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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54화 (844/1,404)

#854화 불신의 연합 (6)

다른 네임드를 훔친다라…….

확실히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었다.

혹한의 얼음 여왕의 스탯과 스킬을 전부 테르타로스가 흡수했으니까.

물론 그중 쓸 수 있는 것은 몇 개 밖에 되지 않지만 그것만 해도 여기 온 목적은 완전히 달성한 셈이었다.

“저 녀석들을 조금 더 죽이고 가진 않고요?”

조금 전 테르타로스를 써서 상대해 본 결과.

본진의 대규모 병력만 아니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저들이 은신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이쪽에는 강력한 스킬들의 쿨을 모두 복구해서 한 번에 녹이면 되니까.

적들의 숫자를 줄이려면 지금 이곳이 최적의 장소였다.

그런데 재중이 형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아쉬워하는 표정도 아니었고.

“흠, 그것도 나쁘진 않는데……. 굳이 여기서 더 시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저 녀석들을 우리가 일일이 상대할 필요가 없잖아?”

굳이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분명히 재중이 형이 말한 다른 네임드가 그와 관련이 있다는 뜻인데.

“혹시 지금 가려는 곳이 관련이 있어요?”

“그래. 한쪽만 실컷 긁어놔 봐야 저 녀석들이 몸을 사려 버리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 뭐, 여기서 계속 남아 녀석들을 계속 죽이다 보면 빡쳐서 결국 싸우러 갈 수도 있겠지만…….”

“들이는 시간 대비 확실한 결과가 아니라는 거네요.”

“그런 셈이지. 그리고 중간에 우리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는 노릇이고. 지금은 은신이 잘 먹힌다고는 해도 한 번만 실수하면 들키는 거 알지?”

재중이 형의 말이 결코 틀리지 않기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은신은 무적이 아니다.

판단을 조금만 잘못해서 한 발만 잘못 내딛으면 적들 앞에서 나나 재중이 형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계속 전투를 하다 보면 그럴 확률이 점점 높아질 테고.

절대 안 들킬 거라는 보장은 없다.

정말 눈먼 공격에 스치기라도 하면.

그때부터는 꽤 고생하게 될 터.

“확실히 성과에 비해 의미가 없겠네요.”

적들이 확실히 갈라진다는 보장도 없는데 여기서 주야장천 전투만 하고 있는 것도 시간이 아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재중이 형은 다른 방법을 이미 만들어 온 상태였고.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죠?”

“흠, 이번에는 좀 으스스할 거야.”

유령만 있는 사원을 지나왔고.

거기다 여기는 주변이 온통 빙산 지대다.

그런 곳보다 더 으스스한 곳이 있다는 건가?

“어디에요? 거기가?”

“크큭, 따라오면 알아.”

* * * * *

그렇게 순간이동반지를 써서 이동한 장소는 전혀 내 예상과 다른 장소였다.

분명히 네임드를 상대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아이템을 보충하러 온 건가 싶어 의아한 눈빛으로 물어보았다.

“여기는 마을 아니에요?”

“어, 마을이지.”

“굳이 보충할 물품은 없는데…….”

주변을 둘러보자 유저들이 광장을 바쁘게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와 본 적이 없는 곳인데.

이런 마을도 있었던가?

유저들도 많은 것을 보면 아마 어딘가의 성이거나 혹은 거점일 듯 했다.

그리고 마왕성은 확실히 아닌 모양이었고.

아직까지 유저들이 마왕성을 먹었다는 말은 못 들어봐서 말이지.

“어디죠? 여긴?”

“아까 그놈의 본진.”

“네?”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올려 저 멀리 보이는 성벽의 깃발을 보니 확실히 아까 얼음 여왕의 빙산 지대에서 봤던 그 깃발과 같은 모양이었다.

“패황 길드…….”

패도적인 이름과는 달리 현재 초월 길드 아래에 있어서 그런지 다소 어울리지는 않지만.

“여기가 그 녀석의 거점인가요?”

“거점은 아니고. 유적지.”

“유적지요?”

거점과 유적지는 다르다.

유저가 직접 세우는 거점과 달리 유적지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영지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유적지를 지키고 있는 네임드를 잡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했지만.

그렇다고 생각해 보면…….

“원래 여기 있던 네임드를 녀석들이 잡았나요?”

