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4화 증발하는 네임드들 (7)
“잘 들어. 디텍딩 스킬에는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요?”
“그래. 첫 번째는 시전자의 주변에 은신을 한 유저가 있는지 확인해 주는 디텍트 에어리어. 이건 한 마디로 감지만 해 주는 스킬이야.”
“감지만 해 준다는 건 감지 외에는 다른 기능이 없다는 뜻이죠?”
“그렇지. 순전히 은신한 유저가 주변에 존재하는지만 알려 줄 뿐이다. 어디쯤 유저가 있는지, 그 숫자가 얼마나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어. 그리고 스킬 랭크가 늘어나면 그 범위가 점점 늘어나게 되지.”
“흐음, 생각 외로 빈틈이 많은 스킬이네요.”
“뭐 그런 셈이야. 실상 은신을 한 유저가 주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유저를 잡아낼 순 없으니까. 그래도 디텍트 에이리어 랭크가 높은 유저는 길드에서 상당히 귀한 대우를 받아.”
“왜 그렇죠? 어차피 잡아낼 수 없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은신한 유저를 대처할 만한 시간 정도는 벌어 줄 수 있거든. 긴장을 아예 놓고 있는 것과 누군가 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건 큰 차이지.”
“하긴, 은신도 무적은 아니죠. 한 번 공격하면 은신이 풀리잖아요.”
“어, 거기다 이 디텍트 에어리어 랭크가 높아지면 쓸 수 있는 스킬이 하나 더 생겨.”
“아까 말한 두 번째인가요?”
“그렇지. 디텍트 하이딩 유저. 이건 디텍트 에어리어가 상위로 올라가야 익힐 수 있는 스킬이다. 상위 스킬이다 보니 이건 직접적으로 은신한 유저의 모습을 드러내게 해 주거든.”
“상성상으로는 최악이겠네요.”
“맞아, 은신 하나만 노리고 들어간 유저가 이 디텍트 하이딩 유저에 걸리면 그냥 은신이 풀려버리고 말아. 이것도 디텍트 에어리어가 높은 유저가 우대 받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상대방 쪽에 디텍트 하이딩 유저 스킬을 가진 유저가 있겠죠?”
“어, 쟤들도 초반에는 이 은신 때문에 고생 많이 했으니까. 무조건 있어. 그걸 레이드 중에 유지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다만.”
“평소에는 안 쓰나요?”
“일단 이걸 유지하는데 마력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거든. 굳이 안 써야 하는 상황에서는 안 쓰는 편이 좋아. 이걸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마력이 거의 바닥칠 테니. 그리고 너 같으면 완전 자기들 세상인데 이걸 굳이 쓰고 있을까?”
“아, 레이드를 방해받지 않아서?”
“그래. 예전에야 무조건 썼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걸 가지고 가.”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내게 아이템 하나를 건네었다.
“이건?”
“보다시피 가면이지.”
『 하이딩 페이스 / 방어력 0.
- 가면 아이템.
- 시전자의 얼굴을 가려준다.
- 내구도 하락 시 파괴. 』
이런 아이템도 있었나.
특별히 아이템 슬롯에 넣어야 한다던가 하는 아이템은 아니었다.
“그냥 얼굴에 쓰면 돼. 내구도가 그렇게 좋지 않아서 몇 번 맞고 나면 파괴되니까 유념하고.”
“정체를 숨기는데 좋겠네요.”
안 그래도 재중이 형의 말을 듣고는 은신이 풀리면 어쩌나 했는데.
이런 아이템이 있으면 얼굴을 드러나지 않으니 내게는 좋았다.
“이걸 안 쓰는 상황이 제일 좋겠지만. 항상 상황이 원하는대로 되지는 않을 테니까.”
“네, 그렇죠.”
그리고 그런 재중이 형의 준비는.
지금에 와서 확실히 빛을 발했다.
예상과 다르게 마력을 엄청나게 잡아먹는다는 디텍트 에어리어를 실제로 유지하고 있는 유저가 있었다.
심지어 범위마저 넓은.
얼음 여왕을 공격하기 위해 후방으로 다가가는데 뭔가 파장 같은 것들이 계속 한 유저를 중심으로 물결치듯 흘러나와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정작 이 스킬을 쓰는 유저는 이 스킬이 어떻게 적용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만.
내게는 확실히 느껴졌다.
허리 높이쯤에서 계속 물결이 치듯 감지 스킬이 작용하는 것을.
그리고 그런 감지 스킬에 내가 걸려들자마자 한 유저가 고함을 질렀다.
“디텍딩 스킬에 뭔가 걸렸어!!”
