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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43화 (833/1,404)

#843화 증발하는 네임드들 (6)

먹이로 나쁘지 않다?

아니지.

이건 그런 수준은 아득히 넘어섰다.

잡을 수만 있으면 내게는 최상.

일단 녀석의 추정 레벨 350대.

팬텀 나이트보다 레벨 대가 높은 걸 봐서는 테르타로스가 추출할 수 있는 능력도 더 높을 테니까.

아마 지금보다 조금 더 높은 스탯도 뽑아낼 수도 있을 테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특수 스킬 같은 녀석들만 구해져도 내게는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네, 마음에 드네요.”

당장 문제는…….

적응 안 되는 이 추위이려나?

온통 빙벽의 산으로 둘러싸인 장소.

거기다 얼음 여왕으로부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음 폭풍이 불어 닥치는 중이었다.

그 때문인지 매서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살을 에는 추위가 느껴졌다.

“이 추위에 용케 레이드를 지속하네요.”

“어, 그런데 아마 여기서 반쯤은 얼어 죽을걸?”

누가 들으면 농담 같은 대답이었지만.

실제로 피부를 타고 들어오는 추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농담같이 안 들리니 문제네요. 그런데 그렇게 많이 죽으면 저 얼음 여왕의 레벨이 오르지 않아요?”

내가 묻는 건 다른 게 아니다.

유저가 네임드에 가서 죽어 주면 그 네임드가 경험치를 얻으면서 레벨이 오르게 된다.

이건 뭐 다른 몬스터들도 다 마찬가지지만.

네임드의 경우에는 그 문제가 심각하게 변했다.

실컷 레이드를 해 체력을 깎아 놨는데 그놈이 고스란히 원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면?

허탈한 건 둘째 치고.

당장 레이드를 접어야 하는 상황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의외의 말을 했다.

“괜찮아. 지금 저 녀석은 이미 레벨이 오를 대로 올라서.”

“얼음 여왕이요?”

“어, 워낙 많이 와서 죽어 주다 보니 이제 어지간히 죽어서는 레벨 변동이 없는 상태거든.”

“그 말은…… 이 녀석을 못 잡은 지 좀 됐다는 말이겠네요?”

“뭐 그런 셈이지. 얼음 여왕은 정말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잡기 힘드니까. 가령 오늘 같은 날.”

무슨 말이지?

오늘 같은 날?

궁금한 눈빛 가득하게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그나마 지금이 해가 뜨는 시간대거든.

“아, 그럼?”

“지금이 레이드를 시도해 보기에는 최상의 시간대지. 일단 해가 없는 시간에서는 한 번도 못 잡았어. 그래서 다들 이 시간만 맞춰서 레이드 중이다. 얼음 여왕이 조금이라도 약해질 때를 대비해서.”

그 말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거친 구름들의 움직임 사이로 햇빛이 강림하듯 지상을 비추는 중이었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얼음 여왕은 그런 햇빛 근처를 잘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서 광역기로만 유저들을 공격했다.

마치 닿기만 해도 죽는다는 듯.

굉장히 꺼려 하는 눈치.

뭐 네임드가 햇빛 좀 봤다고 바로 죽진 않겠지만.

약화되는 시스템인 건 확실해.

“노려야겠네요.”

“어, 가능하다면. 그렇지만 녀석을 햇빛으로 끌고 가는 건 어려워. 그 전에 녀석의 저 화려한 마법 난사에 죽을 테니까.”

재중이 형 말대로 얼음 여왕은 팬텀 나이트와 달리 완전한 마법형 네임드였다.

팬텀 나이트가 직접적인 육탄 공격에 가깝다면 얼음 여왕은 거의 걸어 다니는 폭발물과 비슷하달까.

아니지.

걸리는 족족 다 얼려 버리는 걸 폭발물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지금도 온몸이 얼음으로 되어 있는 얼음 여왕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냉기 관련 광역기가 퍼져 나가 그쪽 방향의 모든 유저들의 몸을 얼려 놓았다.

심지어 얼려져 있는 상태가 아닌 마법 자체의 대미지를 먹고는 죽음의 빛으로 변하는 유저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냥 센 거죠?”

“어, 굳이 저 얼음 계열 속성이 아니더라도. 그냥 맞으면 죽어.”

얼음이 까다롭긴 한데.

