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33화 (823/1,404)

#833화 전쟁의 이유 (1)

“그거 여기로 옮겨. 아, 그건 저쪽으로. 야! 조심 안 해?! 그게 얼마짜린 줄 알고!”

이른 아침부터 유혜선 팀장이 DS사의 직원들과 함께 우리 집을 방문해 그들에게 분주히 지시를 하는 중이었다.

거실 한쪽에 수북하게 쌓인 수백 개의 상자들.

그리고 그 거대한 상자에는 모두 DS의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많네요.”

“네, 한 번에 옮길 수가 없어서 부품으로 나눠서 가져왔거든요.”

얼마 전에 유혜선 팀장이 새로 연구한 내 전용 커스텀 VRS의 마지막 세팅이 끝났으니 집으로 옮겨와야 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크기가 문제였다.

무지막지하게 큰.

기존의 VRS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크기다 보니 이걸 원래 살던 집의 어떤 장소에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좀 더 넓은 공간을 위해 이사를 해야 했다.

안 그러면 VRS를 설치조차 할 수 없을 테니.

유혜선 팀장이 VRS 설치를 위해 집안을 쓱 둘러보더니 내게 감탄하듯 말을 꺼냈다.

“여긴 충분히 넓네요.”

“네, 뭐. 돈을 좀 많이 썼거든요.”

이사를 한다고 꽤 돈을 많이 썼지.

부자들만 모여 산다는 동네에서도 가장 핫한 아파트로 이사를 했으니.

여기에 쓴 돈만 대략 70억.

일단 넓기도 넓은데 기본 시설이 장난이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꿈의 아파트 정도?

물론 더 비싼 곳도 있긴 했지만.

편의와 보안을 위해 이쪽을 택했다.

그동안 로스트 스카이를 하면서 벌어들인 돈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그때 경매에서 수백억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십억에 달하는 돈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돈을 단순히 로스트 스카이에서만 벌어들이는 것도 아니니까.

DS사가 VRS를 팔면 팔수록.

내게 일정 수익을 들어오게끔 계약이 맺어져 있었다.

이것만 해도 로스트 스카이에서 버는 돈보다 더 많을 지경이니.

아마 DS사가 망하지 않는 이상에야 평생 가만히 있기만 해도 돈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거기다 로스트 스카이 메인 모델이다 보니 거기서도 초상권으로 돈이 일정 수준 들어왔고.

내가 맡고 있는 몇 개의 광고 역시도 돈이 들어오긴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간 로스트 스카이에 접속을 못 하게 되면서 꽤 복잡한 상황이 되긴 했었다.

로스트 스카이에서 활약을 해 줘야 광고로써 효과를 볼 텐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으니.

계약 사항 불이행이라던가?

그런데 이건 DS사의 법무팀이 나서서 일을 깔끔하게 처리해 주었다.

“전에 광고 건은 감사해요.”

그러자 유혜선 팀장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당연히 해 드려야죠. 그리고 저희 쪽도 시끄럽게 되는 건 불편하니까요.”

유혜선 팀장 말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내 문제가 바깥으로 흘러 나가면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자기 선에서 알아서 다 처리를 해 버렸다는 것이다.

신경 쓸 겨를도 없게끔.

보통은 이런 상황이 되면 시끄러웠을 텐데.

아예 입을 막아 버린 모양.

덕분에 포털이나 여타 사이트에 내 이름은 전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사이 수백 개의 상자를 실어 나른 DS사의 직원들은 모든 부품들을 꺼내 놓고는 재조립에 들어갔다.

“안 도와줘도 되나요?”

“네, 전 마지막에 세팅만 하면 되거든요.”

얼마 뒤에 온전하게 VRS의 조립이 끝나자 이번엔 유혜선 팀장이 나서서 일일이 시스템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해가 질 무렵.

“다 됐어요.”

“정말 수고하셨어요.”

“음, 사용하는 데 조심할 점은 딱히 없어요. 전력도 안정적으로 확보해 놨으니까. 유사시에는 비상 전력이 가동하도록 아예 따로 발전 시설을 갖춰 놨어요. 이 아파트 전체가 정전이 되더라도 이 VRS는 돌아가요.”

“대단하네요.”

그밖에 몇 가지 사항을 알려 주고는 유혜선 팀장이 직원들을 데리고 철수했다.

“직통으로 제게 연락 가능하도록 해 놨으니까 일이 생기면 바로 알죠?”

“네, 전처럼 걱정하게는 안 할게요.”

“알면 됐어요.”

그렇게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휑한 집안이 눈에 들어왔다.