“어, 녀석들이 잡은 셈이지.”

잠은 셈이라고?

그러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려나?

“정확하게는 녀석이 돈을 주고 사들인 거야.”

재중이 형의 말을 듣고 다시 주변을 둘러본 다음 한숨을 쉬었다.

마계에 있는 유적지를 돈을 주고 사다니.

아까 그 탱커 길드장.

대체 얼마나 돈이 많은 거야?

화련도 이런 짓은 잘 안 하지 싶은데.

“돈이 정말 썩어나나 보네요.”

꼭 유적지가 아니더라도 거점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돈을 들여서 이곳을 사들였다고?

어떻게 보면 정말로 돈 낭비가 될 수 있는 일이었다.

본인이 직접 차지하면 또 모를까.

그러면 돈이 많이 들지 않으니.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어, 아까 말했잖아. 돈 많다고.”

그 말에 확실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재중이 형이 분명히 그렇게 말하긴 했었다.

패황 길드의 길드장이 돈이 많다고.

그때는 그냥저냥 좀 많겠지 하고 넘어갔었는데 딱히 그게 아닌 모양이네.

재중이 형이 많다고 하는 건 정말로 돈이 많다는 뜻이었다.

“화련보다 더?”

“흠, 글쎄? 그건 잘 모르겠고. 일단 돈 쓰는 스케일을 보면 맞먹지 않으려나?”

그 순간 나도 태도를 싹 바꾸었다.

“친하게 지내야겠네요. 미래의 고객님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누가 알았겠나.

처음에 완전히 적으로 만난 화련이 내 주요 고객이 될 줄은.

지금 패황 길드의 길드장인 그 녀석도 마찬가지다.

굳이 벽을 치고 볼 필요는 없다는 뜻이지.

“크큭, 벗겨먹는 건 천천히 하고. 앞으로 볼일이 많을 거다.”

“그거 정말 반가운 말이네요.”

안 그래도 화련은 너무 많이 해먹어서 그런지 좀 미안한 감이 있었는데.

순간 녀석의 얼굴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기억해 보면 녀석의 갑옷도 분명히 좋았어.

남들은 버티지도 못하는 공격을 혼자 다 받아내면서 탱킹을 했으니까.

하도 오랜만에 들어와서 다른 탱커들도 그 정도는 할 거라 생각했는데…….

재중이 형의 말을 다 종합해 보면.

그것들이 다 현질해서 뽑은 녀석들이라는 말이었다.

혹시나 해서 재중이 형에게 물어보았다.

“그 녀석 갑옷 꽤 좋던데요.”

“호오, 이 녀석. 꽤 눈여겨봤나 본데?”

“네, 무려 얼음 여왕의 스킬을 그냥 몸으로 버티던 녀석이니까요.”

“잘 봤네. 그 녀석 아이템이 여기 유적지에서 나온 네임드 아이템이다.”

“오, 역시.”

“거기다 아직 풀 세트로는 한 벌밖에 없는 물건이기도 하고.”

“그래요?”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확실히 그 정도가 되니까 얼음 여왕의 그 강력한 공격을 대놓고 맞아주지.

뭐 힐러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버틸 수 있고 없고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애초에 대미지가 너무 많이 들어오면 힐러가 아무리 힐을 들이부어 봐야 답도 없었다.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거에요?”

녀석의 네임드 아이템은 그렇다치고.

일부러 시간을 들여 이곳에 온 이유가 있을 텐데.

그리고 전에 재중이 형이 했던 말도 마음에 걸렸다.

초월 쪽 연합의 세력을 갈라놓기 위해서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곳과 그 목표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이런 유적지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딱히 없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널 데리고 오진 않지.”

“그럼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조금 뒤에 여기서 네임드 리빙아머 킹이 뜬다.”

리빙아머 킹?

이 녀석도 역시 처음 들어보는데.

“이 녀석은 단순히 사냥터를 배회하고 있는 다른 네임드 녀석하고는 달라.”

“네, 알고 있어요.”

유적지를 끼고 있다는 건 그만큼 역사가 있는 녀석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굳이 이 녀석을 보러 올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 순간 하나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혹시…….

“아이템은 어차피 못 먹잖아요.”

“그래. 저기 눈 시뻘겋게 켜고 경계하는 놈들 봐라.”

