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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47화 (837/1,404)

#847화 증발하는 네임드들 (10)

디텍트 에어리어가 레이드를 하는 얼음 계곡 곳곳에 계속 파장을 내보내고 있지만 애초에 난 저 디텍트 에어리어에 걸리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적 연합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유유자적하게 얼음 여왕의 뒤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하는 점도 존재했다.

바로 다수의 유저가 뿜어내는 눈먼 공격들.

일단 얼음 여왕이 가만히 서서 유저들의 공격을 그냥 맞아 주는 게 아니라 계속 위치를 바꿔 가면서 적들을 노렸다.

반대로 적 연합에서는 가급적이면 적중 확률이 높은 광역기를 자주 쓰는 편이었고.

얼핏 살펴보기에 얼음 여왕의 스탯은 전의 팬텀 나이트에 못지않았다.

단순 이동 속도야 유령마를 타고 있는 팬텀 나이트가 당연히 앞서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얼음 여왕 자체가 느리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최소 유저들보다는 빠르지.

그러다 보니 유저들은 그나마 적중률이 높은 광역기를 선호하는 편이었고.

지금도 레이드가 막바지에 이르자 사방에서 듣도 보도 못한 광역기들이 적 연합에게 계속 쏟아져 나와 얼음 여왕에게 피해를 누적시키고 있었다.

확실히 그동안 마법사들하고 궁수들의 공격 스킬이 눈에 띄게 좋아졌어.

내가 없는 동안 새로 나온 몬스터들에게 얻은 스킬도 상당할 테지.

그걸 증명이나 하듯 계속되는 광역기가 터지자 잠시 숨을 골랐다.

차려 준 밥상을 먹긴 할 텐데.

이건 딱 한 번에 끝내야 했다.

두 번은 없어.

그러려면 타이밍을 정말 잘 재야 했고.

<노아01> 형, 얼음 여왕 슬슬 죽을 때 다 됐죠?

<불멸> 어, 준비해. 곧 쓰러진다. 얼음 여왕이 몸에서 강한 얼음 폭풍을 연달아 일으키면 그때가 최적의 타이밍이다.

<노아01> 네, 알겠어요.

이렇게 주의를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없다.

하이딩 망토로 시전하고 있는 은신 상태에서는 적의 눈먼 공격에 살짝만 스치더라도 유효타라고 판단되면 은신이 벗겨져 버리니까.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적들의 시선이 얼음 여왕이 아닌 나를 먼저 제거하기 위한 시선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럼 당연히 얼음 여왕은 물 건너가는 거고.

후.

기다린다.

딱 한 방이 나올 때까지.

은신으로 완전히 기척을 죽이고서.

이렇게 내가 얼음 여왕의 후방에서 계속 타이밍을 재며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걸 모르는 적들은 다소 안도하는 말들을 쏟아내었다.

“이 녀석, 그냥 사라진 거 아냐? 아까부터 계속 안 보이네.”

“그러게. 정말 잠잠한데?”

“벌써 내뺀 거 아닐까?”

“그런데 이제껏 안 들키고 굳이 내뺄 필요가 있나?”

“야, 어차피 그 녀석이 우리 레이드 방해해 봐야 남는 게 없잖아.”

“그렇긴 하지. 정말 잘 쳐줘서 녀석이 네임드급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도 지금 끼어들어서는 아이템 하나 건지지 못할 테니.”

“내 말이. 정말 이 모든 인원을 다 죽일 게 아니라면 말이야.”

그러면서 마지막에 말한 유저가 주변에 빼곡하게 레이드를 하고 있는 수많은 유저들을 가리켰다.

진짜 레이드를 방해하고 싶었다면.

저들이 말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

뭐 이건 녀석들이 테르타로스에 대해 모르니까 하는 말이지.

“그래도 방심하지 말라고. 전에도 방해 받아서 네임드 놓친 적 있잖아.”

“하, 진짜 그때 생각하면 빡치네. 다 잡아 놓은 걸 말이야.”

“에이, 그때가 언제냐. 한참도 지난 일인데.”

“적이지만 불멸이 좀 강하긴 했어.”

“그러게, 그놈은 진짜 인정이지. 십 대 일로 붙어도 안 밀리더라니까.”

“십 대 일이 뭐냐. 그때 개쪽 판 거 생각해 보면 아직도 잠이 안 온다. 길드 하나가 통째로 유저 하나에 썰려 나갔는데.”

“난 아직도 불멸 떠올리면 벌떡 잠에서 깬다니까? 그 녀석도 같은 유저인데 그렇게 차이가 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푸흡, 대회 1위 한 놈이랑 너랑 같겠냐.”

