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7화 불신의 연합 (9)
원래 팬텀 나이트가 쓰는 칠성격은 화려한 일곱 개의 검격이 동시에 피할 수 없는 궤적으로 파고 들어가 상대에게 극심한 타격을 주는 스킬이었다.
그 한 발, 한 발이 모두 필살기에 해당할 정도로 강력하기도 했고.
이전에 팬텀 나이트를 레이드하던 녀석들의 죽음 중 대부분은 이 칠성격이 터질 때 나왔다.
일단 스킬의 시전 자체가 굉장히 빨랐다.
그리고 스킬이 시전되고 나서는 피하는 건 거의 무리라고 봐야 할 정도로 궤적이 날카롭기도 했고.
상대가 피하지 못할 딱 그런 코스로만 들어오는 공격이 하나도 아니고 일곱 개나 되는데 그걸 온전히 피할 수 있는 유저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유저가 한 번에 쳐낼 수 있는 검격에도 한계가 있었다.
뭐 단순히 쳐낸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지만.
하나를 쳐낸다고 해도 다른 여섯 개의 검격이 이미 몸을 꿰뚫고 있으니 죽어나갈 수밖에.
무엇보다 쳐낸다고 쳐낼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그냥 그 자체가 필살기라.
한 방에 메인 탱커의 체력이 그냥 녹아 버릴 정도인데 더 말해 뭐할까.
이것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그냥 피하는 거다.
회피.
공격이 나오는 순간 그냥 몸을 내빼는 게 가장 좋다는 거지.
팬텀 나이트 레이드에서도 칠성격은 무조건 피해야 하는.
방어 불가능에 속하는 그런 스킬이었다.
근접 단일 스킬의 위력만으로 보면 이 스킬이 그동안 본 스킬 중에는 가장 강하지 않을까.
그래서 새로운 네임드를 잡아 추가로 얻는 스킬이나 스탯이 많아져 테르타로스의 옵션 자리가 부족함에도 칠성격만은 끝까지 남겨 두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테니.
그리고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물론.
이 칠성격이 단일 공격으로써는 정말 강하다고는 하나.
그건 팬텀 나이트라는 고레벨의 네임드가 썼을 때의 이야기였다.
아직 레벨 150대의 레벨에 추가로 테르타로스의 스탯에만 의존하는 내가 써봐야 완벽한 위력이 나올 리 만무하지.
거기다 스킬 랭크가 낮기도 하고.
또 문제는.
이 칠성격을 써야 하는 대상이 내게는 상성상 최악인 녀석이라는 것이었다.
팬텀 나이트와 다른 방향으로 특화되어 있는.
방어력 극강의 네임드.
안 그래도 네임드는 방어가 강한데 거기다 리빙아머 킹의 방어력은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기본 베이스가 방어력 위주의 네임드인데 레벨 역시도 더 높은 상태였다.
그런 녀석에게 칠성격이 과연 먹힐까?
솔직히 르아 카르테까지 꺼내지 않으면 스탯 면에서 너무 밀리기에 그렇게까지 확신은 하지 못 했다.
하지만 칠성격을 쓰면서 갑자기 생각난 한 가지 생각 덕분에 칠성격의 위력을 확연하게 끌어올릴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모든 칠성격의 궤적을 단 하나의 점으로 모아 버리는 것.
분산되어 여러 곳을 쳐봐야 어차피 리빙아머 킹의 방어력은 내 능력으로 뚫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칠성격의 모든 공격력을 한 점으로 모아 버리면?
리빙아머 킹의 방어구가 극강이라고 해도.
일곱 개로 분산되어 사라질 위력을 딱 한 점에 집중해서 뚫어버리면 어떻게든 찢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판단은 지금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콰지직!
그동안 패황 연합의 유저들이 그렇게 공격을 했음에도 한 번도 뚫리지 않았던 리빙아머 킹의 방어구가 내 칠성격의 공격에 표면이 구겨지더니 이내 찢기듯 터지며 방어구가 박살이 났다.
비록 딱 검 하나 정도가 비집고 들어갈 아주 작은 부위이긴 한데.
내겐 이걸로도 충분해!
“너, 넌……?!!”
그리고 순간 리빙아머 킹의 탱킹을 맡고 있던 패황의 시선과 내 시선이 공중에서 한 번 어색하게 마주쳤다.
당황함이 역력한 딱 그런 표정인가?
아니지.
