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1화 불신의 연합 (13)
재중이 형 말대로 명궁이 쓰는 저 감지 스킬이 아라크네 로드의 거미줄 감지 스킬과 유사한 형식이라면.
한 가지 기대 볼 수 있는 점이 있었다.
아라크네 로드의 거미줄 탐지를 볼 때마다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들 중 하나.
그건 바로 지상으로만 뻗어 있는 거미줄의 형태였다.
이건 아마도 검은 거미줄의 특성상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일단 이 아라크네 로드의 숲 자체가 움직임이 불편할 정도로 어두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시야가 보이지 않느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
숲의 일부분이기는 해도 분명히 하늘에서부터 빛이 내려와 시야를 밝혀 주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런 자연광이 사방으로 반사되어 완전한 어둠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고, 유저들도 이 빛에 의존해 아라크네 로드 레이드를 하는 중이었다.
아예 안 보인다면 애초에 이 녀석들도 레이드 자체를 시도해 보지 않았을 것이다.
또 개별적으로 라이팅 스킬을 켜서 빛을 유지하는 유저들도 있었고.
밝기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저 아라크네 로드의 거미줄 감지 스킬은 좀 특이한 성격을 띠었다.
바로 땅에 스며들 듯이 아주 가는 검은 거미줄이 펼쳐져 있는 건데.
어둠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땅은 꽤 짙은 색이었다.
검은 거미줄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건 정말 자세히 쳐다보지 못하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조합이라 적들도 쉽사리 검은 거미줄을 발견하지 못했다.
일종의 보호색이랄까.
뭐 눈에 불을 켜고 일일이 땅을 살펴본다면 또 찾지 못할 건 아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 것은 그냥 디버프가 좀 강하다 뿐.
이 감지 스킬로 인해 본인이 죽는다거나 하는 건 또 아니었으니까.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였다.
당연히 상황이 이러니 그냥 검은 거미줄을 밟고 레이드를 진행했다.
그런데 만약 이런 거미줄이 땅이 아닌 허공에 펼쳐져 있다면 어떨까?
보기 싫어도 눈에 계속 밟힐 테니 어떻게든 피해서 움직이려고 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런 단점을 피하기 위해 아라크네 로드의 검은 거미줄이 바닥에 깔려 있었을 테고.
그런 스킬의 형태는 지금 내게 굉장한 이점을 주었다.
바로 조금만 땅을 벗어나 버리면 전혀 감지가 불가능하다는데 있었다.
이걸 확인하기 위해 나무를 박차고 올라가 계속 명궁의 시선을 살폈던 거고.
아니나 다를까.
명궁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허공에서 나무들을 뛰어넘어 건너와 아라크네 로드의 바로 위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래도 방심은 하지 않았다.
만약 저게 명궁의 속임수라면……?
내 위치를 알고 있음에도 더 접근할 때 확실히 끝내기 위해서 그냥 모른 척하고 있는 경우일 수도 있어.
다른 녀석들이라면 어떻게든 피해 낼 수도 있겠지만.
저 명궁이 가진 활은 완전 달랐다.
이런 곳에서 발이 묶이기라도 하면 곤란해.
<폰90>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서 움직일 게요.
<폰91> 공중으로 움직인다라……. 임기응변으로 최고긴 한데 솔직히 나도 안 걸린다는 장담을 못 하겠다.
지상을 밟지만 않으면 저 감지 스킬에 걸릴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일이라는 게 잘못되려면 한도 끝도 없이 말리는 법이라.
지금은 무조건 조심하는 편이 좋았다.
일단은 조심스럽게 나무 위의 가지들을 밟으면서 나무 사이를 뛰어 넘었다.
이것도 역시 유령보의 영향을 받는지 체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의 가지가 크게 흔들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최대한 조심한다고 스탭 조절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완전히 흔적을 없애는 건 꽤나 힘든 일이니까.
특히 이런 나뭇가지 위를 뛰어다니는 일은 더 힘든 편에 속했다.
아니지.
애초에 나뭇가지만을 밟으면서 뛰어다니는 게 정상은 아닐지도.
얼마간 더 자리를 옮겼는데도 명궁에게서 반응이 없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녀석이 눈치챘다면 정말 귀찮아질 뻔했는데.
그리고 다른 유저들도 현재 아라크네 로드를 잡는데 혈안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높은 위치에 있는 나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만약 누군가 멀리서 살펴보고 있었다면 혹시라도 눈치챌 수도 있었겠지만.
