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818화 (808/1,404)

#818화 마신의 무구 (9)

드워프 왕의 해머.

한 종족의 왕의 무기이기 때문에 휘황찬란한 장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투박하고 밋밋하기 그지 없었다.

암청색 재질의 빛을 띄는 기묘하고 둔탁한 형상의 거대한 해머.

그것도 한 손 해머도 아닌 무려 양손 해머였다.

이걸로 작업을 해야 한다고?

무게 역시 엄청나게 무거워 정말 휘두를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고.

실전용 무기로 쓰기에는 그다지 좋진 않은데.

일단 겉으로 보이는 타격치만으로는 지금껏 나온 그 어떤 무기보다도 월등히 높은 수리를 보여 주었다.

심지어 15강의 강화.

르아 카르테의 강화치와 완전히 동일했다.

무게를 딛고 휘두를 수만 있다면.

최강의 스펙이기는 한데 말이지.

드워프 왕의 해머를 한 번 휘둘러 보고는 재중이 형에게 보여 주었더니 굉장히 흥미로운 눈빛을 보였다.

“호오, 이런 걸 가지고 있었단 말이야?”

“네. 어때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에게서 바로 반응이 왔다.

<불멸> 들고 나르지 말라는 말 취소다.

<주호> 아까는 장난치지 말라면서요?

<불멸> 그건 스펙을 보기 전의 이야기지.

확실히 재중이 형도 탐나나 본데.

하긴.

이 정도 스펙이면 누가 봐도 탐낼 만한 아이템이었다.

옵션은 못 본다고 하지만.

곧장 카르바할을 보면서 물었다.

“이거 휘두르기도 힘든데요?”

그 말에 카르바할이 다시 드워프 왕의 해머를 가져가더니 바로 가벼운 망치라도 되는 양 허공에서 붕붕 휘둘러 보였다.

그것도 한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참을 그렇게 풍차돌리듯 휘두르더니 다시 미소 지으며 내게 해머를 건네주었다.

잘못 봤나?

방금 좀 악마 같은 미소였는데……?

“무슨 문제라도?”

“하, 제가 잘못한 거군요.”

“흠, 자네가 그걸 못 휘두르는 게 이상하군. 그대 정도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휘두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러면서 내 머리 위의 뭔가를 바라보는 것 같은 눈빛을 보였다.

카르바할도 유저의 스펙을 볼 수 있는 거려나.

아니면 레벨?

그런데 지금 보면 아주 세세한 스탯까지는 볼 수 없는 듯했다.

만약 알았다면 저런 의문을 가지지는 않았을 테니.

사실 지금 내 스펙은 너무 한쪽으로 편중되어 있었다.

레벨만 따지면 최상위인 건 맞는데.

거의 민첩 올인이라.

민첩에 비해 힘이 엄청나게 모자란 건 사실이지.

그 모자란 힘을 그동안 방어구나 악세서리 같은 아이템의 옵션을 빌어 겨우 신체 행동이 밀리지 않는 필요치에 맞춰 뒀을 뿐이었다.

만약 다른 유저가 내 레벨이었다면 적어도 나보다는 힘이 높을 테니까.

저런 오해를 하는 것도 뭐…….

아마 평소 같았으면 이런 스펙 불균형은 전혀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저 무지막지한 무게의 드워프 왕의 해머를 내 손으로 휘둘러야 하는 상황이라.

힘이 절대적으로 모자란 상태에서는 이게 결코 쉽지 않는 일이었다.

한 번 휘두르는 데만 해도 이미 팔이 부들거리는데 말이지.

그렇다고 못 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당장 내가 아니면 누구도 이 작업을 대신해 줄 수 없었다.

“하아. 어떻게든 맞춰 봐야겠네요.”

일단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을 모두 꺼내 보았다.

솔직히 힘은 올 스탯 악세와 베히모스 플레이트 정도만으로 커버를 친 거라.

이미 아이템으로는 한계치까지 올려놓은 상태여서 그런지 딱히 더 힘을 올린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으음.

그나마 급격하게 힘을 올릴 만한 아이템이…….

그중 눈에 들어오는 건.

예전에 쓰던 오우거의 심장.

하지만 이건 그냥 근력을 +5 해 주는 아이템일 뿐이었다.

『 +0 오우거 하트 / 근력+5 / 지속성+20% 』

지금에 와서는 거의 쓰이지도 않는.