그 말에 고개를 돌려 광장을 보자 점점 유저들이 약속이나 한 듯 광장 주변에서 자리를 비우고 있는 게 보였다.

이건 아예 마을 가운데서 생성되는 거려나?

그게 아니라면 굳이 저렇게 자리를 비울 필요가 없는데.

거기다가 그 빈자리를 어떤 세력들이 속속 도착해서 자리를 채우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도 꽤 익숙한.

“얼음 여왕은 포기했나 보네요.”

“크큭, 못 잡는다고 해도 계속 지키고 있을 수 있나. 여기서 리빙 아머 킹이 뜨는데 말이야. 두 녀석간의 시간 차이가 얼마 나지 않거든.”

그리고 이전의 그 패황 길드 역시 자기들의 연합을 이끌고 속속들이 유적지로 복귀를 했다.

다들 얼굴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보면.

이번 레이드 원정 실패가 그들의 발목을 확실히 잡았던 것 같았다.

“아놔, 얼음 여왕을 다 잡고도 놓치다니.”

“초월 쪽 새끼들도 너무 하네.”

“진짜 한 번 들이받아?”

“언제까지 우리가 지들 밑이라 생각하는 거야.”

패황 길드 유저들이 전부 욕을 섞어가면서 웅성거리자 예의 부길드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손을 들어서 그들을 막았다.

“그만. 길드장께서 아무 말 없이 계시지 않나.”

“하지만. 분하지도 않습니까?”

“어차피 그것만 들어오면 녀석들을 잡을 수 있어. 조금만 참아라.”

응?

저건 무슨 말이지?

초월 쪽 애들을 잡을 방법이 있다 이건가?

<노아02> 호오, 좋은 정보인데?

<노아01> 네, 확실히.

물론 그 이상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걸 보면 정보를 더 흘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리고 패황 길드의 길드장과 부길드장이 모두 입을 침묵으로 일관하자 다른 유저들 역시 더 이상은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고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지배력은 확실히 있어 보이고.

저게 저 길드장의 돈의 힘인지.

아니면 정말 관리를 잘 해서 그런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순 없지만.

어쨌든 길드원들의 통제가 제대로 된다는 사실은 그냥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자, 곧 리빙아머 킹이 뜬다. 이 녀석만 처리하고 바로 다음 네임드 원정 가야 하니까 빠르게 잡을 수 있도록. 여기서 시간 끌리면 다른 녀석들에게 뺐길 수도 있다.”

부길드장의 말을 들어 보면 아마 다음 네임드는 다른 길드들과 중간에 뭔가 알력이 있는 장소에 나타나는 녀석인 듯했다.

뭐 거기까지는 내가 알 바 아니고.

재중이 형도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 광장 중앙 쪽만 계속 바라보았다.

<노아01> 형, 리빙아머 킹의 스킬을 뺏어오라는 거죠?

<노아02> 그래. 그거 때문에 미리 와서 기다리는 거니까.

<노아01> 흠, 그런데 굳이 이 녀석의 스킬을 가져올 필요가 있어요? 지금 있는 스킬만 해도 이미 포화인데.

테르타로스가 받아들일 수 있는 스킬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실질적으로 스탯으로 슬롯의 반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나머지는 필수적인 스킬 몇 개를 해버리면 굳이 비슷한 힘을 내는 스킬을 가져와 봐야 의미도 없었고.

하지만 재중이 형이 굳이 몰래 정보를 받아와서 여기 있다는 건…….

<노아02> 아니, 반드시 가져와야 해. 저 리빙아머 킹의 스킬. 다른 녀석들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재중이 형의 말에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른 일들과 연관되어졌고.

<노아01> 녀석들밖에 못 쓰는 스킬이라……. 형이 왜 오자고 했는지 이제 확실히 알겠네요.

아마 유적지를 얻으면서 패황 길드 쪽에서 아이템은 물론이고 스킬까지도 전부 다 쓸어간 모양인데.

그게 자신들의 목을 죌 무기가 될 거라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겠지.

그리고 그걸 무기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였다.

서버 내에서 녀석들밖에 못 쓰는 스킬을.

만약 내가 다른 곳에서 쓰게 되면 과연 어떻게 될까?

거기다 그 스킬을 쓰는 대상이…….

녀석들이 꽤 싫어하는 그쪽이라면?

<노아01> 아주, 아주 재밌겠네요. 이번 작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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