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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34화 (824/1,404)

#834화 전쟁의 이유 (2)

던전을 통제하는 모습에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통행세라니.

무슨 중세 시대도 아니고.

뭐 예전에도 저런 짓을 한 길드들이 있긴 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할 줄은.

무엇보다 문제는 누구 하나 저런 행동에 제동을 거는 이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는 저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굉장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진짜 다른 곳도 다 이렇다는 거예요?”

내가 다시 물어보자 재중이 형이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모든 사냥터라고 보면 되겠지.”

“어이없네요.”

“그래, 매번 보는 나도 어이없는데 넌 더하겠지.”

만약 모든 사냥터가 이 지경이라면.

그건 이미 이 세계가 상당히 변질되어 버렸다는 뜻이었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생각 이상으로 세력이 큰 모양이네요.”

어지간한 세력으로는 이런 일을 벌이지도 못 해.

예전에 해원이 비슷한 일을 벌이긴 했는데 그때도 이렇게까지 심각하진 않았다.

몇몇 던전 정도를 통제하는 정도였지.

다른 세력들과 팽팽한 균형이 있었기에 대놓고 패악을 부리진 못했다.

자금을 엄청나게 쏟아부어서 만들어 낸 해원의 세력이 고작 그 정도였는데.

이 사태와 비교하면 해원은 애교에 불과할 정도인가.

재중이 형이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는데 말이야. 나중에는 굴복한 길드들이 붙어 버리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라고.”

아마 재중이 형도 그걸 그냥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그보다 적의 세력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다면.

아무리 우리 쪽의 세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커버할 수 있는 숫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숫자가 문제라는 건데.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세력을 좀 더 늘렸으면…….”

“시도를 안 해 본 건 아니지.”

“그런데 잘 안 됐어요?”

“쟤들이 생각보다 돈이 많더라고. 이쪽에 붙으려는 녀석들을 죄다 돈으로 매수하더라니까.”

“……우리 쪽에는 화련이 있짆아요.”

화련이라면 결코 자금에서 밀리지 않았을 텐데.

“아, 화련. 걔는 지금 우리 연합 쪽에 없어.”

“네?”

뜻밖의 말에 잠시 생각이 멈췄다.

설마 화련이 칼을 거꾸로 쥔 건가?

적들에게 매수됐다던…….

아니지.

돈으로는 화련을 움직이진 못할 테니까.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을 텐데.

재중이 형이 나를 지긋이 보더니 곧 피식 웃어 보였다.

“처음에야 같이 했는데 네가 계속 접속을 안 하니까 연합에 관심이 없어진 모양이더라. 그러다가 아예 이쪽엔 손을 떼 버렸어.”

“으음. 설마 저 하나 때문에…….”

“다들 그렇다고 예상만 하고 있지.”

“그럼, 화련은 지금 뭐 하고 있어요?”

“뭐 대충 저쪽하고 적당히 선을 긋고 중립을 유지하는 중이지.”

“저쪽에서도 화련은 못 건드나 보네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그게 쉽겠냐.”

“하긴 그렇겠네요.”

예전엔 우리니까 그렇게 화련을 밀어붙였던 거지.

그리고 화련 역시 프로 게이머들의 길드를 구축해 놓은 상태다.

어디 가서 실력으로 밀리지는 않을 터.

거기다 화련의 자금까지 들어가면 그보다 무서운 집단은 없었다.

만약 계속 화련이 붙어 있었더라고 한다면…….

지금처럼 밀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나중에 한번 연락해 봐야겠어요.”

“뭐 그건 알아서 하도록 하고. 그럼 여기 말고 다른 곳도 한번 가 볼까?”

“다른 곳이요?”

“어, 진짜 보여 주고 싶은 곳은 따로 있거든.”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이번엔 인벤에서 다른 물건을 하나 꺼내 들었다.

저건…….

망토인가?

“자, 이거 걸쳐.”

『 +3 하이딩 망토 / 방어력 40(34+6)

- 은신 시전 가능.

- 공격이나 피격 시 은신 해제.

- 강화 시 기척 감지 마법 방어 확률 추가.

- 강화 시 은신 유지 마력 소모 감소.

- 은신 시 크리티컬 대미지 100+150% 증가.

- 후방 공격 시 크리티컬 대미지 200+150% 증가.

- 크리티컬 시 은신 쿨타임 초기화. 』

재중이 형이 건네 준 망토 역시도 처음 보는 망토였다.

그것도 눈이 튀어나올 만큼 옵션이 좋은.

“하, 대체 이런 아이템들이 얼마나 늘어난 거예요?”

