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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24화 (814/1,404)

#824화 왕이 사라진 사이 (1)

예전에 유혜선 팀장이 당부를 한 적이 있었다.

가급적이면 최대치의 힘을 내지 말 것.

할 수 있더라도.

해보면 될 것 같아 보이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감각은 절대 개방하지 말아 달라고 구구절절 설명을 해줬었지.

아직 기존의 VRS가 내 감각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그럼.

굳이 유혜선 팀장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답은 뻔했다.

고개를 돌려 주변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저기 의사 선생님도 들어도 되는 이야기인가요?”

내 물음에 유혜선 팀장이 곧 고개를 끄덕였다.

“승호 씨 몸 상태를 저만큼 알고 있는 분이에요.”

흠.

생각해 보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거려나.

정확한 구조까지는 잘 몰라도 VRS라는 가상기계 자체가 신경과 감각을 연결해서 플레이하는 방식이었다.

그럼 기계나 기능적인 부분은 유혜선 팀장이 해결을 한다고 해도.

그 외 의학적인 지식은 상당 부분 자문을 받거나 직접 참여한 의사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의사도 그중 한 명인 모양이었고.

VRS를 사용하고 있는 유저에게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기면.

그걸 해결해야 하는 건 결국 이런 분들일 테지.

뭐.

이쯤 되면 비밀이랄 것도 없겠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재중이 형, 은하, 아라는 원래도 알고 있으니.

“그래서 지금 제 상태가 어떻죠?”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안정되어 있는 느낌보다는 꽤나 멍한 상태였다.

적어도 정상적인 컨디션은 아니야.

그냥 온몸의 감각 자체가 억지로 막혀 있는 딱 그런 느낌이랄까.

일부러 이렇게 조치를 해둔 건지.

아니면 정말 감각이 둔해진 상태인 건지.

확실히 알아야 했다.

내 물음에 유혜선 팀장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곧 대답을 해주었다.

“으음, 승호 씨의 몸 상태 자체가 아주 나빠진 건 아니에요. 아마 지금은 임시적으로 감각을 눌러놓은 상태라서 조금 멍할 수는 있을 거예요.”

“네, 확실히 멍한 기분이 드네요. 말소리도 울리는 것 같고요. 시야도 흐릿한 게 꿈속 같은 기분이에요.”

“조금만 참아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원래 상태로 끌어올릴게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전 또 완전히 어딘가가 고장 났나 해서요.”

옆에서 조마조마한 눈빛으로 듣고 있던 은하와 아라가 동시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걱정 많이 했나 보네.

내 전용 VRS의 모듈이 통째로 타 버렸는데 신체가 완전히 정상일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유혜선 팀장의 말을 들어보면 그래도 괜찮은 모양이었다.

“아마 VRS의 차단 시스템이 중간에 자체적으로 끊어 버리지 않았으면 꽤 위험했을 거예요.”

“그만큼 위험했다는 말이죠?”

“네, 단 몇 분만 더 어긋난 상태로 계속됐으면…….”

어긋났다라…….

역시 그때 느낌은 정상적인 범주가 아니었던 모양이네.

하긴.

내가 생각해도 그때의 그 감각은 뭔가 많이 이상했다.

어느 정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을 확실히 넘어간…….

아니.

그보다는 아예 그런 현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조차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유혜선 팀장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오려나?

“어떻게 된 거죠? VRS의 모듈이 타버릴 정도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가요?”

내 물음에 유혜선 팀장의 표정이 바로 굳어버렸다.

마치 기다리던 물음이 나왔다는 듯.

“으음, 결론부터 말해 드리자면…… 승호 씨의 RTP를 이제 기존의 VRS가 버티지를 못해요. 제가 승호 씨 전용 VRS를 살펴보니 과부하가 걸려서 자동으로 차단이 됐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는 바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답이기도 하고.

“역시 그런가요.”

“알고 있었어요?”

