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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25화 (815/1,404)
  • #825화 왕이 사라진 사이 (2)

    패턴 분석 불가능?

    “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으음, 조금은 비공식적인 이야기인데…… 게임사나 우리 쪽에서 유저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는 건 알고 있겠죠?”

    유혜선 팀장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나와 싸우고 있는 마신의 파편이 나오는 영상을 가리켰다.

    “이번에 당해 봐서 잘 알아요.”

    솔직히 이런 쪽으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굳이 신경 쓸 이유도 없었고.

    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기술을 쓰는 마신의 파편을 보고는 생각이 완전 달라졌다.

    “설마 저를 모델로 삼았을 줄은…….”

    그 말에는 유혜선 팀장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마 로스트 스카이 쪽은 승호 씨 외에도 상위 랭킹 유저들의 패턴을 대부분 분석했을 거예요.”

    나 말고도 전부?

    그러고 보니 중간에 재중이 형을 상대하는 것 같은 느낌도 살짝 들긴 했었다.

    뒤에는 주로 내 쪽의 패턴을 많이 썼지만.

    그게 의아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런 셈이었나.

    “그럼, 저게 그 결과물이라는 거죠?”

    “네. 제가 게임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리고 저건 일종의 실험일 걸요?”

    “실험요?”

    “아…… 제가 잘못 말했네요. 자격 시험요. 자기 자신을 이겨보라 이거잖아요.”

    “흐음. 그렇게 듣고 보니 말은 되긴 하는데.”

    “모습이 똑같은 것도 아마 그런 쪽에 기인한 일일 거예요. 설마 보스를 정말 승호 씨 얼굴로 내겠어요.”

    워낙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이라 그럴 수 있다는 말은 일단 묻어 두었다.

    “사실 이쪽 입장에서 유저들 패턴을 연구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그런데 그거 불법 아닌가요?”

    “으음, 그렇게 말하면 제가 할 말이 없긴 해요. 일단은 좀 독소 조항인 셈이에요. 게임사 약관에 아주 작게 있거든요.”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자세히 보진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 있긴 할 거다. 솔직히 게임 홈페이지에 가입할 때 그거 하나하나 다 뜯어서 다 읽어 보는 놈도 없을 테고.”

    그 말에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가입할 때 분명히 약관을 보기는 봤다.

    쭉 스크롤해서 제일 아래로 내려 버려서 그렇지.

    한숨을 쉬면서 유혜선 팀장에게 다시 물었다.

    “이제껏 문제 삼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어요?”

    “네, 솔직히 그 조항이 게임하는 데 문제 생기지는 않으니까요. 차라리 이벤트 템이나 게임 내 재화에 대한 내용이면 또 모를까, 보통은 문제 삼지 않아요.”

    그리고 유혜선 팀장이 이어서 하는 말은 꽤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

    “제가 아까 유저들의 패턴을 분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그 이유가 무엇일 것 같아요?”

    “NPC들의 전투 능력을 끌어올리는 건가요?”

    “음, 그것도 있기는 한데…… 단순히 그것만을 위해서 유저들의 패턴을 분석하지만은 않아요. 만약 제가 게임사 개발자라면 게임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선 그냥 몬스터들의 스탯을 높여 버리는 그만이잖아요. 엄청 강하게.”

    “강하게의 뜻이 그거라면 맞긴 하네요.”

    패턴이야 어찌되었든 몬스터의 스탯과 스킬을 강하게 만들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이를 테면 네임드가 쓰는 광역기 한 방에 죄다 죽어 나간다던가.

    “물론 그렇게 하면 아무도 로스트 스카이를 안 하겠죠?”

    유혜선 팀장 말대로 한 대 맞으면 죽어 버리는 게임을 누가 할까.

    이건 몬스터들의 파워를 올리는데도 어느 정도 적정선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아예 잡지도 못하는.

    괴물 같은 녀석들만 집어넣어 놓으면.

    그 게임은 그냥 망하는 거다.

    반대로 너무 쉬우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이려나.

    “그래서 몬스터들에게 유저들의 행동 패턴을 주입한다는 건가요?”