“이 녀석이!”

응?

재중이 형이 그랬다고?

<노아01> 여기 형 이야기하는데요? 형이 깽판 놓은 적 있어요?

<불멸> 어, 뭐 가끔 가다가 심심하면.

<노아01> 심심하다고 유저 수십을 썰어요?

<불멸> 그냥 몸 좀 풀었을 뿐이야. 겸사겸사 레이드도 방해하고.

이 형이 확실히 대단하긴 해.

내가 없을 때도 자주 이러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불멸> 자자, 집중해. 슬슬 타이밍 나온다.

재중이 형이 말하기 무섭게 얼음 여왕에게서 광포한 얼음 폭풍이 연달아 일어나기 시작했다.

쐐애애액!!

휘이이잉!!

콰드득!!

멀리 있어도 몸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의 매서운 추위에 이어 시야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세찬 돌풍과 함께 얼음 파편들이 수도 없이 눈보라를 일으키며 얼음 여왕 주변에서 터져 나왔다.

이전에 봤던 얼음 폭풍과 비슷하면서도 이건 좀 확실히 달라.

훨씬 광폭하고 살이 에일 듯한 날카로운 돌풍.

심지어 그런 얼음 폭풍이 무려 세 겹이나 되어 서로 마찰을 일으키며 서로 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얼마나 돌풍이 강한지 얼음 폭풍 사이로 뇌전까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이 스킬의 위력?

말해 뭐하겠는가.

걸리면 그냥 죽는다고 봐야지.

무려 레벨 350대의 네임드가 마지막에 쓰는 최종 스킬이었다.

그것도 이제껏 한 번도 모지 못한 규모의 대단위 광역기.

주변 얼음 계곡을 통째로 울릴 정도의 과도한 위력에 자동적으로 몸이 뒤로 빠졌다.

그 와중에 녀석들에게서 악에 받친 외침이 들려왔다.

“드디어 떴다. 트리플 템페스트.”

“이것만 버티면 돼!”

“윽! 힐러들 힐 최대치로 메인 탱에게 몰아넣어! 한 번만 버티자!”

“방어 스킬 전부 돌리고!”

“체력 약한 녀석들은 뒤로 빠져!”

“힐러들 절대 더 죽으면 안 돼!”

“몸으로 때워서라도 힐러들 보호해!”

지금 얼음 여왕이 쓰고 있는 스킬은 너무 강력해서 가만히 버틴다 하더라도 알아서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였다.

그 자리에 버티고 있으면 죽을 게 뻔하고.

당연히 이럴 때는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레이드 장소에서 유저들이 너무 떨어져 버리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어글이 풀려 기껏 체력을 깎아놓은 얼음 여왕의 체력이 도로 찬다던가.

혹은 얼음 여왕이 후퇴를 한다는.

딱 망하기 좋은 시나리오가 나오겠지.

그래서 지금 메인 탱커가 저 강렬한 템페스트를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한 발자국도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메인 탱커의 갑옷이 템페스트에 휩싸일 때마다 기묘한 하얀 빛을 계속해서 내뿜었다.

아마 저건 저 네임드 갑옷의 능력이려나?

다른 유저들은 죄다 후퇴하거나 밀려난 와중에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데는 저 갑옷이 필수적으로 보였다.

물론 힐러들의 힐 지원이 집중적으로 들어가긴 해도.

단순히 힐만으로는 이 폭풍을 버틸 수는 없을 테니.

묵묵히 버티는 녀석도 대단…….

“크아아악!! 젠장! 이건 할 때마다 지랄이야!!”

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템페스트 속에서 신체 전체가 얼었다 풀렸다를 무한 반복하고 있는데 그걸 버틸 수 있는 유저가 과연 몇이나 될까.

당장 손만 얼어져도 미쳐 버릴 유저가 한둘이 아닐 텐데.

물론 고통 경감이 된다고 해도.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전투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예 아무 감각이 안 느껴지게 세팅은 못 해.

지금 아마 거의 죽을 맛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저 수준의 랭커 중에서 감각을 아예 끊어 버린 유저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럼 전투 시에 심각한 문제가 올 테니까.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허공에 손을 허우적거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식으로 세팅하는 미련한 인간은 없을 테니.

최소한으로 맞춰놨다 한들 지금 느껴지는 고통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탱커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원거리와 달리 진짜 몸으로 때워야 하니 그 고통을 죄다 안고 플레이해야 한다.

전사 형이 그래서 대단하다는 거고.

매번 아무렇지도 않은 듯 플레이하니까.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거의 맞지 않고 플레이를 하니까 전사 형처럼은 하라고 해도 아마 힘들지도 모른다.