그냥 놀랐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나더니 느닷없이 리빙아머 킹의 방어구를 찢어내는 공격을 하는 날 보면서 갑자기 생각날 말이 딱히 있을까.
무엇보다.
자신들은 이제껏 한 번도 리빙아머 킹의 방어구를 찢지 못했는데.
아니.
표면에 크랙을 내는 것조차도 버거워서 대미지로만 계속 누적시켜서 잡는 판에.
내 쪽은 그냥 찢어 버렸다.
격의 차이가 난다고 할까.
거기다.
내 아이디는 이미 한 차례 녀석에게 노출된 적이 있었다.
노아01.
혹한의 얼음 여왕을 잡을 때 후방에서 방해를 하던 유저의 이름이니.
그런 패황의 놀란 표정을 보고는 씨익 웃어주었다.
“아, 내가 지금 시간이 별로 없어서 말이지.”
미래의 고객님에게 친절하게 해드리고 싶으나 목적한 바를 달성하려면 패황은 내게 최대의 걸림돌이었다.
“먼저 실례.”
그리고는 곧장 리빙아머 킹의 구겨진 갑옷 사이로 테르타로스의 검신을 억지로 쑤셔 박았다.
카가각!!
리빙아머 킹의 찢겨진 갑옷과 거칠게 테르타로스의 검신이 긁히면서 듣기 거북한 쇠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케이.
딱 검 하나 들어갈 정도의 최고의 빈틈이네.
그리고 테르타로스의 강도에도 미소 지었다.
역시 마신의 무구인가.
검신에 흠집조차 나지 않는 단단함이라니.
그럼.
이 다음 공격 역시도 버텨줄 수 있을 터.
뭐 내가 버틸 수 있는가가 더 문제겠지만.
일단 리빙아머 킹의 강한 외부 방어와 달리.
녀석의 속은 완전히 텅 비어 있었다.
이건 레이드를 지켜보면서 계속 확인했던 내용이었고.
그렇다면.
녀석의 안에서 이 스킬을 터트리면 과연 어떻게 될까?
리빙아머 킹의 방어구가 정말 강력한 만큼.
절대 이 스킬에도 터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강성한 성질은.
내부에서 터지는 공격에는.
완전 최악이라는 거지.
【 팬텀 익스플로전!! 】
끼아아악!!
콰아아앙!!
쿠아아앙!!
수많은 유령들이 리빙아머 킹의 갑주에 박혀 있는 테르타로스의 검신을 타고 녀석의 갑주 안으로 들어가 일제히 폭발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쿠아아앙!!
동시에 리빙아머 킹의 갑주의 틈 사이로 특유의 푸른 불꽃이 아닌 붉은 불꽃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크어어어!!
숫자를 셀 수도 없는 연쇄폭발.
팬텀 익스플로전은 보통 일정 범위의 허공에서 터지는 스킬이다 보니 어느 정도 터지고 난 뒤에는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지게 된다.
다른 스킬들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지금은 마치 튼튼한 압력용기 안에 수도 없이 많은 폭탄을 때려놓는 수준이라.
터지고 또 터지고.
다시 터져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그 위력을 극대화했다.
끄어어어!!
고통에 울부짖는 리빙아머 킹.
레이드를 지켜보면서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던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조금만 버티면……!
갑주 안에서의 폭발이 강력한 만큼이나 테르타로스의 검신이 미친 듯이 진동을 했지만 억지로라도 계속 붙들고 있었다.
이게 빠지면 절대 안 되지.
고개를 들어올려 주변을 보니 패황 연합 유저들이 시전한 스킬들이 곧 이 근처를 전부 터트릴 기세였다.
고작해야 몇 초인가.
그 전에 이 녀석을 잡고 빠지지 않으면……!
곧장 스킬을 하나 더 시전했다.
【 시간의 서! 】
아직 한 발로는 부족해!
바로 팬텀 익스플로전의 쿨을 원래대로 돌려서 다시 한 번 리빙아머 킹의 갑주 안에 쏟아넣었다.
【 팬텀 익스플로전! 】
끼아아악!!
콰아아앙!!
쿠아아앙!!
크어어엉!!
“이게 무슨……!”
패황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어이가 없는지 어느 순간 탱킹하던 것도 완전히 잊어버리고는 나와 리빙아머 킹의 모습을 넋 나간 듯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테르타로스의 폭발 진동을 손으로 겨우 버티면서 리빙아머 킹의 상태를 살폈다.