솔직히 다른 악세나 방어구에 붙은 근력 옵션이 이걸 훨씬 상회할 정도라.

어차피 심장이니 겹치진 않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지.

하지만 스탯 하나가 아쉬운 마당에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

이게 10강이 되면 또 다르니까.

『 10강 일반 강화석 』

심장을 강화할 수 있는 아이템.

예전에 퀘스트 보상으로 받아두었던 아이템인데.

굳이 아낄 필요는 없겠지.

《 주호 님이 【 +10 오우거 하트 】 인챈트에 성공했습니다! 》

『 +10 오우거 하트 / 근력+20 / 지속성+100% 』

【 오우거 하트! 】

곧장 베히모스의 심장에서 오우거의 하트로 변경해 힘은 다소 늘어나긴 했다.

하지만 여전히 드워프 왕의 해머는 내게 너무 무거운 느낌을 주었다.

하, 역시 이걸로는 택도 없나.

옆에서 구경하던 재중이 형이 내가 낑낑대는 모습을 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

“안 되냐?”

“네, 뭐 오우거 하트로도 답이 없어요.”

“하, 그렇다고 이제 와서 힘 스탯을 찍을 수도 없고 말이지.”

전에 아르곤 마왕에게서 피닉스의 알과 교환하며 아스티아의 무기와 함께 받은 아이템이 두 종류 더 있었다.

당장 쓸 일이 없어서 일단 넣어두긴 했지만.

그건 힘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아이템이라 말이지.

난감하게.

꼭 필요한 건 필요할 때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어렵다는 표정 가득하게 카르바할을 바라보자 카르바할이 곧장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힘든가?”

“네, 제겐 좀 많이 무겁네요.”

“흠. 그대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당장 이 작업은 나만 할 수 있으니.

눈앞의 최상의 재료를 두고도 요리를 못하는 카르바할의 심정은 뭐.

안 봐도 뻔했다.

드워프들이 다들 그렇다는데 그 정점에 있는 드워프의 왕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흠, 임시방편이라면.”

그러더니 갑자기 카르바할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들어 보였다.

뭐지?

“내가 마계의 재료들로 몇 가지를 만들어 보았는데 말이야. 한번 보겠나?”

그렇게 카르바할이 꺼내든 물건은 다름 아닌.

『 +0 블랙 싸이클롭스 벨트 / 방어력 25 / 근력 +20 』

이건 기존의 오우거 벨트를 확연히 뛰어넘는 스펙을 가진 아이템이었다.

하…….

이런 게 있으면 진작에 줄 것이지!

그리고 이게 알려지면 앞으로 유저들이 죽어가면서도 블랙 싸이클롭스를 미친 듯이 사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한 번 소문을 흘려 봐야겠어.

그럼 아주 블랙 싸이클롭스의 씨가 마를지도 모른다.

“구경만 하라고 보여 주신 건 아니죠?”

“허허, 그렇지.”

그러면서 내게 블랙 싸이클롭스 벨트를 탁 쥐어주었다.

곧장 허리에 착용해 보니 바로 근력이 20이나 올라갔고.

아까 착용한 오우거 하트와 합치면 무려 40의 근력이 한꺼번에 적용이 되었다.

기존의 근력이 80대인 걸 생각해 보면.

거의 내 힘의 절반 정도가 추가된 셈이니까.

힘만으로 따지면 당장은 다른 유저들에게도 밀리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드워프 왕의 해머를 들자 이번에는 꽤 수월하게 해머가 들어졌다.

아까 낑낑대면서 전혀 들어 올리지 못하던 상황과는 천지 차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거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두 손으로 들어야 겨우 휘두를 만하다고 할까.

그 순간 카르바할의 저 불룩 솟은 팔뚝을 바라보았다.

그럼 대체 이 무거운 걸 가볍게 한 손으로 들고 휘두르는 카르바할은 힘이 얼마나 된다는 말이야?

모르긴 해도 아마 내 두 배는 가볍게 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으음, 조금 더 어떻게 안 될까요?”

고작 휘두르는데 온 힘을 다 할 정도면.

이걸로 작업은 어림도 없지.

더 높은 힘이 필요해.

“흠, 그걸로도 부족한 건가?”

카르바할이 한숨을 쉬자 괜히 마음 한구석이 찔려왔다.

나도 잘 알고 있어.

