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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58화 (848/1,404)

#858화 불신의 연합 (10)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들을 내가 전부 다 아는 건 절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거의 대부분은 모르는 녀석이겠지.

딱 한 녀석만 빼고.

뭐 사실 그 한 녀석도 그다지 안면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원래 알던 녀석의 얼굴을 여기서 보니 반갑기까지 한데?

페가수스 길드.

프로게이머들이 모여서 만든 길드이자.

예전에 신성 제국 근처의 유적지에서 레이드 중인 우리를 전부 죽이려고 했던 길드이기도 했다.

상황이 잘 풀려서 반대로 녀석들이 박살 나긴 했다만.

“명궁이 여기 있을 줄은 몰랐네요.”

“아아, 여긴 아라크네 로드가 나오는 장소니까.”

아라크네 로드?

그러고 보니 주변으로 짙은 스산함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분명히 숲이긴 한데…….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할까나?

아주 깊은 숲에 들어가면 빛이 보이지 않는다던데 지금이 딱 그랬다.

거기에 단순히 숲이 어둡다라고만 설명하기에는 그 어둠 속에서 좀 끈끈한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었고.

울창하다는 표현보다 깝깝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려나.

알 수 없는 뭔가가 몸을 옭매는.

기분 나쁜 끈적임.

심지어 몸이 점점 느려지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 역시 동반되었다.

이건 몸의 감각을 잘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느낄 법한 감각이었다.

재중이 형도 발을 앞으로 땠다가 이내 다시 제 자리에 섰다.

“생각보다 디버프가 심한데?”

“이게 디버프예요?”

“어, 이 공간 전체가 전부 아라크네 로드의 영역이다. 그리고…… 발아래를 봐.”

재중이 형의 말에 시선을 내려 아래를 보자 우리의 움직임을 옭매던 정체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검은색 거미줄?

워낙 어둠에 시야가 가려지다 보니 주변과 비슷한 어두운 계열의 색으로 된 존재에 대해서 인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솔직히 재중이 형이 말해 주지 않았으면 있는지도 몰랐을지도.

마치 현미경을 대고 들여다보듯 아주 자세히 들여다봐야 그 뭔가의 정체가 눈에 들어왔다.

겨우 보이는 아주, 아주 얇은 검은색 실.

그런 눈치채기 힘든 검은 줄이 하나도 아니고 도처에 잔뜩 깔려 있었다.

빈틈?

솔직히 이렇게 많이 깔려 있으면 안 밟고 지나간다는 것 차체가 말이 안 된다.

조금만 움직여도 이건 밟을 수밖에 없어.

그리고 지금.

레이드를 하고 있는 저 페가수스 길드와 몇 개의 처음 보는 길드들의 연합원 또한 모두 이 검은 줄을 밟은 상태일 것이다.

네임드와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데 레이드 정중앙에 위치한 저 녀석들은 괜찮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아니나 다를까.

저들 사이에서 투정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진짜 아라크네 로드만 상대하면 느려진다니까.”

“그냥 참고 해. 어쩔 수 없잖아.”

“그러게. 이 수많은 거미줄들을 안 밟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페널티 좀 먹는다고 생각해.”

“휴, 안 그래도 잡기 힘든 녀석을 이 정도 디버프를 먹고 잡으려니 죽겠다.”

“야야, 그래도 이 녀석만 잡으면 대박 터지잖아.”

“크크, 아니라고는 못 하겠군.”

“자자, 집중해. 전에처럼 죽어 나가면 곤란하니까.”

그러면서 다시 정신을 다잡고 레이드에 참여하는 녀석들을 보고는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형, 여기 뭐 좋은 거 떨어져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은 두말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꽤 좋은 거긴 해.”

“뭐가 나오는데요?”

“음, 아라크네 로드의 거미줄로 만들어진 활시위가 대표적이랄까. 그게 활의 위력을 대폭 올려 주거든. 속도 역시 마찬가지고.”

“아, 궁수 계열 아이템이 나오는군요.”

“그러니까 저놈이 저렇게 목을 매지.”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아라크네 로드 레이드를 지휘하고 있는 명궁을 가리켰다.

명궁이라.

저 녀석, 분명히 활을 썼었지.

아이디처럼 활을 엄청나게 잘 쓰는 녀석이기도 했다.

“거기다 여기서 나오는 네임드 활, 그건 부르는 게 값이라.”