“아악! 내가 진짜! 얼음 여왕 너 찢어 죽여 버린다!”

고통이 극에 오는지 메인 탱커가 악에 받친 외침을 터트렸다.

저렇게 고생해 가면서 억지로 버틴다라.

확실히 저 녀석도 대단하긴 해.

“내가 버티고 있는 동안 템페스트 안으로 광역기 전부 쏟아부어!!!”

“넵!!”

“알겠습니다!”

“다들 지금이다!”

“남은 마력 전부 때려넣어!”

“마무리 짓자!!”

어떻게든 메인 탱커가 저 트리플 템페스트에서 버텨 주자 연합 전체가 힘을 받았다.

이래서 레이드에서 탱커의 역할이 중요했다.

저걸 버텨 줄 수 있느냐 없느냐로 레이드의 성공 여부가 갈리니까.

그리고 그 순간.

힐러를 제외한 모든 유저들이 일제히 얼음 여왕을 향해 광역기를 쏟아내었다.

콰아아앙!

쐐애애액!

파아아앙!

쿠아아앙!

화려한 형형색색의 온갖 스킬들이 트리플 템페스트의 얼음 폭풍에 들이박으면서 터지거나 소멸되어 갔다.

하지만 수십, 수백에 달하는 스킬들 중 저 얼음 폭풍을 뚫고 제대로 파고 들어간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저렇게 많은 스킬로도 트리플 템페스트를 어떻게 하지 못해 중간에 소멸되다니.

대체 저거 위력이 얼마나 되는 거냐?

아마 네임드 350짜리가 낼 수 있는.

그것도 마법 계열 네임드의 최대치의 스킬이라 그런지 위력이 상상을 초월해 보였다.

내 몸이 저기 끼어들면 모른긴 몰라도 그 자리에서 샤르르 녹아버릴 지도.

난 체력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니까.

거기다 이쪽은 힐러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고.

재중이 형은 이 미친 얼음 폭풍을 뚫고 들어가서 마무리를 지으라고 한 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재중이 형에게 귓말을 보냈다.

<노아01> 아, 형. 이건 파고들기 무리 같은데요?

<불멸> 그래, 저걸 파고들기는 무리지. 최소한 저 트리플 템페스트가 걷히지 않는다면.

<노아01> 그럼 기다려요? 트리플 템페스트가 걷힐 때까지? 하지만 그러면 그때는 저 녀석들도 제대로 공격할 수 있을 텐데요.

까딱 잘못하다가는 그냥 구경하다가 얼음 여왕을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막타를 넣지 못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불멸> 당연히 기다리면 안 되지. 지금 파고들어.

<노아01> 네? 하지만 무슨 수로.

<불멸> 큭, 네 테르타로스는 국 끓여먹을 셈이냐. 그거 있잖아. 네임드 스킬.

그 말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노아01> 허공 질주요?

<불멸> 빙고. 유일하게 저 템페스트를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스킬이야. 그동안은 없어서 못 썼지만. 넌 다르지.

확실히.

허공 질주가 있으면 저 템페스트를 뚫고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블링크 같은 스킬은 안 되는 거였나?

그러자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 재중이 형이 말했다.

<불멸> 블링크는 안 돼. 하위 스킬이라 간섭이 심해서 중간에 다 씹히거든.

역시 그런거였나.

<불멸> 그리고 저 트리플 템페스트만 넘어가면, 안은 조용하지. 태풍의 눈처럼.

<노아01> 네, 그럼 갑니다.

답을 알았으면 시도해 보면 된다.

곧장 테르타로스를 들어서 앞으로 달리며 스킬을 시전했다.

【 허공 질주! 】

그러자 몸이 허공에서 사라지면서 어느 순간 트리플 템페스트를 격해 얼음 폭풍의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완전히 무방비가 된.

얼음 여왕의 바로 뒤로.

그대로 주저하지 않고 테르타로스를 찔러 넣으면서 가지고 있는 최대 위력의 스킬을 쏟아부었다.

팬텀 나이트의 최종스킬!

【 팬텀 익스플로전! 】

유령들이 끝도 없이 검끝을 타고 날아가 폭주하듯 터져 나가는 최강의 스킬.

확실히 같은 네임드의 스킬이다 보니 이 스킬은 아주 제대로 얼음 여왕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콰아아아앙!!

콰과광!!

“끼아아악!!”

그리고 원래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얼음 여왕이다 보니 이 공격을 받자마자 얼음 여왕의 신체가 깨지더니 곧 허공으로 비산해 물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트리플 템페스트와 함께.

큭.

됐어!

드디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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