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화 마신의 무구 (2)
혹시나 마신의 파편을 지하 제단에서 꺼낸 일을 마왕 벨라가 알까 염려했지만.
여전히 마왕 벨라는 이 사실을 모르는 듯 자기 할 일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행인가.
알면서도 모른 척해 줄 리는 없을 테니.
일단은 모르고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딱히 마왕 벨라에게 경고가 울린다거나 하진 않나 봐요.”
“의외로 너무 허술한데?”
그때 금속의 정령이 허리에 손을 척 얹고는 우리 둘에게 자랑하듯 크게 말했다.
“흥! 내가 잘해서거든?!”
뭘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원래는 마신의 파편을 건들면 경고가 간다는 뜻이려나?
그게 아니라면 금속의 정령이 저렇게 자랑하지는 않을 터.
“이거 참, 금속의 정령에게 감사해야겠는데?”
“당연하지!”
금속의 정령 덕분에 일이 꽤 수월하게 풀려 나갔다.
“고맙다.”
그렇게 고맙다는 말을 하자마자 시스템 메시지가 바로 울렸다.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
응?
단순히 고맙다는 말로도 호감도가 오르는 건가?
그냥 겉으로 표정만 보기에는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진 않은데?
겉과 속이 영 다른 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일단 길드 건물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이런 일을 마왕 벨라가 있는 마왕성 내부에서 하기에는 좀 그러니까.
일단은 모른다고는 하지만.
혹시나 문제가 생길 지도 모르는 일이다.
최강의 길드 건물과 달리 신화의 길드 건물에는 평소 우리만 사용해서 그런지 딱히 누군가가 대기하고 있지는 않았다.
챠밍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지하로 내려간 동안 다시 사냥터로 나간 모양이었고.
다른 유저들이 열심히 따라오는 마당에 계속 사냥을 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가득이나 베르테니아 마왕성을 개방해 버려서 격차가 꽤 줄어든 지금은 더 그렇지.
한꺼번에 돈을 확 벌기 위해 개방하기는 했는데 뒤가 영 찜찜하네.
“형은 어떻게 할 거예요?”
“음, 일단은 사냥하러 가야겠지. 그냥 여기서 시간을 죽일 순 없으니까. 요즘 사냥을 못 했더니 레벨이 상당히 정체됐어.”
“네, 그럼 그렇게 해요.”
재중이 형 역시도 나와 함께 마계 경매장을 왔다 갔다 한다고 시간을 많이 보냈었다.
거기다 두 곳 사이에 거리가 가까운 것도 아니니.
재중이 형이 길드 건물을 나가고 난 뒤.
“후우, 그럼 시작해 볼까.”
이건 아마도 꽤 지루하고도 먼 싸움이 될 터.
사실 그동안 그렇게 많은 아이템들을 복사했음에도 이제 겨우 랭크가 5였다.
다른 스킬들에 비해 숙련도가 미치도록 안 올라가는…….
아니.
그보다는 그냥 한 번 쓸 때마다 아주 적은 경험치밖에 안 올라간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일반 공격 스킬들이나 회복 스킬들과는 완전 달랐다.
보통은 이렇게까지 안 올라가지는 않는데.
거기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정말 숙련도가 정체되어 있었다.
웨폰 카피가 다른 스킬들과 달리 특수한 스킬이라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
다른 스킬이 한 번 쓸 때 100이 올라간다고 치면 이 스킬은 겨우 2나 3 정도 오른다고 해야 하나?
그것도 처음에야 그랬지.
지금은 그 정도도 오르지 않고 1이나 혹은 안 오르는 일도 빈번했다.
아마 예상하기에 소수점 단위로 책정이 되는 것 같은데.
이런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그냥 스킬 자체가 특이해서 그렇겠구나 생각했었다.
당연히 이 스킬의 랭크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는 않았고.
어차피 지금까지는 아이템 복사가 되지 않는 상황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힘들게 랭크를 올리려고 노력할 이유 역시 없었다.
하지만 이젠 이 성장 면에서 극악인 스킬 랭크를 어떻게든 올려야 했다.
“벌써부터 깜깜하네.”
일단 유저들은 이 스킬 랭크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가령 예를 들어 회복량을 높이고 싶다면 그냥 힐을 많이 쓰면 된다.