저 녀석인가.
후방에서 레이드에는 전혀 관여를 하지 않고 오직 디텍팅 스킬만 쓰고 있는 유저.
설마하니 방해도 없는 레이드에 저런 식으로 유저를 놀릴 줄은 몰랐지만.
이런 점에서 이 녀석들이 평소에도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는 게 잘 느껴졌다.
방심을 하지 않는다라…….
확실히 어중이떠중이들하고는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다.
그때 다시 예의 그 유저에게서 스킬 하나가 시전되었다.
【 디텍트 하이딩 유저! 】
그리고는 곧장 또 다른 파장이 허리 즈음으로 퍼져나와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이게 재중이 형이 말한 스킬이려나.
몸에 닫는 순간.
바로 은신이 풀려 버렸다.
《 디텍딩 스킬로 인해 하이딩 스킬이 제거됩니다. 》
《 시전자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
칫.
확실히 디텍트 하이딩 유저 스킬까지도 보유하고 있었네.
내 모습이 드러나기 직전 바로 하이딩 페이스를 얼굴에 씌였다.
재중이 형 말대로라면 이건 아이템이라 스킬로 벗길 수 없다고 하니까.
파괴되면 또 모를까 그 전까지는 모습을 계속 숨길 수 있었다.
“어? 저건??”
“노아01?”
“누구 아는 사람 있어?”
“몰라. 일단 죽여!”
“잠깐! 노아01……? 저 녀석 얼마 전에 시스템 알람에 올라온 녀석 아냐?”
“10강 테르타로스 그거?”
“맞아. 맞네, 그 녀석이다.”
“에이, 그냥 따라했는지 누가 알고.”
“아냐, 저 녀석 들고 있는 무기 봐봐. 처음 보는 거잖아.”
음.
그냥 노아02 쯤으로 할 걸 그랬나.
뭐 어차피 그랬어도 알았겠지.
그리고 딱히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당연히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뭘 보고 있어! 일단 죽여!”
저 연합의 우두머리 쯤으로 보이는 유저가 크게 외치자 웅성거리던 유저들의 어수선한 기세가 공격적인 느낌으로 확 바뀌었다.
역시.
그냥 어설픈 녀석들하고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쉽게 당황하는 일도 없었고.
녀석들 중 일부는 그대로 얼음 여왕과 레이드 진형으로 대치를 했고.
남은 여유 인원들은 일제히 내 주변으로 자리를 빼면서 점점 진형을 갖춰갔다.
마치 나를 얼음 여왕 대하듯.
세컨 탱커들 먼저 내 앞쪽으로 포진하고 그 뒤로 근접 딜러 몇이 보조해 주는.
그리고 마법사와 힐러 계열은 블록 안쪽으로 숨기는 것이 한두 번 이런 상황을 맞이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훈련도 잘 되어 있고.
쉽사리 빈틈을 노리긴 힘들어 보였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졌다.
“하긴. 너무 쉬우면 재미없지.”
“뭐?”
내 의외의 말에 앞에 있던 탱커의 표정이 실룩거렸는데 그런 녀석들의 반응은 관심 없었다.
오직 내 관심은 하나.
먼저.
저 디텍트 하이딩 유저를 쓸 수 있는 녀석의 목을 날려 버려야 해.
그게 아니면.
계속해서 내 모습이 드러나기에.
원하는 상황을 만들 수가 없게 된다.
아까 분명 디텍트 하이딩 유저의 범위가...
좀 전의 파장을 떠올리면서 그대로 내 몸을 뒤로 내뺐다.
“어?! 녀석이 도망가려고 한다!”
“일단 잡아!”
“그래도 너무 진형에서 떨어지면……!”
녀석들 중에서도 의견을 낼 수 있는 자가 있는지 반대 의견을 냈는데 다시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이전에 디텍트 에어리어를 시전한 유저에게 물었다.
“디텍트 에어리어에 몇 명이나 잡혔어?”
“한 명입니다.”
“그래? 그럼 녀석 혼자라는 거잖아.”
“네, 제 스킬에 잡히는 건 혼자였습니다.”
“오케이. 그럼 추격조 따로 붙이고 나머지는 다시 얼음 여왕에 집중한다. 저 녀석 하나 때문에 레이드를 망칠 순 없어.”
그렇게 지시를 하자 한 개의 파티로 보이는 녀석들이 곧장 무리에서 빠져나와 내 뒤를 따라붙었다.
몸이 날쌘 보이는 조합인가.
전체적으로 경갑 위주의 발이 빠른 검사들.