넓어도 너무 넓네…….

기존의 집은 당분간은 팔지 않고 놔두기로 했다.

아무래도 추억이 있는 집이라 그런지 쉽게 팔긴 힘들어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넓은 거실 한편에 새로 세팅이 된 VRS에 다가갔다.

방에 넣기는 너무 크니까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설치하긴 했는데.

그래도 뭐 넓어서 그런지 크게 거슬리거나 하진 않았다.

“잘 부탁한다, 노아.”

그러자 내 말에 응답하듯 VRS의 시스템 등이 반짝거렸다.

바깥에서도 쓸 수 있다더니 일단 잘 되네.

인공지능 노아가 있으면 내 상태가 어떻게 되든 바로 처리를 해주겠지.

덕분에 마음 편하게 먹고 VRS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한 번에 접속이 되면서 은하의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휴.

이젠 정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네.

< 로스트 스카이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 뇌파 확인.

> 주승호. 남성.

> 캐릭터명 주호. 레벨 155.

> 로딩 중...

“정상 접속했어요.”

접속하자마자 내 옆으로 노아가 빙글빙글 날아다녔다.

“어, 고마워. 다른 문제는?”

“문제없어요. 시스템 최적화가 이루어져서 상태가 좋아요.”

역시 유혜선 팀장.

일처리 하나는 확실했다.

“아직 접속 기록 안 남는 거지?”

“네, 원하시면 풀어 드릴게요.”

“아냐, 그대로 둬 봐.”

“알았어요.”

일단 상황을 봐야겠단 말이지.

그리고 접속하면 재중이 형이 알려 주기로 했었는데.

연락을 해 볼까.

<주호> 형, 접속했어요.

<불멸> 오, 이제 확실하게 되는 거냐?

<주호> 네, 노아도 별문제 없다네요.

<불멸> 노아?

<주호> 인공지능요.

<불멸> 아, RE-01?

<주호> 알아요?

<불멸> 뭐 실험 도와주면서 많이 봤지. 어디냐?

<주호> 음, 마지막 접속한 곳요. 타르 광산…… 어디더라.

<불멸> 오케이. 잠시만 기다려. 갈 테니까.

그렇게 재중이 형을 기다리는 동안 올라오는 전체 채팅창을 살펴봤다.

특별해 보이는 건 없는데…….

물론 유저들이 말하는 장소 중 내가 아는 지역이 하나도 안 나온다는 건 시간이 정말 많이 지났다는 증거겠지.

거기다 뭔가 아이템을 사고파는데 역시 모르는 아이템들만 보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기존의 아이템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혹시 너무 뒤처진 건 아닐까 하는 약간의 불안감.

심지어 유저들의 레벨대가 이미 내 레벨은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어디 사냥터에 몇 레벨 이상 구한다는 말에서 이미 250레벨은 기본으로 잡고 있으니.

최소 100레벨 차인가…….

차이가 나도 너무 나는데?

오 개월이라는 시간은 내 생각 이상으로 더 많은 차이를 만들어 놓았다.

“여! 브라더~!”

타르 광산이 환해지면서 저 멀리서 재중이 형이 걸어 들어왔다.

“금방 오네요? 가까운 데 있었나 봐요.”

“어? 아니. 요즘은 워프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그러면서 내게 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욕하려고 올리는 건 아닐 테고.

자세히 보자 손가락에 금색의 반지가 하나 끼워져 있었다.

흠.

처음 보는 건데.

새로 나온 아이템이려나.

“그건 뭐죠?”

“순간 이동 반지. 흐음, 비교하자면 예전에 페가수스 같은 거라고 보면 되려나?”

“좋네요.”

페가수스는 이동할 장소를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꽤 요긴하게 써먹기도 했고.

단점은 일일이 페가수스를 불러내야 했는데.

저렇게 반지 아이템이라면 굳이 탈것을 따로 불러낼 필요가 없겠지.

그런데 재중이 형의 손에 끼워져 있는 반지 숫자가 꽤 많아 보였다.

흐음.

슬롯이…….

곧장 시스템을 열어 확인하자 기존의 두 개와는 다르게 반지 슬롯만 무려 네 개나 열려 있었다.

“큭, 예전하고 다르지?”

“네. 언제 이렇게 바뀌었죠?”

“좀 됐지. 덕분에 악세 열풍이 불기도 했고.”

꼭 게임을 접었다가 다시 복귀하는 기분이라.

그때 재중이 형이 내게 반지를 빼서 휙 던져 주었다.

“이거 막 줘도 돼요?”