그렇게 얼기도 전에 죽으면 사실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음, 저도 죽는 거 아니에요?”

사실 내 방어구는 아직도 예전의 구형 아이템에 불가했다.

이번에 테르타로스를 쓰게 되면서 스탯이 많이 붙어 스탯으로는 밀리진 않겠지.

하지만 결국 이런 광범위한 마법에는 취약했다.

어떻게든 마법을 맞으면서 대미지를 입을 테니.

“그래서 이걸 준비해 왔지.”

동시에 재중이 형이 인벤에서 뭔가의 아이템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건?”

“네가 얼지 않도록 해줄 아이템들.”

『 얼음 계곡 플레이트 상의 』

『 얼음 계곡 플레이트 하의 』

『 얼음 계곡 플레이트 건틀렛 』

『 얼음 계곡 플레이트 헬름 』

『 얼음 계곡 플레이트 부츠 』

『 냉혈의 이어링. 』

『 냉혈의 링 』

『 냉혈의 네클라스 』

“네임드 템은 아니네요?”

“여기 근처의 일반 사냥터에서 구할 수 있는 녀석들이지. 방어력이 높진 않지만 옵션들이 전부 다 이곳 사냥터에 특화되어 있어.”

얼핏 살펴보니 재중이 형 말대로 방어가 강하기보단 냉기 방어나 냉기 속성을 올려주는 옵션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어떻게 구했어요?”

분명 사냥터가 통제되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우리 쪽 사람들이 이곳 얼음 계곡에 들어서지도 못했을 텐데.

지금 레이드를 저들이 하고 있는 걸 보면 이건 명확한 사실이었다.

“뭐 돈으로 구했지. 일반 템이다 보니 그렇게까지 풀지 않는 것도 아니거든.”

“그나마 다행이네요.”

잘못하다가 얼음 여왕에게 접근하기도 전에 죽어 버릴 줄 알았는데.

“그렇다고 너무 믿지는 마. 이건 정말 보급품에 불과해. 아마도 기껏해야 몇 초 정도 버티는 게 고작일 거다.”

“충분해요.”

어차피 막타만 치고 나오면 되는데 오래 버틸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얼음 계곡 세트로 아이템을 죄다 변경해 냉기 관련 옵션을 잔뜩 높여 놓았다.

흐음.

이건 수치가 너무 한쪽에 몰려 있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냥터에서는 쓰기 힘들겠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면을 보니 이번에는 눈에 들어왔다.

지금 레이드를 하는 유저들의 방어구들이.

“다들 이걸 쓰네요.”

“어, 안 죽으려면.”

그런데 그중에서 정면에 있는 몇 명은 조금 더 특이한 아이템을 입고 있었다.

“혹시, 저거 네임드 템이에요?”

“어, 처음에 얼음 여왕을 잡고 나온 아이템.”

적의 탱커 중 한 명이 유독 정면에 붙어 얼음 여왕의 시선을 잔뜩 끌고 있었다.

모든 공격을 자기에게 하라는 듯이.

아마 레벨 대도 상당하지 싶은데.

그게 아니라면 이미 죽어도 옛날에 죽었을 것이다.

“저 길드는 처음 보네요.”

“흠, 넌 확실히 처음 보겠다.”

이런 350대의 네임드를 공략하려면 최소한 서버 내에서 상위에 위치한 길드여야 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없어.

예전에는 없던.

그렇다면 중간에 생긴 신생 길드라는 뜻인데.

“강해요?”

“어, 쟤들은 강하지. 실력으로만 보면 프로 팀 바로 밑이라고 보면 돼.”

“일반인들이 그렇게 잘한다고요?”

“그냥 일반인은 아니지. 다른 서버에서 잘 한다는 놈들을 돈으로 긁어모은 팀이니까.”

“……그거 돈 너무 들어가는 거 아니에요?”

사실 예전에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1서버가 아닌 다른 서버에서 잘나가는 유저를 포섭해 오는 일을.

사장님이 예전에 내가 있던 서버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가능성을 이야기했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다른 서버의 최상위 유저를 데리고 오려면 무엇보다 그에 맞는 돈이 필요했다.

거기다 그 유저가 다시 클 수 있도록 지원까지 해줘야 했고.