스킬 랭크가 올라가면서 알아서 힐량을 늘려 주니.
반대로 공격 스킬 중 주력으로 쓰는 스킬이 있으면 그냥 그걸 많이 쓰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그냥 스킬만 열심히 써서 일단 스킬을 강하게 하는 유저들도 있긴 했다.
주력 스킬을 높여 놓으면 싸울 때 좀 더 수월해지니까.
싸우면서 스킬 랭크를 올리는 게 가장 이상적이긴 하지만.
매번 원하는 스킬만 쓸 수는 없는 노릇이라.
싸우다 보면 상황에 따라 여러 스킬을 돌려 써야 하니 딱 하나만 원하는 대로 올리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거기다 이 모든 스킬들을 다 한꺼번에 많이 올릴 수는 없었다.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마력의 양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이런 점에서 보면 마력이 높은 쪽이 조금 더 스킬을 키우기에는 장점이 있었다.
남들보다 한 번이라도 더 많은 스킬을 쓸 수 있으니.
다만 마력에 너무 많은 스탯을 주면 반대로 다른 스탯이 줄어드니 이쪽도 어떻게 보면 선택사항이었고.
스탯도 잘 배분해야 하고.
스킬 역시도 선택해서 잘 키워야 했다.
이게 딱히 직업이 없음에도 다들 한쪽으로 특화되어 갈라지는 가장 큰 이유였다.
딱 하나 예외는.
무기의 옵션에 달려 있는 스킬들.
이건 어떻게 해도 제일 낮은 랭크의 스킬로밖에는 못 쓰니까.
그래서 본인이 직접 익힌 스킬 쪽을 더 선호하는 편이기도 했다.
가득이나 부족한 마력을 굳이 성장하지 않는 스킬로 쓸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 스킬이 정말 강력하다면.
어쩔 수 없이 쓰는 편이고.
스킬 성장 면에서는 그렇게 좋은 평가는 받을 수 없겠지만.
이렇게 스킬을 키울 수 있는 게 한정되어 있는 환경에서.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유리한 점이 있다면…….
르아 카르테.
이 미친 무기가 남들을 상회하는 마력 회복을 가능하게 만들어 줬었다.
크리티컬을 터트려서 마력 흡수를 늘려 보다 많은 스킬들을 남발하게 만들어 주는.
덕분에 내 스킬 랭크는 남들보다 대부분 높은 상태였다.
굳이 스킬 랭크에 신경 쓰지 않더라도.
이미 사용 횟수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으니까.
그런 내가 가장 많이 사용했음에도.
아직도 거지 같은 랭크를 자랑하는 이 스킬.
웨폰 카피.
정말 널 어쩌면 좋겠니.
일단 가만히 앉아서 르아 카르테와 다른 네임드 템들을 꺼내놓고 아이템들을 복사하기 시작했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랭크가 올라가면 보통 스킬 위력이 어떻게든 좋아지고.
스킬에 들어가는 마력 양이 줄어들기도 한다.
혹은 스킬의 범위가 늘어난다던가.
스킬의 사용 쿨타임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고.
이 웨폰 카피는 일단은 마력 소비가 줄어드는 효과밖에 없어 의아했는데…….
그 효과가 랭크에 따른 복사할 수 있는 무기 단계의 차별화라면 뭐.
할 말이 없네.
죽자고 열심히 올릴 수밖에.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그렇게 계속 내 앞에 새로운 복사템들이 후두둑 떨어지자 처음에는 신기한 듯 쳐다보던 금속의 정령도 어느 순간부터는 관심이 없어졌는지 내 주변을 빙빙 날아다니기만 했다.
“심심해에…….”
“심심하면 좀 도와주던가.”
“어떻게?”
“…….”
음.
할 말이 없네.
일단 웨폰 카피 자체는 누군가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롯이 혼자서 해야 하는 일.
금속의 정령이 마력이라도 보조해 주면 또 모를까.
하지만 아무리 봐도 금속의 정령이 마력을 보조해 주는 능력은 없어 보였다.
“혹시 남아도는 마력 없어?”
내 물음에 금속의 정령이 잠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좌우로 붕붕 흔들었다.