“뭐…… 그쪽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어서요. 그전에 있었던 일도 있고요.”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보니 역시 굳은 표정의 재중이 형이 내게 물었다.

“마신 퀘스트할 때 문제가 있었지?”

“네, 문제라면 문제였죠.”

쓰러지기 전에 우리 팀에게는 안에 날 닮은 녀석이 있었다는 정도만 간단하게 이야기했었다.

나를 똑같이 복사해 낸 녀석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런 녀석을 이기기 위해서는 나도 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나가서 따로 해볼 생각이었는데 그 와중에 내가 쓰러져 버렸으니까.

다들 원인을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려나.

일단 내가 겪은 건…….

말로 설명이 되는 현상이 아니었다.

찰나의 미래에 휘둘러질 검의 궤적을 느끼는 능력이라니.

정확히 말하면 검이 휘둘러질 수많은 경로 중에 하나가 감각적으로 느껴진다고 할까.

세상 어딜 가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었다.

물론 내 착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걸로 나를 닮은 환영을 이겨 냈으니.

“음,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까요.”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유혜선 팀장에게 물었다.

“혹시 제 마지막 플레이 영상 구해 주실 수 있나요?”

내 물음에 유혜선 팀장이 어디론가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나야, 승호 유저 플레이 영상 좀 딸 수 있을까?”

그런데 바로 상대 쪽에서 뭐라고 했는지 유혜선 팀장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뭐? 힘들어?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올 거야? 이거 터지면 죽는 거 우리 하나뿐이 아니라는 거 알 건데? 안정성 문제 수면 위로 올라오면 너나 나나 다 모가지야. 알아? 네가 판단을 못 하겠으면 너보다 윗선 연결해. 네가 못 하겠으면 아예 사장하고 담판 지을까?”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결국 결론이 낫는지 유혜선 팀장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응, 그래. 그거…… 지금 바로 내 메일로 쏴.”

누구와 전화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 유저 데이터는 함부로 빼낼 수가 없다고 알고 있었다.

“협박이 확실하시네요.”

“어머? 들렸어요? 음, 그런데 협박은 아니에요. 업무 협조랄까? 어차피 저쪽에서도 게임 구동에 VRS 시스템을 써야 하기 때문에 서로 공유해야 하는 부분이 많거든요. 개발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다 유혜선 팀장이 다 죽어 가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 잘못하면 둘 다 모가지라.”

“……안 짤리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로스트 스카이 쪽에서도 잘 알고 있나 보네요.”

“그쪽도 나름의 안전장치가 있으니까요. 강제로 로그아웃시킨다던가 하는. 경고도 들어갔을 거고요. 그리고 승호 씨는 요주 관찰 대상이라…… 바로 알았을 테죠.”

“역시 절 모니터링하는 겁니까?”

“음, 아마 인력이 부족해서 24시간 모니터링은 불가능해요. 플레이하는 유저가 한두 명도 아니니까요. 수만 명이 넘어가는데 유저 한 명, 한 명을 지켜보는 건…… 과로사로 죽기 딱 좋겠죠?”

“엄청 설득력 있네요.”

보통은 유저 한 명이 로그아웃했다고 이렇게 관심 가질 일은 아니겠지만.

마신 관련 퀘스트를 하다 보니 바로 알게 된 듯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플레이 데이터가 넘어왔는데 바로 영상을 띄우자 유혜선 팀장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똑같네요?”

“네, 심지어 플레이하는 스타일도 거의 비슷해요. 절 가져다 NPC로 만든 것처럼요.”

영상을 보던 재중이 형도 혀를 찼다.

“이거 악취미인데? 보스가 너라니.”

“……나중에 항의할까요?”

은하와 아라도 놀란 듯하면서 전부 영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완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영상을 보면 감탄했다.

“세상에. 적이 너무 빨라요. 대체 어떻게 피하는 거예요?”

은하의 말에 아라가 헬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있었으면 나 벌써 죽었어…….”

그렇게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공방이 영상 속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점의 플레이부터.