“그래요?”

“어, 딱 한 자루 나왔는데…… 저기 저놈 이제 쓴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명궁이 가진 짙은 회색 활대에 검은 거미 문양이 잔뜩 새겨진 커다란 활을 꺼내 아라크네 로드에 조준했다.

그리고는 화살을 쏘자마자 이상한 현상이 발견되었다.

화살이 순간 거미줄처럼 검게 변해서는 아라크네 로드에게 쭉 날아갔다.

그렇게 아라크네 로드의 근처로 날아간 거미줄이 이내 사방으로 한꺼번에 펴지면서 아라크네 로드의 다리를 그대로 잡아챘다.

광역기?

아냐.

광역기라고 보기에는 위력이 너무 약했다.

하지만 다른 기능이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무려 고렙 레임드인 아라크네 로드의 움직임이 엄청나게 둔화되기 시작했다.

눈에 확 들어올 정도의 디버프라.

네임드를 상대로 저런 성능이라면 유저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마 걸리는 순간.

바로 그 자리에 경직이라도 당한 것처럼 멈춰 버리지 않을까.

특히 그 특유의 끈적거리는 거미줄의 성질이 더욱더 상대를 잘 묶어 놓았다.

유저 하나를 잡아놓고 패기에는 저만한 녀석이 없겠어.

심지어 한 발로 끝나는 게 아니라 화살을 쏘면 쏘는 만큼 계속 디버프가 걸려들었다.

연사가 가능한 행동제한 디버프라…….

그것도 화살만큼 빠르다면.

보통의 유저들은 피하기도 힘들 것이다.

레벨이 오를수록 화살이 더 빨라진다고 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유저들의 레벨이 낮은 이전에는 화살이 날아가는 속도가 일상 속의 그것보다는 꽤 느렸기에 유저들이 실제로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스탯 수준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리고 무기의 성능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더욱 피하기가 힘들어졌다.

당연히 상대하는 유저의 민첩이 높다면 잘 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정작 그 빨라진 화살을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느냐면…….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겠지.

유저의 스탯이 올라가는 것과 별개로 동체시력이 엄청나게 좋아지지는 않을 테니까.

이건 일정한 수준의 트레이닝을 거쳐서 점점 좋아진다고 재중이 형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반대로 아예 타고나는 경우도 있었고.

움직이는 물체를 유독 잘 파악하는 재능이랄까.

그렇게 연습을 하든.

재능으로 때우든.

어쨌든 화살의 성능 향상이 전보다 훨씬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다른 말로 저런 상위급 네임드에게서 나온 네임드 템이 느리진 않을 것이다.

아마 엄청난 속도가 나오겠지.

그러면 유저들은 화살을 쏘는 족족 걸릴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저 아라크네 로드의 활이라면 그 모든 유저들이 엄청난 디버프에 헤맨다는 거고.

느려질 대로 느려진 유저들을 상대하는 건 그렇게 어렵진 않겠지.

네임드도 마찬가지.

다리와 발 사이에 검은 거미줄이 잔뜩 달라붙어 아라크네 로드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뭐 유저들과 다르게 순식간에 찢고 나올 테지만.

하지만 그 잠깐은 유저들에게는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이다! 퍼부어!”

“아자! 가자!”

“마력 아끼지 말고 쏴!”

“탱커들 피 좀 챙겨 주고.”

한 자리에 고정된 네임드를 상대하는 방법 중에는 저게 최고다.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것.

어차피 네임드의 레벨 대가 높아서 어지간한 공격은 피해 버리거나 스쳐도 아주 경미한 대미지만 줬다.

그럴 바에는 그냥 마력을 모아 한 곳에 집중하는 게 훨씬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저 활은 정말 최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가지고 싶을 만큼.

“탐나네요.”

“어, 좋지?”

“네. 네임드를 저렇게까지 묶어 두니까요.”

그러고 보니 저 활을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나르샤 누나에게 주면 좋아할 것 같은데 말이야.

저런 활은 활용도가 높기에.

쥐어 주기만 하면 최상의 결과를 내놓을 터.

그때 아라크네 로드가 크게 두 팔을 휘젓자 갑자기 숲 일대에 퍼져 있던 있던 검은색 거미줄이 일제히 빨려 들어가듯 아라크네 로드의 두 팔로 회수되어 갔다.