제발 좀 죽어라.
그리고 연쇄폭발의 진동이 극에 달해서 더 이상 테르타로스를 잡고 있기 버겁다고 생각할 때쯤.
사방에서 패황 연합 유저들의 광역기들이 나와 리방아머 킹의 몸체로 떨어져 내려 폭발하기 시작했다.
<노아02> 한계다. 빠져나와!
재중이 형도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고.
아냐.
이제 조금만 더 하면.
그리고 광역기들이 터지며 순간 나와 패황 녀석 사이의 공간이 새까맣게 변해 버렸다.
콰콰쾅!!!
쿠아앙!!!
콰르릉!!!
시야가 완전히 막혀 버린 상황.
내가 녀석을 보지 못하듯.
녀석 역시 나를 완전히 놓쳐 버렸다.
동시에 내 몸도 광역기의 공격 여파에 들썩거리면서 체력이 급격하게 갈려나가기 시작했다.
물약으로 체력을 끌어올려 버텨주고 있기는 한데.
이것도 잠깐 뿐이었다.
물약이 따라갈 수 없게 되면.
내가 먼저 죽게 될 터.
칫.
역시 오래 버틸 순 없어.
그리고 초조하게 리빙아머 킹의 신형을 보는데 그 순간.
그렇게 기다리던 시스템 메시지가 급격하게 울려 퍼졌다.
《 테르타로스가 네임드 몬스터 리빙아머 킹을 흡수하고자 합니다. 》
《 허락하시겠습니까? 》
그래!
허락한다!
그와 동시에 주저 없이 테르타로스에 있는 허공질주를 시전했다.
【 허공 질주! 】
오직 이 때를 위해 지금껏 쓰지 않고 쿨을 아껴 뒀으니까.
그리고 스킬이 시전되자 내 몸의 신형이 자동으로 쭉 밀려나더니 이내 허공 속으로 사라져 완전히 전투 지역에서 벗어난 외곽에 모습을 드러냈다.
휴.
위험했어.
딱 몇 초만 더 서 있었으면 체력이고 뭐고 그냥 갈려나갈 뻔했잖아.
원래는 허공 질주를 쓰면 더 멀리서 나타났어야 했는데.
아마 도약 거리 자체가 없어서 그런지 몰라도 생각보다 멀리 나오지는 못했지만 이걸로 충분하지.
내가 벗어난 레이드 지역에서는 여전히 광역기들의 폭발이 이어지면서 어지럽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었다.
저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모른다.
패황도 내가 벗어났다는 것조차도 알 수 없을 테고.
그렇게 목적을 달성하고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정말 아슬아슬했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모험이었어.
얼마 뒤 내 모습을 찾아낸 재중이 형이 내 옆으로 달려왔다.
“됐냐?”
“네. 아주 잘 뽑아왔죠.”
그러면서 테르타로스를 흔들어보이자 재중이 형도 마주 웃어보였다.
“오케이. 제대로 했네. 그럼…… 다음 작전으로 넘어가자.”
“네, 정비 좀 하고 가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저 녀석들은 저대로 놔둬도 될까요?”
저 멀리 광역기들의 폭발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는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없는 네임드를 지들이 뭐라고 하겠냐. 우리에게 와서 따질 것도 아니고.”
“하긴 그렇네요. 나중에 문제가 생기진 않겠죠?”
“어차피. 우린 여기서 사라질 거니까.”
그러고는 재중이 형이 내게 또 다른 아이템을 건네주었다.
“이건?”
“아이디 다시 바꿔. 이제는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놀아야 하니까.”
“아, 완전히 다시 위장하는 거네요.”
“그래, 이 아이디는 더 못 쓸 테니.”
아이디 변경서가 이래서 좋았다.
정체를 숨기고.
몰래 작업을 하기에는 이보다 좋을 순 없지.
그렇게 또 다른 아이디로 변경을 한 다음.
재중이 형과 함께 정비를 마친 뒤 또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아마 네임드이려나?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몇몇의 길드들이 뭔가의 네임드와 격하게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 저들이 여기에 있었어요?”
“어, 반갑지?”
“네, 너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재중이 형이 이렇게까지 준비를 한 이유를 알겠네.
그리고 철저하게 모습을 숨긴 이유까지도.
분명히 마주치게 되면 알게 될 만한 녀석들이었으니.
“우선 이 녀석들부터 밟고 올라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