바로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나를 보려면 일부러 고개를 들어서 살펴야 하는데 그걸 레이드 중에 굳이 하려는 유저가 있을까.
뭐 아라크네 로드가 하늘로 뛰어올라갔다면 당연히 시선이 올라갔겠지만.
다행히 힘이 많이 빠졌는지 아라크네 로드의 움직임이 처음보다 굉장히 느려진 느낌이 있었다.
여러 가지로 도와주는군.
그렇게 완전히 아라크네 로드 근처의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라크네 로드 발이 느려졌어!”
“휴, 이제 겨우 잡을 수 있나.”
“그러게. 요즘 네임드들 너무 질기단 말이야.”
“제발 이번엔 좋은 거 나와라!”
“전에처럼 꽝이면 진짜!”
“다들 광역기 퍼부어!”
“마력 아까지 말고! 이제 끝난다!”
“죽여!!”
콰아앙!!
콰앙!
쿠아앙!!
너도 나도 날리는 휘황찬란한 스킬 이펙트들이 곳곳에서 번쩍이며 터지면서 눈을 아프게 할 지경이었다.
이것들이 적당히를 모르네.
덕분에 내 마음도 더욱 급해졌다.
재중이 형이 말한 시간보다 더 빨리 아라크네 로드가 죽을 것같이 보여서.
휴.
할 수밖에 없나.
곧장 테르타로스를 들어올렸다.
리빙아머 킹에게서 가져온 단 하나의 스킬.
솔직히 다른 스킬들도 너무나도 가져오고 싶었지만.
하나를 넣기 위해선 다른 슬롯 하나를 비워야 하기에 그게 마음대로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치명타 확률을 빼버렸다.
음, 눈물까지는 아니려나.
어차피 내 공격은 특별히 실수만 하지 않으면 대부분 크리티컬이 터지기에 사실 치명타 확률은 크게 의미가 없긴 했다.
물론 마법이라던가 광역 스킬을 쓸 때에는 이 치명타 확률이 필요하긴 했다.
스킬 자체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치명타 확률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좀 아쉬운 기분이 있긴 하지만.
이제 정말 뺄 만한 옵션이 없었다.
<폰90> 그럼, 들어가요.
<폰91> 오케이. 질러.
원래라면 더 늦게 완전히 막타 수준이 되어야 접근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이미 까먹은 시간이 많기도 했고.
명궁 저 녀석만 아니었으면 꽤 여유 있게 진행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테르타로스의 내장된 리빙아머 킹의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자 곧 내 몸 전체에서 예의 리빙아머 킹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특유의 푸른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신체 전부를 감싸면서 몸을 따라 물결쳤다.
좋아.
제대로 되네.
이제 정말 이게 통하는지가 문제인데.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바로 빠져나올 수 있게 텔레포트 반지를 손에 쥐었다.
되면 먹는 거고.
아니면 뭐.
빠르게 튀는 방법밖에 없었다.
후우.
간다!
심호흡을 한 번 진하게 하고는 곧장 높은 나무 끝에서 지상에 아라크네 로드를 레이드하고 있는 장소로 떨어져 내렸다.
현재 아라크네 로드 주변으로 한참 광역기가 터지고 있는데 그 사이를 뛰어드는 것만큼 무식한 짓이 또 있을까.
지금 내 스펙이 제대로 된 스펙도 아닌 마당에.
심지어 광역기가 터지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오는 충격파가 문제였다.
이런 식으로 눈먼 공격을 맞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은신은 바로 풀려 버리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지상으로 떨어지는 중간에 뭔가의 충격을 받더니 곧장 은신이 완전히 드러나 버렸다.
역시 이건 바로 풀린다니까.
평소에 조금의 타격으로도 풀리기 때문에 은신할 때 그렇게 조심하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날 본 유저들이 이번에는 상당히 많았다.
다들 아라크네 로드에 집중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무 위에 있을 때와는 다르지.
“어? 폰90?!”
“뭐야? 저 새끼 뭔데 갑자기 저기서 나타나노?”
“미친 거 아냐? 저기 들어가면 그냥 죽는데.”
“완전 돌았네.”
“지금 막타 치러 가봐야 아이템 하나도 못 먹을 건데 무슨 짓이지?”