덕분에 나도 움직임이 꽤 편해지긴 했는데.

대체 왜 이걸 걷어가는 거지?

그 순간.

재중이 형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뒤로 빠져.”

“네?”

“곧 온다.”

그리고는 내 팔을 잡고 빠르게 뒤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아니, 형이 도망간다고?

대체 지금 아라크네 로드가 뭘 하려는 거길래.

하지만 그런 궁금증은 곧 풀리게 되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레이드를 하고 있던 모든 유저들의 안색이 파래지면서 고함을 질렀다.

“당장 빠져!”

“아놔, 벌써 저걸 써?”

“아직 아니지 않아?”

“시끄럽고. 살려면 튀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라크네 로드의 두 팔에 커다란 활이 하나 형성되었다.

흡사 명궁이 가지고 있는 활과 유사한 형태로.

물론 크기는 이쪽이 훨씬 컸다.

명궁 역시 이를 악물면서 유저들을 대피하도록 했고.

자신도 바깥으로 몸을 빼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라크네 로드가 검은 활을 하늘로 들어 올리더니 한 발의 거대한 검은 화살을 쏘아 올리더니 연이어 수십 발의 화살을 더 쏘아 올렸다.

흠.

단순히 저것 때문에 피하진 않았을 테고.

유심히 보고 있자 얼마 뒤 그 화살들이 갑자기 여러 갈래로 분사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수를 도저히 셀 수 없이 엄청난 숫자로.

흡사 숲을 덮어버릴 것 같은 규모인데?

하늘을 까맣게 덮어버린 모습이라.

그리고 그렇게 뒤덮은 다음.

아라크네 로드의 입에서 스킬 이름이 나왔다.

【 커스 웹 스콜! 】

그리곤 소나기가 내리듯 수도 없이 많은 거미줄이 일제히 지상으로 쏟아져 내려왔다.

잘 보이지도 않는데.

심지어 숫자도 많았다.

그 순간.

스킬 범위 안을 피하지 못한 유저들의 절규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끄아악!”

“으아악!”

“악! 당했…….”

“젠장, 왜 벌써……!”

“또 시작인가.”

아마 지금 당하고 있는 건 대부분 연합 유저들인 듯했고.

명궁이 있는 페가수스 길드 유저들은 모두 피한 듯 전혀 피해가 없었다.

확실히 빠르네.

경험이 많은 만큼 빠져야 하는 타이밍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녀석들 중 몇몇이 앞으로 나서 외곽부터 커스 웹 스콜에 맞은 유저들의 목을 그 자리에서 날려 버렸다.

전혀 주저함 없이.

당연하다는 듯 너무나 쉽게.

그것도 하나도 아닌 조금이라도 스친 유저들의 목을 전부 날리자 연합 유저들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에 대해 다른 말을 하지 못 했다.

같은 편의 목을 계속 날리는데도 가만히 있는다라…….

“형, 저거 맞으면 위험한 거죠?”

“어, 전부 눈이 돌아가서 버서커 상태가 돼. 거기다가 같은 아군에 달려들어서 생명력이 남은 만큼 폭발 에너지로 바꿔서 터트려 같이 죽거든. 근처에 있는 유저들에게 똑같이 광역 대미지를 주고.”

“목을 날릴 만하네요.”

특히 이렇게 숫자가 많은 유저들에게는 최악의 스킬이었다.

아.

괜히 또 가지고 싶잖아.

딱 하나의 적에게는 써 봐야 의미가 전혀 없는 스킬이겠지만.

다수를 상대할 때.

저보다 유용한 스킬이 또 있을까.

스치기만 해도 걸어 다니는 폭탄이 된다니.

심지어 광역 대미지까지 동반하는 폭탄이라.

웃긴 건.

정작 폭탄화되어 버린 유저는 죽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인은 주변 유저를 싹 죽여 놓고 혼자 살아남는다.

이보다 미안한 스킬이 또 어디 있겠는가.

“형, 저 스킬 꼭 가져와야겠어요.”

“크큭, 그러던가. 가지고 있으면 재밌긴 하겠네. 적들 사이에 살포해 주면 아주 좋아하겠어.”

물론.

그 전에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아라크네 로드. 빼돌리죠.”

명궁.

네가 빡치는 모습이 보고 싶어졌어.

겸사겸사 스킬도 좀 얻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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