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화 마신의 무구 (5)
누가 들으면 질린다는 말을 할 정도로 무려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타르 광산에 눌러앉아 주야장천 복사와 흡수만 반복했다.
그렇게 웨폰 카피를 마스터한 순간 힘껏 기지개를 피고 일어나자 정말 허리가 아픈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으으……! 허리가 부서질 것 같아.”
“아파?”
그때 옆으로 날아온 금속의 정령이 내 주변을 분주하게 날아다니며 내 걱정을 했다.
이것도 정말 큰 발전이지.
일주일 동안 정말 많은 복사 아이템들을 금속의 정령에게 먹였으니까.
뭐 정확하게는 금속의 정령이 그냥 마음대로 주워 먹었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아무튼 덕분에 금속의 정령과의 호감도 역시 꽤 많이 올라간 상태였다.
생각하기에 아마 조금만 더 오르면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
무작정 복사된 아이템을 먹이면 더 클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금속의 정령과는 호감도가 오르진 않았다.
이건 금속의 정령이 한 말에서도 유추해 볼 수 있는 게 분명히…….
질린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 군만두만 먹고산 누군가가 떠올랐다.
사람도 그럴지언데…….
정령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
“나중에 다른 것도 좀 먹여 줄게.”
“정말?”
“어, 나도 여긴 이제 좀 질린다.”
일주인간 격하게 정든(?) 타르 광산 내부를 바라보았다.
먹고 자는 것 빼고 전부 여기서 앉아 지냈더니 꼭 감옥 같은 기분이야.
물론 시간을 들여가면서 천천히 진행할 수도 있긴 했지만.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동안 사장님이 비공정을 타고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하르석을 모아서 가져다 주셨다.
덕분에 이곳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었고.
확실히 시간 단축은 되었다.
일단 주변 바닥에 널려있는 복사된 아이템들을 전부 회수하고, 주변에 마구잡이로 나뒹구는 하르석과 타르석도 마찬가지로 정리했다.
이걸 누가 보면 곤란해.
혹시라도 뭔가의 경로를 통해 타르 광산에 진입할 확률로 아예 배제할 순 없으니까.
그렇게 완전히 타르 광산을 비운 다음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여기 끝났어요.
<불멸> 드디어 됐나? 정말 그 스킬도 징글징글하네.
<주호> 좀 그렇죠.
<불멸> 이제 여기로 넘어올 거냐?
<주호> 네, 저도 움직여야죠. 바깥은 어때요?
<불멸> 겉으로 보기엔 똑같아.
<주호> 그래요?
<불멸> 뭐 제대로 파고들면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만. 아무튼 넘어와. 오면 다시 이야기하자.
무려 일주일.
이전에 르아 카르테를 완성시키기 위해 드워프 왕국 지하에 묶여 있을 때만큼이나 지난한 시간들이었다.
그나마 금속의 정령이 계속 옆에서 떠들어줘서 버틸 만했지.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하겠어.
흐음.
생각해 보니 이미 두 번이나 한 건가.
내 인내심도 생각보다 꽤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베르테니아 마왕성으로 돌아가는 일은 타르 광산에 올 때보다는 훨씬 쉬웠다.
어차피 따로 가지고 갈 것도 없어서 몸만 귀환하면 되니까.
귀환을 써 베르테니아 마왕성 광장으로 오자 이전보다 훨씬 분주하게 움직이는 유저들이 눈에 들어왔다.
광장 곳곳에 자리를 깔고 있는 유저들도 많았고.
일주일새 분위기가 정말 많이 바뀌었는데?
귀환을 하고 다시 내 옆에 나타난 금속의 정령이 주변을 둘러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많다아…….”
“전보다 많지?”
“응, 바글바글해.”
처음 우리가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개방했을 때는 상위 유저들 위주로 먼저 넘어왔었는데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상황이 많이 변한 듯 했다.
이 정도면 흡사 제국의 풍경과도 맞먹을 만하네.
슬쩍 몇몇의 판매물품을 보니 주변 사냥터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들이 아주 비싼 값에 올라와 있었다.
