움을 받으면요?”

“내가 아는 명궁은 그렇겐 하지 않을 거다. 이게 빚으로 남으면 전신에게 계속 잡혀 다닐 수 있거든.”

“둘이 친한 것 아니었어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정말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 배를 잡고 웃어버렸다.

“크큭, 걔들 면상만 봐도 서로 때리려고 할걸?”

“……음, 생각보다 안 친한가 보네요.”

저 정도면 친하고 안 친하고의 문제는 한참 지나갔지 싶다.

얼굴만 봐도 싸울 수준이면.

“그런데도 용케 손을 잡고 있네요?”

“당장은 이득이 같으니까. 그리고 당분간은 이어질 관계지.”

“한마디로 전신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있는데 절대 안 한다는 거네요.”

“그렇지.”

“그럼, 이야기는 쉬워지겠네요. 솔직히 전신이나 다른 프로 팀이 도와줄 거라 생각해서 좀 몸을 사린 것도 있거든요.”

당장이야 두 연합의 싸움이 되겠지만 여기서 추가로 다른 프로 팀의 길드들이 끼어들게 되면 판세가 확 기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들어본 대로라면 명궁의 페가수스 쪽 연합을 잡는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 같았다.

“호오, 그럼 이제 뭘 할 생각이지?”

재중이 형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전에 패황이 세력이 부족하다고 했었죠?”

“어, 몰래 모으고 있다고는 해도 쉽게 되는 일은 아닐 테니까. 아마 물밑으로 여러 방면으로 포섭하고 있겠지.”

“그럼…… 아예 패황을 이 서버의 새로운 영웅으로 만들면 어떨까요?”

“응? 패황 녀석을?”

“네, 우리가 철저하게 이용해 먹는 거죠.”

“호오, 이놈 봐라?”

내 말에 흥미를 보이더니 곧 눈빛을 빛내면서 말했다.

그것도 아주 재밌어하는 눈빛으로.

“녀석에게 세력을 몰아주자는 소리지?”

역시.

재중이 형은 하나만 말해도 다 알아듣는다니까.

운을 띄웠을 뿐인데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이해해 버렸다.

“네, 부족한 게 세력이라면. 채워 주면 알아서 날뛰겠죠.”

부족한 세력은 우리가 만들어 줄 테니.

어디 한번 제대로 칼춤을 춰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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