그리고 활을 든 유저 둘.
디버프가 가능해 보이는 마법사 하나.
디텍트 에어리어를 쓰던 유저 하나.
딱히 힐러는 붙지 않았고.
추격만 하기에는 나쁘진 않은 조합이었다.
“뭐. 그렇게만 온다면 나도 환영이지.”
녀석들이 착각한 것 중에 하나가 디텍트 에어리어가 생각보다 만능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 자체를 모르고 있을 확률도 존재했고.
그리고 그걸 지금은 확인해 봐야 했다.
조금 녀석들을 뒤에 붙이고 전투 지역에서 빠졌다가 진형을 맞춰 따라붙는 걸 확인한 후 다시 하이딩 망토를 벗었다가 착용하자 내 모습이 스르륵 사라져갔다.
딱 이 정도 거리까지가 디텍트 에어리어의 감지 범위 밖이었지.
“하이딩 망토잖아? 저 비싼 건 어디서 구한거야?”
“호오, 잘하면 하이딩 망토가 떨어지겠는데?”
“그러게. 저 녀석 들고 있는 그 테르타로스라는 무기도 재수 좋으면 얻는 거 아냐?”
“오늘 우리 운빨 한번 확인해 보자. 대박 터질라.”
이 녀석들.
날 당연히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하긴.
녀석들은 잘 무장된 상태로 레벨 역시 상당히 높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추격전을 한두 번 벌인 모습도 아니었고.
주저하지 않고 자신감 있는 경쾌한 발걸음.
익숙하고.
단련이 잘 되어 있는.
계속해 내가 달리는 방향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녀석들의 움직임에서 유저 사냥꾼의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디텍트 하이딩 유저로 찾아내. 이번엔 다시 은신할 시간도 주지 말고.”
내가 은신으로 모습을 감추자 곧장 오더가 떨어졌고.
【 디텍트 하이딩 유저! 】
따라 달리던 녀석 중에 하나가 감지 스킬을 쓰자 예의 그 기묘한 파장이 내 감각에 걸려들었다.
이 스킬.
단순히 바로 유저에게 적용되는 게 아니야.
물결 치듯이 시전자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면서 일정 거리에 있는 유저의 몸에 닿으면 그 순간 은신이 깨어지게 설계되어 있었다.
다른 말로.
저 파장에 걸리지만 않는다면.
저 디텍트 하이딩 유저 스킬은 아무 쓸모가 없는 거지.
순간 파장이 시전자에게서 원형으로 퍼져 나와 내 허리를 스치려고 할 때 몸을 납작하게 숙여서 완전히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그 디텍팅 파장이 내 머리 위를 스쳐 멀리 뻗어져 나가 사라져 버렸고.
“어?”
당연히 디텍트 하이딩 유저에 걸려서 은신이 깨질 줄 알았던 시전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스킬을 썼음에도 아예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니.
당황할 수밖에.
“야, 왜 은신한 놈 모습이 안 보여?”
“제대로 쓴 거 맞아?”
“어어? 아닙니다. 제대로 썼습니다!”
“그런데 왜 안 보이냐?”
“……이미 멀리 달아난 것 같습니다만.”
“뭐? 좀 전에 앞에 있었잖아!”
“아예 내뺀 건 아닌지.”
그 말에 추격팀의 머리로 보이는 녀석이 확 인상을 썼다.
주변의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
“아놔, 다 잡은 물고기를……!”
“떨굴 게 많아 보였는데 말입죠. 아깝습니다.”
“에이, 괜히 힘만 뺐네.”
“야, 혹시 모르니까 디텍트 에어리어 다시 유지해. 분명 녀석은 다시 돌아온다.”
그럼에도 긴장을 풀지 않는 녀석들을 보면서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래.
디텍트 에어리어만 바싹 믿고 있어라.
그렇게 디텍트 에어리어 스킬의 파장이 흘러나올 때마다 허리를 낮추면서 허들 넘듯 녀석들에게 접근해갔다.
바로 코앞까지 접근했음에도 눈치조차 채지 못한 모습.
유령보가 확실히 도움이 되네.
디텍딩 스킬을 너무 믿는 것도 있었고.
완전히 접근한 뒤.
디텍트 에어리어를 쓰는 유저의 뒤로 파고 들자마자 테르타로스로 녀석의 목을 따내었다.
“커억!!”
단 한 방에 급소를 맞고 죽음의 빛으로 변하는 걸 확인하고는 곧장 은신으로 모습을 감췄다.
좋아.
제일 거슬리는 녀석은 잡았어!
그럼 어디 한 번 다 죽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