『 블랙 싸이클롭스 가죽 』
『 마계 미노타우르스 뿔 』
『 저주받은 와이번 부리 』
『 암흑 드레이크 날개 』
.
.
블랙 싸이클롭스랑 마계 미노타우르스…….
유저들이 벌써 이 녀석들을 잡을 정도인가?
와이번도 그렇고.
새로운 드레이크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내 생각보다 유저들의 진행이 빨라.
결코 쉽게 잡을 순 없을 텐데 유저들을 얼마나 갈아 넣은 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화석 종류가 정말 많이 올라와 있었다.
혹시나 싶어 가장 가까이 좌판을 열고 있는 남성 유저에게 물어보았다.
“강화석을 많이 파시네요?”
“아, 사실려고요?”
“네, 가격만 맞으면요. 그런데 생각보다 비싸네요? 예전에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에이, 요즘은 없어서 못 팝니다. 유저들이 한참 아이템을 바꿔 댈 때라서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새로운 사냥터가 나오면 강화석의 가격은 한 번씩 폭등하지 않던가.
새 아이템을 맞추려 할 때 당연히 강화석도 따라가니.
“다음에 다시 오죠.”
“에잉, 안 살려면 말 시키지 마슈.”
상인의 기본은 친절이라는데.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네.
뭐 어쨌거나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중요한 건 확실히 유저들이 활발히 사냥을 하고 있다는 거려나.
당장 시장의 물건 상황만 봐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럼 이쪽도 꽤 괜찮아졌겠는데?
어디 보자.
곧장 상태창을 띄워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재정 부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타나는 상태창.
『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운영 적자 -570% 』
호오?
이렇게 올랐다고?
분명 이전에 마왕성의 재정 상태는 극악인 상태였다.
아마 그때가 마이너스 1200%였던가?
돈이 생기는 족족 이자로 나가거나 다른 곳에서 줄줄 세어나가는 구조였는데 말이지.
그게 무려 절반 이상이나 개선이 되었다.
이것만 봐도 유저들이 베르테니아 마왕성 주변에서 사냥을 하며 얼마나 많은 돈을 세금으로 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당장 여기서 길드 건물 하나만 구해도 그게 다 세금이니까.
물약을 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마왕 벨라가 이걸 보면 입이 찢어지겠네.
그렇게 마왕성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저 멀리서 마왕 벨라가 달려오더니 바로 내 앞에 와서는 급격히 멈춰 섰다.
그것도 엄청나게 상기된 표정으로.
내가 온 게 이렇게까지 뛰쳐나올 일이던가?
보통은 내가 와도 마왕 벨라는 그냥 정원에 있던가 집무실에 있는 게 고작이었다.
“그동안 어디 갔었어!”
“아, 음…… 마계 상인들하고 일이 좀 있어서요... 없는 동안 무슨 일 있었습니까?”
혹시 재정이 좋아진 것 때문이려나?
뭐 확실히 마왕 벨라가 요즘 돈에 쪼들렸기는 했지.
아마 본인이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재정에 제일 놀라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런 내 생각과는 달리 마왕 벨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르곤! 그 자식이 휴전하재!”
“네?”
지금 들은 휴전이 내가 생각하는 그 휴전이 맞나?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다가 순간 스치는 것들이 있었다.
아니다.
분명히 전에 내가 해놓은 일들이…….
아마도 이건 나비효과이려나?
“왜 그러는지는 아세요? 너무 뜬금없네요.”
일단 상황은 대충 알겠는데.
다 알면서 모르는 척 운을 띄웠더니 마왕 벨라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아르곤하고 다른 마왕성하고 전쟁이 났어.”
“네?”
당연히 처음 듣는다는 듯 꽤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속으로는 전혀 아니었지만.
호오라.
그렇게까지 해 준다고?
운영자 가른이 일을 아주 제대로 한 모양인데?
아니.
일을 잘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불구덩이에 기름을 들이부운 모양이었다.
“어디 마왕하고요?”
“으응, 올펠하고 붙었어.”
“역시 올펠인가요.”
“……뭐야? 알고 있어?”
이런 실수를.