    “네, 그런 셈이에요. 적절한 밸런스 설정에, 유저들의 컨트롤로 극복이 가능한. 이상적인 게임 형태가 아닌가요? 본인 실력에 따라 게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유저들이 할 말이 없어지게 된다.

    순수하게 본인의 실력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게 된다면 말이지.

    뭐 중간에 아이템에 대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컨트롤 실력이 우선시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말은 된다.

    “아, 그리고 단순히. 그것만을 위해 한 대에 수백억씩 하는 슈퍼 컴퓨터를 동원하는 건 또 아니에요.”

    “그럼?”

    “NPC들의 행동 양식요. 얼마 전에 로스트 스카이 쪽에서 인공지능 전문 회사를 사들인 건 알고 계시죠? 아마 그 전후로 NPC 시스템이 많이 바뀌었을 텐데.”

    “네, 확실히 NPC들이 많이 달라지긴 했었어요.”

    일방적으로 퀘스트를 주고 정해진 멘트만 하던 NPC들이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개체들의 차이가 좀 심하긴 해도.

    상위의 NPC들은 그 하나가 완전히 독립된 인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전혀 다른 성격을 보여 줬었지.

    “전에 로스트 스카이의 팀장을 보셔서 알겠지만. 그쪽도 인력이 많이 모자랄 거예요. 단순히 설정된 NPC만 쓴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겠지만요. 인공지능이라는 게 들어가면. 결국은 전부 수작업이 되어야 해요. NPC들의 성격, 역사, 생활 같은 살아온 패턴 등을 전부요. 로스트 스카이에만 얼마나 많은 NPC들이 존재하는지 혹시 아세요?”

    “음, NPC들의 숫자가 적진 않죠.”

    모르긴 해도 하나의 제국만 해도 이미 셀 수도 없이 많은 NPC들이 살아간다.

    만나보지도 못한 NPC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NPC들의 히스토리를 전부 만들어 낸다?

    이건 당장 신이 와도 손이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유저들의 패턴 양식을 쓰는 겁니까?”

    내 물음에 유혜선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일일이 다 만들어 내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우니까요.”

    “그걸 도와주는 건 인공지능이겠네요.”

    “그래도 아직 불완전하기는 해요. 인공지능이라는 게 솔직히 정말 어려운 분야거든요. 사실 실생활에서는 문제가 많아서 적용하지도 못하죠. 문제 소지도 많고요.”

    “하지만 게임이니까 괜찮다?”

    “네, 인 게임은 누군가가 책임질 소지가 적어지죠. 그리고 꼭 이런 게임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에요. 인간의 손을 완전히 떠난 높은 수준의 자율주행 역시도 마찬가지예요. 게임 안에서 얼마든지 사고가 나도 상관없어요.”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겠네요.”

    “그곳에 투입될 자금 역시도요.”

    유혜선 팀장 말대로.

    설정해 놓은 NPC들의 언행에 문제가 생겨 누군가를 죽이거나 나라 하나를 무너뜨린다고 해도.

    결국은 게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었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그때 재중이 형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말을 꺼냈다.

    “확실히 인공지능을 실험해 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겠지.”

    “네, 꼭 자율주행 같은 게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인공지능이 필요한 부분은 굉장히 많아요. 그러다 보니 정부에서도 먼저 나서서 VRS 산업을 장려하는 중이고요. DS와 PV가 이렇게 클 수 있었던 것도 예전에 정부가 관련된 규제를 전부 풀어 줘서였어요.”

    “하긴. 그 사달이 났었는데도 이렇게 컸으니.”

    저건 예전에 있었던 그 사건인가.

    이전 시대의 구형 VRS에서 단체로 문제가 생겼던 시절의 이야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DS와 PV의 VRS 판매 점유율이 세계 1, 2위를 다투는 중이었다.

    “그럼 이게 얼마나 큰 사업인지는 알겠죠?”

    유혜선 팀장의 말에 재중이 형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변했다.

    “혹시 방산업체 쪽도 연관이 있는 건가?”