힘이 약하다는 걸.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해서라도 카르바할에게 뭔가를 얻어내야 일이 진행이 된다.

잠시 고민을 하는 듯 하던 카르바할이 한참을 망설이더니 결국 팔에 차고 있던 묵색의 팔찌를 풀어내었다.

저 카르바할조차 망설일 정도의 물건이라고?

당연히 이런 반응은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뭔지 몰라도.

저건 대박 냄새가 진동하는 기분이 들어.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무려 양쪽에 달린 두 개.

팔찌가 한 쌍이라고 생각해보면.

효과도 두 배겠지.

“흠, 이건. 나중에 돌려줘야 한다.”

드워프 왕의 해머는 당연히 돌려줘야 하는 물건이라 말을 안 했겠지만.

블랙 싸이클롭스의 벨트와 달리 이 한 쌍의 팔찌는 돌려달라는 말을 따로 했다.

그럼 그만큼 드워프 왕의 해머만큼 값어치가 있다는 뜻일 테지.

“잘 쓰고 돌려드리죠.”

드워프 왕과의 호감도가 극에 달하지 않았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받아든 한 쌍의 팔찌.

『 고대 드워프 왕의 환 (유일) / 근력 +10

/ 마력 흡수 시 근력 추가 상승 』

그리고 이것 역시도 근력을 올려 주는 아이템이었다.

악세라 그런지 딱히 강화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눈에 띄는 건 역시 아이템의 이름.

“고대 드워프 왕의 물건이네요?”

“그렇지.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이라네.”

재중이 형에게도 옵션을 보여 주니 재중이 형의 눈빛이 반짝였다.

<불멸> 이거 예전 오우거 하트와 비슷한데? 마력으로 힘을 올리잖아.

<주호> 네, 하지만 흡수한다는 게 좀 다르긴 해요.

기본 스펙만 보면 그저 그런 팔찌이긴 했다.

올 스탯을 6씩 올려주는 가르시아 제국 공작 악세와 비교하면 좀 밀리려나?

하지만.

저 옵션 속에 숨겨진 능력.

저게 더 중요해.

여러 옵션들을 조금씩 올려 주는 것보다.

근력이라는 최우선 스탯을 올릴 수 있으니.

곧장 두 개의 팔찌를 양쪽에 착용하자 바로 근력이 20 더 올라갔다.

이거 벌써 60이나 올라간 건가.

잘하면 민첩 스탯을 따라잡을 것 같기도 한데.

물론 나중에 돌려줘야 하겠지만.

바로 카르바할에게 물었다.

“사용은 어떻게 해요?”

“환에 마력이 들어간 물건을 흡수시키면 사용할 수 있다.”

“뭐 그건 어렵지 않죠.”

사실 어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

주변에 널린 게 타르석인데.

그렇게 그냥 굴러다니는 작은 타르석 하나를 들어 올려 환에 가져다 대자 바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타르석이 힘을 잃으면서 그대로 검은 기운이 고대 드워프 왕의 환에 흡수가 되었고.

콰드득.

순간 손아귀의 힘이 넘쳐나 드워프 왕의 해머의 손잡이를 쥐어짜듯 강하게 움켜질 수 있었다.

이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정말 어마어마한 힘의 폭주랄까.

“……힘이 넘치네요.”

“흠흠, 좋은 물건이지.”

이걸 좋은 물건이라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과한데?

지금 상태에선 심지어 한 손으로도 드워프 왕의 해머가 들렸다.

후.

지금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곧장 용광로에서 잔뜩 달궈진 마신의 파편을 꺼내들어 그대로 드워프 왕의 해머로 강하게 내려쳤다.

카아아앙!!

그 순간 엄청난 탄력과 함께 마신의 파편의 표면이 눌려지면서 겨우 제련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래.

진짜 쇠질은 이 맛이지!

카아아앙!!

카아아앙!!

쇠질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자 카르바할도 흡족한 눈빛을 보냈다.

그와 함께 마신의 파편에서 강렬한 검은 기운이 올라와 드워프 왕의 해머와 부딪혀갔다.

마치 반항이라도 하듯.

아주 거세게.

“최대한 강하게! 그 정도로는 마신의 파편의 기운을 누를 수 없어!”

“네! 갑니다!”

카아아앙!!

카아아앙!!

그래.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곧 내가 널 내 것으로 만들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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