혹시 요즘은 악세가 막 넘쳐나는 거려나?

“5억짜리니까. 어디 가서 흘리지 말고. 나중에 다 받으러 간다.”

“하, 너무 비싸네요.”

악세 하나에 이런 가격이라니.

그런데 악세의 스펙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 +3 순간 이동 반지

- 올스탯 16(10+6)

- 위치 저장 4(1+3)

- 지정된 장소로 즉시 이동 가능. 』

뭐야?

이 미친 스펙은?

올스탯이 16?

반지 하나에?

거기다 악세가 강화도 된다고?

“형, 이거…….”

“알아, 좋지?”

“가격이 이해가 되는 스펙이네요.”

무기도 아닌 일개 악세 하나가 5억이나 하는 게 이해가 안 됐는데.

이런 스펙이라면 스탯으로만 이미 백여 개를 올릴 수 있었다.

수십 레벨을 커버할 수 있는 물건이기도 하고.

당장 다른 사람들보다 레벨이 부족해 스탯이 낮은 내게 이보다 좋은 악세는 없겠지.

“서버에 몇 개 없는 거야.”

“네, 이런 게 많으면 곤란하겠죠.”

이런 거 몇 개면 정말 마왕하고도 한 판 붙을 수 있겠는데?

“그래 봐야 레벨 커버해 주는 정도야. 더 좋은 악세도 많으니까.”

“이거보다 더 좋은 악세가 있어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어, 있긴 한데 지금은 다른 녀석들이 독식하고 있어서 못 구하지만.”

“독식요?”

“네임드를 잡아야 하는데 이것들이 아예 꽁꽁 싸매고 지들끼리 잡고 있거든.”

그런데 이상했다.

이 정도로 좋으면 다른 녀석들이 노리지 않나?

전쟁을 해서라도.

“다른 길드는 다 뭐하고요?”

“그래.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너한테 보여 줘야 할 게 있다.”

그러더니 품에서 뭔가의 스크롤을 내게 던져줬다.

“이건?”

“임시 아이디 변경서. 나처럼 빨간 녀석들은 마왕성에 들어가기 힘드니까.”

『 임시 아이디 변경서

- 원하는 아이디로 임시 변경.

- 1회용.

- 30분 동안 변경 후 자동 해제.

- 중복 사용 가능. 』

그러고 보니 재중이 형의 아이디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풀어질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얼마나 유저들을 죽이고 다닌 거지?

“꽤 험난했나 보네요.”

“어, 보이는 족족 죽여야 했으니까.”

그리고 저렇게 아이디가 빨갛다는 건.

정작 재중이 형은 한 번도 죽지 않았다는 걸 뜻했다.

역시…….

이 형 실력이 어디 가지 않지.

그렇게 아이디 변경서를 찢고는 다른 아이디를 만들자 재중이 형의 아이디가 하얗게 변했다.

“넌 아직 아이디 알려지면 안 되니까.”

그리고 나 역시도 아이디 변경서를 통해 아이디가 다른 걸로 변경되었다.

《 유저 네임 『 주호 』가 『 노아01 』 로 변경됩니다. 》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서 노아로 변경하려 했는데 이미 있어서 뒤에 01을 붙여 놓았다.

다행히 01까지 붙인 사람은 없는 모양이었고.

“큭. 그게 뭐냐.”

“대충 지었죠. 이상해요?”

“아니, 오히려 더 낫겠다. 초보처럼 보이게 하려면.”

“그나저나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네요.”

“요즘 워낙 말이 많아서. 그리고 네 생각 이상으로 개판이거든.”

그리고는 재중이 형이 내 팔을 잡고는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그렇게 시야가 사라졌다가 나타난 곳은 어딘가의 동굴의 외곽이었다.

왜 이런 곳에?

“여긴?”

동굴의 한쪽 입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뭐지?

사냥터인가?

무슨 유저들이 이렇게 많이?

“저기 보이지?”

“네, 사람들이 많네요.”

“다 뭐 하는 거 같아?”

“줄 서 있네요?”

“어, 그리고 동굴 입구를 봐봐.”

그렇게 동굴 입구를 보는데 굉장히 이상한 장면이 보였다.

“뭐죠? 저건?”

“통행세.”

“……네?”

“통행세를 못 내면 던전 안에 못 들어가.”

“아니 무슨…….”

“그리고 저런 녀석들이 여기만 있는 게 아니지.”

“설마 다른 사냥터도?”

“어, 쓸 만한 사냥터는 전부 통제해. 아님 아예 버려진 곳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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