“네가 그만큼 자리를 오래 비웠단 뜻이지.”

망토가 방어력이 이 정도라니.

애초에 망토라는 건 그냥 후방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한 차례 걸러 주는 정도의 용도에 불과했다.

옵션을 보고 착용하는 그런 용도랄까.

하지만 이건 그 자체로도 이미 예전 경갑 수준 이상의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방어력만 좋아진 것뿐만 아니라 옵션도 너무 좋았다.

“이거 전에 하이딩 블레이드하고 비슷하네요?”

“어, 그런데 하이딩 블레이드는 대미지가 너무 약해서 유저들도 이젠 안 쓰는 편이야. 꼭 은신을 해야 한다면 쓰기야 하겠지만.”

“그보다 강한 무기가 많다는 뜻이죠?”

“그래, 거기다 이 망토는 손이 자유롭지. 덕분에 없어서 못 구하는 물건이 됐지.”

그 말에 바로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혹시 이것도 다른 길드에서 독점하고 있나요?”

“이해가 빠른데? 맞아. 이것도 겨우 구한 거다.”

“돈이 많이 들었겠어요.”

“뭐, 그 반지만큼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낮은 편이라서. 돈이 있으면 구하긴 하니까.”

“반지는 못 구한다?”

“어, 반지가 뭘 잡고 나온 물건인지 알면 깜짝 놀랄 거다.”

“뭔데요?”

“발록. 레벨 400대 네임드.”

“그걸 잡았어요?”

“어, 내가 최초로 잡긴 했는데 이젠 못 잡아.”

“왜 못 잡아요?”

“녀석이 오버돼서.”

오버?

그 말은 뭔가가 계속 발록에게 죽어 나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생각할 수 있는 건…….

“유저들이 어지간히 들이댄 모양이네요.”

“크큭, 그거 다시 잡아 보겠다고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혼을 불살랐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아니.

그보다 형은 대체 레벨 400대 네임드를 어떻게 잡은 거지?

“형은 용케 잡았네요?”

“난 속성에서 먹어 주니까.”

그러면서 들고 있던 마족의 무기인 베사노스를 들어 보였다.

“으음, 아무리 이걸 들고 있다고 해도…….”

마족의 무기가 강하다고 해도 무려 5개월 전에 얻은 무기였다.

단순히 이것만 가지고 있다고 레벨 400대가 넘는 네임드를 잡는다?

거의 불가능 아닌가?

물론 베사노스가 모든 화염을 흡수하는 능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일정 이상의 대미지가 들어오면 불가능할 텐데.

아니.

생각해 보면 재중이 형이 아무 준비 없이 발록에게 들이대진 않았을 테고.

“화염 관련 아이템들을 죄다 긁어모았지. 그 녀석을 잡으려고 말이야. 그리고 그게 내가 지금 다른 녀석들에게서 버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해.”

그러면서 입고 있던 망토를 옆으로 밀어내자 안쪽에 온통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갑옷이 드러났다.

화려하면서도 핏빛에 가까운 정말 새빨간 플레이트 갑옷이.

정말 보고만 있어도 타오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발록 풀 플레이트. 전 서버에 단 하나뿐인 녀석이지.”

발록을 잡고 나온 플레이트 갑옷이라.

이게 재중이 형의 아이디가 새빨갛게 변하고도 한 번도 죽지 않은 이유였던가.

“방어가 정말 높겠네요.”

“어, 상상을 초월하지. 특히 용암 지대에서는 왕이나 마찬가지야. 예전에 녀석들이 한 번 개떼처럼 쳐들어온 적이 있는데 아주 쓸어 버렸거든.”

“나중에 한 번 보여 주세요.”

“보면 깜짝 놀랄 거다.”

바로 하이딩 망토를 착용하자 재중이 형이 다시 내 팔을 잡았다.

“은신 먼저.”

“네.”

【 은신! 】

바로 은신을 시전하자 내 모습이 흐릿하게 변했다.

재중이 형 역시도 은신을 시전해 모습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지금부터 가는 곳은 조심해야 해. 혹시라도 들키면 바로 튀어야 하거든.”

“네. 숨소리도 죽일게요.”

“그럼 간다.”

다시 재중이 형과 텔레포트를 해 나타난 곳은 전의 동굴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주호> 여기는?

<불멸> 기다려 봐. 곧 움직인다.

일종의 거대한 사원과 같은 장소였는데 사방에 낯선 흐느낌이 들려오자 소름이 끼쳤다.

아마 여기도 사냥터이려나?