아무래도 오랜 시간 서비스가 되다 보니 기존 유저들의 레벨을 따라잡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서버에서 해당 유저가 올리던 수입까지 보전해줘야 하는 문제까지 있으니 거의 불가능할 수밖에.

막말로 다른 서버에서 꿀 빨고 있는데 굳이 여기 와서 다시 고생을 하려고 할까.

이런 모든 점들을 무마하고도 남으려면.

역시.

돈밖에 없지.

“그 화련의 언니 작품인가요?”

“어, 아주 호화군단을 만든다고 하던가……. 너 같은 녀석이 나와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도록 말이야.”

“……설마 저 때문에 만들었다는 말은 아니겠죠?”

“왜 아니겠냐.”

으음.

농담이라고 해 주길 바랐는데.

대체 그 여자는 뭐하는 사람이길래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지?

“아, 뭐 단순히 그 여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그럼?”

“여러 곳에서 자금을 조달했더라고.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지만. 대충 예상해 보자면…… 국내 대형 기업들 중에 스폰을 해 주는 곳이 상당수 있어.”

“왜 그렇게까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 혹시 PV도 포함되어 있나요?”

“뭐 그런 셈이지. 널 잡아야 되는 이유가 제일 확실한 곳.”

그러고는 재중이 형이 피식 웃더니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뭐 네가 잠수 타는 바람에 다 이상하게 되어 버렸지만.”

실컷 돈을 들여서 연합을 만들어 놨는데 정작 상대할 내가 로스트 스카이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건 저 연합의 존재 의의가 없어진 셈이랄까.

“결국 처음 목적과 다르게 이상하게 변질되어 버렸지. 그냥 서버를 좀먹는 괴물이 됐다고 하면 되려나.”

“무슨 뜻이죠?”

“흐음, 그냥 권력 맛을 좀 알아 버렸다고 생각하면 돼. 그거 있잖아. 호랑이 없는 동굴에 여우가 왕인 척하는 거. 매스컴도 몇 번 타더니 지들이 진짜 왕이라도 된 줄 알더라고.”

확실히 서버를 다 먹고 제멋대로 휘두르는 상태라면.

틀린 말은 아닐 지도.

“그런 의미에서 엿을 좀 먹여야지.”

“네, 그럼 준비할게요.”

모든 얼음 계곡 아이템들을 착용하고는 레이드가 진행되는 상황을 계속 지켜봤다.

그리고 재중이 형이 말한 대로 다른 서버에서 긁어모은 녀석들이 맞긴 맞는 듯 실력들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어느 서버를 가도 에이스 대접은 받겠네.

하나하나의 실력이 결코 낮지 않아.

이전의 팬텀 나이트 쪽보다 이쪽이 확실히 실력에 우위가 있었다.

한참 동안 지켜보다 재중이 형이 신호를 해주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접근할 때 조심하고.”

“네, 그럼 갑니다.”

【 은신! 】

그렇게 얼음 여왕의 뒤편으로 접근을 하는데 가까이 가자마자 바로 냉기가 내 움직임을 제지했다.

이건 꽤 어렵겠는데.

발을 내딛을 때마다 눈 밟는 소리가 천둥처럼 나는 듯해서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여기서는 기척을 최대한 줄여야…….

【 유령보! 】

바로 테르타로스의 내장된 유령보를 시전하자 눈에 띄게 몸이 내는 기척이 사라짐을 느껴졌다.

흐음.

이렇게까지 줄여 준다는 건가.

마치 소음 방지 필터를 온몸에 달고 있는 것 같은 딱 그런 느낌.

이 정도 스킬이면.

나도 눈치채기 힘들지도 모르겠는데.

그렇게 쭉 얼음 여왕의 뒤로 다가가는 순간.

갑자기 후방에 있던 유저들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디텍딩 스킬에 뭔가 걸렸어!!”

“누가 있다!”

“빨리 찾아내!”

솔직히 그동안 주변에 접근하는 유저들이 아무도 없어서 방심할 법도 한데.

그 사이에도 디텍팅 스킬을 철저하게 켜놓는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칫.

역시 재중이 형 말대로인가?

“어떤 새끼가 레이드를 방해해!”

“당장 흔적 찾아내!”

“절대 접근시키지 마라!”

“찾아서 바로 죽여!!”

그리고 바로 디텍딩 스킬이 추가로 몸을 훑자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아.

정말 쉽게 가는 법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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