“하아, 남는 게 없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흥, 지금 여기 나와 있는 것도 다 마력이란 말이야!”
이건 기대를 버려야 하나.
애초에 금속의 정령에게 마력까지 바라는 건 좀 무리이기도 했고.
“그러면 저거라도 좀 옆으로 옮겨줘.”
그 무거워 보이던 마신의 파편까지 잘 옮기는 걸 보면.
이런 복사 무기 역시도 잘 옮길 수 있을 터.
심심해하는 김에 이런 거라도 하면 좀 덜 투덜거리려나 싶어 말했는데 금속의 정령의 의외의 말을 했다.
“필요 없으면 이거 나 먹어도 돼?”
“응?”
무슨 소리지?
복사 템을 먹는다고?
그 순간 머리에 확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금속 때문에?”
“응응.”
자세히 보니 복사템들을 보면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모습이 보였다.
왜 이때까지 몰랐지?
언제가부터 계속 저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 원래는 이 아이템들을 잔뜩 쌓아 두고 나중에 마신의 파편에 제물로 넣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제물들을 금속의 정령이 탐내는 중이다.
뭐가 더 중요한가를 생각해 보면 압도적으로 마신의 파편이긴 한데…….
만약 금속의 정령이 이걸 먹고 성장할 수 있다면?
오히려 이쪽이 더 나은 건가?
굳이 당장 쓰지도 않을 무기들을 가만히 쌓아 두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이런 고민은 너무 쉽게 결론이 낫다.
“흐음, 먹어도 돼.”
“정말?”
“어, 생각 바뀌기 전에…….”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금속의 정령이 후다닥 복사된 아이템들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제일 위에 있는 녀석부터 빠르게 흡수시키기 시작했다.
마치 논바닥이 갈라지듯 되듯 검신부터 조각조각 갈라져 흩어지는 모습이란.
그런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템 파편들이 서로 다른 성분으로 분해가 되더니 금속의 정령의 입으로 차곡차곡 들어가기 시작했다.
거기다 볼록하게 나온 양 볼에 금속 파편을 잔뜩 머금고 행복해하는 모습이란.
으음.
꼭 보기에는 햄스터 같은데…….
금속의 정령이 먹이를 저장하는 딱 그런 모습을 보여 주면서 행복하게 음식(?)을 먹어치워 갔다.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금속의 정령 ??과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역시 이런 거려나?
금속의 정령이 원하는 일을 해주자 호감도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스템 창이 부족할 정도로.
그리고 이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 금속의 정령의 포만감이 소폭 채워집니다. 》
《 금속의 정령의 포만감이 소폭 채워집니다. 》
.
.
《 금속의 정령의 성장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
호감도가 오르는 것만큼 포만감이 오르더니 이번엔 성장도가 올랐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이거 참.
금속의 정령을 키우는 방법이 이런 식이었나?
흡사 아퀼라스 주니어를 키울 때와 같은데?
생각해 보면 금속의 정령이 금속을 먹고 자라는 건 당연한 일일 텐데…….
그동안 마신의 파편에 너무 신경이 쓰인 나머지 이쪽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당연하지만 금속의 정령이 성장하면.
금속의 정령이 가호를 내려주고 있는 르아 카르테가 성장하게 된다.
둘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
마신의 파편에 제물로 바칠 아이템이 아깝다는 생각은 이미 저 멀리 훌훌 사라져 버렸다.
마치 햄스터처럼 열심히 금속을 먹어치우는 중인 금속의 정령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야무지게 쑥쑥 크려무나.
그렇게 어느 정도 복사템을 먹어치우고 난 뒤 만족한 듯 크게 커진 배를 안고 옆으로 뒹굴거리는 금속의 정령을 옆에 두고 계속 아이템을 복사했다.
배가 부른 문제야 뭐.
나중에 조금 더 먹이면 확실히 성장하겠지.
다 좋은데 문제는…….
“하아, 마력이 너무 부족하네.”
마력 부족.
이 고질적인 문제는 어쩔 수 없나.
그때 배가 불러 바닥에 누워있던 금속의 정령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뜻밖의 말을 해 주었다.
“마력이 많이 필요해?”
“뭐. 보다시피?”
“으응, 그럼 내가 그거 해결해 줄까?”