자세히 보니 무너져 있는 사원들의 건물 사이로 뭔가가 스르륵 하고 지나가면서 다시 귀곡성을 울렸다.

<주호> 유령이라도 나오는 건가요?

<불멸> 뭐, 비슷해. 잊혀진 고대의 템플. 레벨대는 대략 300대가 나오고.

<주호> 상당히 높은 사냥터네요.

레벨 300대면 당장 나와 150이나 차이가 났다.

다른 말로 난 아직 이곳에서 사냥을 못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시간이 오랜 지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불멸> 어, 현재 상위 유저들에게는 여기가 최적의 사냥터지. 아이템만 잘 갖추고 있으면 사냥하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거든. 경험치도 좋고. 아이템도 쓸만한 것들이 떨어져.

<주호> 인기 좋겠는데요?

<불멸> 그래서 여기는 확실히 통제되는 사냥터 중에 하나지. 특히 이 시간대는 말이야 더해.

잠시 시간을 재고 있던 재중이 형이 턱짓을 하자 그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때 사원의 입구로 수백에 달하는 유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뜰 때 다 됐지?”

“네, 5분 정도 남았습니다.”

“주변에 걸리적거리는 쓰레기들 싹 치우고.”

“알겠습니다.”

그러자 몇십 명의 유저들이 동시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는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려왔다.

“네임드 타임이니까 전부 자리 비워.”

“아, 진짜. 너무 하네. 돈 내고 들어왔잖아.”

“그래서 지금 해보자는 거냐?”

“아니, 그게 아니라…….”

“다음에 또 들어오기 싫으면 그냥 버티고 있고. 만에 하나 네임드 잡다가 니들 땜에 못 잡으면 그땐 알지? 너네들이 사냥하게 두는 것도 정말 큰마음 먹고 내주는 거야.”

몰려갔던 녀석들이 반강제로 협박을 하자 결국 사냥을 하던 유저들이 전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곤 물러난 유저들이 몰래 불만을 터트렸다.

“칫, 저 새끼들 여기가 아주 지들 땅인 줄 아나. 매번 이 지랄이야.”

“휴, 형님. 템플에서 사냥하려면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아놔, 사냥터가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더러워서 다른 곳으로 간다. 진짜.”

“어차피 다른 곳으로 가도 똑같아요. 상납해야 하는 건.”

“하, 어쩌다 로스트 스카이가 이 모양이 된 건지 모르겠네. 예전에는 정말 좋았는데 말이야.”

“그때는 그때죠.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진짜 여기서 나오는 아이템만 아니면……. 지들이 랭커면 다야?”

“더러워도 참으세요. 조만간 좋을 때가 올 겁니다.”

“아이고, 그 전에 접고 말지. 이거 말고 다른 게임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로스만큼 되는 게임이 없잖아요.”

“그러게. 어쩌다 저런 새끼들이 칼을 잡아서는……. 밖에서도 치이는데 여기서도 이러고 있으니.”

“말세죠 뭐. 저도 예전이 좋았네요.”

“뜯어 가는 게 적은 것도 아니고. 언제 한 번 밀어 버려?”

“그러다 큰일 나요. 전에 못 봤어요? 녀석들에게 대들다가 길드 몇 개가 순삭된 거.”

“하, 게임 정도는 빽 없이도 재밌게 할 줄 알았는데. 그지 같다 그치?”

이곳에서 사냥할 정도면 제법 레벨이 높은 유저들인데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불만만 토로할 뿐.

저들에게는 함부로 덤비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은신으로 숨어서 지켜보았고.

<주호> 전부 이렇다는 거예요?

<불멸> 그래, 어떠냐?

<주호> 생각보다 훨씬 개판이네요.

얼마 뒤 완전히 유저들을 뒤로 밀어놓자 템플 한가운데서 네임드가 형성되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유령처럼 흐릿한 형상의 군마를 타고 있는 한 기사의 모습을 하고서.

<주호> 저건?

<불멸> 팬텀 나이트. 이곳의 네임드지. 추정 레벨 300에서 350대. 이 망토가 떨어지는 녀석이기도 하고.

그렇게 자리를 잡은 길드 유저들이 자리를 계속 바꿔 가면서 팬텀 나이트의 주변을 둘러쌓았다.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듯 숙련된 움직임으로.

지금껏 계속 저걸 잡아 왔다는 거겠지.

그리고 그 모습을 보자 두 손이 근질거리며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네임드 팬텀 나이트라…….

분명 테르타로스가 몬스터를 먹는다고 했었지.

그럼 네임드도 먹을 수 있으려나?

<주호> 형, 어디 한번 깽판 좀 쳐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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