딴생각을 하다 무심코 튀어나간 말에 당황했지만 바로 담담한 표정으로 고치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아, 그게 마계 경매장 운영자 가른에게 들은 게 있어서요. 올펠 마왕이 요즘 아르곤 마왕하고 사이가 안 좋다고.”
“요즘이 아니라 걔들 계속 안 좋았었어. 거의 원수 수준인데.”
대충 운영자 가른에게 들은 것과 비슷하네.
그런데 약간의 의문이 생겼다.
“그럼 애초에 마왕 올펠과 동맹을 맺었으면 되는 일 아닌가요?”
적의 적은 아군 아니던가.
마왕 올펠과 붙어 버리면 아르곤 마왕이 쉽게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넘보지 못했을 터.
하지만 마왕 벨라는 곧장 고개를 저어보였다.
“자기 밑으로 들어오면 도와주겠다는데?”
“……그건 확실히 좀 그렇네요.”
하긴 생각해 보면 딱히 마왕 올펠이 마왕 벨라를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기는 해도.
그때 당시의 마왕 벨라의 세력은 크게 도움이 안 됐을 테니.
그냥 치고받다가 마왕 아르곤의 세력이나 깎아 놓길 기대했을 수도 있고.
그럼 더 손쉽게 적을 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꼭 그럴 필요가 있나?
굳이 마왕 올펠이 싸움에 끼어들 이유도 없지.
이곳 베르테니아 마왕성은 먹을 게 하나도 없었으니 뭐.
계륵 같은 존재였는데 굳이…….
물론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이전과는 비교하는 것조차 실례일 정도로.
그렇다는 건.
“혹시 마왕 올펠이 동맹을 제안하진 않았어요?”
“어……? 그것도 알아?”
역시 그런가?
나 같아도 지금의 베르테니아 마왕성의 세력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전에야 동맹의 자격도 안 되었겠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
동등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발 아래 깔고 들어갈 수준은 이미 넘어섰다.
“고민이 많겠네요.”
“으응. 빨리 답을 달래.”
마왕 올펠 이 녀석.
생각보다 성격이 급하네.
“이번에도 밑으로 들어오라는 말은 아니겠죠?”
“응, 그건 아니었어. 아르곤을 치는데 도와주면 앞으로 베르테니아 마왕성은 건들지 않고 동맹으로 유지해준다나. 대신 빨리 병력을 만들어서 공격하래.”
흐음.
솔직히 말이 동맹이지.
역시 소모품 역할을 하라는 건가?
자신은 뒤에 나서고 우리를 방패막이 삼을 생각으로 보였다.
이건 잘못하다가 정말 자원만 갉아 먹히고 팽 당할 수도 있겠는데?
“어떻게 해야 해?”
두 눈을 초롱하게 만들어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면 이때까지 이걸 들으려고 기다렸던 것 같기도 하네.
호감도가 확실히 무섭긴 하다.
아마 이전이었으면 그냥 혼자 알아서 결정했을 텐데 말이지.
이렇게 되면 내가 대답을 잘 해야 해.
마왕 올펠에게 붙느냐.
아님 중립도 괜찮고.
그리고 이건 완전히 논외이긴 해도.
마왕 아르곤에게 붙어 버리는 수도 존재했다.
일단 빠르게 마왕 아르곤과의 전쟁을 종식시킨 건 좋았는데 마왕 올펠이 문제네.
괜히 가만히 있는 이쪽을 걸고넘어지고 있으니…….
“그건 제가 알아서 해볼게요. 대답을 최대한 미루세요.”
“응, 알았어.”
아무래도 재중이 형과 따로 이야기해 봐야겠어.
그렇게 마왕 벨라와 떨어진 뒤 곧장 마왕성 지하 시설로 들어섰다.
앞으로 마왕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될지도 몰라.
그 전에 최대한 힘을 비축해야 해.
누가 와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과 맞먹을 수 있을 수준의 힘이 필요했다.
고개를 들어 제단의 마법진 위를 바라보았다.
“결국은 이것뿐이겠지.”
마신의 파편.
이제 널 가져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