    방산업체?

    거긴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설마…….

    인공지능을 무기화라도 하겠다는……?

    “그건 제 입으로는 대답해 드릴 수 없다는 것만 말씀드릴게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유혜선 팀장이 말하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니까. 결국은 꽤나 큰 이득이 걸린 싸움이라는 거군.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내 쪽을 바라봤다.

    유혜선 팀장 역시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면서 표정을 굳혔다.

    “문제가 있더라도 묻고 가야 할 정도로요.”

    “지금 제 이야기를 하는 거군요.”

    “꼭 승호 씨만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VRS 산업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다는 거예요.”

    유혜선 팀장 말에 따르면 거의 국가 산업이나 마찬가지인 VRS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표정을 굳히 유혜선 팀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 간신히 눌러둔 VRS 안전성이 표면 위로 올라오겠죠. 그럼 다른 각국에서 우리 VRS를 견제하려고 할 거예요. 아니, 지금도 하고 있지만요.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물어뜯겠죠. PV는 둘째치고 다른 나라의 VRS 제조 회사들이 먼저 나서서요.”

    “거기다 단순히 VRS 판매량이 떨어지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겠네요.”

    “네, 지금 하시는 로스트 스카이 역시 도마 위에 오를 거예요. 유저들을 볼모로 실험을 한다고요.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겠지만.”

    “하아, 저 하나 쓰러진 것뿐인데…….”

    “그만큼 승호 씨는 상징적인 존재예요. 이 분야에서는요.”

    “결국 제가 쓰러졌던 게 소문이 나면 안 된다는 말이겠군요.”

    “네. 지금은요. 여기 DS의 병원에 와 있는 것도 그런 일의 일환이죠. 좀 불편해도 당분간은 참아 주셔야 해요.”

    결국 보안을 위해서는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문제였다.

    내 몸에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는 나조차도 잘 모르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혜선 팀장이 크게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는 점이려나.

    재중이 형이나 은하, 아라의 반응으로 봐서는 아주 죽을 뻔한 건 아닌 모양이고.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유혜선 팀장에게 속에 두었던 물음을 꺼냈다.

    “몸이 이래서 그런데…… 혹시 앞으로 VRS에 접속을 못 한다던가 하지는 않겠죠?”

    “으음, 그건 저도 장담할 수가 없어요. 검사 결과는 괜찮았지만…….”

    이어서 유혜선 팀장이 놀라운 말을 했다.

    “이번에 승호 씨 RTP가 기존의 기계로는 측정 불가능한 수준까지 올라갔었어요. 일단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는 있는데…….”

    난처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유혜선 팀장을 보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건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네.

    “지금 제 상태로 VRS에 접속하면 위험하다는 말인가요?”

    “꽤 높은 확률로요. 아니, 거의 그럴 거예요.”

    “그럼 이전처럼 기절할 수도 있다?”

    “제가 만약 의사라면 앞으로 접속 안 하시는 걸 권장해야겠죠.”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자 그분도 고개를 끄덕였다.

    “원인을 찾을 때까지는 안정을 찾으시는 게 맞습니다. 몸은 하나뿐이니까요.”

    저게 틀린 말이 아니라서 더 뼈아프네.

    “후우, 할 수 없죠.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일이라.”

    그런 날 보면서 유혜선 팀장이 말을 꺼냈다.

    “이번에 영상을 보면서 확인해 보니 아마도 원인은 VRS에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승호 씨의 RTP를 수용하려면 더 높은 수준의 VRS가 있어야 할 거예요.”

    “혹시…….”

    “네, 이미 다음 세대의 VRS를 개발 중에 있어요. 상당히 진척된 상태고요.”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네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않을게요. 저 이래 보여도 능력이 있거든요.”

    “네, 잘 알고 있죠.”

    유혜선 팀장은 VRS에 접속조차 하기 힘들던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사람이었다.

    휴.

    그럼 이번에도 믿어 볼 수밖에.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애써 모두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될 거야.

    하지만 이땐 전혀 몰랐다.

    그 기간이…….

    정말 오랜 기다림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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