완전히 양상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마신의 파편이 날 밀어붙이던 것과 달리 내 쪽에서 오히려 마신의 파편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재중이 형도 놀란 듯 영상을 보면 외쳤다.

“하, 미친. 저게 가능하다고?”

역시.

재중이 형은 단순히 공방의 속도만 보는 게 아니었다.

플레이 속에서 변한 나의 움직임.

“보여요?”

“어, 저 말도 안 되는 걸 눈으로 보니까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싶다.”

그 말에 은하와 아라, 유혜선 팀장의 시선이 전부 재중이 형에게 옮겨갔다.

설명을 바라는 딱 그런 표정으로.

특히 유혜선 팀장은 더.

그런 셋을 보더니 재중이 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중간에 영상을 멈췄다가 다시 플레이해 구간을 계속 끊어 주었다.

“여기와 여기. 그리고 이 부분. 알겠어요?”

“……전혀 모르겠어요.”

유혜선 팀장뿐만 아니라 은하와 아라 역시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 이게 진짜 얼마나 엄청난 일인데……. 잘 봐요. 승호가 저 보스의 검을 피하는 이 순간요.”

아마 어지간한 유저들은 지금 이 영상을 봐도 전혀 모를 텐데.

재중이 형은 확실히 본 모양이었다.

내가 써 봤으니 제일 잘 안다.

거기다 확실히 느린 화면으로 보니 더 잘 알겠네.

그러자 유혜선 팀장이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았다.

“적이 공격하면 미리 균형을 잡고 피하거나 막잖아요. 그게 남들보다 좀 더 빠른 것 아닌가요?”

유혜선 팀장의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눈으로 보고 반응한 게 아니에요. 애초에 검이 궤적을 그리며 움직이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건 정상이 아니죠. 영상을 잘 보면 검이 채 내려치기도 전에 이미 승호의 몸 전체의 균형이 기웁니다. 마치 그곳으로 떨어지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적이 공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인다는 거죠?”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에요. 그리고 공격 시에는 더해요. 이미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승호의 검이 들어가 적이 오길 기다리는 거 보입니까?”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유혜선 팀장은 직접적으로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전투 쪽으로는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라의 경우는 완전히 달랐다.

재중이 형의 설명을 들으며 영상을 보는 그 순간 경악한 표정으로 완전히 애가 얼어 버렸다.

“말도 안 돼요. 저런 움직임은…… 절대 불가능해.”

그러면서 눈앞의 영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뭔가에 홀린 듯.

그런 아라에게 재중이 형이 물었다.

“따라할 수 있겠어?”

그러자 아라가 바로 고개를 저어 버렸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따라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래. 이건 알아도 못 하는 거야.”

“그럼 재중 오빠는요?”

“나?”

이건 솔직히 나도 궁금했다.

재중이 형이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

그러자 재중이 형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어떨 거 같아?”

“모르죠.”

그러더니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허공을 보면서 말했다.

“뭐 억지로 하면…… 최대한 비슷하게는 만들어 낼 순 있으려나?”

그런 이상한 말을 남기고는 재중이 형이 농담하듯 말을 이었다.

“큭, 너무 그렇게 안 봐도 돼. 당장은 나도 못 하니”

당장은……?

그때 로스트 스카이 쪽 사람에게 뭔가의 자료를 추가로 받은 유혜선 팀장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외쳤다.

“세상에…….”

“무슨 문제 있어요?”

“네, 와…… 이건 미쳤어요. 진짜.”

대체 뭐 때문에 그러지?

“우리도 그렇고. 로스트 스카이에서도 최신형의 분석 슈퍼 컴퓨터를 쓰거든요. 이거 한 대만 해도 수백억은 가볍게 넘어가요. 심지어 그걸 여러 대 연결해 써서 보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요.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아요?”

어떻게 나왔길래?

우리의 궁금한 시선에 유혜선 팀장이 깊고 크게 숨을 쉬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유저 패턴 분석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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