“이제껏 잘 숨어 있다가 뭔 미친 짓이지?”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하면 나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어차피 저들에겐 날 제지할 방법도 없었고.
그냥 마냥 바라보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못 했다.
덕분에 일이 좀 수월해지는 것 같은데?
물론 원거리 계열은 또 달랐다.
곧장 명궁이 눈을 부라리면서 외쳤다.
“저 새끼 잡아!!”
“그냥 놔둬도 죽지 않겠습니까?”
“저기 들어가는 게 그냥 자살 행위인데요?”
“지금 저 화력이면 우리 쪽 탱커도 못 버팁니다.”
“힐을 왕창 몰아주면 또 모를까.”
누가 봐도 지금 내가 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명궁도 곧 너무 흥분했다고 생각하는지 헛기침을 했다.
“흠흠, 확실히 저기 들어가면 죽겠군. 그런데 대체 저 녀석 무슨 생각이지? 뻔히 죽을 자리를 굳이 기어서 들어간다고? 지금까지 잘 숨어 있다가?”
그렇게 명궁이 대답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물어보는 듯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어느새 내 주변은 온통 화려한 스킬들의 콤보로 정신없는 풍경으로 변해버렸다.
아마 원래라면 이렇게 뛰어들면 백이면 백 죽어 버리겠지.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리빙 아머 킹에게서 가져온 단 하나의 스킬.
【 앱소브 아머! 】
스킬을 완전히 개방하자 갑자기 주변에 있던 엄청난 화력을 가진 광역기들의 이펙트들이 내 몸을 감싸고 있던 푸른 갑옷에 흡수가 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꽤 다수의 광역기들이.
심지어 오러나 마법에 관련된 모든 스킬들이 내 몸을 감싸는 푸른 불꽃에 닿더니 바로 상쇄가 되어 버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빨려들어갔다고 해야 할까.
“어? 어?”
“뭐야? 지금 스킬을 흡수하는 거야?”
“야……! 저거…… 그거잖아!”
“맞아. 나도 본적 있어.”
“리빙아머 킹!”
“리빙아머 킹!”
.
.
그리고는 동시에 놀란 듯 외치는 연합 녀석들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라 꽤 다수의 유저들이 한꺼번에.
누가 명궁의 연합원들 아니랄까 봐.
아주 눈썰미가 좋네.
덕분에 굳이 열심히 이걸 유지하고 있을 필요는 없게 되었다.
이미 알아봤는데 말이지.
“앱소브 아머?!”
“리빙 아머 킹의 스킬이잖아.”
“뭐야? 왜 저걸 저 놈이 써?”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야,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게 맞냐? 어?”
“미친, 저거 쓰는 거 걔들뿐이지 않아?”
“아놔, 패황 새끼들. 지금 해보자는 거야?”
“이것들이 단체로 돌았나.”
너무 잘 알아봐줘서 고맙기까지 하네.
그리고 이 스킬은 단순히 방어용으로만 쓰는 스킬이 아니었다.
단순히 그렇기만 했다면 이 스킬이 리빙 아머 킹을 대표하는 스킬이 되지는 않았겠지.
이 스킬이 무서운 점은 바로...
순간 내 몸에 흡수된 모든 스킬들이 내가 테르타로스를 조준하는 검신의 끝으로 빨려 들어가듯 몰려들기 시작했다.
영롱하고도 광폭한.
스킬들의 향연이랄까.
단 하나의 점으로 몰려드는 이 스킬들의 압축력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씨발, 엿 됐다.”
“미친…… 어디다 조준하는 거야!”
“전부! 튀어!!!!”
“저 미친 새끼가!”
그리고는 정확하게 아라크네 로드를 사이에 두고 리빙 아머 킹의 스킬을 풀어버렸다.
“가라!!”
콰아아아아앙!!!!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진동과 함께 고막을 터트릴 듯한 굉음을 터트리며 아라크네 로드의 허리를 그대로 관통해버렸다.
키아아악!!
오케이.
아라크네 로드는 완료.
워낙 체력이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이 한 방에 완전히 아라크네 로드가 침묵해버렸다.
그러고도 모자라 이 앱소브 아머로 흡수한 압축포는 그 위력을 전혀 잃지 않고 한 장소를 향해 그대로 뚫고 날아갔다.
숲 전체를 날려 버릴 기세로.
바로 명궁의 정면을 향해.
그걸 본 명궁이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곧 비명을 질러 댔다.
“야이, 미친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